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9화
44 화
끼이익-
긴 복도를 지나 안채형이 가리켰 던 문안으로 들어서자 벽면, 그 중 심에 검은색 수정구가 놓인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게 그 측정기인가 보네.’
영국의 한 각성자가 제작했다는 아티팩트로 손을 대면 총합 스텟의 합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능 을 가지고 있었다.
서준이 검은색 수정구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찰나, 천장의 구석 편에 달려 있는 스피 커에서 안채형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들리시나요?
“ 네.”
-번거로우시겠지만 필요한 절차 라 성함 한 번만 말씀 부탁드리겠 습니다.
“한서준입니다.”
-확인 완료됐습니다, 이제 바로 앞에 보이는 검은색 수정구 위에 손을 얹어 주시면 됩니다.
서준은 안채형의 지시대로 검은 색 수정구 위에 손을 얹었다.
-잠시 그대로 있어 주시면 측정 이 시작될 겁니다.
안채형이 기계를 조작하여 측정 기를 작동시켰다.
빠르게 변해 가는 수정구의 색상 에 안채형과 강석호가 마른침을 꿀 꺽- 삼켰다.
이윽고, 강석호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C, B, A……
강석호가 뒷말을 삼키고 있는 사
이, 검은색 수정구의 색상이 완전 히 백색(白色),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입을 벌린 채로 멍하 니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이내, 강석호의 얼굴에 기쁨과 당황이 버무려진 미묘한 표정이 어 렸고 안채형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 가 흘렀다.
“저녁 맛있게 먹겠습니다, 협회 장님.”
“대체 어떻게……. 허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강석호가
헛웃음을 흘리고 있던 찰나, 서준 의 질문이 들려왔다.
“손 계속 올리고 있어야 하나 요?”
-아닙니다! 이제 손을 내리셔도 됩니다. 정신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등급이 어떻게 되죠?”
-축하드립니다, S급이십니다.
예상했던 결과인 만큼 서준은 대 수롭지 않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재심사가 끝난 건가요?”
이어진 질문에 스피커 너머에서
안채형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 온다.
-잠,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서준의 고개가 갸웃- 젖혀졌다.
“다른 측정이 남아 있나요?”
-전투 능력 평가를 치르셔야 합 니다.
인터넷 검색과 언뜻 들은 정보로 는 재심사에는 전투 능력 평가 따 위는 존재치 않았다.
측정기의 색상에 따라 곧장 등급 이 매겨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드급 각성자가 출현할 경우 국
력의 순위가 변하다 보니 세계 각 성자 협회에서 자질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요구하고 있어서 죄송하지 만 추가적인 심사가 필요할 것 같 습니다.
s급의 경우 국력과 직결된 문제 이다 보니 이런 엄격한 평가가 필 요한 것이었다.
나름 합리적이었다.
특별한 스케줄은 없었지만 서준 은 혹시나 싶어서 휴대폰을 꺼내어 시각을 확인했다.
12시 50분.
-선약이 있으시다면 전투 능력
평가는 훗날 날짜를 잡아서 진행하 셔도 됩니다.
가족들과 오늘날을 축복하며 함께 먹을 소고기를 사 가야 하긴 했 지만, 아직 저녁까지는 많은 시간 이 남아 있었다.
‘다섯 시간 정도는 여유 있으니 뭐.’
어차피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시험 이라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 버리 는 편이 속이 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부하게 된 다면 S급 판정을 받을 수 없는데 어쩌겠는가?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 다.
“알겠습니다.”
-예. 그러면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서 시험실로 가는 길을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전, 협회 지하의 관측실.
재심사가 이루어지는 측정실 내 부를 확인할 수 있는 만큼 크고작 은 길드 스카우터들이 대기하고 있 어서 항시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만큼은 단 세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 금 있는 셋은 대한민국의 어느 길 드의 스카우터가 오더라도 경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환성의 여현진, 불새의 우진혁, 블랙의 백승관으로 한국을 대표하 는 각성자들임과 동시에 4대 길드 를 이끄는 길드장들이었기 때문이
었다.
각성자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해 도 과언이 아닌 이런 인물들이 서준의 측정 결과를 보며 감탄사를 흘려 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맙소사.”
당연한 반응이었다.
강석호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s급 혹은 그에 준하는 이들인 만큼 총 합 스텟이 1,000을 넘는다는 게 얼 마나 힘든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서준 각성자가 S급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대체 한계점이 어디길래 레벨 업 속도가 이렇게 빠른 거야?”
“저 정도면 레벨 업당 스텟을 한 열두 개씩 받는 거 아닐까?”
여현진과 우진혁은 감탄 섞인 말 들과 함께 서준과 더불어 그려 나 갈 미래를 상상하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블랙 길드의 길드장, 백승관은 마냥 좋아할 수 가 없었다.
‘카일 크리스토퍼를 뛰어넘는 재
능이라니, 너무 위험하다.’
지금 모여 있는 길드의 명성과 보유 자산과 내부 상황까지, 모든 것들을 고려해 봤을 때 한서준이 갈 곳은 사실 정해졌다고 봐도 되 었다.
백승관의 시선이 우진혁에게로 향한다.
‘불새 길드.’
명성은 4대 길드에 이름을 올리 고 있을 정도로 훌륭했고, 자금은 가장 많은 각성자를 운용할 수 있 을 정도였으니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쟁자이자 라이벌이라 볼 수 있는 S급 각성자 가 한 명도 없는 길드였다.
한서준이 머리를 조금만 잘 쓴다 면 우진혁을 바지 사장으로 만들어 놓고 길드를 휘어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좋 은 법이었다.
아니, 지금 불새의 위치를 생각 하면 용의 머리가 될 수 있었다.
백승관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 었다.
‘내가 어떻게 블랙을 불새 위에
올려 두었는데.’
기업가들을 위해 갖가지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개처럼 일하였 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접대를 국 회의원들에게 해 가며 간신히 일궈 낸 길드였다.
그런데 S급 판정을 받은 한서준 이 불새에 가입하면 과거로 다시 원상 복구가 되고 말 것이다.
‘아니, 그때보다 더 좋지 못한 상 황이 될 거다.’
개처럼 일하여 간신히 지갑을 열 게 만들었던 더 케이 그룹은 급격 히 휘청이고 있었고, 명분과 법으
로써 보호를 해 줄 국회의원, 박준 영도 존재치 않았다.
‘쯧, 멍청한 놈들이 하필 변호해 줄 수 없는 빌런 사태에 연관되어 버려서는.’
당장 후원 그룹, 국회의원이 사 라진 것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블랙 길드는 그들과 밀접하게 연 관되어 있었던 만큼 좋지 않은 이 미지가 박혀 버려서 다른 그룹 스 폰과 국회의원들의 제안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재정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만큼 내년에는 길드
원들의 숫자를 부쩍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에 비해서 다른 대형 길드들은 그룹의 후원들을 받아서, 덩치를 키워 가며 뒤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최악의 경 우에는 블랙 길드가 4대 길드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백승관의 미간이 구겨졌다.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처음 S등급 판정을 받았을 때 각 길드, 그룹, 국가에서까지 쇄도해 온 러브 콜들을 거절하고 이뤄 낸
길드, 아니 인간 백승관의 삶 그 자체였다.
이리 허무하게 밀려날 수는 없었다.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다.’
쉽지 않은 문제인 만큼 고민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가던 찰나, 백 승관의 눈이 번뜩- 뜨였다.
‘내가 한서준을 S급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면 되잖아.’
타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 낸 법안인 만큼 자국 내에서 이 이의 를 제기한 이가 없어서 잠시 까먹 고 있었올 뿐이었다.
S급의 숫자는 곧 국력과 직결되 는 만큼 중국에서는 과거에 A급 각성자를 S급 각성자로 속여서 둥 록한 일들이 있었다.
다행히도 이를 의심한 타국들이 조사를 나서 진실을 밝히긴 했지만, 이후 세계 각성자 협회에 한 가지 법안이 재정되었다.
‘등급 기망 행위에 대한 심사 국 제 조약, 일명 익스테스트(Extest) 조약.’
S급으로 판정받은 각성자의 실 력, 능력이 의심될 경우에 다른 각 성자들이 그를 공평하게 평가할 권
한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였다.
마침 한서준 각성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성장세를 보인 만큼 제시 할 의문도 충분했다.
아니, 애초에 백승관에게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시간만 벌면 된다.’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 회를 저버리는 만큼 많은 이들이 아우성을 쏟아 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블랙 길드의 사정이 그리 좋지 못 했다.
‘한서준이 A급 판정을 받게 되어
주춤하게 만들고, 그사이에 블랙 길드에 알맞은 스폰 그룹과 국회의 원을 찾아내고 인연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게 넉넉한 자금과 더불어, 든든한 방어막이 생기게 된다면 한서준이 불새로 들어간다 할지라도 블랙 길드가 계속해서 그 우위에서 있을 수 있었다.
‘유일한 변수는 내가 한서준에게 패배하는 것 정도겠군.’
경험이라는 것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거였다.
오랜 시간 S급으로 활동해 온 자
신과 이제 갓 s급에 도달한 풋내기 의 싸움.
그리 어려운 계산이 아니었다.
‘변수는 없겠군.’
완벽한 계획을 세워 냈다고 생각 한 백승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홀렀다.
강석호, 안채형의 안내를 받아 가며 전투 능력 평가실에 도착한서준의 입에서 감탄이 홀러나왔다.
“생각보다 더 대단하네요.”
앞서 보았던 라이선스, 특별 권 한 시험장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대한 원형의 시험장 주변으로 결계와 같은 방어막들이 수 겹씩 둘러져 있었다.
“S급 각성자들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보니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죠.”
당연한 것이었다.
S급 각성자들은 인간 병기라 불 려도 손색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평범한 건물이 그런 이의 힘을 견뎌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서준에게 중 요한 것이 아니었다.
서준의 시선이 시험장 주변에서 있는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저기 있는 분들도 저를 평가하 기 위해서 모여 있는 거겠죠?”
“시험장이 국가의 시설이다 보니 저희 협회에서는 저런 관측을 거부 할 권한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안채형의 모습에서준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본다고 닳는 것도 아 니고 상관없어요.”
오히려 인기와 명성을 쌓아야 하 는 만큼 지켜보는 눈이 적어서 아 쉬웠다.
‘숫자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 래도 한 명 한 명이 거물급이라 다 행이네.’
한국을 대표하는 4대 길드장인 만큼 서준도 익히 얼굴을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저들이 보일 반응과 그
로 인해 쏟아질 소문, 기사들을 떠 올리자 입가에 미소가 절로 흘렀다.
“그것보다 시험 방식은 여태껏 해 왔던 대로인가요?”
“네, 시험장에서 홀로그램의 몬 스터를 상대로 승리하시면 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안채형의 대답을 들은 서준은 곧 장 발걸음을 옮기어 시험장 위로 올라섰다.
“ 후우......
시험장의 중심에 선 서준이 호흡 을 가다듬으며 전투를 준비해 나가 던 순간이었다.
구석 편에서 지켜보던 백승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
갑작스러운 난입에 시선이 일제 히 백승관에게로 쏠렸다.
이런 상황을 유도했던 만큼 백승 관은 곧장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곰곰이 생 각해 봤는데 협회부터 저기 있는 한서준 각성자까지 구린내가 나는 게 한두 개가 아닌 것 같거든.”
트집을 잡아내고 있는 백승관의 말에 안채형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
앉았다.
“번거롭게 돌려 말하지 마시고 용건만 말씀 부탁드립니다.”
백승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한서준 저 친구랑 협회가 한 팀 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어서 그러는데, 공정한 평가를 위 하여 공식적으로 익스테스트를 요 청 하고 싶은데 괜찮겠지?”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