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6화
41 화
한 번의 실패, 실수로 치부할 만 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연락을 취해 왔다는 것은 서강석이 자신과의 유 착 관계, 비리와 관련된 정보를 모 두 유출했다는 말이었다.
초조함이 극에 다다른 김효선은 손톱이 이미 다 닳은 줄도 모르고 생살까지 물어뜯었다.
‘이 소식이 알려진다면……
힘들게 이룩해 낸 커리어, 권력 과 같은 모든 것들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떻게 일궈 낸 것들인데!’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번 일이 알려지기 전에 김경 호와 한서준의 입을 막아야 해.’
김효선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 신히 스마트폰을 쥐어 잡긴 했지만, 쉽사리 다음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대체 누구에게?’
서강석보다 강한 빌런이 한국에
있었는가?
그런 이가 있었다면 서강석이 지 부장의 자리를 꿰차지 못했을 것이 었다.
‘해외라면……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생각을 접어야 했다.
임무를 마친 강석호가 다시 한국 으로 돌아오고 있는 상태였다.
강석호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번 서강석의 습격으로 인하여 경계망 을 강화할 것이 분명했다.
이내, 김효선의 입가에 체념한 듯한 헛웃음이 흘렀다.
“하하.”
나름 한성 그룹의 뛰어난 영애로 시작해, 계열사의 총괄 책임자까지 맡아 왔던 만큼 나름 총명한 두뇌 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현실이 직 시되었다.
“나 끝났구나.”
찾아보면 사막에서 바늘을 찾을 확률의 방도가 존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서준이 남긴 메시지를 보면 그마저도 바람에 날아가는 수 준이었다.
-두 번은 없을 거야.
서강석마저 해치워 버린 김경호, 아니 한서준이라는 이에게 맞설 용 기가 없었다.
그 강하다는 서강석이 넋을 잃고 정보를 순순히 불었다면, 보통 사 람은 견디기도 힘든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경고를 무시했다가 는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것이란 소리였다.
상상만으로도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마음마저 꺾여 버린 김효선은 몸 을 둥글게 말고 이불을 더 꼭꼭 덮 어쓰며 어둠으로 회피했다.
신화, 환성, 블랙, 불새.
모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4대 길드였지만 이 중에서도 분명 서열
이란 게 존재했다.
그리고 그 서열의 정점에 존재하 는 길드가 바로 환성이었다.
길드장인 여현진은 자그마치 S둥 급의 각성자로 길드의 기둥을 맡고 있었고, 그 밑을 받치고 있는 주춧 돌인 셈인 간부진도 상위권인 A급 각성자들로 포진되어 있는 엄청난 저력을 자랑했다.
간부 하나하나가 웬만한 중소 길 드의 길드장직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였지만 이렇 게 환성에 모여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환성은 애먼 자본에 굴하지 않았 으며, 각성자의 근본이라 할 수 있 는 ‘정의’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채 로 길드를 운영했고, 그 마음을 간 직한 채 현재는 대한민국 길드의 왕좌에까지 올라온 특이한 길드였 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 던 일을 환성은 현실로 만든 것이 다.
초심을 잃지 않고 소나무처럼 사 시사철 올곧은 모습을 보이는 환성 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국민 들과 각성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환성의 중심 에 있는 여현진, 그리고 그를 바로 옆에서 줄곧 보좌해 온 부길드장 최인국을 비롯한 모든 간부진이 하 던 일도 멈추고서 황급히 회의실에 모여 긴급 안건에 대해 나누고 있었다.
“허……. 대박, 맙소사.”
여현진은 연이은 감탄을 흘리면 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만 같이 계속해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여현 진의 모습에 바로 옆에서 최인국이 이를 진정시켰다.
“길드장님 너무 들뜨셨습니다. 일단은 흥분을 가라앉히시죠.”
“아니, 부길드장님은 이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겠어요?”
자그마치 차기 드급, 아니, 전투 능력만 보자면 이미 S급에 도달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각성자, 한서준에 관한 이야기였다.
“불괴암, 그러니까 서강석의 파 티를 압도적으로 쓰러뜨렸다고 하 지 않습니까.”
강석호와의 면담, 그리고 데니아 리의 파티를 격파했던 만큼, 환성 뿐만 아니라 4대 길드 내 모두가
한서준이라는 사내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
남다른 커리어에서로 길드에 끌 어들이려고 혈안이었지만 한서준은 규격 외 존재인 만큼 계약금으로 얼마를 책정해야 할지부터가 난관 이었다.
그래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조 심스레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가좌역 사건 때는 시민들을 위 해서 게이트로 무리하게 진입하기 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디아볼로스 의 한국 지부장인 서강석을 쓰러뜨 리다니, 그야말로 우리 길드가 찾
아 헤매던 인재 아닙니까.”
능력과 커리어만으로도 이미 환 성이 움직일 만했는데 한서준은 올 곧은 가치관마저 가지고 있었다.
시민들을 위해서 희생하며, 디아 볼로스라는 악을 용서하지 않는 S 급 각성자.
한서준은 환성이 추구하는 ‘정의’ 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필요한 존재 였다.
몸값을 지불하지 못하겠다는 이 유로 눈치 보고 잴 때가 아니었다.
“부길드장님, 지금 우리 길드가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얼마죠?
500억? 이거 내가 다 써도 되는 거죠? 빨리 그렇다고 말해 주세 요.”
오죽했으면 환성 길드를 대표하 는 길드 마스터이자, 30대 후반이 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먹은 여현 진이 다리까지 떨며 불안감을 표시 하고 있었다.
최인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 으며 만류했다.
“일단 제발 좀 진정하십시오. 이 러다가 건물 무너지겠습니다.”
실제로 지금 현진이 떠는 발에도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공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그러나 간부들은 크게 놀라지 않 았다.
여현진은 현재 대한민국의 다섯 밖에 없다는 S등급 각성자였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건물 따위 일격에 부숴 버릴 수 있는 존재였 다.
이 정도의 힘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게 저도 최대한 힘 조절을 하 고 있는 건데 참 너무 떨리고 설레 고 그러네? 부길드장님, 그러니까 빨리 돈 다 써도 된다고 말해 줘
요, 어서.”
실권은 사실상 여현진 전권이었지만,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여현진은 스스로가 성격이 급하 고 불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 문이었다.
그렇기에 최인국과 간부들의 말 에 귀를 기울이고 나름 신중에 최 선을 기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큰 문제가 존재 했다.
최인국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장님 심정은 백번 이해합니 다만 한서준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접촉을 하시려는 겁니까?”
“알고 있는 정보 뭐, 없어요?”
회의실에 있는 이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비상 연락처나 라이선스에 등록 되어 있는 정보들은?”
“등록된 주소는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환성의 모토는 정의, 올곧은 심 성 덕분에 각성자들이 제 발로 찾 아와 문을 두드리는 것이기도 했지 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난관이 되기도 했다.
공개된 것이 없는 만큼 한서준에
관한 정보들을 얻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미간을 구기고 있는 여현진의 모 습에 간부진 중 한 명이 조심스럽 게 입을 열었다.
“뒷조사를 해 볼까요?”
정의를 모토로 삼고 있다지만 환 성도 사업체인 탓에 어느 정도 타 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한서준의 정보를 얻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 다 쉬웠다.
그러나 여현진과 최인국은 고개
를 내저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다른 4대 길드들이 괜히 가만히 있는 게 아닐 겁니다.”
“숨기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겠 죠.”
괜히 한서준이 원치 않는 부분을 파고들었다가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셔 와야 하는 인재인 만큼 최대한 신중한 행동이 필요했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에 모여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이럴 때는 정공법이 최고였다.
여현진이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쳤다.
“협회 건물! 한서준 각성자가 보 이면 바로 교섭할 수 있도록 그 근 처에 가용 가능한 길드원들 전부를 파견하세요!”
최인국과 기타 간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나 참, 요즘 같은 시대 에 무작정 대기라니.”
“길드장님다운 생각이십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들 안심했다는 듯 미소
를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정직한 방법이네요.”
“그래서, 하지 않을 겁니까?”
애초에 이러한 환성의 모습에 반 하여 가입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최인국을 비롯한 간부들의 입가 에 환한 미소가 흘렀다.
“그럴 리가요. 곧장 출발하겠습 니다.”
다음 날, 마포구 인근에 있던 B 급 게이트 내부.
“형님! 수호자입니다!”
경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트윈 헤드 트롤이 먹잇감을 찾고 있는 게 보였다.
“드디어 찾았네.”
원래라면 B급 게이트 특별 권한 을 취득하느라 시간이 더 소요됐어 야 했지만, 다행히도 서강석의 파 티를 큰 상처도 없이 홀로 쓰러뜨
린 능력을 보여 준 만큼 강석호도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다.
덕분에서강석의 파티의 신병을 협회에 인수하느라 미처 처치하지 못했던 수호자를 단둘이서 공략하 러 올 수 있었다.
“휘말리지 않게 잘 피해 있어.”
손에 검은 기운을 두른 서준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제비처럼 날아오른 서준이 트윈 헤드 트롤과 맞부딪쳤다.
팡-!
요란한 폭음과 함께 트롤이 무릎 을 꿇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서준의 손이 춤추듯 난무했다.
트롤이 양손을 강하게 휘두르며 죽기 싫다는 듯 발악했다.
그러나 더 태풍과 같은 서준의 속도를 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서 트윈 헤 드 트롤이 기절하듯이 쓰러졌다.
띵-!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60으로 상승
하였습니다.]
[정복왕의 수투가 트윈 헤드 트 롤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수투에 걸린 봉인의 일부가 해 제됩니다.]
[봉인이 해제됨에 따라 정복왕의 수투의 옵션이 강화 및 추가로 개 방됩니다!]
[능력이 상승함에 따라 정복왕의 수투의 등급이 S등급으로 상승합니 다!]
서준이 수호자, 트윈 헤드 트롤 의 몸에서 드롭된 마정석, 그리고
시야를 가득 채우는 메시지 창을 보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사이, 옆에서 경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대단하십 니다, 형님.”
서준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앞서 여기 오기까지 길목 을 막던 평범한 트롤들이 종잇장 찢기듯 나가떨어진 것은 충분히 이 해할 수 있었다.
근데 수호자인 트윈 헤드 트롤까 지 고작 몇 분 만에 사냥을 해냈 다.
경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 고 있었지만, 이것은 당연한 결과 였다.
‘어제 서강석의 파티 덕분에 내 공이 상당히 증가했지.’
A급 한 명, B급 세 명에게 모두 흡성대법을 사용해 내공 스텟이 60 상승했었다.
이제는 기(氣)의 밀도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음에도 A급 빌런인 서강석 덕분인지 스텟 창에서도 상당한 양의 중가치를 보여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강석이 몰아넣
은 트롤들을 사냥하여 초절정에 오 른 만큼 B급 게이트의 공략은 일도 아니었지만, 거기에 내공 스텟까지 추가로 더해진 셈이었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정면에서 달 려오는 B급 게이트의 수호자 따위 에게 고전을 할 리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여러모로 운이 좋 아서 가능했던 거야.”
단순히 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런 광경을 너무 많이 봐 왔다.
‘운이 아니라, 실력이시겠죠.’
그러나 경호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애초에 형님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해하려 해 봤자 자신의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 는 게 마음이 편했다.
실제로도 서준이 힘을 써 준 덕 분에 마지막 관문인 B급 게이트마 저 아주 손쉽게 클리어하지 않았는 가?
“그것보다…… 이제 도달했지?”
서준이 주어 없이 물음을 던졌지 만, 경호는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
다.
애초에서준과 약속한 것은 총합 스텟 500 이상까지의 성장, 그러니 까 B급 각성자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계약이었다.
그리고 방금, 트윈 헤드 트롤 사 냥으로 레벨이 오름으로써 경호는 총합 스텟 500을 넘어서는 데 성공 했다.
“ 네.”
경호는 고개를 한차례 주억이더 니, 서준을 향해 허리를 기역 자로 꺾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너도 그동안 수고 많았다.”
“전부 형님의 덕입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럴 게 아니 라 약속했던 30억을 수령하셔야 하 니 우선 바깥으로 나가시죠.”
서준이 고개를 주억이자, 경호가 앞장섰다.
이렇게 서준이 경호와 맺었던 계 약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