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15화
65 화
시련의 산.
계속해서 산을 등반해 나가자 스 칼렛에게 받았던 정보대로 3단계, 4단계의 시련으로 청각과 시각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서준의 발 걸음을 잡지 못했다.
‘선계의 선인들은 더한 금제들을 가해 왔었어.’
하지만 보란 듯이 그것을 극복해
냈고, 끝내는 옥황의 앞까지 도달 할 수 있었다.
이런 시련, 몬스터들은 서준에게 는 걸림돌조차도 되지 못한다는 말 이었다.
서준의 입장에서는 정말 쉬운 난 도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어지는 보상은 상당히 준수했다.
[A등급 몬스터 블러드 오크 워리 어를 성공적으로 처치해 내셨습니 다.
[축하드립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80으로 상승
하였습니다.]
산을 등반하기 시작한 지 반나절 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3레벨이나 상승했다.
초고속으로 A급 게이트를 클리 어할 수 있는 서준의 속도에 비한 다면 조금 더디게 느껴질 수도 있 을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요구하는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많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경험치 획득 량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시련
의 산은 몬스터가 파도처럼 밀려오 는 구조였다.
게이트 공략보다 이동 시간이 더 길었던 서준에게 몬스터가 알아서 달려오는 시련의 산은 정말 최고의 사냥터와 같았다.
카악—!
앞을 가로막던 블러드 오크 워리 어를 제거해 낸 서준은 허리를 꼿 꼿하게 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록 후각, 촉각, 청각, 시각이 모두 교란 혹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날카로운 육감을 곤두세우며 주변 에 내공을 홑뿌리는 것으로 근처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일대에 생명체의 기운은 느껴지 지 않았다.
숨이 붙은 채로 서 있는 것은 본 인, 서준 하나뿐이었다.
“끝났네.”
이제 그저, 길을 따라 전진하기 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현재 최고 기록이라는 가이사의 네 번째 시련을 클리어했다는 말이 다.
물론, 완벽히 끝을 낸 것은 아니 었다.
‘어떻게 보자면 이제부터가 시작 이지.’
스칼렛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 었던 지금까지의 시련과는 달리 아 무 대비도, 정보도 없는 시련으로 나가야 했다.
걸음을 옮기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경계선이 보인다.
아니, 시각이 제한된 만큼 느껴 진다고 하는 게 옳았다.
앞선 네 번의 선례가 있었던 만 큼 서준은 저 경계선이 무엇을 뜻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저 경계선이 다음 시련으로 돌
입하는 문이자, 선택의 기점.’
서준은 망설일 것 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예상했던 대로 선을 넘어 서자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 퍼졌다.
[네 번째 시련을 극복해 내었습 니다! 하산 시 획득할 수 있는 보 상이 추가됩니다.]
[하산 시 막대한 양의 경험치와 공청석유 2EA를 보상으로 얻어 갈 수 있게 됩니다.]
[다섯 번째 시련을 받으시겠습니 까?]
[경고! 다섯 번째 시련의 난이도 는 매우 높습니다, 신중한 선택을 바랍니다.]
귓전에 울리는 목소리에서준은 전처럼 곧장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 흐음......
솔직히 말하자면 서준은 이 이상 시련의 산을 등반할 이유는 없었다.
목표로 했던 영약, 공청석유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에게 충분히 드릴 정도로 얻었기 때문이 었다.
경고 메시지가 떠오를 정도의 위 험이 도사리는 곳에 발을 들이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현 세계 제일의 각성 자, 카일 크리스토퍼도 여기서 발 걸음을 돌렸었다.
서준은 손에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지?’
시련의 산에 등반했던 각성자 그리고 그 카일 크리스토퍼마저 발걸 음을 돌린 이유는 앞의 네 시련들 로 인해 좌절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스템의 경고 까지 더해지니 결국은 정신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발걸 음을 돌린 것이었다.
그러나 서준은 시련의 산이 내주 는 과제보다 이미 더한 것을 겪어 보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서준의 등반은 고난이라고 할 것이 없었고, 한계 를 체감할 것도 없었다.
시련의 산이 내놓는 과제가 별 볼 일 없이 느껴졌다면 남은 것은 막대한 보상뿐이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
다는 말이다.
‘물러날 이유가 없지.’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 신의 본능이 산의 정상에 도달하라 고 소리치고 있는 듯했다.
‘아니, 이건 산의 정상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거야.’
서준은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 었다.
“시련을 받겠어.”
[가이사의 다섯 번째 시련이 시 작됩니다!]
[대상 ‘한서준’의 모든 감각이 제 한됩니다.]
귓전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끝 으로, 조금 전까지 당연하다고 느 껴졌던 모든 감각들이 사라진다.
분명,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몸 은 움직이고 있을 터인데 전혀 그 것을 감지할 수 없었다.
제대로 산의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 으로 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의식만이 부유하는 허무(虛
無)의 세상이 놓아진 것 같았다.
이것만으로도 사실상 시련의 클 리어는 불가능하다 해야 했으나, 지금까지의 시련 내용을 생각하면, 쏟아져 내려오는 몬스터들도 상대 를 해야 했다.
이렇게 모든 감각이 제한된 상태 에서 전투를 벌일 수 있을 리 만무 했다.
어쩌면, 이미 자신은 몬스터들에 게 팔다리가 뜯기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의식만 두둥 실 떠다닌 것일 수도 있었다.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이것이 의식인지도 이제 확신할 수 없었다.
부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졌 다.
어둠 속에 갇힌 의식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공포, 두려움, 후회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밖에 남지 않 았다.
비로소 경고 메시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육체를 지배한다.
아무리 초인과 같은 각성자라 할
지라도 정신이 붕괴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이 허무의 세상은 제아무 리 뛰어난 정신력을 가진 자라고 할지라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정신 이 붕괴될 수준의 시련이었다.
이 고독 속에서 제정신을, 의식 을 똑바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보 통 사람의 수십 배의 집중력이 필 요했다.
그러나 그 허무의 공간 속에 남 겨진 서준의 입가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유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었다.
‘생각보다 수준이 높긴 하네.’
기껏해야 감각을 교란시킬 줄 알 았는데, 설마 제한을 당할 줄은 몰 랐다.
이렇게 감각을 차단하고 의식만 을 남겨 두는 허무의 세상, 환술을 만들려면 선인(仙人)급에 준하는 술사의 능력이 필요했다.
서준은 속으로 놀람을 삼킬 수밖 에 없었다.
‘이런 고도의 도술로 만들어진 공간이 지구에도 존재할 줄은 몰랐 네.’
그러나 딱 놀라운 수준에 불과했
다.
그 급(級)을 안다는 것은 그를 겪어 봤고, 그 안에서 살아남았다 는 말과도 같았다.
처음이 당황스러울 뿐이지 이미 한 번 극복했던 것은 몇 번이고 극 복할 수 있었다.
‘나는 한서준이다.’
허무의 세상 속에 갇힌 서준은 사고를 명확히 해 나간다.
평범한 취업 준비생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무인 이자, 중원 대륙을 제패했었던 천마였다.
만물을 발아래 두었던 마선이다.
과거, 가족을 그리워하며 다시 한번 되돌아온 ‘한서준’이다.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 이 생각하고 기억해 낸다.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고 기억해 낸다.
어둠뿐인 가상의 세계 속에서 과 거의 기억과 감정들을 하나하나 채 워 간다.
기쁨, 슬픔, 즐거움, 분노, 질투, 욕심, 미움, 두려움, 그리고 사랑.
어둠뿐이었던 세계가 찬연한 색
으로 채워지고 교란되고 제한되었 던 감각들이 하나둘씩 온기를 찾기 시작한다.
마침내 세계가 형형색색의 색깔 들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띵-!
[다섯 번째 시련을 극복해 내었 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모든 시련을 극 복해 내었습니다!]
모든 감각이 제한된다는 다섯 번
째 시련의 높은 난도 때문이었는지 이전처럼 덮쳐 오는 몬스터는 존재 치 않았다.
생각해 보면 허무의 세상에 갇히 는 것만으로 시련은 충분하다 못해, 과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어지는 보상 또 한 상당했다.
띠링-!
[시련의 산의 정복 보상들이 주 어집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합니 다.]
[레벨이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84로 상승하였습니다.]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뭐든지 높아지고 오를수록 올라 가는 길이 가팔라지고 어려워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레벨 업을 기껏해야 두 번 정도나 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지금, 시련의 산의 보상 으로 레벨이 단숨에 네 단계씩이나 상승했다.
‘S급 각성자들이 경쟁하고 시험 을 받으면서까지 들어오고 싶어 할 만하네.’
단순한 레벨의 상승뿐만 아니라, 이 안에서 감각이 뒤틀린 상황에서 치렀던 전투들은 분명 뼈와 살이 되는 경험일 것이었다.
S급 각성자들도 한 단계 성장을 이루기에 충분한 조건과 보상이 완 벽하게 갖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산의 정상까지 도달한 서준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야를 방해하고 있던 산의 안개
가 걷히며 주변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기가 산의 정상.”
탁 트인 공터, 그곳에서 가장 먼 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윳빛 액 체, 공청석유가 담긴 병들이었다.
그것도 메시지로 안내받았던 두 개가 아닌 자그마치 네 개의 병이 말이다.
“ 대박.”
서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흘렀 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서연, 그리고 서준 본인까지 섭취할 수 있는 양
이었다.
지금의 육체는 아직까지 단 한 번의 영약도 섭취하지 않고 일궈 냈기에 그 체감이 상당할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산을 오른 이유는 공청 석유만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곳으로 자신을 부른 존재가 있었다.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존재와 가 까워지자, 멀지 않은 곳에서 회색 빛 결계에 갇힌 붉은 구슬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네가 나를 부른 거구나.”
서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결계 속 붉은 구슬이 울음을 토해 냈다.
지잉-!
서준은 당당히 나아가서 회색빛 결계 속에 갇힌 붉은 구슬을 향해 팔을 내뻗었다.
구슬에 손이 닿자, 눈앞에 초록 빛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홑어진 정복왕(征服王)의 파편]
등급 : F(봉인)
분류 : 반영구 아이템
현재 이 아이템은 정복왕의 능력 을 활용할 수 있는 주인을 찾기 위 해 시련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관 리 중에 있습니다.
특이 사항
1. 자격을 증명하고 봉인을 풀어 내야 능력이 발현됩니다.
※경고 : 자격이 부족한 자가 습 득할 시 강력한 페널티를 받게 됩 니다.
경고 문구가 있었지만, 자신에게
자격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서준이 곧장 구슬을 손에 쥐는 순간, 정복왕의 수투, 검지 끝자락 에 붉은 보석 하나가 박혀 들어갔 다.
띵-!
[정복왕의 파편이 대상 ‘한서준’ 의 자격을 확인합니다!]
[정복왕의 수투가 그 파편의 힘 을 인지합니다.]
[수투가 파편의 힘을 홉수합니 다.]
[파편을 흡수함에 따라 정복왕 (征服王), 가이사의 힘을 일부 되찾 습니다.]
[봉인되었던 가이사의 힘이 조금 회복되었습니다. 정복왕의 수투의 옵션이 강화되고 옵션이 추가로 개 방됩니다.]
[능력이 개방되어 정복왕의 수투 의 등급이 SS등급으로 상승합니 다!]
예상치도 못한 정복왕의 수투의 진화에서준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개꿀이네.”
막대한 양의 경험치, 가족들 모 두 복용하고도 남을 공청석유에 정 복왕의 수투의 진화까지, 당장 수 백, 수천억에 달하는 이득을 취한 셈이었다.
‘시련의 산이 아니라, 노다지였 네.’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 환한 미 소가 흘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기분을 만끽 할 틈이 없었다.
쩌저적-!
공간을 지탱하고 있던 핵, 정복 왕의 파편이 흡수되어서인지 게이 트, 시련의 산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껏 힘들게 보상들을 얻어 놓고 무너지는 게이트 속에서 생매장당 할 생각은 없었다.
서준은 솟아오르는 기쁨을 잠시 억누르며 빠르게 게이트의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