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12화
12화
고개를 흔들며 비틀비틀 몸을 일 으킨 곰 형태의 몬스터, 정식 명칭 워 베어를 마주한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크기는 4m쯤, 우람한 덩치, 주 공격 수단은 거대한 어금니와 웬만 한 성인 남자도 삽시간에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육중한 앞발.’
여러모로 봐도 쉽지는 않은 상대 였다.
아니, 일반적인 E등급 각성자라 면 워 베어를 마주했을 때부터 도 주한 후에 추후, 고랭크의 각성자 들에게 처리를 맡겼을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물러나면 다른 사람들이 당한다.’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다.
아이와의 약속뿐만 아니라, 만신 창이가 되어 정신을 잃은 협회 소 속의 각성자까지.
모두 자신과 연관이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찝
찝하지.’
만약 이 게이트 내부에서 협회 소속의 각성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찝찔 해질 것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음에 찝찝 함을 남길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멀리서 부리나케 달려 온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서준은 일반적인 E등 급 각성자와 달랐다.
‘쉽지 않을 뿐이지 충분히 이길 수 있어.’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
었다.
특히나 이런 맹수류들은 중원에서 낭인 생활을 할 때 많이 상대해 봤다.
서준의 시선이 워 베어를 홅으며 정보를 수집해 가던 순간이었다.
“여기는 저희가 맡을 테니 도현 이랑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쳐 주세 요!”
뒤에 있던 하종선과 구찬현이 뛰 쳐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김도현도 그렇지만 첫 인상과 달 리 상당히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오래 못 버틸 테니까 뺄리 도망 치세요!”
하종선이 서준을 향해 말하는 사 이, 워 베어의 거대한 앞발이 종선 을 향해 매섭게 날아온다.
예상치 못한 워 베어의 공격에 하종선의 얼빠진 음성이 흘러나왔 다.
“어……
그 순간, 서준의 신형이 미끄러 지듯이 하종선을 향해 움직였다.
‘짧아.’
거리가 있는 만큼 이 상태라면
워 베어의 앞발이 닿기 전 하종선 을 구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좋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서준은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팔을 내뻗어 하종선의 옷자락을 낚아챘다.
‘금나수 (擔韋 手).’
본래 적의 공격을 낚아채는 평범 한 무공이었지만 모든 것들이 그렇 듯 사용법과 사용자에 따라서 확연 하게 변할 수 있었다.
옷자락을 낚아채어 뒤로 당겨 준 서준 덕분에 하종선이 워 베어의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분노
를 느낀 워 베어가 서준을 향해 거 대한 앞발을 세차게 휘두르며 달려 들었다.
후웅-!
육중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괴이하게 빠른 속도다.
그러나 서준의 살갗에 닿는 것은 없었다.
‘매화난만보, 낙화.’
유능제강, 매화난만보의 부드러 움이 빠른 워 베어의 공격을 제압 해 낸다.
워 베어는 꽃잎처럼 흩날리는 서준의 신형을 잡아내지 못하며 애꿎
은 옷깃만 베어 내고 있었다.
마치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움직 이는 서준의 모습에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던 공격을 멈춘 워 베어가 입을 크게 벌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크어어-!
워 베어가 괴성을 내지르며 누런 침을 위협적으로 뚝뚝 홀리며 입을 크게 벌린다.
그리고 흩날리는 서준의 신형을 통째로 삼키겠다는 듯 목을 쭉 빼 내미는 순간이었다.
‘매화난만보 개화(開花).’
서준의 신형이 강풍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빠르게 허공을 미끄러지 며 워 베어의 정면을 지나가며 머 리 위를 점했다.
‘뇌정권장 운뢰(M雷)
쇄도하는 천둥은 빠르면서도 파 괴적이었다.
본래 이류무인이 펼칠 수 있는 초식이 아니었다.
최소 일류무인은 되어야 간신히 흉내나 낼 수 있는 무공이었다.
서준은 임독양맥의 내공의 증폭 과 과거에 쌓은 높은 깨달음, 그리고 힘을 이용해 펼쳐 냈다.
본래 운뢰의 위력을 생각한다면
흉내 내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콰드득-!
워 베어의 가죽이 타듯이 벗겨지 고 살이 익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 왔다.
쿠어어-!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른 워 베어가 등을 돌리며 앞발을 마구잡 이로 휘둘렀다.
하지만 서준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다시 한번 매화난만보를 펼친 서준은 이미 붉은 살이 드러난 워 베
어의 목 뒤편, 허공으로 떠오른 채 였다.
“운뢰.”
앞으로 내뻗고 있는 서준의 주먹 에, 다시 한번 운뢰의 묘리가 담겼 다.
콰광-!
워 베어는 더 이상 비명도, 움직 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육체가 힘없이 무너 져 내리고 있었다.
—띠링!
[D등급 몬스터 워 베어를 성공 적으로 처치해 내셨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9로 상숭하 였습니다.]
[성장 재능이 초월적인 존재입니 다. 모든 스테이터스 +12]
스테이터스 창에 어느 정도 익숙 해진 만큼 서준이 당황 대신 지금 의 성장에 관하여 냉철하게 판단을 내리며 다음 전투를 위한 계획을 재빠르게 그려 가고 있던 순간이었
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있는 김도현 이 시야에 들어왔다.
김도현을 바라보고 있는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처음 봤을 때보다 표정이 훨씬 좋아지셨네요.”
겉치레식의 인사가 아니었다.
다시 마주한 김도현의 얼굴에는 더 이상 어두운 그늘과 고민이 존재치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니거 든요.”
비록 몸은 넝마가 되어 있었지만 김도현의 입가로 기분 좋은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도현을 비롯한 세 사람은 허리 를 기역 자로 꺾어 가며 감사의 인 사를 표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우선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까, 감사의 인사보다는 친구분이랑 시민들의 구조를 우선시해 주셨으 면 합니다.”
대화를 마친 서준이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가려 할 때였다.
뒤에서 들려온 김도현의 말이 서준의 발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이어서는 손에 차고 있던 건틀렛 을 내던진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라도 써 주세요!”
서준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 는 건틀렛을 낚아채자 눈앞에 반투
명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풀 메탈 페인 건틀렛]
둥급 : C
분류 : 반영구 아이템
기본에 충실한 수준 있는 대장장 이, 티르칸이 만든 건틀렛입니다.
마정석을 첨가해 제작했지만, 별 다른 능력을 부여하지 않고 오직 내구도에 중점을 둔 무기로 단단하 기로는 최상급의 수준을 자랑합니 다.
“마정석으로 제작한 무기인 만큼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서준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 랐네.’
아이템, 아티팩트라는 것이 존재 한다는 것은 인터넷을 통하여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되니 기분이 묘했 다.
‘신기하긴 하네.’
처음 능력치를 볼 때도 그랬지만 이 시스템이란 것은 과거에 했었던 게임들과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았
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아무것 도 끼고 있지 않던 맨손과 비교한 다면 상당한 전력의 상승이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해진다는 것은 곧 구출 이 수월해진다는 말이었다.
“같은 각성자로서 부끄러운 부탁 인 것은 알지만, 부디 시민들을 부 탁드립니다.”
그 말을 뱉고 있는 김도현의 눈 동자에는 열의가 어려 있었다.
서준은 마다 않고 쥐고 있던 건 틀렛을 손에 착용하며 말했다.
“고생하셨으니 좀 쉬시고, 뒤는 저에게 맡겨 주세요.”
마지막으로 김도현을 향해 웃음 을 보인 서준은 얼마 가지 않아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서준은 게이트가 생성될 때의 기 억을 더듬어 보았다.
‘열두 명.’
다행히도 게이트가 열리던 때의 감각이 기이했던 만큼 내부로 빨려 들어간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히 기 억하고 있었다.
‘이제 여섯 명 구했어.’
그간 분주히 움직인 덕분에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지만, 모두를 구한 것은 아니었다.
아까 전, 협회의 각성자들이 구 조해 낸 이들까지 합쳐서 열 명.
아직 두 명이나 남아 있다는 것 이었다.
각성자들의 존재 이유는 단순히 지구로 건너온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게이트 내부의 생태계를 확인 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하고, 종국에는 차원 유지 장치인 차원의 핵을 부 스고 게이트를 닫는 것도 주목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서준은 지금 차원의 핵을 부술 수는 없었다.
유지 장치인 차원의 핵을 부순다 는 것은, 세계의 멸망이 시작된다 는 것이었다.
멸망하는 세계, 혼돈의 세상 속 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출구를 찾아 탈출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서준이 게이트로 들어온 이유는 단순히 아이와의 약속이 아닌, 스 스로의 정의를 지키기 위함도 있었다.
즉, 사람들 모두를 구출하는 것 이 최우선의 목표였다.
다행히도 퍼뜨린 기에 마지막 두 사람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곧장 발을 놀리며 기운이 느껴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덕에 금세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 두 명.
그리고 그 앞에는 서준이 상대했 던 워 베어 한 마리가 인접해 있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두 사람은 겁먹 은 채로 굳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나뭇가 지를 몽둥이 삼아서 워 베어에게 필사적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다행이야, 판단이 좋았어.’
서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앞에서 보았듯, 워 베어는 각성 자들도 버거워하는 몬스터.
일반인 사내 둘이 몽둥이 정도를
들었다고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만 무했다.
운이 좋게도 워 베어는 일반적인 몬스터들과 달리 살아 있는 먹이를 섭취하기 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서준은 두 사내의 용기와 워 베 어의 습성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신속하게 앞으로 달려 나가, 등 지고 선 워 베어의 정수리를 향해 팔을 내뻗었다.
쾅-!
서준의 주먹이 워 베어의 두개골 을 쩌억- 하고 쪼개 내며 단숨에
관통하자 뇌가 꿰뚫린 워 베어의 몸이 지면으로 쓰러졌다.
놀란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각성자, 한서준입니다. 안심하세 요.”
압도적인 무용에 사람들의 얼굴 에 안도가 스쳐 지나갔다.
하소연할 곳이 없었을 뿐이지 엄 청난 공포가 그들을 옭매고 있었을 것이었다.
남은 한 마리 워 베어는 서준을 보고 잔뜩 경계를 하고 있었다.
함께 포식자로 군림해 왔던 동족 을 일격에 절명시켰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서준은 씨익- 웃으며 건틀렛을 매만졌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게 단단하 네.’
설명만으로 봤을 때는 잘 몰랐는 데 그간 겪은 워 베어들과의 전투 로 건틀렛의 능력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구성만 보자면 중원 대륙에서 도 명장급이 만든 수준으로 홀륭 해.’
사람들을 구출하는 동안 워 베어 를 사냥하며 상승한 레벨, 스테이
터스도 상당히 많았다.
순간,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정도로 강해졌다면……
이전처럼 굳이 보법을 활용하며 복잡하게 싸울 필요가 없었다.
서준이 건틀렛에 기를 응집시키 며 주먹을 앞으로 내뻗었다.
일직선, 아주 단순한 공격 방식 이었기에 워 베어도 앞발을 들이밀 며 서준의 공격을 받아쳤다.
크아앙-!
오른발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인 워 베어가 비명을 내질렀다.
서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템빨이 좋긴 좋네.’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내지 르고 있는 워 베어의 머리통을 터 뜨리는 순간, 알림음이 들려왔다.
띵-!
[레벨이 올랐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워 베어를 처치했습니다!]
[칭호, 곰 학살자를 획득합니다.]
[착용 중인 칭호가 존재하지 않 으므로 습득한 ‘곰 학살자’ 칭호가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곰 학살자]
곰 개체의 몬스터를 상대할 시 모든 능력치 +10% 상숭.
‘좋았어!’
주먹을 꽈악- 움켜쥐며 기쁨을 표한서준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바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무인으로서 강해진다는 것은 기 쁜 일이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