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23화
23화
눈앞이 캄캄했다.
“허억, 허억……
경호의 호흡은 과하다 싶을 정도 로 거칠어져 있었고, 들이마시고 있는 공기에선 비릿한 피 맛이 느 껴질 정도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설마 정말로 하루 만에 10개의 게이트를 전부 다 클리어해 가다 니.’
처음 입장할 때 듣긴 했지만 단
순히 농담 삼아서 했던 말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말이 한 치의 웃음기도 없는 백 퍼센트 진담이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자리에 드러 누워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눈앞의 D급, 고블린 클리 크는 그를 허용하지 않았다.
고블린 클리크(clique), 그 이름 에서도 알 수 있듯 무리를 지어 다 니는 고블린들을 일컬었다.
두 다리로 걸어 다니고, 부족하 다지만 무기와 방어구로 무장까지 하는 몬스터였다.
맨몸으로 다니는 일반적인 몬스 터들과 달리 방어구를 걸치고 있는 만큼 까다로운 적에 속했다.
최악의 컨디션, 무장을 갖춘 채 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고블린 클 리크의 특성까지 하나같이 좋지 못 한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를 극복 하고도 남을 서준이 옆에 함께 있 다는 것이었다.
경호의 눈에 경외심이 어렸다.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으시다니 대단하시네.’
서준의 상태는 오전, 첫 게이트
에 입장할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침보다 더 쌩쌩 한 모습으로 고블린 클리크 무리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적진을 누비고 있는 서준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고블린 클리크의 머 리가 터지고, 심장이 으깨졌다.
경호가 감탄을 터뜨렸다.
‘맙소사 형님, 정말 사람이 맞으 신 건가?’
D급 몬스터 중에서 최상위 개체 로 판명된 고블린 클리크.
이런 몬스터 무리를 상대로 이렇
게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사냥하 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 무리에는 D급 수호자 중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렵고 까다 롭다는 고블린 그레이터까지 존재 했다.
그야말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 이었다.
‘정말 미쳤어.’
그러나 지금 눈앞의 싸움보다도 진짜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아침, 처음에 D급 게이트에 입장 했을 때도 몬스터를 학살하다시피 사냥했었지만, 지금은 그 궤를 달
리하고 있었다.
게이트를 거칠 때마다 더욱더 강 해지고 있었다.
과거에서준이 내뱉은 말이 거짓 이 아님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그 당시에 처음 각성하셨 던 거였다니……
즉, 서준은 확정된 S등급 각성자 라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금동아줄을 잡은 것이 었다.
‘그날 형님을 만난 건, 희대의 행 운이었어.’
경호의 입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 순간, 마찬가지로 서준의 입 에서도 환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시스템이란 건 정말 최고야!’
겨우 몬스터들을 사냥해서 얻는 경험치로 레벨이 오르고 그로 인해 스텟, 육체 능력이 상승했다.
고된 수련 없이 이렇게 쉽게 강 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서준의 입가에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D둥급 몬스터 고블린 클리크를 성공적으로 처치해 내셨습니다.]
[경험치가 상숭합니다.]
지천에 널린 몬스터, 경험치들에서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인간이 내뿜는 기이한 감각, 광 적인 집착에 고블린들은 크게 당황 했다.
-꾸옭?!
서준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서 적 진의 중심지, 고블린 그레이터가
있는 내부로 파고들었다.
-우어어!
고블린 그레이터가 황급히 지시 를 내렸지만, 갑주를 걸쳐 느려진 고블린 클리크 무리의 느릿한 움직 임으로는 바람같이 움직이는 서준 의 앞을 막아서기엔 역부족이었다.
타닥-!
다급해진 고블린 그레이터가 서준의 신형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주먹이 때린 것은 애꿎은 허공뿐이었다.
분명 눈앞에 있었던 서준의 신형 이 떨어지는 꽃잎처럼 흩날리고 있
었다.
- 우아아!
당황한 고블린 그레이터가 목청 껏 소리를 지르며 가장 믿음직한 부하, 고블린 가디언을 독촉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파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 가디 언의 가슴에 사람 주먹만 한 구멍 이 생겨났다.
그 구멍 너머로 서준의 얼굴이 비쳤다.
-우...우어.....
깜짝 놀란 고블린 그레이터는 황 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 와중에도 고블린 그레이터는 도망치는 것과 함께 고블린 클리크 에게 지시를 내리려 했다.
하지만 서준은 그조차도 허용해 주지 않았다.
‘벽력권장 절초, 창뢰섬아.’
하늘로 날아오른 서준의 시야에 고블린 그레이터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왔다.
고블린 그레이터의 눈이 휘둥그 레졌다.
그 시선을 마주한서준의 눈동자 가 휘어졌다.
마치 악귀와 같은 음흉한 웃음이 었다.
고블린 그레이터가 비명을 내지 르며 악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 버둥 쳤다.
우아, 우아아-!
그러나 내리치는 번개로부터 도 망칠 수 없었다.
서준의 신형이 번개와 같은 속도 로 고블린 그레이터의 머리 위에 내리꽂혔다.
콰광!
고블린 그레이터와 일대 고블린 클리크의 몸이 전기구이가 되듯 타 들어 갔다.
시원시원한 광경을 보는 서준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피어났다.
“마지막 10번째 게이트도 클리 어.”
시스템도 경쾌한 소리를 내뿜으 며 이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띵-!
[축하드립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40으로 상숭 하였습니다.]
서준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흘 렀다.
언제 보아도 기분 좋은 홀로그램 창이었다.
‘좋았어!’
레벨 업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사이, 마정석과 차원의 핵 수거를 끝마친 경호가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형님. 오늘 얻 은 D급 마정석 10개의 판매 금액 들은 게이트를 나가자마자 계좌로
바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사냥이 제법 고되었는지, 얼굴과 옷 상태가 뿌연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상태만 보면 나보다는 네가 더 고생한 것 같은데. 정말 나한테 마 정석 판매 금액을 전부 양보해도 괜찮겠어?”
“저는 돈 때문에 하는 일도 아니 고 괜찮습니다. 애초에 수호자들 전부 형님이 사냥하시지 않았습니 까.”
마음의 짐을 덜어 주려는지 경호 는 팔을 들어 올리며 팔근육을 자
랑하는 행동을 취해 보였다.
“그리고 이게 고생이라니요? 저 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 다.”
서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흘 렀다.
“고맙다.”
지금 서준은 가족들 때문에라도 돈이 제법 필요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런 큰 은혜를 입어 놓고 단순한 말 한마디로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에 따른 보답을 할 생각이었다.
“C급 게이트도 낙찰 받아둔 게 다섯 개 있다고 했지?”
“ 예.”
“그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장 할 수 있게 내가 내일 바로 협회에 들러서 c급 게이트 특별 공략 허 가 받고 나서 연락 줄게.”
경호가 경악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바로 내일 심사를 보러 가 신다고요?”
“왜? 무슨 문제 있어?”
태연하게 물어보는 서준의 모습
을 보며 경호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지금도 근육통 때문에 죽을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분명 더 심해 질 것이었다.
하지만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 었다.
서준과의 게이트 공략은 고생한 만큼 그 대가가 확실했다.
공략 중간중간 서준을 놓쳐서 경 험치를 제대로 분배받지 못한 적도 있는데 하루 만에 10계단을 상승해 벌써 32레벨에 도달했다.
다른 각성자들은 아무리 저레벨 의 구간이라도 하루 평균 1의 레벨 도 올리기 힘들어했다.
이런 레벨 업 속도는 남들은 얻 고 싶어도 얻지 못하는 일확천금과 도 같은 기회였다.
아니, 애초에 처음 서준과 단둘 이서 게이트를 공략하려 한 것도 전부 빠른 성장을 위해서였다.
빠르게 B급을 달성하여, 이름 있 는 길드에 속하게 되면 그만큼 후 계 싸움에서의 생존 확률이 높아지 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멈추면 안
돼.’
결단을 내린 경호가 고개를 주억 였다.
“아닙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서준도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 다.
“그래, 그럼 내일 연락 줄게.”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형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도록 하겠습니 다!”
서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게이트의 출구를 향해 발걸음 을 옮기었다.
서준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태 창을 불러왔다.
[스테이터스]
이름 : 한서준
레벨 : 40
보유 내공 : 165
힘 : 126, 민첩 : 125, 체력 :
126
26레벨로 시작하여, 40레벨까지 14계단의 상승.
처음 日등급 게이트 하나만으로 20계단을 상승시켰던 것을 떠올린 다면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옛날에 했었던 게임들도 이랬었 지.’
레벨이 낮은 구간, 초반에는 가 파르게 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뒤 로 갈수록 한 번의 성장, 레벨 업
을 위해서 몇 주, 몇 달을 고생해 야만 했었다.
하루 만에 이뤄 낸 성공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친 듯한 성장 속도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절정고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일류무인에서 고작 하루 만에 절 정고수의 반열에 오른 것이었다.
하급, D급 게이트만을 돌아서 얻 어낸 성과였다.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C와 B급의 게이트들이 남아 있었다.
이 기세라면 경호의 성장 속도로 B급의 수준에 도달할 때쯤에는 못 해도 50레벨 중반 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이었다.
처음부터 이류무인, 19레벨에 일 류무인 정상의 경지, 40레벨에 절 정고수의 초입에 도달했다.
‘50레벨 중반대에 도달하면 아 마..…
절정에서도 정상, 혹은 초절정의 초입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보였 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미친 속도네.’
과거의 경험과 지식이 있다지만 지구로 귀환한 지 고작 일주일 만 에 초절정의 경지가 눈앞에 아른거 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설렘과 벅참이 밀려오며 가슴이 요동쳤다.
역시 무인으로서 이렇게 나날이 강해진다는 것은 실로 즐거운 일이 었는데 돈까지 벌 수 있었다.
‘자그마치 2억 3천.’
D급 마정석이라 할지라도 등급 마다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랐지만 숫자가 10개나 되는 만큼 그 금액 이 억 단위에 달하고 있었다.
무인으로서의 성장과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돈까지.
서준에게 각성자라는 직업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정말 나에게 딱 맞는 개꿀의 직 업이야.”
행복함을 만끽하고 있는 순간, 서준의 발달된 감각에 엘리베이터 에서 내리는 가벼운 발걸음이 느껴
졌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 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서연이네.’
오후 2시, 원래라면 서연이 귀가 하기에는 상당히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반차를 낸 날이었다.
애초에서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게이트 공략을 다소 빠르 게 진행했었다.
서준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관문으로 향하였다.
덜컹.
서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그냥 느껴졌어.”
“진짜 각성자가 되면 초인이 되 긴 하는가 보네.”
“이건 내가 좀 특별한 케이스일 거야.”
“잘난 척은.”
피식- 웃음을 흘린 서연은 신발 을 벗어 던지며, 거실 겸 주방으로 향하더니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냉수 통을 꺼내 컵에 가득 담아
목을 축인 서연이 고개를 돌리어 서준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오늘 왜 갑자기 나한테 반차를 쓰라고 한 거야?”
“그냥? 보고 싶어서.”
서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진심으로 소름 끼쳤으니까, 그 런 장난은 치지 마.”
본론을 꺼내기 전에 분위기를 환 기시키기 위해서 했던 말인데 아쉽 게도 역효과가 나 버렸다.
여기서 더 장난을 쳤다가는 아예 대화 자체가 단절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서준이 눈치를 살펴 가며 조심스 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가고 싶어 했던 의대 쪽은 경쟁이 치열하잖아. 내 년에 입학하려면 이제부터라도 일 을 그만두고 수능 준비에 몰두해야 하지 않겠어?”
서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더 이상 돈 걱정할 필요 없으니 까, 옛날부터 네가 가고 싶어 했던 의대 진학 준비하라고.”
확실한 이해를 위하여 준비해 놓 은 통장을 서연의 손에 쥐여 줬다.
“긴말할 거 없이 직접 눈으로 확 인해 봐.”
서준의 말에서연은 손에 쥐어진 통장을 펼쳐 냈다.
순간, 서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졌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일억……. 오빠, 이게 대체 무슨 돈이야?”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