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11화
36화
“그렇다면 우리가 B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도중에 습격을 해 올 확 률이 높겠네.”
박준영이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어중이떠중이로 보내지 않을 것이 었다.
최소 A급 이상의, 상당한 실력자 라고 가정을 해야 했다.
경호의 표정에 어두운 그늘이 드 미웠다.
“상당히 위험하겠네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 는지 경호는 서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몰랐다면 당했을지 몰라도 알고 있다면 절대 당할 일 없어.”
경호를 안심시키기 위한 허세가 아니었다.
A급 각성자 중에서도 우수하다 고 정평이 난 불새 길드의 마스터, 우진혁을 상대해 봤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사활이 걸린 싸움이 아닌
만큼 우진혁이 전력을 냈다고는 단 정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서준도 그때와 비교하면 눈을 씻고 볼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지금 몸 상태로 최고의 컨디션 으로 맞붙는다면 승리를 확신할 수 있어.’
계산을 끝낸 서준의 입가에 비릿 한 미소가 피어났다.
“어차피 강석호 협회장님도 해외 로 출장을 나갔겠다, 특별 권한을 부여받지 못한 것으로 하고, 파티 를 꾸려서 B급 게이트를 공략하
자.”
“B급 게이트는 낙찰받아 놓은 게 하나뿐인데 괜찮으신가요?”
파티로 공략하게 되면 경험치를 나눠 가지게 된다.
그 말인즉슨, B급 게이트가 아무 리 경험치를 많이 준다고 해도 레 벨 업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는 소리였다.
이는 곧, 경호의 목표 지점인 총 합 스텟 500, B급 각성자의 능력치 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되면 계약금을 받지 못하
는 서준은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 었다.
하지만 서준은 이미 이러한 부분 에 대해서도 생각을 마쳐 둔 상태 였다.
“그 부분은 걱정할 거 없어. 어 차피 만약을 대비하는 거니까. 그리고 눈치를 보다가 빌런이 나타나 지 않는 것 같으면 둘이서 공략하 면 되잖아.”
중요한 것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빌런이 나타난다면 파티 사냥으로 힘을 비축해 놓은 만큼 적이 습
격해 오는 순간, 오히려 이쪽에서 역습을 가할 수 있거든.”
“ 과연......
서준을 응시하는 경호의 눈가에 존경심이 어린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그런 칭찬은 낯부끄러우니까 됐 고, 대신에 계약에 없던 일이었으 니 파티를 모집하는 비용은 네가 알아서 해라.”
“암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 니까! 이번 일이 잘만 풀리면 계약 금에 추가금도 얹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원하던 무대는 마련되었다.
이제는 설사, A급 이상의 빌런이 온다고 할지라도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오길 바라야지.’
주제를 모르고 덤벼든 습격자들을 처리하고 나면 경호와의 계약이 끝나기 전에 한성 그룹의 자제들을 비롯한 그 끄나풀들에게도 확실하게 경고가 될 것이다.
‘이렇게 미리 으름장을 놓는다면 박준영 때처럼 허튼 일을 도모하지 못하겠지.’
추후에도 탈이 없는, 깔끔한 마 무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 렀다.
‘그러니까, 부디 내 예상대로 덤 벼 와라.’
서준과 경호가 데니아 리의 신병 을 인도했던 날 저녁, 호텔 오리엔 탈 라이즈, 스위트룸.
긴 머리에 웨이브를 준 것이 썩
잘 어울리는, 온몸을 명품으로 치 장한 한성 그룹의 장녀, 김효선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투덜대고 있었다.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던 반 푼이 주제에 뭐? 주주총회 때 공식 적으로 길드 사업을 도맡겠다고 발 표하겠다고?”
당찬 그녀의 목소리와 달리 김효 선은 큰 초조함을 느꼈다.
그 증거로 그녀가 초조할 때 드 러나는 습관인 엄지손톱을 잘근잘 근- 깨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안 돼.’
그렇지 않아도 오빠들에 비해 조 금 밀리는 추세인 탓에 지지층 사 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막내가 길드 사업 을 제대로 인수해 버리기까지 한다 면 8살 차이인 동생에게도 밀리는 낙오자로 낙인찍힐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지지층들이 대거 탈 주하게 돼도 잡을 도리가 없었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었다.
“경호에 관한 약점 같은 거 뭐 안 나왔나요?”
김효선의 간절한 물음에 히스테 릭에도 묵묵히 앉아만 있던 2미터 에 달하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거구의 사내가 대답했다.
“상당히 깨끗하게 생활했는지 약 점이라 할 것은 따로 없더군.”
미세하지만 김효선의 미간이 구 겨 졌다.
“뭐죠 그 말은? 저는 더럽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네 자 유니 딴지는 걸지 않겠지만 함부로 지껄이지는 마라.”
사내의 가라앉은 음성에 김효선
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 내는 서강석, 일명 ‘불괴암(不壞 巖)’으로 불리는 사내로 A급 빌런 이었다.
동시에 최대의 빌런 집단인 디아 볼로스의 한국 지부, 지부장이었다.
그의 비위를 거슬렀다가 쥐도 새 도 모르게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김효선이 라 할지라도 곧장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머릿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실수를 했네요, 미안해요.”
김효선의 어처구니없는 변명에서강석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감정에 치우쳐서 사리 분간도 못하는 이런 멍청한 것을 그룹의 회장으로 만들어 줘야 한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목을 베어 내 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 야 했다.
한국은 강석호라는 거대한 지주 가 되는 인물과 매우 강력한 몬스 터들이 서식하고 있는 북쪽 땅의 상황, 그리고 삼면이 바다인 특이 한 지형 때문에 침투가 힘들었다.
힘들게 거래처를 잡아 겨우 한국 의 출입문을 열어 뒀는데, 멍청한 박준영이 일을 그르치게 만들어 버 린 것이 오늘따라 가슴 깊이 와닿 았다.
‘ 빌어먹을.’
서강석은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김경호가 갑작스레 자신 감을 비치는 이유는 알아냈다.”
김효선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 다.
“누구, 아니, 어디에서 입김을 넣 은 거죠?”
“한서준이라는 D급 각성자 같더 군.”
김효선의 입에서 허- 하고 탄식 이 터져 나왔다.
“고작 D급 각성자를 믿고 그랬 다고요?”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다. 등급 은 표면에 불과하니까.”
그 누가 생각하기에도 고작 D급 의 각성자를 배후로 이런 일을 벌 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상황 이었다.
그렇기에서강석은 다른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서 한서준이라는 인
물에 대해서 깊게 파 보았다.
“강석호와 개인적으로 내통하고 있는 각성자고, 데니아 리의 파티 를 격파한 장본인으로 본래 실력은 B급 최상위, 높게 잡아 A급 하위 정도로 추정되더군.”
“A급 각성자라고요?”
김효선이 엄지손톱을 입에 가져 다 댔다.
당연한 것이었다.
B급과는 고작 한 단계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 격 차를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얘기였다.
‘A급부터는 그 무게가 다른데.’
각성자란 직업에 초월적인 이미 지, 초인이라는 말을 수식하게 된 것도 A급 이상의 각성자들을 보고 서부터 였다.
A급 한 명이면 B급 열 명을 홀 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말 도 있었다.
그 말은 서준이 상당한 실력을 지닌 각성자, 그것도 강석호라는 든든한 뒷배를 두고 있는 각성자란 소리였다.
“제거 가능할까요?”
“내가 직접 파티를 꾸릴 거다.”
서강석의 든든한 대답에 김효선 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불괴암, 서강석이 누구란 말인가.
‘디아볼로스에서도 지부장을 맡 길 정도의 실력자.’
높은 직책에서도 알 수 있듯 A 급 중에서도 최상급의 실력을 지닌 빌런이었다.
‘혼자서 협회에서 급파했던 A급 각성자 세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를 괴멸시켰었지.’
그 서강석이 단신도 아닌, 파티 를 꾸리겠다고 말을 했다.
‘강석호가 한국에 있다면 만에 하나의 확률이 있겠지만.’
아까 전, 서강석이 해 준 조언대 로 한성 그룹의 입김을 이용하여 강석호의 해외 일정을 잡아 둔 상 태였다.
때문인지 서강석은 자신감 있는 어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실패할 일은 없다.”
아니,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 었다.
‘박준영이 그르친 일을 바로잡아 야 한다.’
한국의 위치는 동아시아의 허브 (hub)라고 볼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디아볼로스, 의회에서도 단순히 한성 그룹의 이름으로 만 나선 게 아닌 부의장 중 한 명 인 S급 빌런, 나타샤 그리코바노프 를 움직여서 강석호를 유인하고 있 겠는가.
부의장급이 움직일 정도로 중요 한 일인 만큼 이번 임무를 실패하 면 의회에서 제거당할 수도 있었다.
앞으로 디아볼로스의 창창한 활 동, 서강석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라도 반드시 김효선을 한성 그룹의
회장으로 만들어. 한국의 꼭두각시 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러니 헛된 걱정 하지 말고, 너는 계약 내용을 지킬 준비나 해 둬라.”
굳은 결의를 다진 서강석의 대답 에 김효선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건 걱정하지 마요. 내가 한성 의 회장이 되면 디아볼로스를 확실 하게 서포트해 줄 테니까요.”
서준과 경호가 준비해 놓았던 C 급 게이트 공략을 마친 지 며칠 후.
경호가 파티를 모집하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B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만큼 제법 실력 이 출중한 각성자를 여덟 명이나 더 구해야 하는 탓에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서준은 그사이 며칠 동안 특별할 거 없는 편안한 생활을 영위했다.
간간이 파티원을 순조롭게 모집 하고 있다는 경호의 연락을 받는 것 빼고는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서준이 이런 자투리 시 간을 그냥 허비하고 있을 리가 없 었다.
‘놀면 뭐 하겠어.’
그렇기에 가장 먼저 목표로 삼았 던 일을 위해서, 가족들과의 행복 한 생활을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주변에서 이만한 조건을 가진 집이 없다 이 말이에 요. 역까지 걸어서 5분이지, 공원
가깝지, 백화점 가깝지. 이런 조건 이 어디 있습니까?”
의식주가 갖춰질수록 삶의 질과 행복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익히 알 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서준은 가족들과의 행복 한 생활을 위해서라도 더 넓고 편 리한 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때? 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
가족들이 함께 살 곳인 만큼 서준은 고개를 돌리어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서연이 엄지를 치켜세우
며 대답했다.
“오늘 둘러본 집들 다 좋았지만, 여기가 제일 최고야, 역도 가깝고 앞에 산책할 수 있는 공원까지 있 어서 엄마 아빠도 엄청 좋아하실 위치야.”
유일한 단점이라면 역시나 가격 이었다.
아무리 서울이라지만 집 한 채의 가격이 15억에 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서준은 돈이 부족하 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 계약금으로 소비할 돈 은 마정석을 팔고 남은 돈이었고,
추후 내야 할 대금은 경호에게 받 을 30억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저렇게 좋아한다면 더 이상 고 민할 것도 없지.’
결단을 내린 서준이 고개를 주억 였다.
“좋네요. 여기로 하겠습니다. 계 약금은 지금 바로 지불해 드리고 나머지 대금은 다음번에 집주인분 과 만날 때 바로 치러 드릴게요.”
“예, 예 사장님. 그러면 계약서 작성하러 부동산으로 가실까요.”
“네 그렇게……
중개인과 대화를 마치려던 찰나,
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잠깐만. 할 말이 좀 있 어.”
“왜?”
걸음을 옮기어 다가가자 서연이 귓속말로 조심스레 속삭였다.
“이런 거금 써도 되는 거야?”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버는 거는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 눈치를 보 는 탓에서준이 대놓고 소비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쯤은 서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싼 집을 구하면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어차피 곧 재심사할 생 각이니까.”
“벌써 B급이 됐다고?”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커진 서연 의 모습에서준이 씨익- 미소를 흘 렸다.
“내가 세계기록 경신시킬 거라 했잖아.”
제일 빠른 기록이 현재 세계 제 일의 각성자라 칭해지는 카일 크리 스토퍼가 세운 한 달.
근데 서준은 그 기간보다 두 배 는 빠르게 B급에 도달해 낸 것이었다.
서연은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입 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얼이 나간 서연의 반웅을 보며 서준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