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20화
45 화
안채형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저희 협회에서 조작을 하고 있 다는 말씀이신가요?”
“난 그런 노골적인 단어를 쓴 적 이 없는데 찔리는 게 있는가 보 군?”
상황을 지켜보던 여현진과 우진 혁도 헛웃음을 흘리더니, 날이 선 말을 뱉어 냈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지금 그 발언은 한서준 각성자 뿐만 아니라 강석호 협회장님께도 큰 실례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 예견했던 상황인 만큼 백승관은 꿋꿋이 자신의 이야 기를 풀어 갔다.
“협회장님과도 개인적으로 면담 을 가졌다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다 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잖아? 그리고 아주 까놓고 애기하면 한서준 각성자의 성장 속도가 정말 말 도 안 되는 일이지 않나?”
불과 한 달, 한서준은 말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S급에 도달했
다.
세계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 없 는 유례없는 속도였다.
물론, 한서준의 등급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줄 증거들이 존재했다.
우진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백승 관의 트집을 논파해 냈다.
“당신도 관측실에서 측정기를 보 시지 않았습니까.”
“중국 쪽에서도 조작했던 아티팩 트를 한국이라고 못할 거 있겠나?”
“말이 좀 심하십니다.”
“오랜만에 등장한 S급 각성자에 불새가 많이 몸이 달아올랐나 봐? 아니지, 4대 길드에서 쫓겨날 위기 에 처한 불새가 협회와 손을 잡고 그린 그림인가?”
날이 선 말들에 시험장의 분위기 가 가라앉던 찰나, 서준이 손을 번 쩍- 들어 올렸다.
“근데 익스테스트가 정확히 뭐예 요?”
혼치 않은 만큼 인터넷과 흘려들 은 정보로만 각성자 세계를 배운 서준이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S급의 자질이 의심되는 각성자
에게 1:1 대결을 요청하여 능력, 실력을 평가 및 검토하는 것입니 다.”
안채형의 친절한 설명에 뒤이어, 백승관의 날카로운 말이 들려왔다.
“쉽게 말하자면 팩트를 짚고 넘 어가자는 거지. 1:1 대결이 두렵다 면 일단은 그냥 물러나 주도록 하 겠지만 대신 나는 이후에 공식적으로 세계 각성자 협회에 자네의 등 급에 대한 의문을 표하고 조사를 요청할 거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 없겠지?”
세계 각성자 협회의 조사가 진행 된다면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한
서준은 s급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없었다.
‘어쨌든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 는 것이지.’
애초에 백승관이 바랐던 것은 블 랙 길드의 후원 그룹, 국회의원을 구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서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러니까, 내 능력과 실력이 의 심스럽다는 거네?”
백승관은 대답 대신 비릿한 미소 를 홀리며 서준의 눈동자를 옹시한 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치며 시
험장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아 가 자, 우진혁이 황급히 한서준을 진 정시켰다.
“한서준 각성자님의 기분이 나쁘 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백승관 놈의 꾀에 넘어가셔서는 안 됩니다.”
서준의 가능성과 성장세가 세계 제일을 논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 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승관은 S급으로 활동한 지 일 년이 넘은 각성자였다.
s급의 강자로서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전투 경험을 쌓아 온 자 라는 것이었다.
경험과 지식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 만큼, 지금 당장 서준이 1:1 로 맞붙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 었다.
‘더군다나 백승관 저놈의 성정을 생각하면 그냥은 안 끝날 거야.’
실수를 가장해서 큰 상처를 입히 려 할 것이 뻔한 만큼 반드시 말려 내야 했다.
여현진도 서준이 다치길 원치 않 는 만큼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어차피 세계 각성자 협회의 조
사를 거치고 나면 S급 판정을 받으 실 수 있을 겁니다.”
능력치가 감소되거나 사라질 일 이 없는 만큼, 조사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세계 각성자 협회에서 측정을 한다면 아무 문제 없이 S급 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준은 이런 무시를 당하 고도 그냥 넘어갈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의심되면 올라와.”
오른손을 내뻗으며 검지와 중지 를 까딱이며 도발을 하는 서준의 모습에 안채형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위험합니다!”
뒤이어 우진혁, 여현진은 이 상 황을 유일하게 중재할 수 있는 인 물인 강석호를 다급하게 불러 댔다.
“협회장님!”
“이대로 그냥 지켜만 보고 계실 겁니까?!”
하지만 주변의 성화에도 강석호 는 딱히 이 상황을 제지할 생각이 없었다.
‘뭔가 단단히 착각들 하고 있군.’
한서준 각성자의 가장 무서운 점 은 빠른 성장 속도, 높은 성장 스
텟 총합 같은 것이 아니었다.
‘궤를 달리하는 압도적인 스킬들 과 전투 센스들.’
실제로도 여태껏 한서준 각성자 는 이를 바탕으로 라이선스, 특별 권한 시험들을 아주 손쉽게 통과해 냈고, 빌런들을 잡아냈다.
‘무엇보다도 한서준 각성자님의 저 눈빛……
S급 각성자이자 한 나라를 대표 하는 협회장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온 만큼 눈빛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그 심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서준의 눈빛에 담긴 감정은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한 허 세나 오만 따위가 아니었다.
확신에 찬 자신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블랙의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백승관이 상대 를 잘못 고른 것 같군.’
강석호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속으로 삼켜 내며 입을 열었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는데 우리 가 왈가왈부한다고 어쩌겠나. 백승 관 각성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익스 테스트를 허락하도록 하지.”
S급 각성자 백승관, 현재 세간에서 그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붙이 는 수식어는 ‘블랙 길드장’이었다.
하지만 각성자들이 백승관을 칭 하는 단어는 전혀 달랐다.
‘레일건(Rail Gun).’
당연하지만 이러한 명칭이 괜히 붙은 것은 아니었다.
백승관이 가진 SSS급 스킬, 라이 트닝 제네시스는 마나를 이용하여 번개를 빚어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SSS라는 높은 등급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라이트닝 제네시스가 만 들어 내는 번개는 빠르면서도 파괴 적이었다.
하늘에 내리치는 벼락과 같은 공 격인 만큼 S급 각성자의 능력으로 도 피해 내거나 막아 내는 것이 상 당히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정점에서 있다는 S급 각성자들도 백숭관과의 싸움을 기 피했다.
‘그런데 이제 갓 S급이 된 풋내 기가 나를 상대하겠다니.’
백승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당장이야 조금 능력이 부족하다 지만 S급이 될 자질은 충분해 보이 던데, 귀여운 후배가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은데 괜한 자존심 세우지 말고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어때?”
말을 내뱉은 백승관의 몸 주변으로 파지직-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언제든지 서준을 찢어발길 수 있 다는 위협을 가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준의 표정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거 알지? 원래 겁먹은 개가 요란하게 짖는 거.”
오히려 이런 백승관의 모습이 귀 엽다는 듯이 피식- 비웃음을 홀리 고 있었다.
서준의 도발적인 언행에 백승관 의 미간이 구겨졌다.
동시에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흘렀다.
“재능이 좀 있다고 너무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군.”
몸에 스파크가 요란하게 일어난 백승관이 손가락을 튕기었다.
그러자, 한 줄기의 벼락이 서준 을 향해 쏘아졌다.
콰광-!
폭음과 함께 방금 전까지 서준이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여 들어갔 다.
S급 각성자의 전투 능력을 평가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가의 시험장 이 단 일격에 박살이 난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이 입은 상처는 존재 치 않았다.
그저, 가볍게 한 발자국 뒤로 물 러선 것으로 백승관의 공격을 피해 낸 것이었다.
“이 정도면 주제를 확실히 아는 거 아닐까?”
서준의 비웃음에 백승관의 얼굴 이 찌푸려졌다.
“고작 한 발 피해 놓고 너무 허 세를 떠는군.”
백승관의 몸에서 뿜어진 거친 스 파크가 시험장의 천장을 순식간에 푸른색으로 뒤덮었다.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을지 궁 금하군.”
그 푸른빛 천장을 향하여 백승관 이 손가락을 튕겼다.
“라이트닝 스톰.”
천장, 하늘에서 쏟아진 벼락이 요란한 폭음을 토해내며 시험장을 뒤덮었다.
콰과광!
피할 틈이 없어 보이는 공격이었지만, 놀랍게도 이번에도 서준의 몸에 닿는 벼락은 존재치 않았다.
백승관이 스파크를 뿜어내고 있 는 사이, 서준은 재빠르게 팔경성 보의 걸음을 밟아 놓았다.
돌풍이 된 서준이 아주 일순간, 존재하는 벼락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승관의 눈 이 휘둥그레진다.
‘이걸 전부 피해 낸다고?’
라이트닝 스톰은 광범위한 위력 대신 파괴력이 약했다.
그렇기에 기존 S급의 각성자들도 라이트닝 스톰을 몸으로 맞고도 버 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서준처럼 전부 피해 내는 이는 존재치 않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 위험한 놈이군.’
아까 전, 측정실에서 내렸던 계 산이 모두 어긋났다.
블랙 길드를 받쳐 줄 기업, 국회 의원들을 구한다 할지라도 불새 길 드가 한서준을 손에 넣게 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 버 릴 것이었다.
‘단순히 시간만을 끌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뒤덮었던 스파크가 백승 관의 몸으로 다시금 되돌아왔다.
탐욕이 넘실거리는 눈동자를 한
백승관의 시선이 서준을 응시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이군.”
“테스트는 끝난 거야?”
“아니,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 어서 잠시 멈췄을 뿐이다.”
“뭔데?”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인데, 우리 블랙 길드에 들어올 생각이 있나?”
서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흘 렀다.
“사자가 개 밑으로 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군.”
백승관의 두 눈에 담겨 있던 탐 욕이 사라졌다.
그를 대신하여 질투, 시기라는 불순한 감정들이 차오른다.
‘저런 인재를 불새에 넘길 수는 없지.’
후환을 확실하게 제거해 둬야 했 다.
‘우선 팔 한쪽 정도는 취해 둬야 겠군.’
지금 당장은 보는 눈이 많은 만 큼 죽일 수는 없겠지만 팔 한쪽 정 도는 익스테스트 중에 이따금씩 발 생하는 사건인 만큼 바깥의 이들도
크게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것이다.
“네놈이 내린 선택이니 후회하지 마라.”
백승관의 몸에서 스파크들이 연 달아 쏘아졌다.
파지직-!
쏘아지는 번개들에서준은 당황 하지 않고 방금 전처럼 뒷걸음질 치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 냈다.
“소용없는 거 알지 않아?”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던 찰나, 백승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 렀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갔던 스파크가 일순간 멈춰 서더니, 경로를 꺾어 낸다.
황급히 발을 놀리며 경로를 벗어 나려 했지만, 빛살과 같은 속도로 쏘아진 번개를 피해 내기에는 역부 족이었다.
파직-!
번개가 스쳐 지나간 서준의 어깨 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린다.
“뭐 하는 거지?”
단순히 상처를 입었다는 것에 불 쾌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백승관의 말대로라면 이 싸움은 단순한 테스트, 친선 비무에 가까 웠다.
방법이 다소 거칠긴 했지만 서로 의 목숨을 취하는 전투가 아니었다.
한데 방금 전 공격은 조금만 늦 었더라면 그대로 팔이 잘려 버렸을 것이다.
기분이 좋을 리가 만무했다.
백승관을 웅시하는 서준의 눈매 가 날카로워졌다.
이러한서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백승관은 입꼬리를 비튼 채
로 대답을 내뱉고 있었다.
“실수야 실수, 너무 화내지 말라 고.”
“이게 실수라고?”
시험장 주변에 귀가 밝은 이들이 많은 만큼 솔직하게 대답을 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얼굴에 무형의 가면을 덮어써 감 정을 숨긴 백승관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홀리며 대답했다.
“그래, 실수였어.”
“맞아, 생각해 보니 충분히 실수 일 수 있겠네.”
긍정을 표하는 말과 달리 서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연하지만 많은 전투 경험이 있 는 s급 각성자가 이런 실수를 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금 전, 백 승관의 공격에는 명백한 살의가 깃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이 화를 내거나 테스트를 중단하지 않는 데 는 이유가 있었다.
‘나를 건드렸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후환, 복수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게 확실한 대가를 말이다.
굳은 표정의 서준이 백승관을 바 라보며 물었다.
“근데 지금부터 나도 조금 실수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테스트 중에 크고작은 실수가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 가‘?”
백승관의 호쾌한 대답에서준의 입 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