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14화
14화
너무나도 이질적인 광경에 모두 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볼 때였다.
“한서준 각성자님! 설마 게이트 를 혼자서 클리어하신 겁니까?”
김도현이 빠르게 서준에게 다가 왔다.
모두의 시선이 서준의 등 뒤, 이 제는 자그마한 구멍으로 변해 버린 게이트의 입구를 향하고 있었다.
“빌려주신 무기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혼자서 클리어가 가능하더 라고요.”
김도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D급 게이트의 수호자를 혼자서 처치해 내다니.’
서준이 특별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근데 그 특별함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최소 C급, 길드에서 서로 모셔 가려 하는 숙련된 각성자는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을 고작 E급 각성자 가 해낸 것이었다.
‘대체 뭐야‘?’
눈동자를 굴리어 한서준이라는 사람을 가늠하려 해 보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동경 심이 들었다.
김도현이 얼빠진 표정을 한 채로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 서준은 사 용한 건틀렛을 되돌려주며 말을 이 어 갔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쉽게 클리 어했네요.”
서준의 칭찬에 김도현이 얼굴을 붉혔다.
“그게 뭐, 무기 덕분이겠습니까.
그냥 서준 씨의 실력이 뛰어난 거 죠. 제가 이 건틀렛을 끼고도 워 베어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거 보셨잖습니까.”
“아니요, 김도현 씨가 빌려준 무 기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차고 있는 동안 효과를 톡톡히 봤고, 벽력권장의 절초, 창뢰섬아마 저 견딜 정도로 단단했다.
김도현의 건틀렛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수월하게 시민들을 구 출하지 못했을뿐더러, 창뢰섬아를 펼칠 생각조차 않았을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었
지만, 겉치레라고 생각했는지 도현 은 어색한 미소를 홀렸다.
“시민 구출부터, 게이트 파괴까 지 전부 저희 협회의 업무인데 한서준 각성자님에게 떠넘겨서 여러 모로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도현을 비롯한 세 사람이 고개 를 숙였지만, 서준은 그것도 마다 했다.
“저는 그냥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에요, 그리고 이번 일은 혼자 한 게 아니라 모두 다 같이 해낸 거지 않습니까.”
화들짝 놀란 김도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한 일이라고 는 부끄럽게도 셋이서 워 베어 한 마리 상대로 쩔쩔맨 것뿐인데요.”
서준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무리 서준이라 할지라도 지금 의 나약한 육체로는 혼자서 모든 사람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 었다.
하지만 김도현의 파티가 시민들을 한자리에 모아 주고, 워 베어에 게서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모두 를 구해 낼 수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혼자만의 공적이 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을 벌어 주지 않았으면 모 두가 살아남지는 못했을 겁니다. 힘써 주신 덕분에 희생자가 한 명 도 나오지 않을 수 있었던 거라구 요.”
“말만이라도 그저 감사합니다.”
“정말, 저는 진심이라니까요. 모 두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준의 낯 뜨거운 칭찬에 머쓱해 진 김도현이 코를 쓱 훔치기 위해 팔을 몸 위로 올리는 순간이었다.
“안 돼! 이 나쁜 놈아!”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얼굴의 사내가 겁을 먹 었지만 용기를 한껏 낸 얼굴이 되 어서 질색하고 있었다.
“우리를 구해 준 영웅님에게 무 슨 해코지를 하려는 거야! 그 손 당장 내려라!”
갑작스러운 언동에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지만, 빠르게 머리를 굴리자 차근차근 퍼즐이 맞춰졌다.
분명, 입장 전 말다툼을 하던 과 정에서 언성이 높아진 탓에 근처의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방금 전, 나누었던 화 목한 대화가 그 싸움의 연장선이라 착각하고 만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김도현이 피식-웃음을 흘리며 상황 설명을 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싸우는 게 아닙……
그러나 남성의 질책을 들은 시민 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 한 것이다.
“이런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 놈! 어딜 감히!”
“저도 봤어요! 시민들이 게이트 에 빨려 들어갔는데 신경 쓰지 말
라고 말한 것도 모자라서 저 각성 자님의 앞을 막아서기까지 했었어 요!”
“쯧쯔, 저런 모자란 놈! 저런 것 도 각성자라고 득의양양해하다니!”
소문은, 발이 없어도 천 리를 가 는 법이지만, 그중에서도 유언비어 는 더욱 빨리 퍼지는 법이었다.
때문에 김도현을 감싼 소문이 날 개 돋친 것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 했다.
덕분에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안 채형의 귓가에까지 들어갔다.
당황한 안채형이 인파를 헤쳐 가
며 허겁지겁 앞으로 뛰쳐나오며 김 도현을 향해 물었다.
“각성자 협회 안전 관리 본부장 안채형입니다. 지금 시민들의 말이 사실입니까?”
김도현을 향해 물은 것이었지만, 대답은 인파 속에서 들려왔다.
“그렇다니까! 이 내 두 귀로 똑 똑히 들었다고!”
“예! 여기 모두가 다 들었습니 다!”
쏟아지는 거센 비난에 김도현이 고개를 숙인 채로 몸을 부르르 떨 었다.
당장이라도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선민의식에 취해 있었다는 점과 서준의 앞길을 막으며 가벼운 언동을 했던 것은 진실이었다.
‘전부 내 못난 과거의 업보야.’
그렇다면 이것은 견뎌 내야 할 무게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속죄 가득 담긴 말 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더 이상 외면하고 피하지 않겠
어.’
김도현은 입술을 꽉 깨물며, 지 난날의 과오에 대한 미련함에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억눌렀다.
쏟아지는 비난올 안고 안채형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순간이었다.
“방금 들으셨던 대로 제가 한서준 씨의……
그 순간, 어깨에서 따스한 손길 이 느껴졌다.
“죄인 아니시잖아요, 고개 드세 요.”
어깨에 올려진 손을 따라서 시선 을 옮기자 보인 것은 한서준의 얼
굴이었다.
‘뭐, 공적이나 환호성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지자면 서준은 그런 것을 좋아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재물이나 명예에 눈이 멀어 함께 싸웠던 동료를 버리는 쓰레기가 돼서는 안 되지.’
그런 것들보다 함께한 동료들이 훨씬 더 소중했다.
김도현과 시선을 마주한 한서준 은 씨익-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돌 리어,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제 이야기를 좀 들어 주십시오!”
내공이 실린 서준의 목소리가 사 람들의 귓가를 선명히 파고들었다.
과열되었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가라앉고 서준에게로 모든 시선이 쏠렸다.
서준은 그들의 눈동자를 직시하 며 입을 열었다.
“다소 과정에서 불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친구 는 제 목숨이 위험할까 걱정해 준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 해서 뼈저린 반성을 하고서는 직접 저와 함께 구조 일선에 뛰어들었습
니다. 몸에 난 이 상처들을 봐 주 십시오!”
서준이 고개를 돌리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따라붙 었다.
도현의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 였다.
찢기고 파이고 넝마가 된 도현의 몸이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 그래요! 이 양반, 들어가서 는 열심히 했다구요. 이분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있는걸요!”
뒤이어, 쏟아지던 비난의 목소리
에 묻혀 있던 몇몇 진심 어린 감사 가 담긴 목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왔 다.
“저도요! 저 사람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서준은 고개를 주억이며 목소리 를 더 높였다.
“방금 전, 김도현 씨를 비난했던 여러분들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인 이상 언제나 옳 은 선택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올곧은 서준의 시선이 방금 도현
을 향해 있던 시민들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바뀔 수 있 다는 점입니다. 지금을 봐 주십시 오. 어떻습니까. 이 사람도 홀륭한 각성자고, 영웅이지 않습니까?”
비난을 토해 내던 시민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순간이었다.
김도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신은……
선민사상으로 비겁한 겁쟁이를 새로 태어날 수 있게 갱생시켜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존재였다.
그런데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마
저, 잘못된 사상을 안고 서준의 앞 길을 막고 입구를 막아섰던 용서받 을 수 없는 행동마저 품어 주고 있었다.
김도현은 촉촉해진 눈시울에서 마침내 눈물을 홀리고는 감동에 찬 말을 쏟아 낼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 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갚을 필요는 없고, 그냥 오늘의 마음가짐만 잊지 말아 주세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안채형의 입 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
라 아랫사람의 과오마저 품을 수 있는 존재라니.’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
아니, 강석호 이후 처음으로 모 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안채형이 크 게 박수 치면서 입을 열었다.
“각성자로서 훌륭히 시민들을 구 해 나온 일에 대해서 어찌 협회에서 상을 내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 까.”
안채형이 서준을 향해 윙크를 보 내더니 뒷말을 이어 갔다.
“포상금과 함께 특진에 대한 안 건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분위기가 기름을 부은 것처럼 고조되며 모두의 박수와 환 호가 울려 퍼졌다.
2030년의 지구에서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닌 탓에 가좌역 앞 버스 정 류장에서 벌어졌던 미관측 게이트
소동은 생각보다 빠르게 종료되었다.
가장 먼저, 시민들은 빠르게 안 정을 찾고 일상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서준에게는 안채형이 언 급했던 대로 각자의 공훈에 맞는 상이 주어졌다.
능력을 인정받아 D급으로 각성 자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함과 더불 어 천만 원가량의 현금 포상이 내 려졌다.
안채형은 협회가 정부 기관인지 라 포상을 이것밖에 못해 줘 미안
하다고 하였지만, 보상을 받으려고 움직인 것은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상금은 빙 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수호자로부터 얻은 마정석.’
방금 전, 김도현에게 보여 줬더 니 예상했던 대로 D급의 마정석이 라는 말을 들었다.
그 가치는 무려 사천만 원.
천만 원의 포상금과 사천만 원의 마정석.
도합 오천만 원을 벌어들인 것이 었다.
서준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 졌다.
‘오늘은 귀환한 이후 최고의 날 이네.’
게이트에 진입 전 유일한 고민거 리였던 가족들과의 식사도 불참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아까 전, 스마트폰의 메신저 앱 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부모님 두 분 다 회사 회식이 있다는 메시 지가 와 있었다.
가족들과의 생활과 스스로의 정 의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서준은 머릿속으로 오늘의 행운 들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잡고 있던 문고리를 당기는 순간 흐름이 끊어졌다.
“깜짝이야.”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문 여는 소리를 들은 여동생, 서연이 눈매를 좁힌 채로 현관에서 있었다.
서준은 최대한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연스 레 오른손을 등 뒤로 숨겼다.
‘일단 침착하게 행동하자.’
돌아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이
가 각성자 같은 위험한 일을 한다 하면 가족 입장에서 쉽사리 찬성을 해 줄 리가 없었다.
‘나라도 반대하겠지.’
서준이 단순히 돈 하나만 보고 유명세를 얻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훗날 각성자 일과 관련되어 가족 들을 설득할 때 조금이라도 쉽게 납득을 시킬 만한 이유를 만들어 내기 위함도 있었다.
확실한 성과, 능력을 증명한 후 에 대화를 나눈다면 조금이라도 편 하게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야.’
머지않은 그 홋날을 기약하기 위 하여 집으로 귀가하기 전 라이선스 각성자 지원비로 받은 돈으로 새 옷까지 사 입은 상태였다.
서준은 이러한 노력을 헛되이 하 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놀라라. 문 앞에서 뭐 하고 있 는 거야? 아빠랑 엄마는?”
“회식이 길어지시는지 아직 안 돌아오셨어. 그것보다 대체 왜 이 러는 거야?”
“뭐가?”
“돌아온 지 채 일주일도 안 된 사람이 늦는다는 말만 덜컥 남겨 놓고 이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오 면 걱정이 안 되겠어?”
“내가 애도 아니고 무슨 그런 걱 정을 해. 그리고 이제 절대로 어디 안 갈 거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마.”
최대한 태연한 태도로 대화를 주 고받은 서준이 방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잠깐만.”
등 뒤에서 들려온 서연의 말에서준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