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17화
67 화
견원지간인 한국의 각성자가 강 력해졌다는 것 자체도 배가 아픈 일이었다.
거기에 일본의 외교 전략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던 시련의 산, 그곳 의 게이트가 완전히 제거되고 만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최악 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일본 재무대신, 고로가 인상을 찡그렸지만,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눈 앞의 사내가 바로 부동의 1위 길드 이자 총리에 준하는 권력을 쥔 자 로, 일본의 실권을 쥐고 있는 요자 쿠라(夜機)의 길드장, 켄이치였기 때문이었다.
“확신할 수 없지만 한서준이 시 련을 전부 극복해 내서 게이트가 클리어된 것 같더군.”
단순히 게이트가 사라진 게 문제 가 아니었다.
앞서 시련의 산이 내주었던 보상 들을 생각하면 분명, 엄청난 보상 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했던 한서준, 한국 각성자가 한층 더 강력해졌다 는 말이었다.
당연하지만 국가 간의 국력에서 밀리게 되면 외교적으로도 밀려나 고, 압박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한국과 사이가 좋지 못하 다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뼈아픈 타격이었다.
하지만 고로와 켄이치가 안절부 절못하는 것은 단순히 외교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명하신 것을 지키지 못해 의 회장님께서 단단히 노하셨더군.”
고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회장님께서 노하셨다고요?”
무겁게 고개를 주억이는 켄이치 의 모습에 고로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흐음…… 큰일이군요.”
고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의회장이라고 불리 는 디아볼로스의 수장에게는 충성 을 바치고, 극진한 예를 표했다.
그럴 것이 고로, 일본은 디아볼 로스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섬나라였던 일본이 대격 변의 시대를 맞이하고도 그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디아볼로스 의 숱한 지원 덕분이라고 말할 수 도 있었다.
당장 일본 최고의 길드, 요자쿠 라의 길드장 켄이치도 디아볼로스 의 간부 중 한 명이지 않은가?
디아볼로스, 의회장의 기분에 따 라 일본이라는 국가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는 만큼 고로는 최대한 조
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의회장님께서 실수를 만회 할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까.”
“……한서준을 일본 혹은 디아볼 로스의 소속으로 만들라고 하셨다.”
“ 가능할까요?”
켄이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한서준을 죽이려 들었었다.
목숨을 노렸던 국가에 귀화한다 는 것은 바보도 하지 않을 짓이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이었지만, 물 러설 수도 없었다.
“되든 안 되든 시도는 해 봐야 한다.”
디아볼로스 내에서 의회장의 명 령은 절대적, 이들에게 그를 거부 할 권한 따위는 없었다.
“만약 거절하면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켄이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 았다.
“한국을 몰락시킨다.”
일본이 디아볼로스의 막대한 지
원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고로는 쉽게 승낙할 수 없었다.
“……우리 쪽에도 피해가 클 겁 니다.”
자칫 잘못하면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이 될 수도 있었다.
디아볼로스의 지원이 있는 한 패 배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양국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가해질 것 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마땅히 일본을 이끄는 국무대신 중 하나로서 쉽게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는 말이다.
“걱정 마라, 일본 전체가 나설
필요는 없다.”
켄이치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흐른다.
“길드 요자쿠라, 아니, 나, 켄이 치 하나만으로 족하다.”
오만 따위가 아니었다.
켄이치는 디아볼로스의 지상 명 령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 이었다.
그도 정점이라 불리는 S급 각성 자였다.
뿐만 아니라, 의회에서 하달한 스킬, 연옥의 과실도 보유하고 있었다.
한계를 돌파, s급 내의 벽을 넘 어설 수 있는 연옥의 과실을 사용 한 상태라면, 천외천이라 불리는 크라운즈 나이트조차 무섭지 않았다.
하물며 크라운즈 나이트에도 들 지 못한 한서준에게 패배할 리가 없었다.
물론, 앞서 서준이 보여 준 기상 천외한 능력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항인 만 큼 고로의 입장에서는 마냥 안심을 할 수 없었다.
“켄이치 님께서 강하신 것은 알
고 있다지만 한서준은 이번에 시련 의 산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한층 더 강력해졌을 텐데, 괜찮으시겠습 니까?”
다소 불쾌하게 들리긴 했지만 틀 린 말은 아니었다.
시련의 산을 클리어하고 한층 더 강해진 한서준,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와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다소 고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걱정할 거 없다. 한국에는 북한 이라는 최적의 무대가 있지 않냐.”
일순간, 고로의 눈에 이채가 어 린다.
“확실히 그렇군요.”
켄이치의 능력은 네크로맨시. 몬 스터, 사체들이 널린 북한은 켄이 치의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이자 최고의 무대라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죽지 않는 불사의 군 대를 만들 수 있었다.
아무리 한국, 한서준 각성자가 강하다 할지라도 사람인 만큼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옥의 과실을 사용하여 크라운 즈 나이트를 상회하는 힘을 보유한 켄이치와 불사의 군대와 싸우며 체
력을 모두 소모한 한국의 각성자들 이 맞붙는다면 사실상, 승자는 이 미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이것은 최후의 수였다.
“우선 선발대를 보내어 한서준에 게 귀화를 제의해 볼 테니 한국 쪽 에 여기 명단에 적힌 각성자들의 출국 절차를 처리해 두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주억이고 있는 고로의 입 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
스피드 런 세계 최고 기록 경신, 히로아키가 이끌고 온 파티는 괴멸, 그리고 그 누구도 성공해 내지 못 했던 시련의 산 클리어까지, 서준 은 일본에 머물렀던 일주일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일들을 이뤄 냈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인터넷에서는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는 듯이 무수한 찬사들이 쏟아지며 큰 명성 을 쌓아 가고 있었지만, 서준에게
힘을 주고 기쁨이 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 을 몸 쪽으로 당기기 무섭게 현관 에 옹기종기 서 있는 가족들이었다.
“ 뭐야?”
괜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기자들 핑계를 대며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집의 상황을 보면 별반 다를 거 없었다.
가족들의 눈빛과 분위기를 보아 하니 입구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고 서 있었던 듯했다.
“아들, 정말 어디 다친 데는 없
지.”
“일본, 이 나쁜 놈들 사람을 불 러다 놓고 그게 뭐 하는 짓이래.”
양정화와 서연이 걱정스러운 말 을 쏟아 냈다.
일본에 있을 때도 매일매일 전화 로 들었던 이야기지만, 이렇게 마 주 보고 있으니 그 마음이 더 크게 와닿았다.
그렇기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 았다.
“걱정할 거 없다고 말씀드렸잖아 요. 봐요. 저 완전 건강해요.”
서준이 피식 웃으며, 팔뚝을 들
어 올려 보인다.
그러나 걱정을 모두 덜어 내지 못했는지, 양정화와 서연은 눈동자 를 굴리며 몸 곳곳을 훑고 있었다.
“그쯤 해 둬요. 그러다가 얘 몸 에 구멍 뚫릴라. 그리고 여태 고생 한 애를 언제까지 밖에 세워 둘 거 야.”
그 광경에 뒤에 있던 한석훈이 입을 열어 둘을 만류했다.
“어어, 그래, 엄마가 정신이 없었다. 일단 짐부터 내려놓고, 씻고 밥 먹자꾸나.”
“오빠, 고생 많았어. 다시 돌아온
거 환영해.”
마침내 현관에서 실랑이가 일단 락되고 집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잘 다녀왔다.”
한석훈이 미소와 함께 맞이해 주 고, 뒤이어 양정화와 서연도 미소 로 반겨 주고 있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과 그 안에서 따뜻한 미소로 반겨 주는 가족, 소박하다고 볼 수 있지만 서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행 복이었다.
서준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흐 른다.
“그리고 이거는 선물.”
“이게 뭔데?”
서준이 내민 목함을 받아 든 서 연의 고개가 갸우뚱 젖혀진다.
“약2”
“그냥 약이 아니라, 아주 귀한 거야.”
천마신교에서 익혔던 비법으로 만든 환단이었다.
물론, 그 내용물이 완전히 다 같 진 않았다.
혈도가 막혀 있는 석훈과 정화에 게는 잘게 빻아서 주었고, 영약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서연에게 는 뭉쳐서 만들어 주었다.
“이럴 게 아니라, 다들 저기에 그때 취했던 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앉아 보시겠어요?”
드디어 고대했던 가족의 건강을 챙길 수 있게 된 덕에서준의 입가 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떠나질 않 았다.
가족들은 서준의 말에 별다른 말 없이 자리에 앉아서 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 던 서준이 입을 열어 과정을 계속 했다.
“그리고 방금 건넸던 목함을 열 어 섭취하면 돼요. 서연이는 통째 로 다 먹고, 아버지랑 어머니는 한 조각씩 드시면 돼요.”
원래라면 이제 막 귀국한서준을 편히 쉬게 해 주고 싶었지만, 본인 이 신이 나서 말을 하고 있는 만큼 말리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다들 말없이 서준이 시키 는 대로 따라 주었다.
“이제 그때 말했던 것처럼 기운
을 느껴 보시면 돼요. 아셨죠?”
“기운, 그래, 그렇게 해 보마.”
“알았어, 최대한 그때 아들이 말 해 줬던 대로 해 볼게.”
서준은 부모님의 등 뒤에 손을 얹으며 천마신공의 기운을 조금씩 홀려 낸다.
그렇게 10분, 30분, 1시간이 흘 러가자, 기운을 흘리던 서준의 미 간이 조금씩 찌푸려지고 있었다.
‘잘게 빻아서 환단으로 만든 거 라 역시 하나로는 효과가 미미한 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 이라는 것이 한편으로 곧장 무언가 변화가 있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집안 내력이 무골인 만 큼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줄 알았 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제법 소요된 만큼 결단을 내린 서준이 그만 수련을 끝내려던 찰나, 갑작스레 부모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
오랜 세월 동안 막혀 있던 혈도 가 뚫리면서 생기는 시원함과 상쾌
함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 말은 환단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같 았다.
동시에 흘려 주고 있는 내공이 원활하게 흘러가며 아랫배, 단전에 자리 잡았다.
무인, 각성자가 되었다는 신호였 다.
한석훈, 양정화의 번뜩- 뜨인 눈 에 이채가 어렸다.
“각성자의 육체는 정말 대단하구 나! 이렇게까지 몸이 가볍게 느껴 지다니!”
“아들 덕분에 엄마는 10년은 넘 게 젊어진 것 같네. 이 피부 좀 봐.”
이런 눈에 띄는 성과를 이뤄 낸 것은 비단, 부모님뿐만이 아니었다.
잘게 빻은 것이 아닌, 공청석유 를 통째로 넣은 환단을 섭취한 서 연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 낸 것이다.
“대박! 내공 스텟이 20이나 올랐 대!”
목표로 했었던 가족 행복, 건강 계획이 차근차근 실현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일본에서 다소 견제를 받고, 야 밤에 공격을 받는 등 귀찮은 일을 겪긴 했지만 이렇게 가족들의 행복 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지난날의 일들에 대한 큰 보람, 뿌듯함이 밀 려왔다.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 환한 미 소가 피어났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