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24화
24 화
당황한 표정의 서연이 고개를 내 저었다.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이 큰돈 이 어디서 난 거야?”
“어디서 났긴, 각성자 일 해서 번 돈이지.”
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라이선스를 딴 게 3일 전 아니 었어?”
“ 맞아.”
“근데 지금 1억을 벌었다고?”
“그건 일단 급한 생활비부터 준 거고, 정확한 수익은 2억 5천이야.”
서연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 다.
“2억 5천?!”
각성자가 하루에 억대의 돈을 벌 어들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랭 크, 숙련자들의 기준이었다.
한 달도 안 된, 아니, 각성자가 된 지 고작 3일밖에 안 된 사람이 억대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였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만.’
그 정도가 상식을 초월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대체 얼마나 재능이 있는 거야?’
의문과 경악이 동시에 피어났지 만, 정작 당사자인 서준은 대수롭 지 않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응, 2억 5천.”
여유가 넘치다 못해 태연한서준 의 모습에, 서연의 입에서 헛웃음 이 흘러나왔다.
“하하…… 그러니까 각성자가 된 지 3일 만에 2억 5천이라는 돈을 벌어들였고 계속해서 그만큼 벌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는 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보다 훨 씬 더 많이 벌 수 있지.”
허세가 아니었다.
레벨이 상승하고, 스텟이 오르는 만큼 더욱더 강해질 수 있었다.
마선 시절의 경지를 생각하자면 그 한계가 없다고 봐도 되었다.
그리고 각성자에게 강함은 곧 돈 이 되었다.
당장 일주일 정도만 시간이 지나 도 하루 벌리는 수입의 뒤에 붙는 0의 숫자가 추가될 것이었다.
오롯이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지만, 마선 시절의 서준을 모르는 서 연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잔뜩 묻어 났다.
“무리해 가면서, 위험한 일 하는 거 아니지?”
“그럴 리가. 무리하지 않기로 너 랑 약속했잖아.”
책임감이 강한서준이 내뱉은 말 을 어길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불법적인 일 하는 건 아니지?”
서준의 중지를 굽힌 손이 재빨리 이마를 향해 다가왔다.
탁-!
딱밤이 이마에 작렬했지만, 소리 만 컸지 살짝 따끔할 정도의 고통 만이 느껴졌다.
“아야.”
“오빠를 뭐로 보고. 그거 다 합 법적인 과정, 마정석 판매로 벌어 들인 돈이야.”
서연이 손으로는 이마를 문지르 고, 눈으로는 서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안, 내가 너무 흥분해서 말실 수를 했어.”
서준은 피식- 웃음을 흘린 후 이 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너도 통장을 봐서 알겠지만, 이 오빠가 아무 생각 없이 일 그만두 라고 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제 는 마음 편히 네가 싶었던 일 하면 돼.”
서연의 눈동자에 진한 갈등이 어 려 있었다.
서연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고민이 깊을 것이었다.
일생을 함께한 가족이라고 하나, 이렇게 선뜻 큰 금액을 받는 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라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서연은 자존심이 센 아 이였다.
‘기분이 오묘하고, 마음이 엄청 복잡하겠지.’
이럴 때는 괜히 고민에 빠질 틈
을 줘서는 안 됐다.
제정신을 차릴 수 없게끔 더욱더 몰아쳐야 했다.
“아직 끝난 거 아니야.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던 서준은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더니, 세 개의 쇼핑백을 가지고 나왔다.
“이 가방은 네 거고, 이 지갑들 은 부모님 거. 괜히 내가 전해 드 렸다가는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 네가 대신 선물해 줘.”
서준을 바라보는 서연의 눈동자 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했다.
이내, 서연이 무언가 결단을 내 린 듯 서준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나중에 성공해서 이 빚들 전부 갚을게.”
“빚이라니? 이건 내가 동생에게 주는 보상이야.”
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 보상?”
서준이 따뜻한 미소와 함께 그간 의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 못난 오빠 없는 동안 부모님 모시느라 고생했던 그 공로에 대한 보상을 주는 거니까, 그런 생각 하
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어.”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렇게 5분여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서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마워.”
간신히 떨어진 서연의 승낙에서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홀 렀다.
‘이렇게 하나둘씩 우리 가족의 행복했던 삶을 되찾아가는 거야.’
상상으로만 그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뿌듯함에서준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마음 한가운데 어딘가에서 힘이 불끈 솟아나는 것을 만끽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근데 부모님이랑 내 것만 사 온 거야?”
서준의 고개가 갸우뚱- 젖혀졌 다.
“그거면 된 거 아니야?”
“아니지, 오빠 게 없잖아.”
“내 게 왜 필요해.”
“노동한 게 오빠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일단 이런 선물들 자체가 필요 가 없는데.’
갖고 싶은 것을 모두 취한 적이 있었고, 금은보화에 뒤덮여 본 적 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한순간의 영화(榮 華)에 불과했다.
진정한 행복이자 선물은 지금과 같은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이었다.
생각을 마친 서준이 입을 열려 했지만, 그보다 서연의 말이 반 박 자 더 빨랐다.
“ 나가자.”
“어딜?”
“오빠 선물 사러.”
서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방금 전, 생각했던 대답을 내뱉었다.
“난 이런 거 없어도, 괜찮아.”
“아니, 안 돼. 그렇게 일에 치여 살면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건강도 나빠진다고. 스스로에게 하루쯤은 선물도 주고 보수도 주고 그래야 해.”
합당한 말이긴 했다.
필요는 없었지만 사람이 일만 하
다 보면 방전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 던 천마신교의 호법들과 책사들도 쏟아지는 업무들을 처리하다가 우 울증이 도져서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을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지금처럼 최상의 컨디션으로 각 성자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해소를 해 둬야 했다.
‘오랜만에 이런 식의 사치를 부 려서 나쁠 건 없겠지.’
한순간의 영화라지만.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진 적은 있었으니 말이 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주하고 있 는 서연의 눈동자가 마음에 걸렸다.
‘걱정, 미안함. 고마움.’
황소고집을 알고 있기에 마지못 해 승낙을 했을 뿐,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서준은 서연이 지고 있는 저 마 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알았어, 가자 가.”
쇼핑을 나온 서준과 서연 남매는 고급 브랜드 백화점 내의 고가 명 품 매장 코너로 가 발렌테이가라는 매장에 들어서 있었다.
서준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연 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신발들 하나에 백만 원이 넘는다고?”
기이한 생김새, 과하다 싶을 정 도로 큰 외형, 게다가 누가 몇 번 신던 것을 올려놓은 것인지 마치 때 탄 듯한 검은색의 신발이었다.
그나마 정상적인 점을 찾자면 누 구나 알 법한 명품 브랜드의 로고 가 각인되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와 함께 놓여 있는 다른 신발 도 상당히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서준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듯한 중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서연은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이런 거 하나 없으면 친구들한테 무시당해. 그리고 오빠 가 사 온 가방이랑 지갑도 그 정도
했잖아.”
“그건 부모님 선물용이니까 샀던 거고.”
“그럼 이건 내가 오빠한테 선물 하는 걸로 할게.”
“아니, 그리고 그건 디자인이 정 상적이었어.”
“이게 요즘에는 정상적인 디자인 이야.”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되어 왔던 말인 만큼 이 승부의 승자는 손쉽 게 예측이 갔다.
‘내가 지겠지.’
애초에서연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하여 나온 순간부터 서준은 이 대화에서 이길 수가 없었고 이 겨서도 안 되었다.
“일단, 잠시만 고민 좀 해 볼게.”
“그럼 나 화장실 갔다 올 테니 까. 이 중에서 하나 골라 봐. 그래 도 정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곳 가 서 봐 보자.”
“알았어.”
서연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서준은 진중한 눈빛으로 신발들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유행을 생각한
다면 디자인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가격 때문에 고민이 드는 것이었다.
‘신발 하나에 무슨 백만 원이 넘 어.’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연의 태도를 본다 면 어차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었다.
‘그래도 이쪽이 때도 덜 타고, 신 고 다니기가 더 편할 것 같네.’
결정을 끝마친 서준은 편한 마음 으로 매장에 비치된 의자에 엉덩이 를 붙인 채로 서연이 돌아올 때까
지 앉아서 기다렸다.
그렇게 1분, 5분, 10여 분이 넘 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렇게 오래 걸리나?’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기분, 착각일 수도 있는 만큼 서준은 조심스레 근처의 직원 에게 질문을 던졌다.
“죄송한데, 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죠?”
“이 앞으로 걸어가시다가 벽 끝 에서 오른쪽으로 도시면 바로 있어 요.”
헤맬 정도로 길이 어렵지도 않 고, 거리도 가까웠다.
단순한 기분 탓, 착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서준은 황급히 기감을 넓게 펼쳐 보았다.
그러자 근방에 있는 여동생의 기 척이 감지되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화장실이 있다 는 오른쪽이 아닌 그 반대편인 왼 쪽에 있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서 연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 었다.
‘뭐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서준 은 서연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건물의 구석 편으로 향하자 매장 에서 흘러나오던 요란한 노랫소리 가 잦아들었고, 그 덕분에서연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의 목소리도 선 명하게 들려왔다.
“집에 명품 하나 살 돈도 없는 거지 년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온 거야.”
“네년은 여기 있는 물건들 살 깜 냥도 안 되는 거지면서, 뭐, 아이쇼 핑이라도 하려고 오셨나?”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언어폭 력.
방금 전, 서연의 말은 경험담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음 한편에서 슬픔이 차올랐다.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까지 신발 을 사라고……
동시에 그만큼의 분노도 차올랐 다.
서준의 두 눈동자에 진한 분노가 어렸다.
‘고작 그딴 이유로 내 동생을 무 시해?’
그렇지 않아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는 상황이었는데 폭력은 언어에서 그치지 않았다.
“야, 주제에 맞게 살아! 이런 데 서 물 흐리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 로 살란 말이야.”
“그러니까. 아, 오늘 쇼핑할 기분 다 망쳤네.”
서연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두 여인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밀치 며 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쿵-
사태가 급박함을 인지한서준이 발을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애석하게도 서준이 코너를 도는 순간 끔찍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서연의 앞에 선 여인이 팔을 높 게 들어 올리며 뺨을 가격하려 하 고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활 화산처럼 치솟아 올랐다.
“ 감히......
서준이 보법을 밟아 이동해, 서 연의 옆의 둘을 제압하려던 순간이 었다.
서연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뺨 을 타격하기 위해 날아오던 여인의
팔을 낚아채었다.
“시X,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다 고, 이렇게까지 지X하는 거야.”
거친 욕설을 내뱉은 서연은 여인 의 팔을 손에 쥔 채로, 몸을 한 바 퀴 돌리었다.
팔이 역방향으로 꺾인 여인이 비 명을 내질렀다.
“아악, 꺄아악-!”
동료의 비명 소리에 정신을 차린 여인이 서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런 미X년이, 눈에 뵈는 게 없 지?!”
서연의 눈동자가 여인의 움직임 을 읽는다.
날아오는 여인의 움직임을 응시 하던 서연은 발끝을 송곳처럼 치켜 세우더니, 그대로 달려오는 여인의 정강이뼈를 가격했다.
빠악-!
아찔한 고통에 여인이 바닥에 쓰 러지며 울부짖었다.
“꺄악! 뼈, 뼈 맞았어!”
팔이 꺾여 있는 여인이 발악하듯 이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지만 서연 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로 대답 했다.
“내가 이 백화점에서 일해 봐서 아는데, 비상계단 앞을 찍는 CCTV는 없어.”
여인의 얼굴이 새하얗다 못해 새 카맣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왜 자꾸! 애먼 사람을 괴롭히긴 괴롭혀?!”
서연은 손을 들어 올리며 여인의 뺨을 거침없이 가격했다.
짝!
여인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벽면 에 처박혔다.
날아오는 공격에도 눈을 감지 않
는 과감함, 정확한 타이밍의 카운 터,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까 지.
과거, 서준이 스스로가 가진 재 능에 대해 품었던 의문 중 한 가지 가 시원하게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내 무골이 우리 집안 내력이었 구나.’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