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10화
85 화
며칠 후.
세계의 매스컴이 크게 들썩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세계 각성 자 협회가 헌터 콘퍼런스의 참석 명단을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동부 길드 에우클레이데스, 길드장 니우]
[한국 무소속 한서준]
[한국 각성자 협회 협회장, 강석 회
[중국 문파 구룡문, 문주 구존]
[뉴질랜드 길드…….]
각성자 콘퍼런스는 평범한 세미 나가 아니었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협회장, 인 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후 각성자 계의 동향과 전망을 논하는 자리였 다.
그렇기에 사실은 개인의 무력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초대받을 수 없
고, 협회를 대표하고 있거나 거대 길드를 운용 중인 길드의 마스터만 을 초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무소속으로 이름을 올린 채로 각성자 콘퍼런스의 초청을 받는 전 례가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어찌 보자면, 한서준이라는 각성 자가 가진 개인의 무력이 한 국가 를 대표하는 협회, 거대 길드를 상 회한다는 것을 세계 각성자 협회에서 인증해 준 셈이었다.
이런 세계 각성자 협회의 파격적 인 행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단 한 이슈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각성자 콘퍼런스에 당당하게 초 대받은 무소속, 한국의 한서준 각 성자 : 이례인가 파격인가]
[재앙급 몬스터 하이 리치를 홀 로 사냥한 한국 최강의 각성자, 그 가 세각련에 당당히 인정받다]
이외로도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며 한서준 각성자, 그리고 각 성자 콘퍼런스에 세계의 시선이 집 중되고 있었다.
한창 세계의 이목이 몰려 기사들 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시각, 서준 은 각성자 콘퍼런스가 열리는 뉴욕 의 공항에 막 도착한 상태였다.
“한서준 각성자님, 곧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에 착륙합니 다.”
강석호의 말에서준이 두 눈을 덮고 있던 안대를 들어 올린다.
“벌써 도착했나요?”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문 밖 광 경은 그야말로 마천루(摩天樓)의 향연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엠파 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해 펼쳐 진 고층 빌딩이 자아내는 고고함이 란 과연 세계 제일가는 부촌(富村) 임을 실감케 했다.
서준과 함께 그 풍경을 바라보던 강석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이제 옷을 갈아입어 주셔야 합니다.”
서준은 항상 편한 모자가 달려
있는 푸른 계통의 노란 줄이 들어 간 바람막이와 같은 트레이닝복 차 림을 선호하였다.
하지만 지금 강석호의 손에 들려 있는 옷은 검은색 정장이었다.
“꼭 이런 정장을 입어야 하나 요.”
“강요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능하시다면 입으시는 것을 권장 드리고 싶습니다.”
확실히 아무리 서준이라 할지라 도 정상급 헌터들이 모이는 콘퍼런 스에도 그렇게 참석을 한다면 괜히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귀찮은 일을 구태여 만들 필요가 없는 만큼, 서준은 강석호가 건네 준 정장을 손에 쥔 채로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강석호는 정장 차림의 서준을 바 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역시 인물도 훌륭하십니다.”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전 항상 사실만을 말하는걸요.”
실제로 올곧다 못해 고지식할 정 도의 성격을 가진 강석호는 빈말이 나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국제 행사였기에서준에게 가장
잘 어울리게끔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신경을 써 준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서준은 고된 단 련으로 딱 벌어진 어깨와 역삼각형 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뭐, 그렇게 칭찬해 주신다면야 속아도 손해는 아니죠.”
서준이 씨익 미소를 흘리고 있던 찰나, 곧 착륙한다며 좌석에 앉아 서 안전벨트를 착용해 달라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잡담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군말 없이 자리로 가서 안전벨트를 맸다.
기장의 기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행기는 요란 한 소리를 내며 착륙을 시도하는 듯했다.
끼긱, 끽…….
이윽고, 요란한 소리를 토해 내 던 비행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 요한 침묵을 되찾았고, 기내 방송 이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
성공적으로 착지한 것을 확인한 강석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을 했다.
“가시죠.”
각성자 협회의 전용기에 탑승하 고 있던 두 사람은 착지하자마자
곧장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덕분에 공항의 검문소 직원들도 별도의 큰 제약 없이 게이트를 빠 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게이트를 빠져나 오고부터 시작되었다.
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홀러나 온다.
“이게 무슨 일이죠?”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 인파가 게이트의 입구를 메우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놀란 것은 비단 서준뿐만이 아니 었다.
강석호도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도 이런 적은 처음입니 다.”
협회장이라는 직책에 앉아 있는 탓에 매년마다 각성자 콘퍼런스에 참여를 해 왔긴 했지만, 이 같은 상황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 었다.
‘한국인을 이렇게 반길 이유가 없을 텐데……
대격변의 시대 이후 각성자의 인 기가 웬만한 할리우드 스타만큼 많 다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각성자
들에게까지 이런 큰 호응을 주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강석호가 이유를 찾기 위해 재빠 르게 머리를 굴리느라, 두통이 밀 려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다행히도 강석호의 고민 은 오래가지 않았다.
“꺄악!! 어떡해 여길 봤어!”
“AAO! 애쉬! 여기 좀 봐 줘요!!”
인파의 환호를 받으며 검은색 정 장을 갖춰 입은 한 무리의 각성자들 이 서준과 강석호를 향해 다가온다.
“반갑습니다, 강석호 협회장님, 한서준 각성자님. 저는 두 분의 안
내를 맡은 애쉬라고 합니다.”
은발을 지닌 여자, 허리를 숙이 며 인사를 건네는 애쉬의 모습에 강석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쉬!’
당연한 반응이었다, 애쉬는 AAO 소속의 각성자.
그것도 일개 요원이 아닌 11명으로 구성된 AAO 팀 내 최고 실력 자이자 실권자, 팀장의 직책에 앉 아 있는 거물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가 졌음과 동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 사할 수 있는 인물이란 말이었다.
이제야 이 많은 인파가 몰려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긴장감에 등 뒤에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기 시 작했다.
‘설마 AAO 쪽에서 이렇게 과감 하게 행동할 줄이야……
그 콧대가 높다는 미국, AAO가 이런 식으로 나올 이유는 하나뿐이 었다.
적의(敵意), 이빨을 드러낸 한국 이라는 나라를 미국의 위용과 기세 로 짓누르려고 하려는 것이었다.
다른 각성자였다면, AAO의 위상
에 기가 죽었겠지만 지금 옆에 있 는 한서준 각성자라면 이야기가 달 랐다.
‘이런 거에 움츠러들 분이 아니 시지.’
단순한 기세가 아닌 전투에서도 한서준 각성자가 패배하리라곤 눈 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파가 몰린 탓에 껄끄러 운 일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서준 각성자가 분투를 벌인다면 그를 적극적으로 서포트 할 생각이었다.
강석호는 이후 행보를 위하여,
는을 흘겨 한서준 각성자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한서준 각성자 의 기세는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안내인치고는 너무 거창한 게, 다른 용무가 있는 것 같은데?”
날이 선 서준의 말에 덩달아, 강 석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긴 장감을 다잡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기세 싸움은 일 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애쉬는 고개를 숙이며 사 과의 말을 건네 왔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
다. 로브 라이너에 관한 건은 엄연 한 저희 쪽의 불찰이었습니다. 예, 다른 용무가 있다면 그에 따른 사 과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온 것일 뿐입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강석호의 눈 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보름달처럼 커졌다.
비단 강석호뿐만이 아니었다.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대던 인 파들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침 묵하기 시작한 것이다.
‘AAO가 사과한다고?’
‘이게 무슨……!’
미국, AAO는 다른 국가에 고개 를 숙이며 사과를 표한 적이 없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다들 손등 으로 두 눈을 비벼 보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오히려 애쉬는 연거푸 고개를 숙 이며 사과의 말을 건네 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설마 로브 라이너 가 그 정도의 머저리일 줄은 몰랐 습니다.”
로브 라이너의 소식은 애쉬에게 도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동료인 미국인들에게는 깍듯이 대했기에 로브 라이너를 둘러싼 소 문은 단순히 시기 질투로, 실제로 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고 있을 것 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애초에 로브 라이너의 성격이 그 러한 걸 알았다면 스카우터로 보내 지도, 아니 AAO의 요원으로 선출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로브 라이너, 이 주제도 모르는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굳이 맞붙어 볼 것도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한서준 각성자 는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강자인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초월자의 경지에 도달한 강자다.’
로브 라이너 같은 일반 요원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니, 현재 미국으로서도 다소 버거운 존재였다.
한서준은 우군이 되지는 못해도 최소한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이였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찾아뵙 고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어서 저와 AAO 요원들이 안내인 역을 자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애쉬가 진심 어린 사과 를 건네고 있었지만, 가늘어진 서준의 눈매가 펴질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사과라……. 말은 좋다만, 진심 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은 날카로 운 서준의 시선이 애쉬의 눈동자를 옹시한다.
흔들림 없는 올곧음, 애쉬는 분 명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휘하 사람들을 일 일이 챙긴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 이 아니긴 하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천마에 즉위해 있던 서준도 의도 와 다르게 행동하는 부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할까나.’
고민을 이어 가던 서준이 내린 답은.
‘일단은 보류.’
받아 줄 수는 없었지만, 보는 눈 이 지천에 깔린 만큼 저자세로 나 오는 이를 압박해 봤자 좋은 모양 새가 나올 리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앞선 로브 라이너의 사건을 없던 일로 해 줄 생각은 아니었다.
“단순히 말로 끝내려는 것은 아 니겠죠?”
“당연히 말 한마디로 때우려는 것 역시 아닙니다……. 기존 참여 보상과 더불어 저희 AAO가 가진 스킬 중 한 가지, 한서준 각성자님 께서 원하시는 것을 내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강석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경탄 이 터져 나왔다.
“헉!”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 쉬가 언급한 것은 자그마치 AAO 의 스킬이었다.
미국, AAO가 괜히 정점이라 불 리는 크라운즈 나이트와 비견되는 것이 아니었다.
개인의 무력에 치중되어 있고, 혼자서 성장을 해 나가는 크라운즈 나이트들과 달리 AAO요원들은 서 로 가진 스킬들을 공유하고 끊임없 이 개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없는 스킬 빼고 다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스킬들을 가지
고 있는 조직이 바로 AAO였다.
당연하지만, 그중에서도 S급 이 상, 특히나 SSS급 스킬의 경우에는 그 가치가 천문학적이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니었다.
덕분인지 서준의 눈매도 다소 유 순해지기 시작했다.
“나쁘지는 않긴 하다만, 전 말뿐 인 약속은 믿지 않아요.”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 전수해 드 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처리하는 김에 참여 보상으로 요청하신 아티 팩트도 같이 넘겨 드릴 수 있습니 다. 우리 관계를 위해서라면요.”
머릿속에 수백, 수천 가지의 무공 을 알고 있는 서준이었기에, 솔직히 말하면 서준에게 AAO의 스킬은 그 리 탐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진의(眞意)를 확 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복왕의 파 편도 넘겨준다고 하지 않는가?
여러모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서준이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 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이동하도 록 하죠.”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