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13화
13화
마지막 두 사람을 출구 바깥으로 배웅하려는 순간, 중학생 정도 되 어 보이는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왔다.
“저, 각성자……님? 혹시 계속 여기 계실 거예요?”
“구조는 이제 끝났습니다. 여러 분들이 마지막이라서요.”
대답에 남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질문을 건네 왔다.
“그, 그럼 혹시 성인 허리쯤에 오는 키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 은 어린 여자애를 구출한 적도 있 나요?”
신장, 복장까지 틀림없이 바깥에서 약속을 나누었던 꼬마 아이의 모습이었다.
‘다행히 약속은 지켰네.’
서준의 입가에 호선이 피어났다.
“동생은 다행히 끌려오지 않고 밖에 있었습니다, 근데 오빠를 걱 정하느라 힘들어 보였으니까, 나가 면 잘 달래 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건넨 학생은 황급히 근처에 있던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 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뒤를 이어 성인 남자도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자 취를 감추었다.
서준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 어 나왔다.
“후우……
이로써 12명, 게이트로 끌려온 사람을 모두 무사히 구출해 내었다.
스스로의 정의, 호의로 시작하게 된 일이었지만 성과도 상당히 두둑 했다.
[스테이터스]
이름 : 한서준
레벨 : 19
칭호 : 곰 학살자
보유 내공 : 69
힘 : 63, 민첩 : 62, 체력 : 63
시스템은 레벨 업 부분에서도 기
존의 게임과 상당히 흡사한 면이 많았다.
‘낮은 구간이라 그런지 확실히 성장이 빠르네.’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게이트를 활보한 지 30여 분 만에서준은 자 그마치 10번의 레벨 업을 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비교 자체 가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었다.
이제는 감히 일류무인 수준의 힘 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몸으로 겪어 갈수록 시스 템이란 것에 대해서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레벨 업, 스테이터스가 상승하게 되면 특별한 과정 없이 아주 손쉽 게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가슴이 뛰네.’
서준은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쿵 쿵!
쉬우면서도 빠르게 강해진다는 것만으로도 실로 기쁜 일이었다.
근데 그 변화를 순간순간 두 눈,
그리고 몸으로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무인으로서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었다.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 났다.
그러나 아직 이를 만끽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무리를 확실하게 지어야지.’
각성자의 숙명.
그것은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 사는 차원의 핵을 부수 는 일이었다.
‘위치는 이미 파악해 뒀어.’
좁은 세계관을 가진 c등급 미만 의 게이트들의 특성상 코스모 에너 지의 주변을 통칭 가디언이라 불리 는 강력한 보스 몬스터가 지키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시민들을 구출하 기 위해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와 중에 가디언으로 추측되는 존재의 위치를 파악해 두었다.
앞서 시민들을 데리고 대피한 협 회의 각성자들이 있는 만큼 머지않 아 협회에서 지원이 도착하겠지만 굳이 기다릴 필요 없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어.’
D등급으로 추정되는 게이트.
본래 E등급의 각성자들은 홀로 이 게이트 내부의 세계를 정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준은 수많은 워 베어를 쓰러트리며 확신할 수 있었다.
지구에서 측정해 놓은 이 각성자 들의 등급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분명히 존재했다.
바로 심, 기, 체 중, 그중에서도 특히 심과 기의 유무다.
강력한 내공의 힘, 그리고 그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같은 日등급 헌터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건 기회야.’
E등급의 각성자가 홀로 日등급의 게이트를 파괴해 냈다?
라이선스 시험에서 끌어내지 못 한 이목을 확실하게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심지어 레벨이 오른 덕에 마침 몸 상태도 최상이었다.
여러모로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결단을 내린 서준은 수호자가 있 던 방향을 향하여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시야에 기존의 워 베어의 두 배쯤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5m에 달하는 거구, 그야말로 거 대 괴생명체라고밖에 형용할 수 없 는 막대한 워 베어가 서식지의 수 풀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는 모습은 괄목할 만할 정도였다.
처음 게이트 내에 들어왔을 때라
면 상당히 고전했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달리 말하자면 지금 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최대한 쉽고 빠르게 가고 싶은데.’
저런 덩치 큰 괴물과 치고받으며 싸우다 보면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일격에 사냥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뇌정권장을 제대로 펼쳐 볼 까……
말했듯 무공은 심, 기, 체 세 가 지가 고루 갖춰져야 사용할 수 있 다.
본래 서준은 부족한 내공과 나약 한 육체 때문에 알고 있는 무공과 초식들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게이트 내부에서 이룬 성 장과 협회의 각성자에게 얻은 무기 까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곰 학살 자의 사기적인 능력, 10%의 스텟 상승효과가 더해진다면 부족했던 심과 체가 어느 정도 보완이 되었 다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서준은 멀리 5m가 넘는 워 베어 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감이 살짝 몸에 차오르며 근 육이 팽팽해졌다.
뇌정권장은 천둥과 같은 공격을 펼치기 위해 만든 무공.
제대로만 펼친다면 일류 최상위, 아니 절정에 달하는 힘을 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만한 위력을 갖기 위해 서는 시전자의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내공 운용을 동반해야 했지 만 말이다.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뇌정권장 을 제대로만 펼칠 수 있다면 등급 에 비하여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천마를 넘어, 마선의 경 지에까지 도달했었던 서준은 뇌정 권장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고도의 내공 운용을 선보일 자신이 있었다.
‘일단 조금 실수해서 일격에 죽 이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질 것 같 지도 않고.’
서준은 결정을 내린 이후 매화난 만보를 밟으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 갔다.
동시에 뇌정권장의 절초를 펼치 기 위하여 내공 운용을 시작했다.
벼락처럼 내리치며 적을 무조건 꿰뚫고 파괴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펼쳐지는 무공.
어느덧 서준이 보는 세상의 모든 광경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려졌 다.
매화난만보 때문이 아니었다.
뇌정권장의 공능이 서준의 육체 를 가속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아찔할 정도의 힘이 전신으로 퍼 져 나갔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고작 이 정도로는 저 워 베어를 일격에 쓰러뜨릴 수 없다.
‘가진 내공을 모두 쏟아붓는다.’
체내의 내공을 빨아들이기 시작 한 뇌정권장의 기운이 덩치를 부풀 려 나간다.
순간, 서준의 눈동자에는 세상을 발아래 두었던 천마의 기세가 번뜩 였다.
‘뇌정권장 절초, 창뢰섬아(蒼雷問 死).’
체내를 회전하고 있는 힘들을 허 벅지와 다리에 집중하며 지면을 박 차고 도약했다.
워 베어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 혀진다.
크오-?!
화들짝 놀란 워 베어가 서준을 바라보며 앞발을 휘둘렀다.
눈앞에 거대한 앞발과 날카로운 발톱이 보였다.
하지만 서준은 피하지 않았다.
다리에 집중되어 있던 기를 주먹 으로 옮기며 팔을 내뻗었다.
가진 양이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효율적으로 빚어진 내공들이 일제히 주먹에 모여들었다.
잠깐이지만 주먹에서 희미한 푸 른빛 기운이 파지직- 튀어 올랐다.
다가오던 워 베어의 앞발이 서준 을 때렸다.
파삭-!
푸른빛 뇌전이 번뜩이더니 무언 가가 길게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 다.
쿠오오-…….
의아한 의문을 홀린 워 베어가 몸을 돌려 서준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내뻗은 앞발이 반으로 갈라진 탓
에 거대한 신형이 휘청이며 무너졌 다.
쓰러진 워 베어가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던 순간이었다.
도약을 마친 서준의 신형이 높은 하늘 위에 도달해 있었다.
서준의 시선이 워 베어에게로 향 했다.
이윽고, 서준의 신형이 한 줄기 의 번개가 되어 지상으로 내리쳤다.
콰과광!
푸른 뇌전이 워 베어의 육체를 포함한 일대를 집어삼켰다.
지상에 착지한서준은 내공을 거 두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네.”
가히, 천둥의 힘.
뇌정권장의 절초라고 불릴 만한 위력이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산사태라도 만 난 듯 우후죽순으로 쓰러진 채로 새 빨갛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일대는 그야말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띵-!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이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25로 상숭하 였습니다.]
[A급 스킬, 뇌정권장을 극성하셨 습니다.]
[A급 무공 뇌정권장이 진화합니 다.]
[축하합니다! 뇌정권장이 S급 무 공으로 둥급 향상되었습니다!]
[홀로 세상 하나를 파괴하였습니 다.]
[노비스 디스트로이어 칭호를 획 득하셨습니다.]
창뢰섬아의 영향권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절명했다.
덕분에 자그마치 6단계의 레벨 상승을 했다.
게이트에 들어온 지 불과 몇 시 간 되지 않았음에도 25레벨이 되었다.
입장 전과 비교해 본다면 무려 스무 계단이나 점프를 한 것이었다.
레벨이 낮은 각성자들이 성장이
빠르다고는 하나 이 정도까지는 아 니었다.
일반적인 각성자들이 20레벨을 넘기려면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 이 필요했다.
‘그야말로 폭렙!’
더불어 물질적인 보상도 남아 있었다.
반짝이는 작은 돌, 수호자가 품 고 있던 마정석이었다.
서준은 곧장 허리를 굽혀 마정석 을 손에 쥐었다.
“이 정도라면……
인터넷에 게시된 정보 글만 본 것이라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손 바닥만 한 크기로 보아서는 D급 정도의 마정석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작은 크기와 낮은 등급이라고 무 시할 수는 없었다.
괜히 각성자가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D 급 마정석만 해도 하나당 4,000만 원 정도의 값어치를 받을 수 있었다.
서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이 기세라면 금세 빚을 갚을 수
있겠어.’
각성자 활동을 한 지 하루, 정확 히 말하자면 몇 시간 만에 거액의 돈을 벌어들인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불끈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이 빠르 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서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났다.
‘게이트가 아니라, 노다지였네.’
대중들에게 존재를 각인시킬 만 한 화려한 퍼포먼스와 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마정석이라는 고가의 보 수까지.
말 그대로 날 듯이 기뻤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쩌저적-!
게이트 속 세상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차원의 핵도 창뢰섬아의 여파에 형태를 잃고 파괴되었다.
당연하지만 서준은 무너져 가는 게이트 속에서 생매장당할 생각은 없었다.
서준은 솟아오르는 기쁨을 잠시 억누르며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
다.
가좌역 인근 미관측 게이트 바 깥.
협회장, 강석호의 명령에 한서준 의 뒤를 밟고 있었던 안채형의 표 정은 그야말로 흙빛이었다.
‘제길......
미관측 게이트가 발발했을 당시, 처음에는 고민하는 듯 바라만 보았 지만 어린아이의 울음, 약자의 불 행에서슴없이 게이트 내부로 몸을 던지는 모습.
감시가 붙은 것을 알고 단순히 보여 주기 위한 퍼포먼스라고 생각 하며 경계했지만 정말로 시민들이 하나둘씩 바깥으로 구출되어 나왔 다.
아무리 의심이 많다 할지라도 선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선인(善人), 영웅 의 행동을 보이는 서준이 빌런이라
불리는 불법 각성자일 리가 없었다.
처음 의심을 품었던 것 자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말뿐만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을 보이는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가진 각성자!
한서준은 분명, 한국 각성자 협 회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람이 었다.
그런 영웅의 자질을 가진 서준의 목숨이 위험했다.
지금 서준이 들어간 곳은 자그마 치 D등급의 게이트.
일반인인 안채형은 말할 것도 없
고,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서준이라 할지라도 이제 갓 라이선스 를 취득하여 실전 경험이 적은 신 출내기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등급 이었다.
안채형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 내며 시계를 확인했다.
“젠장!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협회에 게이트 진입 팀의 지원을 요청한 지 벌써 30분이 흘렀음에도 그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오늘따라 미관측 게이트가 상당히 많이 발생 한 탓이었다.
얼마나 많은지 협회장인 석호마 저도 게이트를 처리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을 정도였다.
안채형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 며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던 그 순 간이었다.
“저, 저기…… 게이트가!”
당황하는 목소리에 안채형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이 게이트로 향 했다. 게이트의 균열이 점점 작아 지고 있었다.
“게이트가 닫히고 있습니다!”
뒤이어, 서준의 신형이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