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5화
40 화
“생각 이상이군.”
시선에 담긴 위압감에 잠시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리 불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멋모르고 덤볐다면 위험했겠지 만, 지금은 아니다.’
방금 전투로 한서준의 능력을 확 실히 파악해 낼 수 있었다.
능력치와 스킬들이 다소 스피드
에 치중되어 있는 스타일로 화려한 움직임에 비하여 순간적인 파괴력 이 다소 부족했다.
그 증거로 B급의 빌런들이 모두 중상을 입긴 했지만 죽은 이는 존재치 않았다.
‘가장 강력했던 것은 방금 전 트 롤들을 몰살시켰던 스킬.’
트롤들을 일격에 절명시킬 수 있 을 정도로 스킬들이 제법 위력적이 긴 하나 딱 거기까지였다.
결국 SS급 스킬인 지강개갑을 뚫 어 낼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가호의 사용을 계속 고민했었는
데 다행히도 그럴 필요가 없어졌 군.’
지강개갑의 능력을 십분 활용한 다면 승산은 차고 넘쳤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낸 후에 단번에 놈의 팔을 낚아채어 제압한다.’
비록, 위협적인 공격 스킬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 니었으나 한서준 같은 스피드 타입 은 상대적으로 방어 능력이 부족한 만큼, 그 한 방이면 충분할 것이었다.
그렇기에서강석은 가슴팍으로
파고드는 서준의 주먹을 피하지 않 고 자세를 다잡았다.
“끝이다!”
확신에 차서 내뱉었던 말과 달리 가슴팍에서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 졌다.
꽈앙-!
애초에서준은 B급 빌런들을 죽 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내공이 될 소중한 자원들인 만큼 죽이지 않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서강석은 마치 트럭에 치인 것과 같은 거대 한 충격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내가 고통을 느꼈다고?’
지강개갑을 시전하고 있는 상태 의 몸은 세상 웬만한 강철들보다 더 단단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단단한 몸이 고작 주먹질 한 번에 저릿한 고통과 함께, 땅을 딛 고 있던 두 다리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서강석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서강석 뿐만이 아니었다.
서준의 두 눈동자도 동그래졌다.
“버텼네?”
갈비뼈 서너 개는 부러뜨릴 생각 으로 지른 주먹이었는데 고작 뒷걸 음질 치는 것에서 그쳤다.
심지어 서강석을 타격한 주먹이 아릿했다.
마치 돌덩어리, 아니, 강철을 때 린 것 같았다.
‘괜히 불괴암(不壞M)이라고 불리 는 게 아니네.’
이런 감각을 느낀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물론, 걱정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까지 힘을 끌어 올려 도 되려나.’
행복한 고민에서준의 입가에 저 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났다.
그 표정에서강석은 본능적인 공 포를 느꼈다.
‘이 상황에서 웃는다고?’
그것도 평범한 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지옥에서 막 귀환한 듯한 야차와 같은 미소였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빌런으로서
지금까지 견디게 해 줬던 생존 본 능이 무지막지한 경고를 보내왔다.
‘놈이 다음 공격을 지금의 몸으로 받아 냈다가는 반드시 죽는다.’
방금 전, 서준의 평범하게 내뻗 은 주먹에도 고통을 느꼈다.
하물며 여기에 스킬의 효과가 더 해진다면, 결과는 굳이 볼 필요도 없었다.
‘훗날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 다.’
결단을 내린 서강석은 곧장 의회 의 비기인 ‘SS급 스킬, 연옥의 과 실’을 사용했다.
전신에 붉은 아우라가 피어오르 더니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연옥의 과실’ 사용으로 계약자 의 힘을 일부 빌려 옵니다.]
[5분간, 모든 스테이터스가 1.5배 증가합니다.]
[이후, 상태 이상 ‘탈진’에 빠집 니다.]
혈도를 찢어발길 듯이 질주하는 마나가 전신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S급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능력치가 급격 히 상승했다.
근육은 부풀었고 피부는 더욱 견 고해지며, 몸 안에서 파괴적인 힘 이 용솟음쳤다.
때문인지, 방금까지 높은 산맥처 럼 느껴지던 한서준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게 됐다.
서강석이 싸늘한 눈으로 서준을 응시한다.
“지금부터는 다를 거다.”
제한 시간이 촉박한 만큼 서강석 은 곧장 발을 놀렸다.
타닥-!
서준은 침착하게 눈동자를 움직 이며 서강석의 궤적을 좇는다.
하지만,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서강석의 신형이, 괴암('怪巖)의 주 먹이 서준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급격히 상승한 스텟 덕분에서강 석의 움직임은 수십 개의 잔영을 만들어 내며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덕분에서준도 아주 일시적이지 만 움직임을 놓치며 틈을 허용해 버리고 말았다.
서강석의 주먹이 지척 거리에서 쇄도하고 있었지만, 서준은 당황
대신 홉족스러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정말 다르긴 하네.”
덕분에 앞선 B급 빌런들과 달리, 힘을 억제할 필요가 없었다.
오랜만에 힘 조절하지 않고 제대 로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것이 다.
억압해 두었던 천마의 본능과 감 각이 고개를 들었다.
후웅-
서준의 몸이 태풍의 바람과 같은 속도가 되며 눈앞에서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재빠른 발놀림으로 공격을 회피 해 낸 서준은 서강석의 품 안으로 파고들고는 주먹을 있는 힘껏 꽈악 - 말아 쥐었다.
팡-!
내지른 주먹이 서강석의 명치를 강타했다.
그러나 서강석은 조금도 뒤로 밀 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이딴 솜 주먹, 의회의 가호로 금강불괴의 육체를 가지게 된 나의 피부를 뚫을 수 없다.”
공격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서준 의 입가에서린 미소는 더 진해졌 다.
‘재미있네.’
반어법이나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즐거웠 다.
쿠 쿵!
가족들과의 행복한 생활이 그립 고 사무쳐 지구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포스 시스템을 통한 성장 에 희열을 느꼈던 것처럼 무인, 천
마의 본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쉬운 전투, 일방적인 승리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중원 대륙에서 생사를 걸고 펼쳤 던 싸움의 즐거움과 흥분을 완전히 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번 다시 그런 즐거움 과 홍분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서 조금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서강석과의 싸움으로 억눌렀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돌아오기를 잘했어.’
설마, 지구에서 가족들과의 행복 과 무인으로서의 즐거움까지 두 가 지 모두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서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흘렀 다.
‘정말 기분 좋은 날이야.’
서준은 차오르는 행복감을 만끽 해 가며,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 올 렸다.
일어난 내공이 전신으로 퍼져 나 가며 몸을 상쾌하게 만든다.
가벼워지는 육체를 한껏 느껴 가 며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함박 미소를 머금은 서준이 검은 기운이 휘감긴 두 주먹을 가슴팍 앞까지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지금부터는 정말 아플 거니까, 잘 버텨 봐.”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서강석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러나 서강석도 연옥의 과실을 사용한 만큼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연옥의 과실의 효과가 02:32 남 았습니다.]
[경고! 스킬 사용 후 상태 이상 ‘탈진’에 빠집니다. 극심한 무기력 을 회복할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십시오!]
촉박한 시간이었다.
저 괴물을 꺾어 내기 위해서는 연옥의 과실의 능력이 필히 필요한 만큼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서강석은 재빠르게 땅을 박차며 서준을 향해 달려왔다.
연옥의 과실 덕에 강력해진 서강 석의 육체가 삽시간에서준의 앞까 지 당도하게 했다.
그러나 이미 겪은 움직임이기에서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재빨리 팔을 내뻗어 무공을 펼쳐 냈다.
서강석도 강한 한 방을 예상하고 있었던 바, 황급히 양팔을 엑스 자 로 교차시키며 방어에 나섰다.
천마를 대표하는 무공인 파천수 라권의 제일식, 천굉지뢰가 엑스 자로 교차된 서강석의 팔을 가격했 다.
콰앙!
아찔한 고통에서강석의 미간이 구겨졌다.
‘무슨 이런 주먹이……
방금 트롤들을 일격에 쓸었을 때 보았던 것보다 더 묵직하고 강력한 주먹이 었다.
설마, 고작해야 주먹 한 번에 이 런 감각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아찔한 고통과 함께 교차시켰던 팔이 활짝 열리게 됐지만 SS급 스 킬인 지강개갑과 연옥의 과실로 강 화된 금강불괴의 육체가 부서진 것 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됐어.’
한서준은 이보다 더 강력한 스킬 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만 견뎌 내면 승리를 확정 지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강석은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으며, 최후의 한 합 을 향해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으아아아!”
온몸에 힘을 실은 서강석이 포효 를 내지르며 달려들고 있었지만, 서준의 표정은 변하는 기색이 없었다.
처음부터 일격으로 저 단단한 몸 뚱이를 부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하지 않았다.
애초에 천굉지뢰는 서강석의 방 어를 열어 내기 위한 공격이었을 뿐이다.
활짝 열린 서강석의 가슴팍 안쪽 으로 서준의 신형이 파고든다.
“파천수라권 제이식, 붕성난무(窮 星亂舞)
초절정 그중에서도 중수급만 펼 칠 수 있는 무공, 붕성난무.
위로 갈수록 한 단계 한 단계의 벽이 가로막는 탓에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높은 스텟을 가진 서강석에게는 ‘정복왕의 패기’
가 적용되지 않는 지금은 펼치기 조금 버거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서강석이 몰아준 트롤들 덕분에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때문에 붕성난무를 그리 어렵지 않 게 펼칠 수 있었다.
서준은 허리를 비틀며 검은 기운 이 점철된 주먹을 마치 복서들이 난타하듯 매우 빠르게 연신 내뻗었다.
붕성난무는 앞선 천굉지뢰처럼 화려한 무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위력은 감히 비교를 불허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선(線)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선들은 어딘가로 휘어 지고, 꺾이면서도 계속해서 이어지 려 한다.
그렇게 선과 선 사이의 틈이자, 맺어지는 부분을 결(結)이라 불렀 다.
그리고 이 결은 교두보의 역할을 하는 길목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핵, 그러니까 최대의 약점 이라는 말이었다.
어떠한 것도 막아 낼 수 있다고 말하는 무적의 방패라는 것도 이
‘결’이라는 것을 가격당하면 순식간 에 부서졌다.
치명적인 역린이기에 결들은 교 묘하게 숨겨져 있고, 심지어 바람 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요동쳤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서준의 속도도 바람, 그것 도 태풍의 바람처럼 빨랐다.
서준의 주먹은 극히 자그마한 결 들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쾅! 쾅!
자그마했던 균열은 서준의 타격 이 가해질수록, 형태를 잃고 뭉그 러지며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혀 갔
다.
이윽고, 결이 뭉개진 서강석의 피부에 균열들이 일어난다.
서강석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말도 안 돼……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 렀다.
“아니, 이게 현실이야.”
중원 대륙에서도 십대고수 중 한 명인, ‘이룡’이 자신의 육체를 금강 불괴라 칭했었다.
당연하지만, 이룡은 진짜 금강불 괴는 아니었다.
평범한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의 서강석보다도 훨씬 작긴 했 지만 엄연히 결들이 존재하였고, 그를 부술 수 있었다.
‘애초에 정말로 금강불괴였다면 그 결들이 존재하지 않았겠지.’
결이 존재하고 부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금강불괴가 아니었다.
고로 방금 전, 서강석이 자신 있 게 지껄였던 ‘금강불괴’라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 었다.
쩌저적-!
서준이 주먹을 내뻗을 때마다 서 강석의 피부에 생긴 균열이 거미줄 처럼 퍼져 나갔다.
“끄아아악!”
서강석이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으로 붉게 충혈된 서강석의 두 눈동자에 절망이 차올랐다.
“그만! 그만!”
그사이, 눈으로 감별하기 힘들 정도로 자그마했던 서강석의 결은 어느덧 거대한 균열이 되어서 육신 을 뒤덮고 있었다.
서준은 그 균열을 향하여 주먹을 내뻗으며 나지막이 선고를 했다.
“끝났어.”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서 강석의 피부가 완전히 갈라졌다.
“커헙—!”
마지막 단말마와 함께 서강석의 신형이 녹아내리듯 쓰러졌다.
서강석이 자랑하던 금강불괴가 부서진 것이었다.
*
오리엔탈 라이즈, 스위트룸.
김효선은 커튼을 닫고 빛을 차단 해 놓은 것도 모자라, 이불을 뒤집 어쓴 채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말, 말도 안 돼.”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김효선의 시선은 이미지가 첨부된 메시지를 향했다.
“서강석이 실패했다고?”
믿을 수 없었지만, 넋이 나간 표
정을 짓고 있는 서강석과 그 옆에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서준의 사진이 현실임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