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2화
37화
정확히 말하면 그 이상이긴 했지 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지금 서연의 눈동자에 담 겨 있는 걱정스러움을 봐서는 말해 선 안 될 것 같았다.
“혹시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니 지‘?”
조금이라도 서연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서준은 최대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약속했었잖아.”
서준은 고집이 세지만 대신 그만 큼이나 큰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뱉었던 말, 약속을 어길 사람 은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에 더 놀라웠다.
“하하하……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연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홀러나왔 다.
‘오빠가 진짜 대단하긴 한가 보 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놀랄 거 없어, 너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 나도?”
“응, 너도.”
서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정말?”
“너뿐만 아니라, 우리 집안 모두 가 가능할 거야.”
서연은 시작에 불과했다.
‘재심사를 받아서 공식적으로 각 성자 일을 허락받고 나면 부모님에
게도 무공을 전수해야지.’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건강이었다.
천마신공을 단번에 습득할 정도 의 뛰어난 무골이 집안의 내력이라 면 가족들 모두가 건강한 육체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인 만큼 어떤 방해와 변수가 나타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준은 욕심쟁이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우리 가
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보이겠어.’
결의를 다진 서준의 눈동자가 가 족과의 행복한 미래를 좇고 있었다.
이사 갈 집을 정했던 어제저녁, 경호가 마침내 파티 모집을 완료했 단 소식을 들고 연락했었다.
늑장 부릴 필요가 없는 탓에 곧 장 그다음 날 이른 아침으로, 공략
약속을 잡은 서준은 꼭두새벽부터 외출을 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한서준이 빌라의 입구를 넘어서자마자 짧은 경적 소 리가 반겼다.
빵.
고개를 돌리자 운전석, 창문 밖 으로 얼굴을 내민 경호가 보였다.
“형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타 십시오.”
“굳이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 했잖아.”
경호의 세심한 배려로 이번에 공 략 허가가 떨어진 게이트도 그리
멀지 않은 마포구 쪽에 위치한 곳 이었기에 집에서 그리 거리가 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을 픽업 하러 온 것이었다.
‘아까 전에 게이트 입장 절차까 지 밟아 뒀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이미 데리러 와 버린 것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르니 형님은 최상의 컨 디션을 유지하고 계셔야죠, 그리고 이렇게라도 해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서준은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였
다.
“그래, 네가 이게 편하다는데 어 쩌겠냐.”
발걸음을 옮겨 차 근처로 다가가 자 뒷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서준이 활짝 열려 있는 문을 딛 고 차에 몸을 싣자 경호가 바로 출 발을 알렸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경호가 말을 끝맺으며 액셀을 밟 았다.
우웅-
검은색 승합차가 도로 위를 미끄
러지듯이 빠져나갔다.
“형님, 그 앉아 계신 곳 옆에 놔 둔 서류가 이번 파티원들의 이력섭 니다. 한번 검토해 보시라고 놔뒀 어요.”
굳이 검토는 필요한 단계가 아니 었지만, 그렇다고 이동 시간이 딱 히 촉박한 것도 아니었고 한 번쯤 은 읽어 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그래?”
서준은 손을 내뻗어 서류철을 펼 쳤다.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던 서준이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제법이네.’
파티의 수준이 상당했다.
구인한 여덟 명의 파티원들은 모 두 제법 높은 수준, B급의 각성자 였다.
거기에 파티원의 포지션별 비율 도 정확하게 일정했다.
심지어 파티의 방패라고 볼 수 있는 탱커, 공성엽은 B급의 최상위 로 ‘철벽’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였 다.
때문인지 경호가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를 습격자들이 오기 전 까지는 형님이 직접 나서는 일이 없도록 정예의 멤버로 꾸려 뒀습니 다.”
“그래, 그런 것 같네.”
“끝인가요?”
“뭐 더 필요해?”
“아닙니다.”
경호의 풀이 죽어 가고 있던 찰 나, 차량이 약속했던 장소인 B급 게이트에 앞에 도착했다.
B급이라는 제법 높은 게이트가 출몰해서인지 근처에 인적이 상당
히 드물어 주차도 빠르게 가능했다.
서준과 경호가 차에서 내리: 자 근
처에서 무기를 정리하고 있던 30 대
초반의 남자, 공성엽이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공략 파티
의 파티장을 맡게 된, B급 각성자 공성엽입니다.”
“D급 각성자 한서준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준과 짧은 인사를 마친 공성엽 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죄송하지만, 곧 게이트 공략에 나서야 해서 말입니다. 파티원들은 입장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따로 인사를 드리기 힘들 것 같으니 모 쪼록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닙니다, 공성엽 씨도 신경 쓸 필요 없이 편히 준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럼 공략 준비를 마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성엽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준비에 몰두한 일행들에게로 갔다.
뒤이어, 경호가 마치 주인이 쓰 다듬어 줬으면 하는 강아지처럼 은 근히 기대하면서 물어 왔다.
“제가 정말 파티는 기가 막히게 꾸리지 않았나요?”
각성자들은 대부분 콧대가 높은 법이었다.
특히나 공성엽처럼 높은 등급과, 명성을 가지면 하늘 높은 줄 모르 고 치솟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등급의 각성자들은 자신보다 낮은 등급을 가진 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나도 시비가 걸릴 줄 알았는데.’
근데 공성엽은 시비는커녕 아주 넉살 좋게 인사를 해 왔다.
“그러게, 훌륭한 파티네.”
경호의 목소리의 톤이 누가 들어 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높아졌다.
“그 이분이 원래 명성도 걸출하 신 분이라 모시기 힘들었지만 제가 형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죠.”
평소 눈치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방금 전, 경호가 어째서 차에서 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는 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서준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흘 렀다.
“그래, 우리 경호 정말 고생 많
았다.”
서준의 가벼운 칭찬에 경호의 입 이 광대까지 벌어졌다.
“아닙니다, 형님을 모시고 있는 데, 이 정도는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죠.”
경호가 헤벌레 미소를 짓고 있는 사이, 멀리서 공성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는 준비 끝마쳤습니다!”
서준이 고개를 돌리어 경호를 바 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일단 공략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형님.”
짧은 말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마침내 게이트 쪽으로 걸음을 옮겼 다.
게이트 내부는 동굴은 아니었지만, 흡사 밤이 내려앉은 것처럼 어 두웠고, 바닥은 발이 푹 빠지는 늪 지대가 깔려 있는 형태였다.
지형을 눈으로 확인한 공성엽을 비롯한 파티원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런 늪지대의 지형에 살 만한 B급 몬스터는 한 마리뿐이기 때문이었다.
“젠장, 하필 트롤이라니.”
트롤은 쉽사리 베어지지 않는 질 긴 피부와 기겁할 정도의 재생력을 가진 몬스터로 뛰어난 방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방어 능력에 특화된 트롤을 잡아내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탱
커들이 시야를 끄는 동안 공격 스 킬을 퍼부어 한 번에 심장을 터뜨 리는 것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트롤 이 뛰어난 것이 방어 능력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거구의 덩치에서 나오는 엄청난 괴력 때문에 탱커형 각성자들은 트 롤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때문에 트롤은 B급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상급의 개체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파티원들의 낯빛이 어두 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불평할 시간도 없을 것 같네요.”
말을 내뱉는 파티원의 손가락을 따라서 고개를 돌리자 시야 끝자락 에서 달려오고 있는 거대한 트롤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시야를 끌겠습니다. 스킬 들을 준비해 주십쇼.”
지휘를 내린 공성영이 트롤을 향 해 달려들었다.
공성영과 트롤이 서로를 향해 달 린 덕에 둘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 졌다.
퉁—!
거구의 트롤과 맞부딪친 공성영 의 입에서 고통을 참다못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크읍.”
한번 힘겨루기를 했을 뿐인데, 방패를 쥐고 있는 손이 저려 왔다.
과연 트롤, B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의 수준이라 불릴 만한 존재였 다.
때문에 혼자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파티의 수준이 높다.’
버스를 받는 손님이 돈을 제법 쓴 덕분인지, 공개적으로 모집된 것치고는 상당히 수준이 있는 파티 였다.
‘정석대로 하면 쉽게 사냥할 수 있을 거야.’
공성엽은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 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 잡아 가면서 트롤이 내지르는 주먹 을 꿋꿋이 받아 내며 위치를 사수 했다.
쿠 쿵!
트롤과 공방을 이어 가던 공성엽 이 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직입니까?!”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대하기 버 거운 개체인 만큼, 주변의 다른 트 롤이 싸움 소리를 듣고 대거 몰려 오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파티원들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방금 준비 다 됐습니다!”
공성엽은 곧장 고개를 작게 끄덕 이고는 뒤편으로 물러났다.
“지금입니다!”
우렁찬 공성엽의 목소리에 뒤편
에 있던 각성자들이 스킬을 펼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검격과 비처럼 쏟아지 는 화살, 그리고 날아간 화염의 구 체가 트롤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화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으나, 급조된 파티인 탓에 타이밍까지는 서로 맞출 도리가 없었다.
그 때문에 심장이 완전히 파괴되 지 않은 트롤이 비명을 내질렀다.
꾸어어-!
뒤이어, 늪지대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트롤 한 마
리가 더 파티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이런 젠장……!”
“어…… 어떡해요.”
맹렬하게 쇄도해 오는 트롤의 모 습을 보며 파티원들이 지레 겁을 먹었다.
그사。], 포화 사격을 맞았던 트 롤도 빠르게 상처를 재생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다.
공성엽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 었다.
“빌어먹을.”
여기 있는 파티원들이나 손님들을 통해서 이번 일이 알려지면 ‘철 벽’이라는 명성에 금이 갈 것이었다.
‘그래도 다른 수가 없다.’
최우선은 파티원들과 손님들의 생존이 었다.
작전상 후퇴를 하기 위해 퇴로를 탐색하려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 공성엽의 시야에 두 명의 인물이 들어왔다.
“나름 잘 꾸린 파티라고 생각했
는데 죄송합니다, 형님.”
“몬스터 한 마리 사냥하는 것쯤 이야, 살짝 거들어 주지, 뭐.”
“알겠습니다.”
서준과 경호의 이야기를 엿들은 공성엽의 미간이 구겨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를……!’
B급 게이트의 트롤은 저들이 여 태 상대해 보았던 D급 몬스터들과 하늘과 땅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 니었다.
그렇다고 푸념을 늘어놓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손님이 다치거나 죽으면 명예에 금이 가는 수준이 아니라 이 바닥 에서 퇴출을 당해 버리게 된다.
아니, 그 전에 타인의 죽음을 방 관하고 싶지는 않았다.
‘막아야 해.’
공성엽이 앞으로 나서려는 두 사 람의 앞길을 막아서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타닥-!
그러나 공성엽이 막아선 앞길에 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
얼빠진 소리를 흘리고 있는 사 이, 두 사람은 벌써 트롤 앞에 도 착해 있었다.
“신장.”
경호가 내지른 주먹이 트롤의 심 장을 강타했다.
도급 각성자가 멋모르고 죽을 각 오를 한 공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사뭇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꾸어어!
비록 일격에 죽이지는 못했지만, 트롤이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급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과 그가 보이고 있는 신묘한 발 놀림은 B급인 자신이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게 무슨……
경호가 보여 준 기상천외한 모습 에 공성엽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공을 흘리지 말고 한 점에 정 확하게 응집시켜서 내부를 파괴하 라 했잖아. 이렇게.”
한서준이라는 D급 각성자가 팔 을 가볍게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강한 파열 소리와 함께 심장이 산산조각 난 트롤의 신형이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쓰러졌 다.
“ 뭐야?”
공성엽이 얼빠진 소리를 흘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귀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경호가 고개를 주억이더니 근처 에서 접근하고 있는 트롤을 향해 달려갔다.
“신장!”
뒤이어, 거대한 미사일 터지는
폭음과 함께 트롤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경악스러운 광경에 공성엽은 입 을 다물지 못했다.
“ 버근가?”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