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25화
50화
그간 숨겨 왔던 진실들을 터놓고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족들과의 식사를 즐겼다.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는 만큼 생활비와 이사에 관한 이야기도 부 모님 앞에서 자연스레 끝마쳤기에 머릿속으로만 그려 왔던 행복한 나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이 피부에 와 닿았다.
부모님에게도 무공을 전수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 예상치도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동생, 서연 때와는 달리 천마신 공의 전수가 그리 쉽지 않은 탓이 었다.
“아들, 아직이니?”
“정확하게 무얼 느껴야 한다고?”
부모님의 난감한 질문에서준은 황급히 부모님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은 오랫동안 앉아 계셔서 다리도 저리실 테니, 여기까지만 해요.”
자리를 빠져나온 서준은 곧장 근 처의 의자에 몸을 걸터앉은 채로 고뇌에 빠졌다.
부모님의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 니었다.
피는 속일 수 없는지, 부모님도 뼈대 자체가 완벽한 무골이었다.
‘문제는 혈도가 너무 막혀 있다 는 거야.’
기경팔맥과 임독양맥은 말할 것 도 없었고, 전신의 혈도들이 노폐 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선의 경지에 올랐던 서준의 내 공 운용이라면 어린아이의 육체가
아닐지라도 벌모세수를 받은 것처 럼 혈도들을 뚫어 내는 것이 불가 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중년을 넘은 연세. 더군다나 무공이라고는 말로도 접 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빨리하고 싶어도 몸에 무리 가 가게 될 테니 상당한 시간을 공 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빠르게 전수 를 해 드리고 싶은데.’
만에 하나의 변수, 어제 일과 같 은 지병의 발병이 일어나기 전에 사전에 차단해 버리고 싶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장 안전 하면서도 확신한 길은 소림의 환단 들, 공청석유, 만년하수오와 같은 영약들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물론, 위와 같은 영약을 통째로 섭취한다면 한 번에 너무 강력한 기운을 몸에 받아들이게 돼 도리어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잘게 빻아서 천마 신교의 비법으로 만든 환단으로 만 들어 낸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일정량을 꾸준히 섭취한다면 미 약하지만 체내에 기운들이 흐르기 시작하며 막힌 혈도들을 뚫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실제로도 서준이 이끌었던 천마 신교에서도 벌모세수를 대신해 이 환단을 복용할 정도로 효능이 뛰어 났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당시 지식이 라면 뭐든 습득했었던 만큼 서준은 환단의 제조법도 확실하게 익혀 둔 상태였다.
안전과 확실한 효과를 장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딱 한 가지의 문제가 존재했다.
‘영약을 구할 수가 없어.’
중원 대륙이었다면 어떻게든 구 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현대, 지구였다.
그리고 지구에 내공을 증진시키 는 영약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뇌에 빠졌다.
분주히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천마신교의 환단만큼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존재치 않았다.
“끄웅.”
답이 없는 문제에서준이 입에서 앓는 소리를 흘리고 있던 찰나였다.
우웅-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스마트 폰이 진동음과 함께 메시지가 도착 했다는 알림을 토해 냈다.
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굳이 알고 있다면 최측근, 혹은 가족뿐이었다.
근데 지금 가족들은 모두 집에 머물고 있는 상태였다.
‘누구지?’
서준은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어 들었다.
액정 위 발신자 표시에는 ‘강석 호, 협회장’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각성자님께 드릴 선물이 있어서 그러는데 시간 괜찮으시다면 협회 에 들러 주십시오.
서준의 고개가 갸우뚱 젖혀졌다.
‘ 선물?’
딱히 뭔가를 바란 적도, 또 치하 받을 일도 없었기에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선물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과 호 기심이 동했다.
‘가 볼까?’
환단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여기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봤자 지금 곧장 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협회에 들러 저 선물 하나 구경하고 온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결단을 내린 서준은 고개를 주억 이며, 스마트폰을 들어 강석호에게 지금 곧장 가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한국 각성자 협회 최상층, 협회 장실.
강석호가 평소 즐겨 마시던 홍차 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협 회로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질질 끄는 건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 거 아시잖아요. 혹시 선약이
있으셨나요?”
서준의 질문에 강석호가 황급히 손사래 쳤다.
“괜찮습니다. 각성자 협회장이 한국의 각성자를 만나는 것보다 중 요한 일이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서준이 갑자기 만남을 요청하여 몇몇 국회의원들 과의 점심 만찬을 급히 취소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의 s급 각성자, 그것 도 한서준 각성자에 비한다면 그것 은 극히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특히나 이번 ‘선물’은 넓게 보자
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일이기도 했다.
강석호가 서준의 앞으로 고급스 럽게 금박을 덧댄 편지 봉투 하나 를 건넸다.
“아까 전 메시지로 말씀드렸던 선물입니다.”
편지 봉투를 바라보고 있던 서준 이 고개를 갸우뚱 젖히자, 강석호 가 뒷말을 이었다.
“혹시 일본에 위치한 시련의 산 에 대해서 아십니까?”
“네, 들어는 봤습니다.”
작금의 지구는 각성자, 게이트가
필수 불가결적인 요소가 되는 시대 였다.
그리고 지금 강석호가 언급한 ‘시련의 산’은 지구에서 가장 어려 운 게이트 중 하나였다.
덕분에서준이 한참 게이트에 대 한 정보를 찾을 때 익히 들은 것 중 하나였다.
당연하지만, 통칭 시련의 산이라 는 게이트가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입장 횟수가 존재했다.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 았지만 일 년에 단 세 명만 입장할
수 있는 것이 다른 게이트와 다른 점이었다.
두 번째는 특이한 방식의 진행이 었다.
시련의 산은 다른 게이트들과 달 리 몬스터, 수호자를 사냥하고 핵 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특정 조건 을 완수해 가며 산을 올라가는 등 반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사실, 이마저도 입장을 해 본 사 람이 극히 적어서 불확실한 데이터 라고 볼수 있었다.
이렇게 자세히 밝혀진 정보들이 없는 탓에 산에 오르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매년 많은 이들이 시련의 산을 오르기 위해 몰려들었다.
산의 시련을 견뎌 낸다면 막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보상과 제한된 인원수 조건까지 더해져 사람들이 몰리며 크고작은 다툼들이 생겨 사망자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각성자들의 인명 피해 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세계 각성자 협회는 시련의 산에 입장할 수 있 는 최소한의 법적 조건을 ‘S등급의 각성자, 그중에서도 각 국가에서
엄선된 인원’으로 제한했다.
“원래 올해는 블랙 길드장, 그러 니까 백승관 각성자의 순서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서준 각성자님과 결투를 한 뒤로 집 밖으로 한 발자 국도 나오지 않고 있어서 연락이 닿지를 않는군요.”
갑작스레 예상치 못한 결원이 생 겼고, 자연스레 권한은 정부 기관 인 협회 쪽으로 임관되었다.
그리고 강석호는 그 권한을 받자 마자 서준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S급의 각성자라면 받으면 그 누 구나 날뛸 선물인 만큼, 강석호는
서준의 격한 반응을 예상하며 입가 에 뿌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서준의 입에서 나온 대답 은 석호조차 전혀 예상치 못한 것 이었다.
“전 괜찮으니 다른 분에게 넘겨 주세요.”
똑똑히 들었음에도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반문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다른 분에게 넘기신다고요?”
강석호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서준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이미 수련법과 성장의 청사진은
모두 머릿속에 들어 있었고, 레벨 업은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그만이 었다.
굳이 성장을 위해서 바다 건너의 해외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는 시련의 산에 갈 이유가 딱히 없어서요.”
강석호의 얼굴에 씁쓸함이 흘렀 다.
“아쉽게 됐군요.”
각성자들의 강함이 곧 국력이었다.
현 랭킹 1위, 세계 제일이라 불 리는 카일 크리스토퍼는 시련의 산
에 다녀온 뒤로 말 그대로 배는 강 해졌었다.
하지만 서준은 카일 크리스토퍼 이상의 재능을 가진 존재였다.
이런 서준이 시련의 산을 등반한 다면 그 성장세는 구태여 말할 필 요도 없을 것이다.
분명, 한국의 위상이 단숨에 치 솟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거절을 한서준 의 눈동자에는 굳은 결의가 느껴졌 다.
“시련의 산에서 막대한 양의 경 험치와 공청석유와 같은 영약을 습
득하여 한층 더 강력해질 한서준 각성자님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니 정말 아쉽습니다.”
강석호가 내뱉는 말에서준의 눈 에 이채가 어렸다.
“ 영약요?”
“예, 시련의 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것이라 잘 알려지진 않 았습니다만…… 제가 직접 섭취한 만큼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강석호가 언급했던 공청석유와 같은 영약을 얻게 된다면, 아까 전 집에서 답을 낼 수 없었던 고민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무공 전수에 박차를 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서준 각성자님이 한층 더 강 해질 수 있을 것 같기에 드렸던 것 인데, 뜻이 이리도 완강하시니 어 쩔 수 없군요.”
강석호가 말을 내뱉으면서 서준 의 앞에 놓인 봉투를 회수하려던 순간이었다.
서준의 손이 빛살처럼 뻗어지며, 봉투를 거둬 가는 강석호의 팔을 낚아챘다.
“선물 잘 받겠습니다.”
“예? 방금 거절……
“협회장님의 소중한 그 마음, 성 의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꼭 시련의 산을 등반하고 오 도록 하겠습니다.”
신화 길드의 제일석(一席), 수장 차현성이 오랜 시간의 고된 수련의 종착지를 찍으며, 마침내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일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차현성의 위 용에 신화 길드원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아니, 함부로 그의 모습을 쳐다 보지도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차현성은 패도(蟲 道)만을 추구해 온 인물이었다.
이번 게이트 수련으로 한층 더 강력해진 힘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신화 길드원들이 걸어야 할 길은 결코 순탄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각성자들이 신화 길드
에 속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패도를 논할 수 있을 만한 차현 성의 뛰어난 재능, 능력 덕분이었다.
우선 차현성은 불과 일 년 만에 S급 각성자라는, 각성자의 정점에 도달해 낼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세간에서는 차현성이 강석 호를 뛰어넘을 만한 각성자로 회자 되고 있을 정도였다.
단순한 무력뿐만이 아닌 길드의 경영 관리 능력 또한 상당히 우수 했다.
차현성은 길드 창설을 4대 길드 중 가장 뒤늦게 했음에도 1순위로 꼽히는 환성의 아성과 견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왕도를 걸어왔고, 이제 는 왕좌를 논할 정도의 강자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지금, 당연히 이번 시련의 산의 입장 권한을 자 신이 받아 낼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포털 사이트 메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는 ‘시련의 산의 등반
자격을 얻은, S등급 각성자 한서준’ 을 바라보고 있던 차현성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딴 듣도 보도 못한 놈에게 귀 하디귀한 시련의 산의 입장 권한을 주겠다니!”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