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8화
43화
여의도 인근.
한서준 각성자의 예상 도착지로 추측되는 협회 건물로 향하고 있는 차량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 리고 있었다.
그 차량의 조수석에 타고 있던 최인국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내, 최인국의 시선이 뒷좌석에 앉은 여현진을 향했다.
“건물 무너뜨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었더니, 이제는 차량을 부 수실 생각이십니까?”
“아시잖아요, 저 긴장하거나 설 레면 원래 다리 떠는 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현진 의 모습에 최인국이 최대한 차분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아까 전에 들어 보니 다른 4대 길드에서도 사람을 풀어 뒀다는데 이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있 어요?”
귀한 인재인 한서준 각성자에게 언제 날파리들이 붙을지 모르는 상 황이었다.
‘정말 만에 하나의 상황이겠지만 블랙, 신화 같은 비꼬여 있는 놈들 에게 한서준 각성자님이 넘어가 버 린다면.’
여현진의 미간이 구겨졌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렇지 않아도 떨리던 다리에 가 속도가 붙었다.
쿠 쿵!
차량의 흔들림에 최인국이 재빨
리 뒷말을 내뱉었다.
“침착하시고 불새, 신화, 블랙의 건물 위치와 상황들을 생각해 보세 요!”
최인국의 말에 여현진의 떨리던 다리가 움직임을 멈추었고, 입가에 는 환한 미소가 흘렀다.
우선 신화의 길드장은 성장, 수 련을 한다는 명목으로 게이트로 떠 난 상태였다.
여의도 근방에 길드 건물이 있는 환성과 달리 불새와 블랙의 길드 건물들은 강남에 위치해 있었다.
같은 시간에 보고를 받았다면 자
신들이 훨씬 더 빠른 게 당연한 것 이었다.
심지어 지금 시각은 오후 12시 30분, 한창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때라 그런지 도로가 정체되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길드의 날파리들이 아직까지는 붙지 못했겠네.”
“네, 우리가 가장 먼저 접촉할 수 있을 겁니다.”
지진과 같았던 떨림이 멎자, 차 량이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려 나갔다.
덕분에 차량은 얼마 가지 않아서
협회 건물의 입구에 도착했다.
“내리시죠.”
입가에 승자의 미소를 띤 여현진 과 최인국이 차량에서 하차를 하기 위해 백미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작은 거울 속에 협회 쪽으로 매 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여현진의 초인적인 안력은 남자의 얼굴을 정 확하게 인식했다.
‘저 사람은?’
최인국도 A라는 고등급의 각성
자인 만큼 그 남자를 보았는지 눈 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우 대표님?”
4대 길드, 불새의 길드장이자 환 성의 리더인 여현진과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친구로 지내 온 사 이인 우진혁의 얼굴이었다.
“저 인간이 뛰어왔다고?”
우진혁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 으로서 웬만해서는 흠잡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였다.
그런 우진혁이 셔츠가 땀으로 범 벅이 되고 있는 것을 개의치 않고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우진혁이 체면을 버리면서까지 이렇게 다급하게 뛰어올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한서준 각성자.’
블랙이나 신화 같은 최악은 아니 었지만 차악 정도는 되었다.
불새 길드는 4대 길드 중 가장 많은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고액 의 자본을 가진 길드였다.
함부로 자본, 코스트 싸움을 걸 었다가는 환성이 파산을 할 수도 있었다.
‘일단 불새의 저력을 파악해 내 고 그에 맞는 대책을 짜야 해.’
탁-!
여유를 부리던 여현진이 잽싸게 차에서 내리며,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는 우진혁의 앞길, 협회의 입구 를 막아섰다.
“한창 사업 벌이느라 바쁘신, 우 리 우 대표님께서 이 시간에 협회 에는 웬일이야?”
“허억…… 허억……. 아이고. 우 리 여 사장님 나 사업 벌이느라 바 쁜 사람인 거 알면서 왜 잡고 그 래‘?”
“우리 우 대표님 수완이 엄청나 게 좋으시다 보니 한 수 배우려고
그러는 거지.”
“천하의 S급 각성자이자 환성 길 드장님께서 나 같은 A급 각성자에 게 뭘 배울 게 있다고 그래.”
“나이를 먹다 보니 배움이란 게 끝이 없더라고. 같이 가서 배워도 괜찮지? 진혁아 고등학교 친구 좋 다는 게 왜겠어. 부탁 좀 하자.”
“배움은 잘 모르겠고, 나이를 먹 어서 그런가 우리 현진이가 옛날이 랑 다르게 많이 능구렁이가 되긴 했네. 근데 아쉽게도 오늘은 딱히 배울 게 없을 거야.”
“내가 봤을 때는 오늘 배울 게
엄청 많은 거 같은데.”
여현진과 우진혁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던 두 사람의 미간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구겨졌다.
“싸움만 하는 돌대가리라서 그런 지 좋게 말해 주니까 못 알아듣겠 지? 우리 불새 자금력 알면서 괜히 되도 않는 싸움 하려 하지 말고 이 번에는 포기하지?”
“뭐라고? 돌대가리? 머리가 엄청 좋으셔서, 계속 잔머리 굴리다가
M 자 탈모 오고 있어서 좋으시겠 어요? 그리고 저번 A급 각성자, 김 민재도 불새에서 데려가 놓고 이번 에도 포기하라고?!”
“그 김민재가 사설 도박 해서 우 리 길드 이름 포털 사이트들 메인 에 대문짝만 하게 기사 걸렸다고 하루 종일 전화로 놀렸던 거 기억 안 나나 봐?!”
“하루 종일이라니 여덟 시간밖에 안 놀렸어! 그리고 그건 길드원 관 리를 제대로 안 한 네 탓이잖아!”
“내 말은 김민재 같은 놈이랑 한서준 각성자님이랑 비교하는 건 말 이 안 된다는 거지.”
평일 대낮, 여의도 한복판에서 언성을 높여서 싸우고 있는 두 사 람의 모습에 그들을 보좌하고 있던 이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 보는 눈이 많습니다.”
“길드장님 조금 자중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을 하며 길드장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 미 그들의 싸움은 걷잡을 수 없는 업화가 되어 있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천만 탈모인 을 대표해서라도 저 무식하고 무례 한 언행을 바로잡아야 하는 겁니
다!”
“그간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봐줬 더니만 오늘은 돌대가리들의 대표 로서 사과를 받아 내야겠습니다.”
파국으로 치달아 가는 상황에 보 좌관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길드장님……
“대표님……
그러나 하늘이 두 쪽 나도 솟아 날 구멍은 있는 법이었다.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오늘이야말로 결판을 낼 겁니 다.”
두 길드장이 여전히 완강한 태도 들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들을 단박 에 중재할 한 줄기 빛이 내리었다.
“그게 아니라……”
“한서준 각성자님이 심사실로 들 어가셨습니다.”
계속해서 높아져 가던 두 사람의 언성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 네?”
“뭐라고요?”
고개를 돌리자 측정실로 향하는 한서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이따 끝나고 보자.”
여현진과 우진혁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재빨리 협회의 건물 로 들어섰다.
방금 전, 협회 건물 내부.
여현진과 우진혁이 바깥에서 일 으키고 있는 소란을 지켜보던 서준 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냥 내버려 두셔도 되나요?”
나름 고등급의 각성자들인 만큼 정말로 싸움이 일어나게 되면 협회 건물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석호의 얼굴에 긴장감 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피식- 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저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처 럼 보이지만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죽마고우의 사이였다.
일전, 불새 길드장이 게이트 내 부에서 위험에 빠졌을 때, 여현진
이 모든 스케줄을 내팽개치고 곧장 그를 구해 주러 갔을 정도로 엄청 난 우정을 자랑하고 있었다.
“매번 저러시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석호의 자신만만한 말투에는 서준도 고개를 주억이며, 본래의 협회에 들른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재심사 접수는 저쪽에서 하면 되나요?”
서준의 물음에 강석호의 옆에서 있던 안채형이 대답을 해 왔다.
“협회장님께서 모든 절차를 밟아
두셨으니 바로 측정실로 향하시면 됩니다.”
이런 귀찮은 절차들을 처리해 주 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배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 드려야 했 던 일이죠. 가시죠.”
강석호의 안내를 받으며 측정실 이 있는 협회 건물의 지하로 향하 였다.
평소라면 재심사를 받는 각성자 들로 북적거렸겠지만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세 사람은 괜한 잡음과 분란 없이 편안하게 측정실의 입구 가 보이는 곳까지 빠르게 당도할 수 있었다.
“워낙 민감한 기계라 저희가 함께 들어가면 측정 도중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어서 저희는 관리실에서 안내를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 다.”
안채형은 검지를 내뻗어 건너편 의 문을 가리켰다.
“저 안으로 들어가시면 제가 스 피커를 통하여 재심사 방법에 대해 서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네.”
고개를 주억인 서준은 곧장 발걸 음을 옮기어 측정실 내부로 향하였 다.
뒤를 이어, 강석호와 안채형도 바로 옆에 있는 문을 열고, 측정기 를 작동시킬 수 있는 관리실로 발 걸음을 옮기었다.
관리실 내부에서 서준이 들어서 길 기다리고 있던 안채형이 강석호 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서준 각성자님이 S급의 스텟 에 도달하셨을까요?”
강석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힘들 거라고 생각하네.”
며칠 전, 서강석의 파티를 큰 상 처 없이 제압해 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서준은 전투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며 준S급에 달할 정도의 강 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스테이터스, 능력치는 별 개의 문제였다.
재심사는 아티팩트를 해제한 후 측정이 이뤄지는 만큼 총합 스테이 터스가 1,000을 넘겨야 했다.
그리고 순수한 스테이터스는 몬 스터를 사냥해 경험치를 획득하여 레벨 업을 해내야지만 상승시킬 수
있었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한계점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초기에는 각성자라면 누구라도 쉽게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정 레벨 구간을 지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경험치를 습득해도 누구는 레벨이 쉽게 오르는 반면, 누구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
이 레벨이 각성자마다 각자 다르 기에 세간에서는 이를 ‘한계점’이라 고 칭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서준 각성자님이 보여
주신 능력들을 생각하면 레벨 업당 열한 개 정도의 스텟이 상승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안채형의 말에 강석호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손에 턱을 괴 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 흐음......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평 범한 각성자들은 다섯 개, 조금 뛰 어난 이들은 일곱에서 여덟 개, 각 성자들의 정점이라 불리는 s급은 아홉 개가 상승하는 것이 평균적인 수치였다.
실제로도 지금 한국 제일이라 불
리는 자신, 강석호도 열 개의 스테 이터스가 상승하는 중이었다.
열한 개의 스텟이 상승했다는 각 성자는 세계 제일이라 불리는 카일 크리스토퍼뿐이 었다.
애초에 안채형이 언급하고 있는 대상이 한서준 각성자가 아니었다 면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을 쳤을 만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강석호는 머릿속으로 그간 한서준 각성자가 보여 주었던 일들을 되새겨 본 후에 조심스레 입을 열 었다.
“한서준 각성자님이라면 자네의
추측대로 정말 열 개의 스텟이 상 승하고 있을 수도 있을 걸세.”
그리고 레벨 업당 상승하는 스텟 의 양이 높을수록 한계점이 찾아오 는 순간이 늦어진다는 것은 현대사 회에서는 상식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즉, 정말 열 개의 스텟이 상승한 다면 한서준 각성자의 레벨 업 속 도는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속도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강석호는 고개를 내젓 고 있었다.
“세월, 시간은 어찌할 수 없는
걸세.”
재능이 세계 제일과 같은 수준이 며 특별 권한을 이용해 소수의 인 원으로 사냥을 해 왔다 할지라도, 아직 한서준 각성자는 라이선스 시 험을 치른 지 한 달밖에 안 된 새 내기 였다.
세계 제일이라 칭해지는 카일 크 리스토퍼도 S급에 도달하기까지 반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지금 당장은 A급이 한계이실 걸세.”
“그래도 한서준 각성자님이신 만 큼 혹시 모르지 않을까요?”
강석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 었다.
“절대, 그럴 일 없을 걸세.”
“근데 저번에 특별 권한 시험에서도 이렇게 자신감 있게 말씀하셨 다가……
과거의 치부를 찔러 오는 안채형 의 말에, 강석호의 입에서 헛기침 이 흘러나왔다.
“크흠……! 그때는 한서준 각성 자님을 제대로 몰라서 실수를 했던 거지만 이번에는 다를 걸세.”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했지만 안채형의 눈동자에 담겨 있는 불신
은 가시지 않았다.
“자네가 그렇게 자신 있다면 저 녁밥 걸고 내기를 하겠나? 미리 말 하지만 나는 아주 음식점에서 코스 요리를 먹을 걸세.”
순간, 안채형의 눈동자에 깊은 고민이 어렸다.
다른 이였다면 강석호의 말을 곧 이곧대로 믿고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한서준 각성자는 달랐다.
‘항상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셨었지.’
얼마 가지 않아서, 안채형은 확 신에 찬 표정이 되어 고개를 주억
였다.
“좋습니다, 하시죠.”
강석호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흘렀다.
“연륜과 경험의 무서움을 알게 될 걸세.”
그리고 때마침, 한서준 각성자가 측정실 내부로 들어서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