- 4권 18화
93화
엘레오노르를 단박에 제압해 버 린 서준의 뛰어난 능력과 위용을 보았던 만큼 애쉬의 행동은 빠르면 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덕분에서준은 이른 아침부터 예 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애쉬 요원과 레건 부통령에게 이야기를 모두 들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 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없는, 아니 숙여서는 안 되었 던 미국의 정상, 대통령 루이스 마 셜이 허리를 기역 자로 꺾으며 사 과를 건네 오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서준의 표정 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이게 끝?”
툭 까놓고, 이번 일은 미국의 잘 못이 아니었다.
초월자(超越者)는 말 그대로 인 간의 궤를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평범한 인간의 범주에 든 이들이 어떻게 할 방도가 있겠는가?
그러나 전에도 말했듯, 휘하에 들어오길 바란다면 그에 따른 능력 을 증명해야 하는 법이었다.
비수가 숨어 있는 서준의 말에 루이스의 등 뒤로 식은땀이 비 오 듯이 홀러내렸다.
“한서준 각성자님께서 필요로 하 실 디아볼로스에 관한 정보들은 현 재 수집 중에 있습니다……
그리 시원스럽지 않은 대답에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렇다면 원하는 정보를 취합해 서 가져오는 게 순서가 맞지 않았 을까?”
하지만 이미 한 번 서준의 경고 아닌 경고를 받은 만큼 아무런 방 비 없이 왔을 리 만무했다.
뒤편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애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백번 옳은 말씀입니다만, 그 전 에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애쉬의 말에서준의 미간이 더더욱 찌푸려져 가는 모습에, 애쉬가 황급히 뒷말을 이 어 갔다.
“미흡했던 저희 미국 각성자 협 회의 방비로 불편한 일을 겪게 한
점과 더불어 재앙급 빌런인 엘레오 노르를 제압해 주시고 저희 뉴욕, 시민들을 지켜 주신 한서준 각성자 님께 감히 저희가 드리는 사죄 겸 감사의 진상품입니다.”
애쉬가 내민 손바닥 위에는 레몬 처럼 상큼하게 밝은 노란색을 발하 는 보석이 박힌 반지가 있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장신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서준은 이 반지의 정체를 쉽 사리 추측할 수 있었다.
아니, 인터넷에서도 유명하게 퍼 져 있는 만큼 모를 수가 없었다.
“므네모시네의 염(念)
서준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애쉬가 내민 반지를 받아 들자 눈앞의 ‘므네모시네의 염’에 관한 정보들이 떠올랐다.
[므네모시네의 염(念) 반지]
등급 : SS
분류 : 반영구 아이템
기억의 신 므네모시네가 만들어 냈다는 반지로 전설적인 아티팩트 입니다.
특수 효과
1. 드급, 므네모시네의 축복 : 소 지자의 모든 스테이터스(힘, 민, 체, 내)가 45씩 상승합니다.
2. SS급, 므네모시네의 손길: 기 절 혹은 죽은 자의 과거 일주일간 의 기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디, 한서준 각성자님의 마음 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모든 스테이터스를 45씩 상승시 키는 뛰어난 효과는 말할 필요 없
이 훌륭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스테이터스만 상 승했다면 이 정도로 기쁘지는 않을 것이다.
‘므네모시네의 손길.’
사실, 마선의 경지에 이룩했었던 만큼 서준은 무력에 관한 부분은 해결할 방도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3년간의 공백, 그리고 특 별한 기관이나 단체를 거느리고 있 지 않았기에 정보력의 부재는 쉽사 리 메꿀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 수집에 탁월 한 능력을 지닌 ‘므네모시네의 염’
반지는 최고의 아티팩트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귀한 아티팩트를 함부로 줘도 되나?”
므네모시네의 염 반지는 정보를 수집하는 데 최고의 능력을 지닌 만큼, 현재 미국의 기반을 지탱하 고 있는 것 중 하나라고 할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실제로 므네모시네의 염은 국보 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뛰어난 아티 팩트였다.
“본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서는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치
러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엘레오노르 건에 대한 사 죄와 감사의 표시만은 아니었다.
한서준 각성자는 머지않아 세계 의 패권(B權)을 쥐어 잡고 정상에 설 인물이었다.
비록 이전처럼 미국이 세계 최강 의 자리를 지킬 수는 없게 되겠지 만, 두 번째, 2인자의 자리에서는 밀려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므네모시네의 염 반지는 그를 위한, 사실상 뇌물이었다.
“무엇보다도 저희가 므네모시네 의 염 반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을 아는 이들이 많아진 만큼 다들 방비를 철저히 하고 있기에 사용에 어려움이 많아졌습니다.”
미국에 침투되는 스파이 혹은 빌 런들은 그 기억들을 읽을 수 없게 만들기 위하여 일주일간의 공백 기 간을 둔 후에 투입되고 있었다.
실제로 엘레오노르에게서조차도 일주일간의 기억으로도 디아볼로스 의 핵심 정보들을 하나도 얻을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만의 비밀 로 하고 한서준 각성자님에게 넘어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서준이 므네모시네의 염 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없는 만큼 일주일이란 시간을 버려 가면서 대 응을 해 둘 리가 만무했다.
앞으로 무턱대고 서준을 찾아오 는 이들은 정보의 보고(寶庫)나 다 름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서준은 미국이 누렸던 정보의 혜 택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서준, 한국에 급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 는 꼴이었지만, 루이스와 애쉬는 개의치 않아 하고 있었다.
오히려 루이스와 애쉬의 눈빛에
서는 서준의 마음에 들기 위한 갖 은 노력을 보이며 강한 열망을 피 워 내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서준의 입가 에 미소가 흐른다.
‘좋은 변화네.’
이전처럼 말뿐인 맹세가 아니었다.
국보급 아티팩트를 내어 주는 둥 의 각오를 보여 주면서 충성을 바 치고 있었다.
게다가 건네준 므네모시네의 염 반지의 능력은 서준의 마음에 쏙-두는 아티팩트였다.
‘디아볼로스의 꼬리를 잡아내기 에 아주 유용한 물건이야.’
지금 상황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 었다.
“……좋아, 일단은 합격점이야. 지금처럼만 행동하면 조만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야.”
긍정적인 서준의 대답에 루이스 와 애쉬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흐 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말을 내뱉었다.
“너무 좋아하진 말고. 앞으로도 처신 잘해야 할 거야.”
“당연하지요! 앞으로도 한서준 각성자님께 확고한 믿음을 드리도 록 할 테니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 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경쾌한 대답과 몸짓으로, 강렬한 충성심을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준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흐른 다.
“음, 생각해 보니까 하나 부탁을 좀 할 게 있는데.”
“무엇이든 편히 말씀해 주십시 오.”
“엘레오노르의 전투를 겪어 보니 이곳이 너무 위험하다고 느껴져서 안전한 한국으로 바로 귀국을 하고 싶은데.”
당연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말 도 안 되는 핑계였다.
그저 서준이 콘퍼런스를 참여한 이유였던 정복왕의 파편을 취해 냈 기에 뉴욕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 어졌을 뿐이었고, 편안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서준의 입장에서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였지만 루이스와 애 쉬가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눈치
를 살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콘 퍼런스 기간 도중에 자국으로 떠나 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이라고 봐야 했다.
일반적인 국제 행사도 아니고 세 계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최상 위 각성자, 그들의 콘퍼런스에서 빌런이 위험해서 못 있겠다고 돌아 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하물며, 재앙급 빌런인 엘레오노
르를 제압한 한서준 각성자가 위험 을 느낀다?
정말 세 살 아기가 떼쓰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망설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준 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힘든 일인가?”
어두워져 가는 서준의 얼굴에 루 이스와 애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감히 누구의 명을 거절하겠는가?
‘없던 일이라면, 지금부터 선례를 만들면 그만이지.’
루이스가 황급히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바 로 절차를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 다.”
루이스와 애쉬, 미국 각성자 정 부와 각성자 협회가 열심히 손을 써 준 덕인지 귀국 절차는 막힘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준은 엘레오노 르를 제압해 낸 덕에 명성이 하늘 을 치솟았는데, 이런 갑작스러운 귀국이 결정되었으니 여러 구설수 에 오르기 너무나도 좋은 이야기였 다.
[‘특혜’인가? 이례 없던 한서준의 갑작스러운 귀국]
때문에 이처럼 의문, 논란이 될 만한 기사들이 하나둘씩 작성되기 시작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이 서준의 행동을 포장해 준 덕에 비난보단 찬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국과의 동맹 더욱 굳건히…… 한국은 ‘의형제’와도 같은 나라]
[코리안 슈퍼히어로 미스터 한, 뉴욕을 구하다!]
[‘재앙’, 한서준 앞에 무너지 다…… 엘레오노르와의 전투에서 입은 피해로 명예로운 귀국 결정, 대통령, “타국에서 이런 일을 겪게 해 죄송할 따름.”]
덕분에 자연스럽게 서준의 인기 가 치솟았고, 공항에서 몰려드는 취재진과 팬들로 인하여 잠시 소란 을 빚긴 했었지만, 큰 잡음이나 불 쾌한 일 없이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삑, 삑, 띠리리-
익숙한 과정들을 거쳐 문을 열어 젖히는 순간, 이제는 나름 익숙해 진 그림이 펼쳐진다.
가족들이 전부 현관 앞에서 있었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니까요.”
몇 번 겪어 봤던 일인 만큼, 자 연스레 대처를 해낸다.
그러나 서준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펼쳐졌다.
“장하다! 장해! 내 아들!”
“이 엄마도 정말 기쁘구나.”
평소처럼 걱정이 담긴 말들을 쏟 아 낼 줄 알았는데, 쏟아지는 칭찬 들에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다들 왜 이러세요?”
“숨길 필요 없다. 산책하는 길에 이웃들이 만날 때마다 네 칭찬을 엄청나게 하더구나. 하하!”
“네 아빠 어깨가 잔뜩 올라가서 하늘에 닿을 정도더라.”
이전, 일본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국가 간의 갈등, 분쟁이라고 볼 수 있었던 상황이었던 만큼 좋은 말만 나왔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재앙급 빌런인 엘레오노르를 제압해 냈고, 뉴욕을 구해 낸 영웅!
그것도 세계적인 영웅으로 칭송 을 받고 있었다.
전부 확인은 못 했지만, 서준의 고국인 한국에서 기사들이 어떻게 나왔을지는 뻔했고, 반응들이 이해
가 갔다.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자랑 중 최고는 자식 자랑인 법이었다.
부모님이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이유를 알 수는 있었지만, 서준의 표정은 그리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정말 좋은 일이긴 한데, 지금부 터 이제 염두에 두어야 할 점과 앞 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평소답지 않은 목소리와 분위기 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서준 을 향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최대한 저를 비롯한 가족들이 세상에 드러 나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서준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면 서까지 일부러 정보를 숨겨 왔었다.
당연하지만, 생각 없이 이런 행 동을 해 왔던 것이 아니다.
“여태껏 기사들을 봐 오셨을 거 고, 특히 서연이 너는 직접 겪어 봐서 알지? 나는 적이 엄청나게 많 다는 걸……
그런데 이번 일로 영웅으로 칭송 받게 되었고 그 인기가 하늘까지 치솟아 더 이상 정보를 통제할 수
준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이사도 소용이 없겠지.’
근처에 거주하는 일반 시민들이 가족들까지 알아봤을 정도면 이미 걷잡을 수 없올 정도의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무리 숨으려 해 봤자 들키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일 것이다.
어느 날, 언제, 어떠한 위협이 닥 쳐올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다행인 것은 이날까지 아무런 방 비 없이 놀고만 있던 것이 아니라 는 점이었다.
서준은 진중한 표정을 지은 채로
가족들을 훑어본 후에 뒷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말인데요, 전에도 이야 기를 꺼냈던 것처럼 우리 가족들이 다 함께 게이트에 가서 사냥을 해 서, 최소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까지는 성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말을 끝맺기 무섭게 서연이 곧장 소리를 내지른다.
“난 완전 찬성!”
서연은 이미 각성자 생활을 즐기 고 있는 만큼, 전혀 문제없을 것이 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몬스터라지만 살생(殺生) 을 벌여야 하는 만큼 부모님이 원 치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서준은 말을 내뱉고 나 서 한석훈, 양정화 두 부모님의 눈 치를 살피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려했던 일들 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아빠도 동의한다. 강한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법이 지.”
“그럼 어떻게 엄마만 빠질 수 있 겠니. 엄마도 찬성이란다.”
흔쾌한 가족의 동의로 안전은 물
론, 꿈꾸던 불로장생까지 노려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그러면 최대한 빠르게 일정을 잡고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그렇게 서준이 가족의 안전 방비 와 여태 바랐던 불로장생에 대한 계획을 정립해 가고 있을 무렵, 세 계를 뒤흔들 또 하나의 커다란 이 변이 다가오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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