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9화
59화
붉은빛을 강렬하게 내뿜는 소용 돌이, A급 게이트의 입구 앞에선 서준을 향해 일본 각성자 협회의 직원이 기계적인 말들을 내뱉었다.
“저기 카운트다운이 0을 가리키 면 그 이후에 게이트로 돌입하시면 됩니다.”
직원의 말을 듣고 있던 서준의 시야가 자연스레 직원이 가리킨 카 운트다운으로 향하였다.
남은 시간은 3분 남짓으로 짧다 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되었다.
‘몸이 최상의 컨디션이 될 수 있 도록 집중력을 이끌어 낸다.’
시간이 가고 있는 카운트다운을 바라보던 서준은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명상에 빠졌다.
조화경의 경지에 다다름으로써 생긴 특수 능력은, 단순히 강기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 전부가 아 니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무공들을 이제는 펼칠 수 있게 되 었다.’
당연하지만, 초절정 때 펼칠 수 있었던 무공들과는 파괴력들이 궤 를 달리했다.
승리는 이미 확정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결이라 볼 수 없는 상황에, 서준에겐 긴장감이 전혀 존재치 않았다.
그러나 서준은 방심하지 않는다.
‘최고의 결과를 만든다.’
서준이 바라는 이상적인 가정의 조건 중의 하나인 가족,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위해, 그리고 겁 없이 싸움을 걸어온 일본의 방종을 향한 경고를 위해서라도 전력을 다할 것 이었다.
‘A급 게이트 공략 스피드 런의 세계기록이 12시간이라 했나?’
오늘 그 기록을 반, 아니 상상조 차 하지 못할 정도로 경신해 줄 생 각이었다.
‘한 시간 이내에 클리어해 내어 세상 모두가 경외할 기록을 세운 다.’
목표 지점이 확실한서준은 머릿 속을 야금야금 잡아먹던 잡념들을
지워 내고 마음을 통일시켰다.
통일된 정신이 ‘시험, 대련’이라 는 단어를 뇌리에 각인시키고는 적 당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너무 나른해서는 안 됐다.
너무 과해서도 덜해서도 안 되는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했다.
서준은 두 는을 지그시 감은 채 로 두 가지 감정의 중심을 찾아갔 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수없이 해 왔던 것이 있어 그것은 삽시간에 이루어졌다
적당한 긴장감이 나른했던 근육 들을 바짝 긴장시킨다.
“ 후우......
호흡을 깊게 빨아들인 서준이 천마신공을 일으키고는 체내를 순환 시키며, 최고의 컨디션을 이끌어 낸다.
이윽고 깊게 빨아들이던 호흡을 다시 내뱉으며 눈을 뜬 서준의 눈 동자에는 모두가 경외하고 우러러 보았던 천마의 기세가 번뜩였다.
마음의 준비를 끝마친 순간, 때 마침 일본 협회 직원이 기다리던 소리를 토해 냈다.
“10초 남았습니다!”
서준의 시야에 들어온 카운트다 운의 시간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다 마침내 0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때행-!
시간이 다했음을 알리는 경적 소 리와 함께 서준의 신형이 빛살처럼 움직이며, 붉은 빛을 내뿜고 있는 소용돌이, 게이트 내부로 뛰어들었다.
서준이 입장한 A급 게이트에 들 어서서 본 풍경은 그야말로 녹림 (綠林) 이었다.
하늘을 덮고 있을 정도로 높고, 크게 가지를 뻗은 나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풀들이 뿜어내는 풀 내음까지, 정말로 근사하고 장대한 숲이었다.
게이트 내부의 지형을 확인한 서준은 손으로 턱을 괴며 차근차근 머릿속의 정보를 정리해 나갔다.
“ 흐음......
첫 번째로 지리적 특성, 지형상 길을 헤매기 쉬웠고, 당연히 스피 드 런 무대에서는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는 몬스터, 아는 정보 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A급 게 이트 중에서 풀숲에 사는 몬스터는 이매망량(뼈維뼈®)뿐이었다.
이매망량은 숲과 똑 닮은 초록빛 의 피부를 가졌을뿐더러, 마나를 둘러 기척을 완전히 숨긴 채로 기 습을 가해 오는 귀찮은 암살자형 몬스터 였다.
구오오…….
지금 당장만 해도 호시탐탐 기회 를 노리고 있는 이매망량의 소리가 들려왔다.
자칫 방심하면 바로 부상을 입거 나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탓에 항시 긴장하고 사주를 경계한 채로 있어야 했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경계하면서 움직이면 속도는 자연히 더뎌지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스피드 런을 진행하 기에 최악의 무대였다.
‘아마, 이 게이트도 일본이 심혈 을 기울여서준비한 거겠지.’
일본이 파 놓은 함정에 걸린 것 이었지만, 오히려 서준의 입가에는 피식-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덕분에 수호자를 제외한 자잘한 몬스터들은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되겠네.”
서준은 곧장 오른팔을 앞으로 내 뻗으며, 단전의 기를 이끌어 낸다.
쿠구궁!
발에서부터 올라온, 검은 기운이 서준의 몸을 집어삼킨다.
천마신공이 품고 있는 패왕의 힘 을 머금은 기가 형태를 취하려 한 다.
초절정의 경지에서도 초인이라 불릴 정도로 고등급의 스킬, 무공 들을 펼쳐 냈었지만 지금은 조화경 의 경지를 이룩했다.
서준의 천마신공, 기운은 아지랑 이로 피어나는 불완전한 기(氣)가 아닌, 강기로 빚어진 천마신공, 내 공은 확실하게 형상을 갖춰 간다.
시야를 가리고, 현혹시키는 푸른 녹림과 그 안에 숨어 있는 암살자 들 하나하나 까다롭고 귀찮은 것이 었다.
‘근데 너희들은 상대를 잘못 골 랐어.’
그렇지 않아도 귀한 A급 게이트 인데, 이런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을 일본 정부와 협회의 정성 과 노력을 생각하니 입가에 피식-미소가 흘렀다.
“태우는 맛이 있겠어.”
화르륵-!
형태를 갖춰 가던 내공은 어느샌 가 불타오르는 묵염(墨炎)이 된다.
푸른빛 생명을 뽐내던 나무와 풀, 그리고 그 사이에 숨어 있던 이매망량들은 묵염에 그 생명올 빼 앗긴다.
구오? 끄오억-!
이매망량은 A급이라는 높은 등 급의 던전에서식하는 몬스터였지 만 수호자처럼 특출 난 능력이나 강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화경의 경지, 강기로 빚어진 불꽃을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실제로도 푸른 나무에 몸을 숨기 고 있던 이매망량은 그대로 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주변을 맴돌며 호시탐탐 서준을 노리던 이매망량들은 모두 정리해 내었지만 서준은 이 정도에서 만족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천마신공을 계속해서 응
축해 나갔다.
쭉 뻗은 주먹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묵염의 불 꽃이 거세게 피어나고 타오른다.
주먹에 둘러진 묵염의 크기가 커 져 가며 종국에는 몸이 타 버릴 듯 이 뜨거워지는 순간, 서준은 망설 임 없이 내뻗고 있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파천수라권, 절초 화광충천(火光 衝天)
[SS급 스킬, 파천수라권의 성취 도가 일정 수준 이상에 달했습니
다!]
[SS급 무공 파천수라권이 진화합 니다.]
[축하합니다! 파천수라권이 SSS 급 무공으로 등급 향상되었습니다!]
[SSS급 무공, 파천수라권을 익혔 습니다!]
서준의 주먹에서 뿜어진 화광충 전의 시커먼 불꽃이 푸른 녹림을 꿰뚫고 지나간다.
콰과과광-!
묵염은 숲에 씻을 수 없는 상처
를 남겼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 다.
“타올라라.”
화르륵-!
일자로 뻗어진 묵염이 남기고 간 상처에서 뿜어진 불꽃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고, 나무를 타고 다시 퍼 졌다.
그렇게 옮겨 간 묵염은 숲의 생 명을 또다시 앗아 간다. 그 불꽃이 다시 한번 퍼지기 시작하고 더 이 상 태울 것이 없을 때까지 번지고 또 퍼져 나가며 세력을 키웠다.
단순히 타오르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까지 꺼지지 않는 불꽃, 그것이 천마를 상징하는 묵 염, 화광충천이었다.
숲을 방패이자 터전으로 삼고 있 던 이매망량의 입장에서는 그야말 로 재앙과 다름없는 화마였다.
끄어억-!
사방에서 이매망량의 비명 소리 가 터져 나오며 그들의 죽음을 알 렸다.
띵-!
[A등급 몬스터 이매망량 66마리 를 성공적으로 처치해 내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73로 상승하 였습니다.]
뒤이어 언제 봐도 기쁜 초록빛 홀로그램 창이 눈앞에 떠올랐지만, 서준은 그 소리에 한 줌의 관심조 차 주지 않았다.
‘길이 열렸다.’
일반 몬스터는 이것으로 모두 정 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기록 경신을
하며 일본에 물을 먹이기 위해서 처리해야 할 과제는 하나뿐이었다.
‘수호자가 품고 있는 핵을 파괴 하여 게이트를 완전히 소멸시킨다.’
게이트에 입장한 목적올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상기한서준은 피어 오르는 화마의 틈새를 보며 팔경성 보를 펼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서준이 A급 게이트에 진입하기 전.
시련의 산은 희귀한 영약, 그리고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장소였지만, 일 년에 최대 세 명밖 에 입장하지 못하는 탓에 매년 S둥 급 각성자 사이에서도 치열한 경쟁 이 이루어졌다.
당연하지만, 그 경쟁에서 입장권 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적을 낱낱이 아는 것이 중 요했다.
그렇기에 시련의 산 시험을 거쳐 야 하는 각성자들은 경쟁자인 다른
S급 각성자들의 경기를 모니터링하 는 것이 일과가 된 것이다.
지금 서준과 히로아키의 스피드 런 대결 실시간 송출을 기다리고 있는 영국의 S등급 각성자, 마탑의 현자, 스칼렛 아이비슨도 그중 하 나였다.
-시련의 산 입장 권한을 두고 벌 어지는 각축전! 오직 실력만이 전 부인 정정당당한 대결이 지금 펼쳐 집니다!
조용히 중계를 보고 있던 의 스 칼렛의 입에서 아름다운 외모와는 전혀 매치되지 않는 거친 욕설이 홀러나왔다.
“Fuxk Jap.”
일본 정부와 협회가 시련의 산의 입장권 시험을 일본에 유리하게 조 작하고 있다는 것은 각성자 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련의 산의 위치가 일본 땅에 있었고, 그간 일본 쪽에서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고 있었기에 대놓고 그 폐단을 파헤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도는 일선을 넘었다.
같은 S급 각성자라 할지라도 어
느 정도 성장을 마친 이들은 후대 를 위해서 시련의 산 입장 권한을 양보해 주고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각성자 세계의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성장을 마치다 못해 천외 천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스즈키 히 로아키가 선수로 출전하고 있는 것 이었다.
“정정당당 같은 소리 하고 자빠 졌네.”
스칼렛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추하다 못해 역겨울 정도네.”
스칼렛에게 마탑의 현자라는 별 칭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계속 탐구하고 연구하는 것을 즐겼고 그 집념으로 그의 특성과 맞는 아주 강력한 스 킬마저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른 각성자였다.
그.리고 이번에 스칼렛의 눈에 걸 린 것은 각성자, 한서준이었다.
그가 차현성이라는 한국인 S급 각성자와의 싸움에서 보여 준 마나 컨트롤은 정말 황홀할 정도로 홀륭 했던 탓이었다.
‘그래서 이 시련의 산의 시험 기 간 동안 한서준에 관한 정보와 영 상을 되도록 많이 얻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그러기는 힘들 것 같 았다.
“격차가 너무 심해.”
서준이 보여 줬던 마나 운용 능 력을 고려하면 1:1 대결 구도에서 는 히로아키에게 절대로 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규칙, 무대는 처음 부터 끝까지 불공평했다.
“하필 스피드 런이라니.”
더 빠르게 게이트를 공략하는 이 가 이기는 룰.
그리고 히로아키는 러너라 불리
는 사내였다.
별칭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히로 아키는 빠른 속도로 게이트를 클리 어해 내는 데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이였다.
‘그에 비해서 차현성과의 영상으로 미루어 보면, 지금 한서준의 스 킬은 대인전에 치중되어 있어.’
스킬이 대인전에 특화된 한서준, 다수의 광역 공격 스킬들로 몬스터 헌팅에 특화된 히로아키.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있는 셈이었는데 A급 게이트를 숱하게 클리어한 히로아
키와 달리, 한서준 각성자는 A급 게이트를 한 번도 클리어해 본 경 험조차 없었다.
당연하지만 B급과 A급 게이트의 난도는 그 궤를 달리했다.
한서준 각성자라 할지라도 처음 A급 게이트의 몬스터를 마주하게 되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패배는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라고 봐도 되었다.
한서준 각성자에 관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한 스칼렛에게는 그야말로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스칼렛의 입에서 한숨 섞인
넋두리가 홀러나왔다.
“각성자 한서준……. 만약 대인 전만큼이나 몬스터 헌팅에 특화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 이상 힘들 거야.”
지금 세계 제일인 카일 크리스토 퍼도 대인전과 비교하자면 몬스터 헌팅은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각성자들 모두 각 기 특화된 분야가 있기 마련이었다.
대인전 그리고 몬스터 헌팅, 다 방면으로 뛰어난 스킬을 가진 각성 자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만약 그런 각성자가 나타난다면
이종족처럼 지구에도 왕의 재목을 지닌 존재가 나타난 거겠지.’
순간, 한서준의 얼굴을 떠올리자 ‘혹시’, ‘어쩌면’이라는 생각들이 스 쳐 지나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스칼렛 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왕급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