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20화
70 화
그 표정에 구옹은 본능적인 공포 를 느꼈다.
‘이것이 전력이 아닌가?’
분명 공격을 막아 냈는데, 무슨 거대한 망치를 막아 낸 것 같은 충 격이 밀려왔다.
단 일격을 허용했을 뿐인데, 숱 한 전투와 수련을 견뎌 온 팔과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기에 당연 히 한서준도 전력을 다해 공격을
펼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공격이 막힌 한서준의 얼굴에는 단 한 줌의 당황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한 여유로움이 배어 있었다.
“제법 단단한가 본데……
죽일 마음은 없었기에 힘을 조절 했다지만, 방금 전 내뻗은 주먹에 는 파천수라권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분명, 쉽게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옹은 명성값 을 보란 듯이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막아 내 보이고 있었다.
앞서 쓰러뜨린 쇼라는 사내 때와 는 달리, 크게 힘 조절을 할 필요 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 른다.
“어디 이것도 한번 막아 봐.”
서슬 퍼런 서준의 경고에 등골이 서늘해지며, 지금까지 고된 각성자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줬던 생존 본능이 무지막지한 경고를 보내왔 다.
‘다음 공격을 맞으면 죽는다.’
방금 전, 한서준이 가벼이 휘두 른 것 같은 공격에도 큰 충격을 느
꼈다.
하물며 저렇게 당당히 경고를 해 올 정도의 공격이라면, 결과는 굳 이 볼 필요도 없었다.
죽음, 생각지도 못했던, 아니 생 각하고 싶지 않았던 마지막을 맞이 하게 될 것이었다.
구옹의 눈에 삶을 향한 갈망의 불꽃이 일어났다.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
당연하겠지만, 한서준이 보였던 실력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공격은 일절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방책도 구룡문
의 백룡쯤 되면 존재하는 법이었다.
‘구룡문의 비기……
각성자가 생기기 전부터 무(武) 를 갈고닦아 온 문파가 바로 구룡 문이었고, 그 세월에 따른 강력한 비기가 존재했다.
물론, 이러한 비기는 외부에서 사용하는 것은 일절 금지였으며, 만일 외부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본 대상을 죽여야만 하는 스킬이었다.
지금과 같이 보는 눈이 많은 상 황에서는 써서는 안 되는 스킬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자잘한 사항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결단을 내린 구옹은 황급히 두 팔을 앞으로 내뻗는다.
“비기, 백룡출무(白龍出武).”
구옹의 손에서 뻗어져 나온 새하 얀 강기들은 이내, 포악한 백룡(白 龍)의 형상을 취해 간다.
어느덧, 완연한 형상을 갖춘 거 대한 백룡이 입을 쩌억- 벌리며 쏘 아졌다.
척 보기에도 그 모든 것을 파괴 할 것같이 강력한 용의 난무였지만, 서준은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홀린 채 로 다가오는 백룡을 향해 주먹을
앞으로 내뻗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뻗은 손을 어깨 뒤로 당겨 내며 근육, 체내의 내공을 응 집시킨다.
수많은 레벨 업, 그리고 흡성대 법으로 흡수해 낸 내공, 가이사의 축복의 효과가 어우러져 조화경의 상급 수준에 달할 정도로 어마 무 시한 양의 내공이 운용된다.
하지만 근처에는 경호, 그리고 하나뿐인 동생 서연도 있는 탓에 주변에 여파를 끼치는 무공을 펼칠 수는 없었다.
선택에 제한이 생긴 셈이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화려한 게 꼭 강한 건 아니지.’
눈앞의 꼴에 비기라고 외치는 무 공만 해도 화려하기만 할 뿐, 속은 비어 버린 깡통이지 않은가.
서준은 막대한 양의 내공을 한 점, 주먹에 집중시킨다.
천마, 마선 한서준이 직접 만든 무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만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천마 의 힘이자 중원 대륙을 재패했던 패왕(혀王)의 기운이 어린다.
이건 오랜 시간 대물림되고, 내 려오느라 훼손되고 나약해진 어중
간한 무공이 아니었다.
중원 대륙의 모두를 무릎 꿇렸던 천마, 한서준의 힘이었다.
만인을 굴종시켰던, 강력한 힘을 가진, 천마 한서준의 무공을 펼치 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막대한 양의 내공 소모 가 문제였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엄 두조차 내지 못했을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괄목 한 설장을 이뤄 내며 부족했던 심, 체를 모두 보완해 내었다.
내공의 양은 해결됐다는 말이다.
다음으로는 일점에 모든 힘을 집 중시킬 수 있는 상식을 초월할 정 도의 고도의 내공 운용 능력이 필 요했다.
당연하지만, 무공을 직접 창안해 낸 천마, 한서준에게는 문제가 되 지 못했다.
중원 대륙에서는 수없이 펼쳐 본 만큼 내공이 자연스레 움직인다.
띵-!
[시스템의 목록에서 스킬의 명칭 을 불러오는 데 실패했습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무공의 창안 입니다!]
[이름을 정해 주세요.]
[등급 측정 중…….]
그러나 이것은 이미 중원 대륙에서 완성하고 사용했던 것이기에 이 름조차 고민할 필요 없었다.
“천마원(天魔源), 흑성(黑星).”
쿠구궁-!
주먹에 집중된 내공의 여파에 대 지가 진동하는 순간, 서준은 주먹 을 과감하게 앞으로 내뻗는다.
응축되어 있던 검은 기운, 천마 의 근원과 같은 힘이 격동하며 쏘 아진다.
막대한 양의 내공이 응축되었다 고는 믿을 수 없는 작은 주먹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절대적인 마(魔)의 힘이었다.
용(龍)의 본체라면 모를까, 강기 로 빚어진 것 따위의 가짜가 버틸 수 있을 만한 힘이 아니었다.
콰과광-!
잔혹한 소리와 함께 마가 아귀를 벌린 백룡의 아가리를 관통했다.
그 충격을 그대로 받은 백룡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끝내는 완 전히 자취를 감췄다.
“말도 안 돼……
구옹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 고 있었다.
구룡문의 문주이자 크라운즈 나 이트의 다섯 번째 자리를 꿰차고 있는 구룡문주, 용왕도 백룡출무를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받아 내지 못했다.
그 말은 즉, 지금 한서준이 구룡 문주, 용왕보다 강력하다는 말이었다.
‘한국에 이런 스킬을 가진 각성
자가 존재했었다니!’
1년도 채 되지 않은 풋내기 각성 자, 하물며 한국은 무(武)를 숭상하 지도 않았고, 갈고닦지도 않는 나 라였다.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현실은 너무나 도 냉혹했다.
“끝이야.”
거대한 마(魔)는 백룡을 집어삼 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아직도 조금의 기세도 꺼뜨리지 않 은 채 쇄도해 오고 있었다.
달려오는 마(魔)에 구옹이 황급
히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방어를 취 했지만,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강기로 빚어졌다지만 용(龍)을 집어삼킨 마(魔)였다.
콰지직-!
고작 구옹이 받아 낼 수 있을 리 가 없다는 말이다.
서준의 주먹, 일점이 닿는 순간 몸에 두르고 있던 호신강기가 갈라 지고, 찢어발겨진다.
“끄아악-!”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아득 한 고통과 함께, 후회가 썰물처럼 밀려왔다.
국가 간 자존심 싸움에 감정이 격해진 탓에 선을 넘어 버렸고, 한서준이라는 괴물의 심기를 건드려 버렸다.
불과 오 분 남짓한 일 하나로 돌 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 결과에 뼈 저리게 후회됐지만, 너무 늦고 말 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에 따른 책임, 벌을 받는 것뿐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 며, 의식의 끈은 옅어져 갔고 밝았 던 시야는 서서히 암전되고 있었다.
마침내 구옹의 신형이 바닥을 향
해 고꾸라졌다.
실이 풀린 인형처럼 쓰러지고 있 는 구옹, 넝마가 되어 움직이지 못 하고 있는 쇼의 모습에 문파원들과 요자쿠라 길드원들의 동공은 지진 이라도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괴, 괴물……
직장 상사로, 길드의 상급자로 받들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당연하게도 그들과 게이트 공략에 나선 경험이 있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구옹과 쇼의 강 함을 익히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일격에 쓰러진 쇼도 일본, 자국 내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리는 실력 자였고, 후에 같은 운명을 맞이한 구옹은 이미 백룡으로 세계적인 명 성올 떨치고 있는 존재였다.
그런 구옹과 쇼가 합심해서 덤볐 음에도 불구하고 한서준의 발끝 손 끝 하나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구태여 싸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이 한서준을 상대로 승리 를 점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한서준을 바라보는 각성자들의 눈동자에 공포심이 차오르며 전투 의지가 완전히 상실되었다.
‘지금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저 괴물을 상대로는 못 이긴다.’
그렇다고 국제법을 믿고 있을 수 도 없었다.
방금 전 구옹, 쇼를 공격했듯이 한서준은 그런 자잘한 규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각성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도망쳐야 해.’
그러나 머릿속 생각과 달리 쉽사 리 발을 떼지는 못했다.
상식적으로, 눈에 띄면 죽는 것 이었고 먼저 달리면 표적이 될 확 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이 사실을 눈치챘기에, 양국의 각성자들은 희생양, 제물이 되어 줄 이가 나타나길 간절히 바 라며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 한서준의 강력함 이 뇌리에 각인된 만큼, 제물을 자
처할 이가 존재할 리 없었다.
‘ 빌어먹을.’
그렇다고 모두 눈치를 보다가 아 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손 놓고 있다가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고 싶 은 마음은 없었다.
‘다른 방도가 필요해.’
눈동자를 굴리며 서로의 눈치를 보던 와중 양국 각성자들의 시선에 이채가 어린다.
한서준과 달리 그의 동료 김경 호, 한서연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 았다.
각성자들이 서로의 눈치를 봐 가
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인다.
눈빛과 몸짓으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각성자들이 동시에 발을 놀 렸다.
타닥-
나름 유능한 문파, 길드의 소속 인 만큼 각성자들은 순식간에 경호, 서연과의 거리를 좁히며 팔을 내뻗 는다.
‘됐어!’
이제 둘을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면 활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 라는 생각에 각성자들의 눈동자에 는 희망이 차오른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아주 자기 주인을 닮아서 주제 도 모르는 호구 등X이네.”
내뻗은 팔은 애꿎은 허공을 때렸 다.
“낙화(落花).”
흩날리듯이 움직이는 경호와 서 연의 육체가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시야를 뒤흔들었다.
각성자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그러나 이러한 놀람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뒤이어 팔이 기이하게 꺾이는 고 통과 함께, 시야가 핑 돌아간다.
함께 움직였던 동료들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관절들이 기이하게 꺾여 있었고, 신형들이 허공을 노닐고 있었다.
“설마 나랑 경호 오빠가 너희 같 은 조무래기들한테 당할 거라고 생 각한 건 아니지?”
삽시간에 각성자들을 제압해 낸 서연이 흉흉한 기세를 뿌려 가며 위협을 가하려 했지만 서준이 손을
들어 올렸다.
“잠시만 멈춰 봐.”
“왜? 엄마랑 아빠를 두고 협박을 했던 애들인데 설마 용서해 주려 고?”
당연하지만 서준은 이들을 용서 해 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서준이 그리 자비가 넘치 는 인간이었다면 과거 중원 대륙에 있을 당시 천마, 마선이라고 불리 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방금 전 나누었던 대화 중에 마 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존재했
다.
‘단순한 허세 따위가 아니었어.’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두루뭉술한 가능성을 얘기한 중국의 구옹과 달 리, 요자쿠라의 쇼는 확실히 무언 가 자신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패 를 가지고 있는 듯한 말을 내뱉었 었다.
때문에 그 행동에도 거침이 없었다.
이야기의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니 었기에, 흘려들을 수 없어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본래라면 쇼에게 물어봤어야 했
을 이야기였지만, 아쉽게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 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물어볼 애들은 널리고 널렸으니 까.’
서준의 차가운 시선이 몸을 사시 나무처럼 떨고 있는 요자쿠라의 길 드원에게로 향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