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4화
39화
위협을 가했음에도 여전히 당당 한 기세를 보이고 있는 서준의 모 습에서강석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 어 주변을 둘러봤다.
‘설마?!’
당황하는 서강석의 모습에서준 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흘렀다.
“준비해 놓은 거는 트롤뿐이었으 니 괜히 겁먹지 마.”
여유가 넘치는 서준의 모습에서
강석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보통 놈이 아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나올 만한 여유가 아니었다.
A급, 불괴암이라는 자신을 앞에 두고도 이렇게 여유로운 이유가 분 명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협회의 지원이 있 을 거라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봤는 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여유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한서준도 A급 이상의 각성자 다!’
조사상 처음 각성자 시험을 치렀 던 시기는 몇 주 전에 불과한 만큼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협회에서 캐낸 정보를 순순하게 믿은 것이 어리석었다.’
강석호, 협회에서 조작을 한 것 이 틀림없었다.
아마, 한서준은 협회에서 몰래 길러 낸 비밀 병기일 것이다.
‘단순한 비밀 병기가 아닌 강석 호의 뒤를 이어 차기 협회장이 될 괴물일 수도 있다.’
지금 느껴지는 압박감과 방금 트 롤들을 일격에 절명시킨 공격 스킬
의 위력을 생각하면 헛된 망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로써 모든 퍼즐이 맞춰 졌다.
‘강석호가 한서준과 면담을 가질 정도로 비호해 주는 이유도 후계자 였기 때문이었겠지.’
그러니까, 지금 눈앞에 있는 한서준은 A급 이상의 실력자라는 말 이었다.
‘그것도 S급 각성자 강석호의 스 킬을 전수받은 괴물.’
서강석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이길 수 있을까?’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한서준이 S급은 아닐 것이란 사실이었다.
드급, 강석호와 동급의 실력이라 면 굳이 한서준의 정보를 숨기지 않았을 거니 말이다.
‘오히려 공식 발표해서 위상을 높였겠지.’
같은 A급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똑같은 등급이라 할지라도 수준 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렸다.
심지어 자신은 이미 협회의 A급 각성자를 해치운 경험이 있었다.
한서준은 그들과 견주어 본다면 조금 특별한 케이스였지만, 그래도 결국 A급에 불과했다.
‘나에게는 지강개갑(至剛鏡甲)이 있다.’
지강개갑은 SS급의 스킬로 피부 를 강철보다 더 단단하고 질기게 만들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강개갑의 방어력은 A급의 각성자가 뚫어 낼 만한 것이 아니 었다.
그렇기에 소모전을 유도한다면 승리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한서준의 체
력이 소진될 때까지 버텨 내야지만 이길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는 말이 다.
‘시간이 지나서도 한서준의 파티 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협회에서 정 찰 팀을 보내올 수도 있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알려지 게 된다면 협회의 각성자들이 그야 말로 벌 떼처럼 몰려들 것이었다.
아무리 방어 능력이 뛰어나다 할 지라도 체력의 한계가 있는 만큼 그 많은 각성자를 홀로 상대할 수 는 없었다.
그렇다고 의회의 지시, 김효선과 의 계약이 있었으니 그냥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 의 상황에서강석의 미간이 찌푸려 졌다.
‘의회에서 내린 가호를 사용해야 하나.’
지부장급 이상에게만 전수해 주 는 SS급 스킬, 연옥의 과실(果實).
한 단계 위의 강자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육체 능력을 급격하게 상승시켜 주는 스킬이었다.
다만 한계를 초월하는 엄청난 능
력을 주는 대신 몸을 제대로 가누 기 힘든 심각한 후유증이 존재한다 는 명확한 단점이 있었다.
지부장인 자신이 후유증으로 몸 을 가누지 못하게 된다면 김효선을 한성 그룹의 회장에 앉히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어떡해야 하지.’
고민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서강 석이 속으로 탄식했다.
‘일본에 할당해 주는 인원처럼 우리 한국 지부에도 공격 능력 특 출 난 A급 빌런이 하나 파견됐으 면 이런 고민 하지 않아도 됐을 텐
데.’
생각이 닿는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묘안이 번뜩- 떠올랐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 없지.’
서준을 바라보는 서강석의 눈동 자에 탐욕이 넘실거렸다.
디아볼로스의 제일 과제는 김효 선을 한성 그룹의 회장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은 김경호의 목뿐이었다.
굳이 한서준까지 죽일 필요 없다 는 말이다.
‘강석호의 후계를 이을 각성자를 디아볼로스에 영입해 낸다면.’
한국은 디아볼로스의 손바닥 위 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박준영이라는 실수를 만회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후한 포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생각을 마친 서강석의 입가에 비 릿한 미소가 흘렀다.
“어이, 한서준.”
서강석은 고개를 갸우뚱 젖히고 있는 서준의 모습을 바라보며 뒷말 을 이었다.
“우리 디아볼로스는 인재를 중요 시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디아볼로스 한국 지부장의 권한으로 너에게 아주 특별한 선택 권을 주도록 하마.”
말을 내뱉는 서강석의 눈매가 살 벌해졌다.
“하나, 여기서 나를 적으로 돌리 고 디아볼로스의 원한을 사 끝없이 쫓기다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다. 둘, 옆에 있는 김경호를 네놈 손으로 죽이고 우리와 뜻을 함께하며 새로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
는 삶을 살아가는 거다. 골라라.”
“ 흐음......
손에 턱을 괸 채로 고민에 빠져 있는 듯한서준의 모습에서강석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네 능력을 나는 높게 사고 있는 만큼 두 번째 조건에 특별 사항을 추가해 주지. 네가 디아볼로스에 들어온다면 나는 기꺼이 내 지부장 권한을 사용해 너를 한국 부지부장 의 자리에 앉게 해 주겠다.”
서강석은 서준의 고민에 쐐기를 박아 넣기 위하여 목소리를 드높였 다.
“고민할 게 뭐가 있지?! 협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도급 각성자 뒤나 봐주던 생활을 청산하고 디아 볼로스의 간부로서 어마어마한 돈 과 권력으로 세상을 주무를 수 있 는 삶을 쟁취하는 거다!”
마침내 고개를 주억이며 결단을 내린 서준의 모습에서강석의 입가 에 환한 미소가 만개했다.
‘됐어.’
후한 조건인 만큼 김경호를 죽이 고 이곳에 합류할 한서준의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서강석이 예상했던 것과
는 전혀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내가 원한씩이나 사 면서 쫓기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 려면 지금 눈앞에 있는 너희들을 다 죽여 버리면 된다는 거 맞지?”
“오…… 확실히, 반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만담이라도 하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서강석의 미간이 찌 푸려졌다.
“나를 비롯한 여기 있는 디아볼 로스의 빌런들을 홀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농담이 과하군.”
“나는 되게 진지했는데. 쟤는 농
담으로 들었나 보네.”
경호가 입가에 씨익- 미소를 홀 리며 서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원래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계속되는 두 사람의 만담에서강 석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지금 네 선택에 따라서 방금 발언은 단 순한 농담이 될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될 수도 있다. 부 디 이번에는 현명한 선택을 내리도 록 해라.”
“현명한 선택이라……
서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 다.
“그렇다면 이 선택이 더더욱 맞 겠네. 내가 오래 살아 봐서 아는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더라고.”
사람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야 서강석의 제안이 달콤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런 말도 안 되는 제안 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역으로 생각 해 보면 서강석은 언제든지 저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며 동료를 버릴 수 있는 놈이라는 뜻이 된다.
서강석을 응시하는 서준의 눈빛 은 한겨울의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 다.
“특히 너같이 동료를 소모품처럼 이용하는 쓰레기는 재활용도 안 되 더라.”
서강석의 옆에서 언제 버림받을 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길을 걷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지금의 힘이라면 걸을 필 요가 없었다.
신념을 흩뜨리려는 것들을 부숴 내 가며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같은 A급이라고 똑같다고 생각 하는 거냐?”
가라앉은 목소리로 겁박을 하고 있는 서강석의 모습에서준이 코웃 음을 치며 팔을 내뻗었다.
“말로 싸울 거 아니잖아.”
비릿한 미소를 지은 서준이 앞으로 내뻗은 팔의 검지와 중지를 까 딱였다.
“아가리 닫고 덤벼.”
“그리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 지.”
서강석이 손을 들어 올리자, 곧
갖가지 스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 다.
본래 트롤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준비해 놓았던 스킬들을 서준에게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후웅-!
쏜살같이 발을 놀리며 날아오는 스킬 사이를 비집고 나오자, 바깥 에서 대기하고 있던 빌런들이 기다 렸다는 듯이 대거 등장해 왔다.
명백한 살의를 내뿜고 있는 빌런 들의 모습에서준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다행이네.’
싸울 마음도 없는데 상부의 지시 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공격해 오 는 이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마음이 영 편치 못했다.
그래서 혹여나 빌런들이 항복을 선언할까 걱정을 했었다.
“죽어!”
그런데 이렇게 살의를 내뿜고 있 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너희가 선택한 길이니 각오는 됐을 것이라 생각할게.”
무뎌져 있던 감각들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주변의 시간이 늘인 듯 길게 느 껴진다.
서준은 느릿느릿하게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해 가며 세 발자국을 내디뎠다.
‘추풍.’
태풍과 같아진 서준의 움직임은 빌런들의 모든 공격들을 가볍게 회 피해 낸다.
빌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놀라고 있을 시간에 놈을 찾 아!”
몇몇 정신을 차린 빌런들이 지시 를 내렸지만, 어느새 그들의 지척 에 당도한서준이 마권경, 신장의 묘리를 담아서 주먹을 내뻗었다.
‘앞으로 여섯.’
퍽-!
서준에게 복부를 가격당한 빌런 이 피를 토하더니 정신을 잃고 쓰 러 졌다.
“이 X끼가!”
“도망칠 틈 주지 말고 둘러싸서 포위해!”
오랫동안 합을 맞춰 왔는지 혼란
한 상황 속에도 시야의 사각을 교 묘하게 파고들며 협공을 도모했다.
그러나 그들의 느릿한 움직임으로는 서준의 속도를 쫓아올 수 없 었다.
‘ 빈틈.’
가장 먼저 좌측에서 팔을 들어 올린 채로 무기를 휘두르는 놈의 비어 있는 옆구리를 향하여 푸른 뇌전이 감긴 주먹이 쇄도했다.
파지직-!
살가죽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빌런의 신형의 허공을 노닐더니 이내, 근처 돌에 처박혔다.
“더는 못 도망칠 거다!”
그사이, 우측에서 공격해 오던 빌런이 그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 하여 양팔을 활짝 벌린 채로 쇄도 해 왔지만, 서준은 피하거나 물러 나지 않았다.
대신하여 활짝 열려 있는 빌런의 가슴팍을 향해 꽈악- 말아 쥔 주먹 을 내질렀다.
콰직-!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감각이 손 끝으로 전해지는 순간, 달려오던 빌런이 입에서 막대한 양의 피를 토해 냈다.
“끄아악!”
서준은 비명을 내지르는 빌런을 뒤로한 채로 발을 놀렸다.
‘앞으로 넷.’
남은 빌런들이 앞선 이들처럼 합 공을 펼치거나, 그의 움직임을 봉 쇄하려는 등 갖은 수를 다 펼쳐 보 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서준이 손을 한 번 휘두를 때마 다 정신을 잃거나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피에 전 정복왕의 수투에 묻은 붉은빛 선혈이 바닥에 뚝- 뚝- 흐 를 때쯤, 공격해 왔던 빌런들 중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마지막 하나.”
맹수와 같은 서준의 날카로운 시 선이 마지막 남은 한 명, 서강석을 응시한다.
그 시선에서강석이 마른침을 꿀 꺽 삼켰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