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23화
48 화
상당히 만족스러운 성과였지만 다소 의문스러운 점이 한 가지 남 아 있었다.
‘왜 아무도 안 찾아오는 거지?’
확실한 성과와 능력들을 보여 주 었을뿐더러, 찬사가 담긴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만하면 나름 굵직한 이들은 말 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대 길드에서도 접촉을 해 올 만했
다.
아니, 아까 전 4대 길드의 길드 장들이 직접 백승관과의 결투를 본 만큼 지금 당장 접촉을 해 와야 정 상이었다.
‘대체 뭐지?’
관심과 인기가 쏟아지는 기사에 비해서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느 껴질 지경이었다.
궁금증이 치솟았지만 이내, 고개 를 내저었다.
‘차라리 잘됐어.’
애초에 그런 부가적인 것들에 욕 심을 부린 이유는 가족들과의 행복
한 생활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지금은 경호가 챙겨 준 마정석 판매 대금과 30억이라는 계 약금으로 인하여 그럭저럭 돈을 가 지고 있었을뿐더러, S급 각성자가 된 만큼 많이 벌 방법도 존재했다.
돈 걱정은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공 식적인 허락을 받지 않은 만큼 길 드의 스카우터들이 아무리 좋은 계 약서를 지참하고 달려든다 할지라 도 상대해 줄 수 없었다.
생각을 마친 서준은 집으로 향하
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날 밤, 서준은 가족들을 데리 고 외식올 나섰다.
돈을 엄청나게 벌긴 했지만 눈치 를 본다고 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끼 대접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모든 진실을 털 어놓고 허락을 구하려는 날인 만큼
망설임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았지만 때 마침 가족들 모두가 저녁 일을 쉬 는 날이었는지 흔쾌히 오케이 사인 을 내려 주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선 외식이 었지만, 음식점의 입구에 선 가족 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저녁 식사가 조금 많이 화려하 네.”
“아들, 이게 무슨 상황이니……?”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 성급 호텔 오리엔탈 라이즈뿐만 아 니라 그 안에 있는 별 세 개짜리
음식점의 요직의 직원들이 나란히 서서 인사를 건네 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르 디네의 주방 장 알랭 블랑입니다.”
“오리엔탈 라이즈 총지배인 헨리 킴입니다.”
서준의 벌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서연도 조심스레 물어 올 정도였다.
“오빠 이거 너무 무리하는 거 아 니야?”
“괜찮을걸?”
서연의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 며 대답했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서
준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예약한 것은 저녁 식사뿐이 었다.
이런 성대한 환영에 관련된 것은 일절 없었다.
서준은 스스로를 총지배인이라 소개했었던 남자의 근처로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제가 주문한 거에 이런 서비스 도 있었나요?”
헨리의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흘 렀다.
“아니요, 이건 김경호 대표님께 서 부탁하신 일입니다.”
서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오리엔탈 라이즈의 운영권을 한 성 그룹 일가가 쥐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벌써 경호가 이 정도 의 영향력을 끼칠 줄은 몰랐다.
‘생각 이상으로 잘해 냈나 보네.’
이런 오성급 호텔의 경영권을 집 어삼켰을 정도면 굳이 상황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준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 어나려던 찰나, 헨리 킴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덧대어 일정 때문에 직접 찾아 뵈고 인사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하
다는 말씀과 함께 음식값을 비롯한 어떠한 부분에서도 요금을 지불하 실 필요 없으시니, 부디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기시다 가 달라고 하셨습 니다.”
서준의 눈에는 정도가 넘을 정도 로 화려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오늘 전부 이야기할 거 니까.’
더 화려하게 가진 것을 티 내는 편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반 응을 보아서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나 이런 대접 처음 받아 봐, 완
전 대박.”
“그러게, 엄마도 살면서 이런 대 접은 처음 받아 보네.”
단순한 서비스용이라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로 환한 미소를 동반한 친절들에 가족들의 입꼬리가 치솟 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좋아하는데.’
구태여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잘 부탁드 릴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서준의 모습에 헨리가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럼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헨리의 뒤를 따라 걸어가자, 서 울 야경이 단박에 보이는 룸이 눈 에 들어왔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탁상 위 에 놓인 벨을 눌러 주시면 즉시 달 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헨리가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한 후에 룸 내부를 떠나자 서연이 기 다렸다는 듯이 환호를 내질렀다.
“인별에서 봤는데 여기 예약하려 면 최소 몇 개월은 걸린다는데, 완 전 대박.”
앞서 서준의 확답을 들은 서연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아직까지 걱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 괜찮겠니?”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요즘 열심히 일하잖 아요.”
여유로운 미소를 홀리는 서준의 모습에 한석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긴 가만히 보면 요즘 이른 아 침부터 초저녁까지 계속 돌아다니 잖아. 단순한 아르바이트라고 보기 에는 너무……
의심이 가득 담긴 눈매에, 제 발 이 저린 서준이 빠르게 고개를 돌 리어 시선을 피했다.
순수하게 게이트만 공략하고 나 오는 시간이면 그리 늦지 않았겠지 만, 흔적을 남길 수 없는 만큼 전 투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목욕탕에 라도 들르고 와야 하다 보니 이따 금씩 부모님보다 귀가가 늦을 때가 있었다.
한석훈에 이어, 양정화의 눈매도 가늘어졌다.
“아들, 솔직히 말해 봐. 뭐 숨기 는 것 있지?”
오늘 내로 이야기를 꺼내긴 할 것이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를 끝 마치지 못했다.
서준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 으며 부정을 했다.
“아니요.”
“ 흐음......
반응이 격해서인지 부모님의 눈 매가 더욱더 가늘어져 갔다.
긴장감에 마른침이 목울대를 타 고 넘어가던 찰나였다.
똑똑“
노크와 함께 종업원이 고급스럽
게 장식된 음식을 식탁에 정성스레 놓기 시작했다.
“누아젯 버터에 구운 전복에 트 러플을 곁들인 요리는 이쪽에 놓겠 습니다.”
타이밍 좋게 눈과 코를 사로잡는 음식의 등장에 다행히도 관심은 그 쪽으로 옮겨 가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다.
“와……. 이 전복 좀 봐, 이렇게 큰 전복은 처음 봐! 그럼, 잘 먹겠 습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 덕에 이런 것 도 먹어 보고, 아들, 잘 먹을게요.”
“쑥스럽게 하하……. 맛있게들 드세요.”
서준의 말에 가족들의 식사가 시 작되었다.
딸그락- 딸그락-
“대박, 진짜 입에서 살살 녹아.”
“아들, 전복 좋아하잖아. 이거 좀 더 먹으렴.”
“아니에요, 제 걸로도 충분한걸 요.”
“엄마는 배불러서 그래, 조금만 더 먹으렴. 남기면 아깝잖니.”
서준을 챙기는 양정화의 모습에
서연의 입가에 익살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엄마, 나도 전복 좋아하는데 왜 오빠만 챙겨 줘?”
“우리 막내딸은 아빠가 챙겨 주 려 했지.”
“아버지 조금밖에 안 드셨잖아 요. 저 엄마한테 받아서 양 많으니 까 이거 드세요.”
“이러면 나만 욕심쟁이 되는 거 잖아? 그러면 이거는 엄마가 먹 어.”
“푸흡, 우리 뭐 하고 있는 거니.”
는 식탁에 가족의 웃음꽃이 만개했 다.
그냥 기억의 편린으로, 언제든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이러한 작은 것들을 공유해 감으로써 가족들과의 유대 감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서준은 이러한 것들이 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다 같이 먹어요.”
어느덧 말을 내뱉는 서준의 입에 도 함박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평생 행복하게 사는 거 야.’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이 삶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누릴 것이었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만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우리 가족들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어.’
서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흐르 던 찰나였다.
“콜, 콜록…… 콜록.”
갑작스러운 한석훈의 격한 기침 에 시선이 일제히 모아졌다.
“ 여보?”
눈이 휘둥그레진 양정화가 황급 히 티슈를 건넨다.
티슈를 받아 든 한석훈이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이고, 사레가 크게 들렸네. 아 빠 화장실 좀 갔다 오마.”
한석훈이 떠나간 문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방금 그건……
황급히 가렸지만 서준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분명 그것은 혈향(血香)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피가 아닌, 죽 은피의 냄새였다.
‘혈색도 좋지 않으셨어.’
방금 전 아버지의 얼굴은 창백하 다 못해 핏기가 보이지 않는 수준 이었다.
원래는 먼저 화두를 꺼내지 않았 지만, 징후가 너무나도 불길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 야.’
결단을 내리는 순간 때마침 문이 열리고 한석훈이 입장했다.
서준이 곧장 의자를 거칠게 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잠시만 팔 좀 빌릴게 요.”
“어? 어, 어어……
한석훈의 팔을 낚아챈 서준이 맥 을 짚었다.
내공이 혈도를 타고 흐르며 몸 내부를 샅샅이 수색했다.
꽉 막힌 혈도, 생기를 잃어 가는 장기들, 결정적으로 십이지장 쪽이 문제였다.
“왜 말씀 안 하셨어요?”
“ 뭐를?”
한석훈이 시치미를 떼려 했지만 서준의 눈썰미 그리고 내공까지 속 일 수는 없었다.
암, 그것도 췌장암 말기였다.
이 정도까지 진행됐으면 이따금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거라 본인도 분명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췌장암이시잖아요.”
확신을 가진 서준의 말투에 한석 훈의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한석훈은 더
이상 시치미를 떼지 못하고 조심스 레 입을 열었다.
“3년의 기억도 없는 상태의 아들 이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데 여기서 어떻게 더 신경 쓰이게 하겠냐. 아비 된 도리 로 그러고 싶지 않았을 뿐이란다.”
극심한 고통에 본인의 몸이 스러 져 가는데도 자식 걱정을 하고 있었다.
마주하고 있는 서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본 한석훈이 조곤조 곤한 말투로 달랬다.
“크게 걱정할 거 없단다.”
서준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걱정할 거 없기는요. 병원에서 는요, 병원은 뭐라고 해요?”
시스템과 스킬이 전능한 것은 아 니었다.
잘려 나간 신체 부위를 자라게 만들 수는 있어도 감기, 암과 같은 것들을 치유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회복 계열의 각성자들이 스킬로 모든 병을 치료해 줄 수 있 었다면 병원, 의사가 존재할 필요 가 없었을 것이다.
“1년이나 남았다고 하더구나. 생 각보다 많이 남았지 않니?”
한석훈이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숨길 수 없는 씁 쓸함과 공포가 배어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무덤덤할 사 람이 존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 다.
그저 아버지, 가장이기에 가족들 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참을 뿐 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라려 왔다.
그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홀 로 고군분투하고 있었을 아버지의 모습이 돌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 간다.
“아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단 다. 이것도 다 운명이고 하늘의 뜻 이지.”
서준이 고개를 세차게 내젓는다.
“저는 이런 게 운명이고 하늘의 뜻이라면 따라 줄 생각 없어요.”
애초에서준은 하늘에서도 그 드 높다는 선계마저 정복해내고 지구 로 돌아온 존재였다.
‘하늘? 운명? X 까라 해.’
당연하지만 무작정 감정에 호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시스템과 현대 의료 기술로는 치
료할 수 없다 할지라도, 서준에게 는 지금 당장 이를 타개할 방법이 있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