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19화
69 화
당연한 반응이었다.
구룡문(九龍門), 현재 중국을 대 표하는 길드 중 가장 먼저 회자되 는 길드, 문파였다.
많은 인구수와, 넓은 땅을 가진 중국에서 손에 꼽히는 길드인 만큼, 우수한 각성자들이 즐비한 길드이 자, 감히 세계 제일을 논할 수 있 는 몇 안 되는 길드였다.
그리고 그 구룡문 내의 핵심 인
물이자 최강 전력으로 손꼽히는 자 들이 바로 아홉 마리의 용, 구룡(九 龍)이었다.
그중에서도 백(白), 흑(黑), 황 (黃)은 S급 각성자에 속해 있을뿐 더러, 오랜 시간 갈고닦아 온 실력 과 경험을 보유한 강자였다.
즉, 스스로를 백룡이라 소개한 눈앞의 노인, 구옹은 S급 각성자, 그중에서도 상당한 강자에 속한다 는 것이었다.
“구룡문의 백룡이라니……
말끝을 흐리며 당황하는 경호의 모습에 백룡, 구옹의 한쪽 입꼬리
가 올라갔다.
“한성 그룹의 차기 회장은 날 잘 아는 것 같은데, 네놈은……
구옹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어 서준올 바라본다.
그러나 서준은 전혀 모르는 눈치 였다.
정확히는, 관심조차 없었다.
“알 필요가 있나?”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까 전부터 노골적인 시선과 함께 뒤를 밟아 온 만큼 첫인상이 좋 다고 볼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서준의 입장에서 기 분이 좋을 리가 만무했고, 입에서 는 날이 선 목소리가 홀러나왔다.
“시간 아까우니까, 용건만 빨리 말해.”
“쯧, 새파랗게 어린 놈이 말이 많이 짧군.”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을 보였어야지.”
순간, 구옹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표정을 되찾았다.
‘그래, 능력만큼의 대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그리고 한서준은 그만한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저 정도 오만은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성격을 보아하니, 직설적인 것 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원하 는 대로 용건을 바로 말해 주지.”
구옹은 자신감이 넘실거리는 미 소와 함께, 큰 목소리로 외친다.
“구룡문에 가입, 아니 대국(大國) 의, 바로 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자 랑스러운 인민으로 귀화할 기회를 하사(下賜)하도록 하마!”
“뭐? 하사를 한다고?”
서준이 코웃음을 치고 있었지만, 구옹은 여유롭게 양팔을 뻗으며 말 을 이어 간다.
“흔치 않은 기회라 적잖이 놀랐 을 테지, 하지만 꿈이 아닐세. 안심 해도 좋다.”
정말 많이 놀라긴 했다.
엎드려서 빌어도 안 갈 곳인데, 오히려 콧대 높여서 김칫국을 마시 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놀랐냐면 너무 놀라서 말 이 필터 없이 나와 버릴 정도였다.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구옹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 진다.
“지금 무어라 했느냐?”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너 같으면 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시도 때도 없이 감시받고 제재당하 는 국가로 귀화를 하고 싶겠어?”
“지금 구룡문, 아니 대국 전체를 무시하는 거냐?!”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구옹의 몸 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본래라면 구옹이 언제 달려들어 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한서준을 데리고 오라’는 구룡문주, 용왕(龍
王)의 지시가 있었던 탓에 섣불리 손을 쓸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이런 예의도 모르는 놈에게 자비를 보여야 한다니!’
콧김을 씩씩 내뿜고 있는 구옹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가던 찰나 였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야?”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자연 스레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마치 옛 일본 신선조를 연상하게 하는 복장을 한 사내를 중심에 둔 각성자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구옹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네놈은?!”
사내는 구옹의 반응에 말이 아닌 비릿한 미소를 흘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 후 서준을 바라본다.
“한서준, 나는 일본 요자쿠라 길 드의 쇼라고 한다.”
인사를 건네며 서준과의 거리를 좁혀 가는 쇼의 모습에 구옹의 표 정이 구겨졌다.
일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길드 요자쿠라, 그리고 쇼는 그 핵 심 간부 중 한 명으로서 A급 최상 위권에 위치한 걸출한 실력자였다.
나름 거물급의 인사라는 것이며, 그런 쇼가 지금 이곳에 올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불과 며칠 전 말도 안 되는 추 태를 보인 놈들이 한서준을 스카우 트하러 오다니 섬나라 놈들은 염치 라는 게 없나 보군.”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는데, 앞선 이야기를 들어서는 이미 귀화 제의를 거절당한 거 같은데 무슨 낯짝으로 우리 대화에 참견하려는 거지?”
노골적인 쇼의 무시에 구옹의 미 간이 찌푸려졌다.
“네놈-!”
구옹이 언성을 높이며 위협을 가 하지만, 함부로 손을 쓰지는 못했 다.
쇼도 단신으로 온 것이 아니라 요자쿠라 길드원으로 보이는 이들 과 함께 무리를 지어, 동행을 하고 있었다.
타국 땅에서 벌이는 무리와 무리 의 싸움, 자칫하면 국가들 간의 분 쟁으로 번질 수도 있는 대형 사건 이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S급 각성자 구옹이라 할 지라도 섣불리 책임을 지기 힘들다
는 것이었다.
애초에 쇼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s급 각성자인 구옹의 서 슬 퍼런 위협에도 눈 하나 깜짝하 지 않고 있었다.
“저렇게 무식하고 자존심만 센 저런 국가, 길드보다는 우리 일본 으로, 요자쿠라로 들어와라. 아니, 와야 할 거다. 그러지 않으면……
“ 않으면?”
서준의 고개가 갸우뚱 젖혀졌지 만, 쇼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야기 를 끊어 냈다.
“아직 한배를 탄 사이가 아니니
지금은 자세히 말해 줄 수 없다만, 좋은 결과는 아닐 거라고 말해 주 지.”
옆에서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구 옹이 피식 미소를 홀린다.
“크하하! 한서준 설마 섬나라의 졸자가 내뱉는 저런 말뿐인 허세를 믿는 것은 아니겠지? 용왕님의 명 령과, 너의 능력을 특별히 높게 사 서 방금 전의 무례는 용서해 줄 터 이니 우리 구룡문으로 오너라. 그 렇다면 출세가도를 약속하지. 세상 을 거머쥐는 게다!”
그러나 쇼도 전혀 주눅 들지 않 고 입을 열었다.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며 구옹의 말을 받아쳐 냈다.
“말뿐인 허세는 그쪽들의 이야기 겠지. 북한의 몬스터를 무서워해서 한국 땅으로 진출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겁쟁이들이 오만은 하 늘을 찌르고 있군. 한서준! 저런 치 졸한 곳으로 가느니 용맹함이 있는 우리 요자쿠라로 오는 게 현명하지 않겠나?”
구응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 다.
“겁쟁이? 섬나라 놈이 드디어 실 성을 했나 보군.”
“너희 중국이라는 것은 항상 땅 덩어리 넓은 것은 강조하면서 실상 알맹이가 있는 놈은 몇 되지도 않 지. 구룡문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정녕 스스로의 명을 재촉하는 군!”
두 사람, 아니 두 무리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진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만근과 같은 무게 추가 몸 을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공기가 무거워져 간다.
그 누구도 쉽사리 행동할 수 없 을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다
들 숨을 죽이며 그저 서로의 눈치 를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오직 싸움, 비명 소리만이 이 침 묵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 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살얼 음판과 같은 냉전의 상태를 깬 것 은 싸움도, 비명도 아니었다.
“푸흡-!”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린 서준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뒷말을 이어 갔 다.
“둘이서 뭐 하냐?”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있
는데 김칫국을 장독째로 들이마시 고 있었다.
애초에서준은 한국을 떠날 생각 이 없었다.
한국도 다소 불합리한 일들이 있 긴 했지만, 공산국가인 중국, 그리고 민주를 표방하면서 사실은 그것 과 다를 바 없는 일본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정중하게 부탁을 해도 거절을 했 을 판국인데 제안을 하는 태도마저 눈곱만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준의 입에서 잔뜩 날이 선 목 소리가 흘러나온다.
“둘 다 관심 없으니까, 꺼져.”
위협적인 어조에 구옹과 쇼의 시 선이 자연스레 서준에게로 향했다.
“지금 뭐라 했느냐?”
“말이 너무 지나치군.”
구옹과 쇼가 동시에 쏘아 죽일 듯한 기세를 보였지만, 서준은 오 히려 보란 듯이 도발해 주고 있었다.
“덩치만 큰 껍데기 국가나 섬나 라 졸자 집단이나 어디든 갈 생각 이 없으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꺼 지라고.”
이윽고 두 사람의 얼굴이 악귀처 럼 일그러지더니,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서준을 겁박했다.
“네놈의 행동으로 인해 머지않아 서 주변의 지인들, 아니 한국이라 는 나라 자체가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으니 신중히 말을 하는 것 이 좋을 거다.”
“조금 오냐오냐해 줬더니 범 무 서운 줄도 모르고 날뛰는구나. 대 국올 무시하는 무례를 저지르고도 네 주변의 사람들과 이 나라가 무 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앞선 기 싸움으로 감정이 격해져
있던 구옹과 쇼는 서준을 향해 협 박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 낸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일생일대 의 실수였다.
서준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 는다.
감정이 격해진 구옹과 쇼는, 가 족에 대한 위협으로 서준이 정한 ‘선’을 넘어서고 만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한다고?”
구옹과 쇼를 바라보는 서준의 눈 빛이 차가워진다.
눈동자에 담긴 감정에 구옹과 쇼 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흡사, 겨울장의 얼음보다 더 시렸고, 날카로웠다.
고작 마주한 것만으로도, 일순간 이지만 숨이 멎을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이 기세는……
‘이 위엄은……
요자쿠라의 길드장 켄이치, 구룡 문의 문주 용왕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뇌리에 각인된 원초적인 본능,
거대한 공포의 감정이 전신을 옭아 매었다.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고, 두 다리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서, 섣불리 행동하지 마라, 우리를 공격한다면 엄연한 국제법 위반 행위다.”
“네 가벼운 행동 하나가 국가의 민폐가 된다. 신중히 생각해라.”
두 사람 모두 숱한 생활을 견뎌 냈고 상당한 수준에 달한 존재인 만큼, 위기 상황에서도 나름의 대 처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서준의 눈동 자에 차오르는 분노는 가라앉을 기 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국가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 있 는 사안인 만큼 과거라면 한 번 더 깊게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나 혼자서 충분히 책임질 수 있 는 일, 감당할 수 있는 적이다.’
아니, 책임지거나 감당할 것도 크게 없을 것이다.
긴가민가했던 부분이었는데 이번
일본 사건으로 확신을 하게 되었다.
대격변을 맞이한 지금의 세상은 강한 힘, 각성자가 세계의 결정권 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명분과 증거 자료가 있 었다지만, 히로아키와 같은 S급 각 성자가 타국의 각성자에게 당했는 데도 일본은 입을 다물고 있지 않 은가?
명백한 진실을 앞에 두고도 거짓 이라 호도했던 과거 일본의 행보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과거 일
본의 행태들이 아니었다.
지금 이들이 내뱉는 말처럼 세계 의 눈치를 크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애초에서준은 설사 저들 이 말하는 대로 국가적인 제약, 일 들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선을 넘은 이들을 용서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게, 말을 내뱉기 전에 생각 이란 걸 먼저 했어야지.”
서준이 발을 앞으로 내뻗는 순 간, 분명 앞에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온다!”
“오른쪽이다!”
구옹과 쇼는 둘 다 경험이 풍부 한 각성자였기에 상당히 빠르게 판 단을 내렸지만, 애석하게도 몸, 육 체가 그를 받쳐 주지 못했다.
콰직-!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서준이 쇼의 활짝 열린 옆구리를 가격하고 있었다.
“끄어억-!”
묵직한 감각이 주먹을 타고 전해 지는 순간, 쇼의 신형이 허공을 노 닐더니 이내 근처 벽에 처박혔다.
“맙소사.”
구옹이 넋을 놓은 듯한 표정으로 쇼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겨울날의 새벽바람과 같이 스산 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온다.
구옹이 황급히 팔을 엑스 자로 교차시켰다.
파악-!
A급인 쇼와 달리 구옹은 S급이 라는 정점에 위치한 각성자인 만큼 서준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 했다.
그러나 서준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은 당황이 아니었다.
“ 막아?”
서준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지옥 의 야차를 연상케 하는 섬뜩한 미 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