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권 5화
30화
‘제 놈을 죽이는 독인지도 모르 고 덥석 마시겠지.’
근래 박준영은 입에 오르내리는 좋지 못한 일들이 많았으나, 확증 과 증인이 없어 협회도 어떻게 잡 아넣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고맙 게도 서준이 해결해 주려는 것이었다.
이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을 마친 석호가 고개를 주억 이며 말했다.
“우선 한서준 각성자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 니다. 그 대신, 만에 하나라도 위험 한 상황이 닥칠 것 같으시면 바로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제가 즉 시 도우러 가겠습니다.”
진심 어린 호의와 걱정이 느껴지 는 석호의 말에서준의 입가에 미 소가 피어났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럼, 지금처럼 계속, 잘 부탁드리겠 습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 니다.”
강석호가 공손히 손을 내뻗었다.
‘한서준 각성자와 함께라면 꿈으로만 간직했던 한국을 세계 제일로 발돋움시키는 꿈을 이룰 수 있겠 지.’
과거의 꿈, 생각에만 그쳤던 일 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에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며,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그런 강석호의 손을 마주 잡은 서준의 입가에서도 환한 미소가 피 어났다.
‘편하게 사회생활을 해 나가려면 인맥은 필수지.’
처음 만남 때 의도했었던 대로 강석호, 협회장이란 인물을 완전히 돈독한 인연으로 만들며 아군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해 내었다.
한국에서 제일이라고 칭송받는 각성자와 돈독한 관계로 발전한 것, 앞으로의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 이 분명했다.
그렇게 두 사람 다 만족한 얼굴 을 한 채로 마주 잡은 두 손을 흔 들었다.
다음날.
강석호와의 대화로 보호 조치는 해제되었지만 채 하루가 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그 사실을 알고도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접근해 오는 기척은 없었다.
이 귀중한 시간을 단지 당장 공 략할 C급 게이트가 없다는 이유로 그냥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효율도 안 나오는 넓 은 게이트로 사냥 가긴 싫었는데.’
때마침 서연이 이번 모의고사 1 등급을 받아 약속이자 서준의 제1 목표, 가족 건강 계획에 곧장 돌입 할 수 있어서 효율적으로 일이 풀 려 갔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전부 술 술 풀리지는 않았다.
오크와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진짜 되는 거 맞아?”
“너무 급하게 하려 하지 말고, 천천히 하려고 해 봐.”
말처럼 쉬웠으면 진작 성공해 냈 을 것이다.
일단 전투 경험이 없는 만큼 눈 앞에서 날아오는 오크의 주먹을 피 하기도 급급했다.
그러는 와중에 아랫배, 단전이라 불리는 데서 기운을 끌어내는 것도 상당히 고된 작업이었다.
이 기운은 조금만 집중이 풀리면 곧장 원래 있던 아랫배로 되돌아갔 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이다음부터였다.
“응집시킨 기운을 내뻗는 팔, 주 먹에 두른다고 생각해.”
입술을 질끈- 깨문 서연이 오크 의 공격을 피해 나가며 서준이 해 준 조언대로 내공을 운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뜻대로 쉽게 풀리지는 않 았다.
계속해서 주먹에 두르는 과정에서 기운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 리고 말았다.
“ 흐음.
서연의 수련을 주시하고 있는 서준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최대한 서연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 주고 있었지만 벌써 네 시 간째 수련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성과가 없었다.
게이트 내부가 넓어서 오크를 찾 아다니는 데 시간을 제법 소모했다 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음에 도 확실한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 았다.
서준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텐데.”
수련을 하면서 서준과 함께 오크 를 처치했으니 오른 레벨만큼 심, 체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지금 서연에게 부족한 것은 초 식, 기뿐이었다.
‘역시 너무 어려웠나.’
지금 전수해 주려는 무공, 소패 권장이、류奉掌)은 천마신교 내에서 도 높은 직위, 차기 천마로 지목되 어 있는 인재인 소천마가 익히는 것으로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소천마도 일 개월 이상은 수련해야 하는 무공이긴 하지.’
높은 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천마신공을 본능적으로 흡수하며 단 전을 형성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서연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욕심이 과했나 보네.’
서준은 고개를 주억이며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 네.’
성과가 크지는 않았지만 전혀 없 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리 실망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서연은 전투로 체내의 기운 을 주먹에 응집시킬 수 있는 수준 까지는 도달해 있었다.
마냥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고 욕심낼 필요 없었다.
뭐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
서연의 얼굴에 피로감이 점점 쌓 여 가는 게 눈에 보였다.
결단을 내린 서준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만……
그 순간, 팔에 응집되어 있기만 하던 서연의 내공들이 팔 전체를 휘감았다.
서연은 성공해 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주먹을 과감하게 앞 으로 내뻗었다.
아직은 미흡하나, 곧 패왕(鷄王)
으로서 군림할 자질을 품은, 왕의 첫걸음과도 같은 무거운 주먹이 오 크를 향해 날아갔다.
콰직-!
뻗어진 육중한 주먹에 오크의 머 리가 곤죽이 되었다.
동시에서연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박, A급! A급 스킬이래!”
“스킬로 등록됐다고?”
“웅, 소패권장이란 스킬이 등록 됐다고 하는데?”
스킬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내공
을 사용한 초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르게 소화해야 된다.
그 말은, 지금 서연이 하루 만에 소패권장을 펼친 것도 놀라운데 처 음 펼쳤음에도 완벽하게 해내기까 지 했다는 것이 된다.
소패권장을 정확히 언급하는 것 으로 봐서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그 사실에서준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허.”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내력이 진짜 엄청 나긴 한가 보네.’
이는 곧, 서준이 생각했던 가족 건강 계획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 는 말이었다.
서준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 어났다.
“재능이 있네.”
“그럼 내가 누구 동생인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며 당 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연의 모습에서준이 피식- 웃음을 흘렸 다.
“이 정도면 각성자 시험 통과하 는 데 문제없을 거다.”
“정말? 하루밖에 안 배웠는데?”
이미 앞서 각성자 시험을 치러 봤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서연의 수준이라면 합격하 고도 남는 수준이라는 것을 말이다.
서준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 다.
“충분해.”
“진짜? 거짓말 아니지?”
오 O ”
흐 .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 이는 서준의 모습에서연이 제자리 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무공이란 거 오빠 덕분에 익힐 수 있던 거니까, 각성자 시험 합격 하면 내가 크게 한턱 쏠게!”
“나는 됐고 부모님이나 잘 챙겨 드려.”
“가족인데 차별을 둬서 되겠어, 다 같이 소고기 회식 하는 걸로 하 자.”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유대감을 쌓고 소중함을 알 아 가는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는 언제든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서준이 환한 미소를 피운 채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그러자.”
며칠 후.
서준은 오랜만에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서서 근처에 위치한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
호와 함께 c급 게이트 공략을 하 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더 빨리 공략권을 따 냈네.’
근래 C급 게이트가 많이 생성되 지 않아서 대금을 치러 뒀다 할지 라도 공략권을 따 오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 까지 들었던 참이었다.
특히나 교통이 좋은 서울 지역은 하늘의 별 따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서울 지역, 그것도 집 근 처인 서대문구 쪽의 게이트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공략권도 모자라, 편의까지 챙긴 셈이었다.
덕분에 얼마 걷지 않았는데 금세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형님!”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경호가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C급 게이트 수량도 없는데 가져온다고 고생 많았다.”
서준의 칭찬에 경호가 쑥스럽다 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한 게 협회에서류를 제출 한 것밖에 더 있나요. 하하, 저보다
는 형님이 더 고생하셨죠.”
아부를 위한 빈말이 아니었다.
‘내가 딱히 큰 역할을 한 것이 없었어.’
서준이 빠르게 C급 게이트 특별 권한을 취득한 날 서류를 냈을 뿐 이었다.
요즘 귀하다는 O급 게이트를 빠 르게 수취할 수 있었던 것은 협회 측에서 편애라고 생각할 정도로 편 의를 봐주며 진행을 해 줬기 때문 이었다.
그리고 깐깐하고 엄격한 협회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편의를 봐준 이
유는 하나뿐이었다.
‘형님의 후광 덕분이겠지.’
모르긴 몰라도 황금 동아줄과도 같은 인물의 손을 잡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언제 생각해 봐도 서준에게 생사 결단을 내린 것은 인생 최고의 선 택이 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만큼 불필 요한 짐짝으로 얹혀 갈 생각은 없 었다.
능력 안의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서 서준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실제로도 경호는 서준이 원했던
대로 완벽한 스케줄을 작성해 왔다.
“형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여기 서대문구부터 시작해서 마포, 용산, 중구, 종로까지 C급 게이트 다섯 개를 순서대로 공략할 수 있게 준 비해 뒀습니다.”
나름 공을 들여서 짠 스케줄이었지만 서준은 무미건조한 대답을 해 왔다.
“그래.”
갑작스럽게 가라앉은 서준의 목 소리에 경호는 무언가 실수를 저질 렀나 싶어서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 다.
그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서준의 입가에 피어난 비릿한 미 소가 마치 지옥의 염라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었다.
“형님?”
조심스레 입을 연 순간, 귓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쉿, 전음으로 너만 들을 수 있 도록 이야기하는 거니까, 조용히 듣기만 해.
눈앞의 서준이 소리를 내고 있지 는 않았지만, 틀림없는 서준의 목 소리였다.
경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이런 스킬은 어떻게 얻으 신 거지?’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목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스킬을 익힌다면 게이트 공략 이 한층 더 수월해질 것이다.
이렇게 의견을 확실히 주고받을 수 있다면 부상, 사망자는 말할 것 도 없이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다.
이 또한 시대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스킬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형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 셔.’
하고 싶은 말과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서준의 말처럼 조용히 이 야기를 경청했다.
-박준영 쪽에서 덫을 물었어.
위험한 일에 휘말릴 수도 있는 만큼 경호에게도 사전에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 두었다.
그 덕분인지 이야기를 들은 경호 도 질문을 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티 내지 말고 방금 전처럼 평소 와 같이 행동해.
상황을 인지한 경호가 고개를 주 억이더니, 평소와 같은 미소를 흘 리며 홍삼 스틱을 건네 왔다.
“그럼 오늘도 하나 드시고 가시 죠.”
“나야 좋지.”
서준은 경호가 건네준 홍삼 스틱 의 포장을 뜯어서 입에 물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드디어 붙었네.’
보호처분을 철회했음에도 며칠 동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의문과 불안이 조금 있었는데 다행히도 덥석 물어 주고 있었다.
서준은 입가에 흐르려는 비릿한 미소를 억지로 삼켜 내며 조심스레 기감을 넓혔다.
퍼져 나간 기감이 도둑고양이들 처럼 조심스레 접근해 오고 있는 적들의 기척을 잡아냈다.
‘하나, 둘…… 다섯.’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