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24화
49 화
중원 대륙에는 제법 이름과 이명 을 꽤나 날린다는 무인들이 존재했 었다.
그러나 대다수가 명성만 한 실력 을 가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기대 이하의 수준 을 보여 주는 이가 더 많았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하 는 법,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천마신교의 장로 중 한 명인 무명신의(無明神醫), 암주(暗 柱)가 그중 하나였다.
서준이 이끄는 천마신교가 중원 재패를 하던 과정에서 많은 교인들 이 사천당가의 함정에 빠져 극독에 중독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사경 을 헤매던 그들을 모두 살려 낸 진짜배기 실력자, 의원이었다.
죽어 가던 천마신교인들을 다시 부활시키는 뛰어난 실력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던 서준은 천마로서 암 주를 찾아가서 그의 비술들을 전수 받았었다.
‘추혈과도술(推穴過道術).’
이것이 당시 서준이 전수받았던 암주의 비기(秘技)라 할 수 있는 무공이 었다.
혈도에 내력을 흘려 보내어 체내 의 독, 어혈과 같은 것들을 치료해 내는 회복술이 바로 이것이었다.
변질되어 썩고 죽은 세포 자체를 원상태로 돌리고, 문드러져 기능을 잃은 장기를 다시 재생시켜 내는 내력 회복술이었다.
세포 자체가 변질되고 장기가 기 능을 잃는다는 이유로 각성자들과 현대 문명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아버지, 한석훈의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추혈과도술을 익히고 있다 고는 하나, 세포 자체를 회복시키 는 것인 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범한 이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 할 고도의 내력 제어 능력이 필요 했다.
그러나 중원을 벌벌 떨게 만들었 던 천마, 마선의 경지까지 이르렀 었던 존재인 서준에게 문제가 될 수는 없었다.
서준은 곧장 팔을 내뻗어 한석훈 을 의자로 이끌었다.
“여기 잠시만 앉아 계셔 보세 요.”
“왜, 아빠가 좋은 날 다 망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구나. 어서 일어 나서……
한석훈이 황급히 의자를 뜨려고 했지만, 서준도 물러나지 않았다.
“많이 안 바랄게요. 여기에 잠시 만 앉아 있어 주세요.”
서준은 상당한 황소고집을 가진 아들이었다.
여기서 괜한 말싸움을 하며 저항 해 봤자 무의미했다.
한석훈은 결국 서준이 말한 의자 위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러고 있으면 되는 거 니‘?”
“네, 제가 됐다고 할 때까지 절 대 일어나지 말아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한석훈의 모습 을 확인한서준은 손을 들어 올려 등 위에 얹었다.
서준은 등과 맞닿아 있는 팔에 내력을 조심스레 불어 넣었다.
어느덧 손바닥에서부터 발한 요 상한 기운들이 한석훈의 체내로 퍼 져 나갔다.
전신을 감싸듯 퍼지는 따뜻한 기 운에 한석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과도 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그러나 모든 신경을 내력의 운용 에 쏟고 있는 서준의 귀에는 들리 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었다.
자그마치 가족, 아버지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였다.
‘실수 따위가 존재해서는 안 돼.’
굳은 마음가짐으로 술을 펼치자, 뿜어낸 내력도 그 의지를 받들어
혈도를 빠르게 타고 이동하며 속도 에 점점 박차를 가해 갔다.
얼마 가지 않아서, 내력이 무사 히 혈도를 타 문제의 부위에 도착 했다.
여기까지 왔다면 절반을 해낸 것 이지만, 아직 방심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내력을 세심하게 움직여 엄마가 갓난아이를 감싸 안듯 조심스럽게 환부를 감쌌다.
작은 세포부터 크게는 장기들까 지, 갓난아이를 재우는 것처럼 아 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보듬어 갔
다.
썩어 문드러진 장기들이 빠른 속 도로 활기를 되찾아 갔다.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 환한 미 소가 흐른다.
‘좋았어.’
이윽고, 한석훈의 눈동자의 탁한 기가 완전히 가시는 순간, 등에 대 고 있던 서준의 손도 들어 올려졌 다.
“끝이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원에는 한번 들러서 검사를 받아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니? 설마, 지금
암이 완치되었다고 하는……?”
믿기 힘든 현실이었지만 석훈이 아는 한서준은 거짓말을 하는 자 식이 아니었다.
그 말투에는 허세도, 거짓도 한 점 없는 자신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치료 과정을 숨죽여서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의 시선이 전부 한석훈 에게로 향했다.
“이게 대체……
소중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 어 계속 숨겨 왔지만 매일매일 극 심한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서준이 등에 손을 얹은 순간부터 그 활력을 잃어 가던 몸 상태가 180도 달라졌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끔찍했던 고통은 온데간데없었다.
전신에는 활기가 넘쳐 났고, 항 시 흐렸던 시야가 환하게 트여 있었다.
대답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석훈의 반응 그리고 생기가 넘실대 는 눈동자만 봐도 가족들은 전부 알 수 있었다.
“아들, 정말이야……? 네 아빠,
치료해 낸 거냐? 응?”
“오빠, 어떻게 이런……
주변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 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한석훈 본인이었다.
한석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아들, 말 좀 해 보거라.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죽음을 두고 손을 놓을 수는 없 었기에 많은 방법을 찾아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대 의학은 물론, 그 잘났다는 시스템, 각성자 들도 어찌할 수 없다는 대답만 되
풀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준은, 자랑스러운 자신의 아들은 보란 듯이 치료를 해내었다.
“그게......
한석훈의 물음에서준은 뒷머리 를 긁적일 뿐이지 쉽사리 입을 열 지 못했다.
상황이 급박하고 감정에 치우쳐 서 치료를 하긴 했는데 생각해 보 니 아직 무공, 각성자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은 만큼 조금은 난처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니다, 차라리 잘됐지.’
서준은 한차례 뒷머리를 긁적인 후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 다.
“사실은 말이에요……
서준의 이야기는 제법 오래 이어 졌다.
거짓은 거짓을 낳는 법이었다.
그렇게 나오는 거짓말은 점점 더 부풀어져 가고 끝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정도로 커지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가족들에게는 어떠한 거짓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각성자가
되었던 것부터, 각성자 라이선스 시험을 치른 이후 빌런을 사냥하는 활약을 펼쳤던 것과 s급에 도달한 현재까지 면밀히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경청하던 한석훈, 양정 화의 동공이 몇 번이고 떨리는 것 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중원 대륙이랑 선계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밝히고 싶지만……
과거, 아니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선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이야기였 다.
굳이 그 당시의 노고에 대해서
말하며 부모님의 심장에 대못을 박 는 행위를 할 필요는 없었다.
가족이기에 거짓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가족이기에 불필요한 이야 기들을 꺼내어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역설적이라고 욕을 해 도 상관없었다.
혹시 다음번에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가족 들의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길이 있 다면 그 길을 택할 것이었다.
그렇게 서준은 최대한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
를 끝맺었다.
짧은 침묵을 지키던 양정화가 서준의 손을 향하여 팔을 내뻗는다.
양정화의 따뜻한 양손이 서준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어머니의 두 손에 담긴 온기가 손등을 타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온기보다 더 따뜻한 눈빛을 한 부모님의 시선이 느껴졌 다.
“지금이라도 말해 줘서 고맙구 나.”
서준의 입가에 멋쩍은 미소가 흘 렀다.
“역시 알고 계셨네요.”
사실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한 상 황이었다.
현재, 대격변을 겪은 21세기의 사회는 각성자들 위주로 돌아간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점심에 대한민국에 등장 한 다섯 번째 S급 각성자, 한서준’ 에 관련된 뉴스 기사들이 쏟아졌었다.
기사만 보아서는 단순한 동명이 인이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방금
전, 현대 의학과 각성자들도 포기 했었던 암을 완전히 치유시키는 능 력으로 확신을 가졌었다.
그저, 서준이 직접 말하지 않았 기에 모르는 척 눈감아 주고 있었 을 뿐이었다.
“혼자서 가족들 위한다고 얼마나 속앓이했어. 많이 힘들었지.”
“우리 아들 고생 많았고 이 아빠 는 정말,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구 나.”
붉어지는 부모님의 눈동자에, 서준이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환한 미소를 보였다.
“뭐야 괜히 숨기고 있었네, 완전 한서준 쇼였네.”
서준이 억지로라도 밝은 분위기 를 만들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표 정은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서준은 정점이라 불리는 S급 각 성자이기 전에 한석훈, 양정화의 소중한 아들, 자식이었다.
말 한마디로 걱정을 다 떨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각성자 일을 하는데 위 험하지는 않겠니?”
부모님의 눈매에 걱정이 가득 담 겨 있었다.
“저를 만나는 몬스터가 위험하겠 죠. 인터넷에서 보셨을 거 아니에 요? 대한민국에서 몇 없는 S등급이 라니까요.”
서준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 었지만 부모님의 눈에 담긴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부모는 바보가 아니었다.
강한 힘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 르는 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강한 만큼 더 강력한 몬스 터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장 비상 상황 시에 가장 먼저 소집이 되는 각성자는 s급들이었다.
그리고 대격변의 시대는 아직 끝 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나 각 성자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부모 입장에서는 지울 수 없는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식의 앞길을 막는 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싶지
는 않았다.
“엄마랑 아빠는 이것 하나만 묻 고 싶어요.”
서준이 고개를 갸우뚱 젖히는 순 간, 양정화의 입이 열렸다.
“돈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은 아 니지?”
진심을 바라는 한석훈, 양정화의 눈빛에서준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서준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졌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집안의 빚, 돈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돈 때문에 ‘억지 로’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연코 아니었다.
중원 대륙에 홀로 남아서야 가족 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지구에 남은 회한이 너무 컸기 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옥황의 말을 듣고도 돌아오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가족들의 소중함을 깨달았기에 어떻게든 귀환하기로 결심한 것이
었다.
그저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을 바 라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단순히 돈 때문 에 각성자 일을 하는 게 아니야.’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도 있었지만, 서준의 근간은 무인(武人)이었다. 무(武)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 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지구에 각성자라는 직 업이 없었어도 무공을 익혔을 것이 다.
무를 갈고닦고, 육체를 단련해
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나 갈 때의 쾌감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서준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흔들 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절대 아니에요. 각성자 일은 제 가 원해서, 아니 바라던 일이에요.”
확고한 의지가 담긴 서준의 대답 을 들은 한석훈과 양정화의 눈과 입가에 점점 미소가 떠오른다.
“그럼 지금 그 일을 하면서 행복 한 거지?”
“네. 저는 행복해요.”
서준이 고개를 주억이자 부모님
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거면 됐단다. 억지로 하는 것 만 아니면 돼. 성인으로서 스스로 의 길을 결정하는 것까지 참견을 할 생각은 없단다. 오히려 우리 아 들이 이렇게 듬직하게 제 길을 걸 어가 주니 아빠는 정말 고맙구나.”
“그래도 혹여나 힘든 일이 생긴 다면 언제든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렴. 함께 힘을 내서 아들의 행복을 지켜 줄 테니까.”
“저는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일 을 하면서 가족들과의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넘칠 정도로 행복 해요. 그러니까……
서준이 각오에 찬 말을 내뱉었다.
“제가 가족들 덕분에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처럼 우리 가족 건강하고 모두 행 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할 테니까, 이제 편히 사셔도 돼요.”
이것은 결심이자 선언이었다.
암이라는 병으로 인하여 다소 삐 걱거리긴 했지만 무공을 전수하고 나면 오늘날과 같은 불상사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레 서준의 눈동자가 가족 들과의 행복한 미래를 향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