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8화
33화
양쪽의 광대뼈가 함몰되고 입안 의 이빨들이 전부 산산조각 났다.
데니아 리의 신형이 허공을 노니 더니 근처의 나무에 거적때기처럼 처박혔다.
“헤엑…… 헤에엑!”
정신의 끈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데니아 리의 귓가에서준이 낮게 일렀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왜 벌써
이렇게 아파해.”
서준의 손가락이 정확히 데니아 리의 혈도들을 찌르기 시작했다.
“분근착골(分筋錯骨)이라고 많이 아플 거니까 잘 참아 봐.”
서준이 말을 끝맺는 순간이었다.
희미해져 가던 데니아 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꾜아아악-!”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아득 한 고통이 밀려왔다.
근육이 마디마디 갈라지고, 뼈가 갈라지는 고통이 전신을 휘감고 있
었다.
“끄아악!”
데니아 리가 시원치 않은 팔과 다리로 몸을 끌듯 바닥을 기어 와 겨우 서준의 발끝을 잡고 애원했다.
“헤발, 하라리…… 하라리 휵여 휴십시오……!”
“말했잖아, 나는 너를 죽이지 않 아.”
죽음을 갈구하고 있었지만 아쉽 게도 서준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 었다.
‘아무리 열을 받았어도 이런 놈 과 똑같아져서는 안 되지.’
마음 같아서는 사지를 찢어 버려 들개의 먹이로 주고 싶었지만, 이 성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분근착골을 협회에 넘길 때까지 계속해 죽지 못해 사는 고통을 선사해 줄 것이 며 후에는 흡성대법을 가하여 정신 을 무너뜨리며 삶을 송두리째 빼앗 아 갈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가족’을 건드 린 죄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선을 넘지 말았어야지.”
비릿한 미소를 흘리는 서준의 얼
굴을 흐릿하게나마 본 데니아 리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아아아악-!”
바닥을 구르며 고통에 몸부림치 고 있는 데니아 리를 보는 네 명의 빌런들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혼들렸다.
‘ 괴물......
‘데니아 리가 손도 못 쓰고 당하 다니.’
한 단계 낮은 C급인 자신들이 대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길 자신도 없었거니와 지면 죽 느니만 못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데니아 리는 한서준의 손가락이 닿았던 뒤 로부터 죽을 듯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빌런들의 전투 의지가 완전히 상 실되었다.
‘도망쳐야 해.’
세 명의 빌런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옆에서 있는 동료들의 눈 치를 보기 시작했다.
곧, 눈동자로 서로의 의사를 확 인한 세 명의 빌런들이 등을 돌리 려던 순간이었다.
서준의 입에서 한겨울에서린 얼 음장보다 시린 냉기를 머금은 말이 흘러나왔다.
“말리지는 않겠다만, 그에 따른 책임은 져야 할 거다.”
데니아 리의 참혹한 모습을 두 눈으로 목도한 만큼 빌런들은 함부 로 발을 떼지 못했다.
꿀꺽-
그저 마른침을 겨우 삼키며 눈치 를 보는 것이 다였다.
공포에 몸이 굳어 버렸지만 여기 서 얌전히 서서 데니아 리와 같은 절망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빌런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희에게 원 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뭐든 드리겠 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넓은 아 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단체로 몰려와 협박과 위협을 가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허리를 숙
이며 용서를 바라고 있었다.
서준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흘 렀다.
“그럼, 기브 앤 테이크의 세상인 데, 당연히 주고받는 게 있어야지.”
희망을 본 빌런들이 냉큼 연신 허리를 기역 자로 꺾으며 소리쳤다.
“감사합니……
그러나 뒤이은 서준의 말은 방금 전, 보았던 희망이 얼마나 헛된 것 인지 알 수 있게 했다.
“살려는 줄게. 모아 놓은 내공이 전부 사라지고, 그 고통에 아주 잠 깐 몸부림칠 거고 이후로는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겠지만 그래도 사지 는 멀쩡할 거야.”
가족을 언급하면서 협박을 가해 온 만큼 원래라면 데니아 리처럼 분근착골을 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만으로도 큰 아량 을 베풀어 준 셈이었다.
당연하지만 빌런들은 서준의 아 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서준이 무서워 말을 삼키긴 했지 만, 어차피 산송장과도 같은 미래
만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면 이 렇게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저 괴물을 상대로는 못 이긴다.’
방금 전, 눈으로도 좇지 못했던 서준의 신속했던 움직임을 본 만큼 뛰어서 도망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 지 않았다.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해.’
빌런이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어떻게든 수를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다행히도 하늘이 무너져 도 솟아날 구멍은 존재했다.
한서준과 달리 한성 그룹의 자식
김경호, 그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 았던 것이다.
결단을 내린 빌런은 김경호를 향 해 전력으로 달렸다.
타닥-
나름 높다고도 볼 수 있는 C 라 는 등급을 가진 만큼, 빌런은 순식 간에 경호의 뒤편으로 몸을 이동할 수 있었다.
“움…… 움직이지 마!”
왼팔로 경호의 목을 잡고, 오른 팔로 단도를 꺼내 든 빌런이 떨리 는 목소리를 억지로 가다듬으며 위 협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이 녀석을 죽이겠다. 한성 그룹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다면 가만히 있 어!”
김병수를 초대 회장으로 둔 한성 그룹은 은혜는 곱절로, 복수는 백 곱절로라는 슬로건을 달고 있을 정 도로 적으로 둔 이를 용서하지 않 기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비록 지금은 김병수가 쓰러져서 내부로 어수선한 사정을 가지고 있 다 할지라도 외부의 적으로 인하여 김병수의 핏줄이 죽게 되면 가진 전력을 다 쏟아부어서라도 관계된 자들을 숙청해 나갈 것이었다.
“여기서 김경호가 죽게 되면 한 성 그룹에서 한서준 네놈에게도 책 임을 물으려 할 거다!”
제아무리 한서준이 괴물이라 할 지라도 그 적이 한성 그룹이라면 쉽사리 결정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결과였다.
실제로도 서준은 한 발자국도 움 직이지 않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 보이 면, 움직이면 이 X끼 죽여 버릴 거 니까, 얌전히 있어!”
빌런이 서슬 퍼런 경고를 하면서 협박을 했지만, 서준은 피식- 웃음
을 흘릴 뿐이었다.
“만만하게 보면 안 될걸.”
경호의 죽음으로 한성 그룹의 눈 밖에 날까 무서워서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움직일 필요가 없던 것이 었다.
‘경호는 단순히 레벨만 올린 게 아니야.’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몬스터를 흘리며 경호 에게 전투 경험을 쌓게 해 주면서 기초적인 무공들도 몇 가지 전수를 해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경호도 제법 재능이 있는 지 그것들을 곧잘 흡수했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경호는 단 순히 레벨, 스텟만 오른 것이 아니 라 전투 센스도 상당히 높은 경지 에 오른 상태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방심하고 있는 C급 빌 런 하나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경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가만히 있으니까, 너희 같은 호 구 등X신이랑 동급인 줄 아냐!”
경호는 단도를 들고 있던 빌런의
오른팔의 손목을 꽈악- 잡아 쥐었다.
“끄악-!”
팔을 으스러뜨릴 것 같은 엄청난 악력에 빌런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연스레 목을 죄고 있던 빌런의 왼팔에도 힘이 풀렸다.
당황한 빌런이 황급히 거리를 벌 리려 했지만, 경호의 손이 한 수 더 빠르게 앞으로 뻗어졌다.
“금나수.”
내뻗은 손이 빌런의 옷자락을 낚 아챘다.
경호는 그대로 허리를 숙여, 몸 을 기울이더니 메치기를 시전했다.
“크헙!”
경호는 바닥에 널브러진 빌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물론 내가 형님의 발끝에도 미 치지 못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 희 X밥들을 상대로 당할 정도는 아니니까, 깝치지 마.”
깔끔한 경호의 대응에서준이 엄 지를 치켜세웠다.
“확실히 많이 성장했네.”
“이게 다, 형님이 가르쳐 주신
덕분이죠 뭐.”
서준의 칭찬에 경호가 배시치-웃는 듯했지만, 이내 얼굴을 딱딱 하게 굳히더니 질문을 던졌다.
“근데 형님이 그때 말씀하셨던 국회의원이 박준영 이었습니까?”
“아는 사이야?”
“좋지 않은 쪽으로 알고 있습니 다. 저희 한성 그룹이랑 아주 진한 악연이 있거든요.”
그룹으로 묶을 정도로 거대한 사 업을 이어 가고 있는 만큼 정치계 와 연관은 필연적이었다.
지금 한성 그룹은 여당의 편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박준영은 그 반대 진영인 야당을 이끄는 대표이자 한성 그룹 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더 케이 그 룹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견원지간의 사이란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뒤처진 경호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인 셈 이었다.
“혹시 박준영 국회의원 쪽을 저 에게 맡겨 주실 수 있을까요?”
서준의 입장에서도 손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확 신이 필요했다.
경호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서준은 이번 일을 빌미 삼아서 더 이상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경호를 응시하는 서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난 실패를 용서치 않아. 괜찮겠 어‘?”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지만, 경호는 눈을 떨거 나 움츠러들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올곧은 눈동자를 한 채로,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었다.
“빌런과 연관되어 민감한 사안인 만큼 한국 땅을 못 밟도록 만들 수 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천마라는 높은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부려 왔던 만큼 알 수 있었다.
이 정도의 확신이라면 충분히 일 을 맡길수 있었다.
서준이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 었다.
“자신 있다니, 한번 믿고 맡겨 볼게.”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이 빌런 들은 제가……
경호가 데니아 리를 비롯한 빌런 들의 신병을 인계받으려 했지만 서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만류했다.
“잠깐,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 이 있어서.”
거듭 말하지만, 서준은 후환을 남겨 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준의 오른팔에서 회색빛 기운 이 어리며, 흡성대법이 펼쳐졌다.
한국 각성자 협회 최상층, 협회 장실.
그 안에서 안전 관리 본부장 안 채형이 강석호에게 주요 보고들을 올리고 있었다.
“협회장님께서 청와대 주최 안보 회의 만찬에 가셨을 때 한서준 각 성자님께서 안전 관리부에 B급 빌 런 데니아 리, 화염의 광인을 비롯 한 네 명의 C급 빌런의 신병을 양 도해 주셨습니다.”
보고를 듣고 있던 강석호가 잇몸 이 보일 정도로 환한 미소를 보였
다.
“데니아 리의 파티를 한서준 각 성자가 홀로 처리했다고?”
안채형 역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주억였다.
“네, 덕분에 국회의원 박준영의 덜미를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단순히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한서준 각성자가 협회에 오기 전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빌런 들은 반쯤 넋이 나가서, 혼잣말로 정보들을 술술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토대로 계좌 를 추적하다 보니 박준영의 돈이
연루됐다는 것과 빌런들에게 자국 각성자의 살인을 의뢰했다는 흔적 들을 손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기존에 모아 두었던 증거들과 오늘 얻어 낸 중언까지 더한다면 박준영이라 할지라도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강석호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는 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크하하! 박준영 그 영감, 제 주 제도 모르고 한서준 각성자님에게 덤비더니 꼴좋구만.”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