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15화
15화
“그 종이 가방 뭐야?”
“옷 몇 벌 샀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냈지 만 가는 눈을 한 서연이 의심 가득 한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돈이 어디서 나서?”
유Q...카
M....
예리한 질문에서준이 묘한 신음 을 흘리고 있는 순간이었다.
종이 가방을 바라보던 서연의 눈 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그거 피 아니야?”
뒤늦게 외출 전 입고 나갔던 옷 가지에 피가 묻어 있단 것을 떠올 린 서준이 종이 가방을 다리 뒤로 숨기었다.
하지만 서연의 기억까지 지울 수 는 없었다.
“괜찮아? 어쩌다 다친 거야! 병 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일 단 집에 있는 것들로 응급처치라 도……
서준은 다급하게 방으로 뛰어 들
어가는 서연의 발을 붙잡았다.
“아니야! 이거 내 피 아니니까 걱정할 거 없어.”
“그럼 누구 피인데?”
“ 그게......
시선을 분주히 움직이며 서준의 몸 상태를 확인하던 서연이 입을 틀어막았다.
“오빠, 손목에 그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 리려던 그 순간. 서연의 행동이 이 어졌다.
재빠르게 발을 반보 앞으로 내뻗
음과 동시에 손을 내뻗는 동작으로 오른팔을 낚아채려 하고 있었다.
제법 준수한 움직임이긴 했지만 서준이 마음먹는다면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서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지금 집에 있는 건 서연 이뿐이잖아.’
자고로 모든 싸움은 뭉쳐 있을 때 공략하는 것보다 각개격파하는 것이 더 쉬웠다.
더불어 서연을 회유해 놓는다면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한 커리어를 쌓기 전까지 다방면으로 도움을 받 을 수도 있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는 사이, 서연의 손이 서준의 오 른팔을 낚아챘다.
각성자를 상징하는 라이선스, 묵 색의 팔찌를 본 서연의 눈에 경악 이 어렸다.
“맙소사, 언제부터 각성자가 됐 던 거야?”
“집에 돌아오기 전부터.”
“아니,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지. 질문이 잘못됐다. 오빠 설마 각성
자 일을 하려고?”
“안 할 거면, 왜 번거롭게 라이 선스를 땄겠어.”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을 내뱉는 서준의 모습에서연의 미간이 구겨 졌다.
“각성자가 어떤 일들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가족으로서 서준이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 을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 시작한 거 고.”
“그래서 시작했다고?”
“지금 집안 사정이 안 좋잖아.”
말문이 막히는지, 서연은 더 이 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서준 의 두 눈동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서연은 촉촉해진 눈동자로 서준 의 두 눈을 응시했다.
“많이 안 다쳤어?”
“말했잖아, 이거 내 피 아니라고. 전부 몬스터 피야.”
“그럼 다행……. 아니지.”
서연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빠가 그런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어진 서연의 단호한 말에서준 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과감하게 행동했지만 미리 생각 하고 있던 상황은 아닌 만큼 고민 이 깊어져 갔다.
‘생각보다 설득하기가 힘들겠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실패한다면 지금 당장 서
연이 부모님에게 각성자 일과 관련 된 이야기를 꺼낼 것이 분명했다.
홀로 있는 서연조차 설득하지 못 한다면 부모님은 어림도 없었다.
그 순간, 고민에 빠져 있는 서준 은 보지 못했지만, 서연의 눈동자 는 크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린다고 해서 들을 건 아니지?”
서준은 고집이 엄청나게 강했다.
말 그대로 황소고집을 가진 남자 였다.
어려서부터 서준은 부러지는 한 이 있을지라도 꺾이지는 않았다.
스스로가 길을 정했다면 어떤 말 을 해도 설득을 하기는 불가능할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서준은 고개를 주 억이며 대답하고 있었다.
“응, 내 성격 알잖아.”
“하아……. 오빠 때문에 못살겠 다.”
서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더니 서준의 얼굴을 바라보 며 물었다.
“각성자 일 엄청나게 힘들다는
데, 정말 괜찮겠어?”
“내가 제법 재능이 있더라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는 서준의 모습을 바라보던 서연이 코웃 음을 치며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넘어가 려고?”
“진짜야, 오늘 각성자 시험을 봤 는데 벌써 D급이라고.”
수많은 매체를 통해 각성과 관 련된 이야기라면 싫어도 알게 되 는 지금의 현대인이라면 그에 관 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서연은 각성자라는 직업 에 대해서 제법 관심을 두고 있었다.
각성자라는 직업은 포털 토벌과 몬스터 자원 채취가 수월해진 이후 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몇 없는 신 분을 역전할 수 있는 직업으로 각 광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서연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각성자가 되기를 바 란 적이 있었고 많은 조사를 한 적 이 있었다.
때문에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D급의 각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반년의 시간은 족히 필 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런 D급에 고작 하루 만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시작점이 D급이라니……. 천재 라고 칭송받았던 창유진도 각성 당 시는 E급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원래 나도 E급이긴 했는데 특별 승격된 거긴 해.”
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 었지만 서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농담하고 있는 거지?”
“내가 이런 거로 농담하는 거 본 적 있어?”
“ 없었지.”
서연은 최대한 담담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으면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첫 만남 때부 터 이상하긴 했었다.
서연의 머릿속에 첫 재회의 날 보고 느꼈던 서준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깨와 등이 넓어진 것이 기분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눈에 뜨이는 신체의 변화들이 많았다.
신체의 곳곳이 자잘한 근육으로 뭉쳐져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실종되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건강해져 있었다.
차근차근 짚어 가며 조금씩 받아 들이기 위해 노력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애처로울 정도로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 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첫날에 D급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과거, 천재라고 칭송받았고 현재 S등급의 각성자, 창유진
현재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각성자들 중 하나인 창유 진의 가능성을 뛰어넘은 인재가 친 오빠라는 말이 되는 것이었다.
이를 어찌 쉽게 받아들일 수 있 겠는가?
기가 막히다 못해 어이가 없었
다.
서준이 부담감에 무리해서 각성 자 일을 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런 재능과 가능성을 가진 사람 을 무작정 말릴 수는 없었다.
심지어 황소고집이라고 불리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서연은 다시 한번 천천히, 서준 의 현재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내, 그녀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홀러나오기 시작했다.
“ 하하......
지금의 서준을 말릴 수는 없었다.
애초에 멈추려 한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고 싶은 거지?”
“가능하다면. 커리어를 쌓기 전 까지는 비밀로 하려고.”
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두 분 성격상 말 리시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 야……. 무슨 뜻인지 말 안 해도 알지?”
당장 안다면 두 분 중 한 분쯤은 목뒤를 잡고 쓰러질 수도 있었다.
서준은 대답 대신 서연의 눈동자 를 마주한 채로 고개를 주억였다.
“집에서 입고 나간 옷에 피 묻히 지 마. 게이트 갈 때 입을 옷들은 내가 따로 손세탁해서 출근길에 가 좌역 사물함에 한 벌씩 넣어 둘게.”
“고마워. 허락해 줘서.”
서준의 대답에서연의 표정이 한 층 더 엄중해졌다.
“공짜 아니야, 조건들 있어.”
다행인 점이라면 서준은 고집만
큼이나 책임감도 강하다는 것이었다.
서준이라면 이 자리에서 약속을 받아 낸다면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 분명했다.
서연은 검지를 치켜세우며 말을 이어 갔다.
“첫 번째, 핑계 대기 힘드니까 오늘처럼 너무 늦게 들어오지는 말 아 줘.”
이 동맹은 부모님의 눈을 속이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다.
아무리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다 할지라도 꼬리가 길면 잡힐 수밖에
없었다.
서준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순순히 고개를 주억였다.
“알았어.”
뒤이어 서연이 중지를 펼치며 다 시 한번 말을 내뱉었다.
“두 번째, 최대한 빠르게 B등급 이상의 각성자가 되어 줘.”
B급은 완연한 중견 이상의 각성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등급이었다.
즉, 수많은 각성자 중에서도 그 노련함이 손에 꼽힌다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실력자라는 의미로, 마물의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
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시작하는 등 급인 셈이었다.
실제로도 대다수 각성자들의 사 망은 주로 F〜C급, 하위 등급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B급 이상의 상위 각성자가 게이트에서 죽는 일 은 매우 드물었다.
부모님을 보다 쉽게 설득하기 위 해서라도 B급 이상의 각성자가 되 어야 했다.
“세계 기록을 경신시켜 줄게.”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서준의 모습에서연이 피식- 웃음 을 홀렸다.
이내, 서연은 마지막으로 세 번 째 약지를 펼쳤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절대 무리 는 하지 마.”
하루 만에 D급에 도달한 미증유 의 천재, 그리고 확고한 의지를 지 닌 자가 자신의 친오빠.
반대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서준이 다치는 것을 방관 할 생각은 없었다.
“약속들 지킬 수 있겠어?”
서준이 서연의 두 눈동자를 응시 한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반드시 지킬게.”
이렇게 서준과 서연의 임시 동맹 이 맺어졌다.
큰 고비 중 하나를 넘김과 동시 에 든든한 조력자가 생긴 것이었다.
다음 날.
본격적인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시간인 9시, 서준은 막 협회 본부 의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동 시간이 직장인들의 출근 시 간과 겹쳐 대중교통이 답답했을 법 도 했지만 서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배어 있었다.
‘좋다, 좋아.’
전의 D급 게이트 격파로 포상금 을 수령해 통장 잔고가 여섯 자리 에서 여덟 자리로 늘어 있었다.
자그마치 천만 원에 달하는 큰 액수,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 에 불과했다.
‘어제 얻은 D급 마정석.’
예상가는 자그마치 사천만 원으로, 지금 통장 잔고와 합치고 나면 도합 오천만 원이 될 것이었다.
게이트 하나에 오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벌어들인 것이었다.
획득 당시에도 행복하고 설렜지 만, 이렇게 환전을 목전에 두고 있 으니 생각 이상으로 가슴이 두근거 리기 시작했다.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숫자, 3번이라는 대기표를 손에 쥔 서준이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띤 채로 앉아 있을 때였다.
“3번 손님 4번 창구로 와 주세 요.”
설레는 마음을 안은 채로 4번 창 구, 거래소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가져오신 마정석을 앞의 판 위에 올려 주시고 라이선 스를 오른쪽에 놓여 있는 기기 앞 에 가져다 대 주시면 됩니다.”
협회 직원의 말대로 마정석을 올 린 뒤 라이선스를 가져다 대는 순 간이었다.
창 너머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거래소 직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맙소사……. 각성자 시험을 어 제 통과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벌써 이렇게 순도 높은 D급 마정 석을 얻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 요!”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