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권 9화
9 화
[7번 응시생, 한서준 입장 확인 되었습니다.]
[60초 후 펜릴이 생성됩니다. 전 투를 대비하십시오.]
[59…… 58…….]
시간을 카운트하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을 들으며 서준은 눈을 감았다.
‘실전.’
수없이 겪어 왔고, 당당히 승리 를 쟁취해 낼 자신이 있었지만 긴 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물며 단순한 합격을 원하는 것 도 아니었다.
‘모두가 놀랄 수 있을 정도의 최 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해.’
긴장감이 고조되며 귓전에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심장이 세차게 날뛰었다.
쿵 쿠 쿵!
그렇다고 부담감에 짓눌려서 근 육에 필요 이상의 힘을 불어넣으며 움직임이 굳어지는 실수를 벌이지 는 않는다.
‘적당하게.’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긴장은 너무 과해서도 덜해서도 안 되었다.
두 가지의 감정을 적절하게 맞추 며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수없이 해 왔던 만큼 조절이 어렵지는 않았다.
심장 박동을 귀 너머로 보내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며 감정들을 덜어 내었다.
세차게 날뛰던 심장 소리가 서서 히 잦아들었고, 몸에 차오른 적당 한 긴장감이 최고의 컨디션을 이끌 어 내었다.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딱 이 정도가 좋아.’
서준은 호흡을 깊게 빨아들이며
천마신공을 일으켰다.
이윽고 깊게 빨아들이던 호흡을 다시 내뱉으며 눈을 뜬 서준의 눈 동자에는 무수히 많은 전투와 역경 을 딛고 승리를 쟁취해 낸 천마의 투기가 번뜩이며 어린다.
[3, 2, 1.]
[전투가 시작됩니다!]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시작을 알 렸다.
팟-!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서준을 바 라보며 펜릴이 날카로운 이빨을 들 이밀며 달려들었다.
코앞.
지근거리에 있었지만 서준의 눈 동자에 긴장감, 공포와 같은 감정 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느려.’
더불어, 직선적이기까지 했다.
이런 공격은 서준에게 아무런 위 협을 가할 수 없었다.
가볍게 발을 반보 움직이는 것만 으로 공격을 피해 낼 수 있는 간단 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소기의 목적이 있는 만큼 그런 간단한 움직임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화려하면서도 확실하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리에 매화 난만보의 묘리가 펼쳐진다.
‘낙화(落花).’
홑날리듯이 움직이는 서준의 육 체가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펜릴의
시야를 뒤흔들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펜릴이 나 아가야 할 곳을 잃어 방황하고 있 는 순간, 서준은 벽력권장의 묘리 가 담긴 주먹을 내뻗었다.
‘섬아 (0W).’
뻗어진 주먹이 펜릴의 머리를 강 타하자 벽력권장의 묘리에 담긴 내 력이 벼락처럼 퍼져 나갔다.
펜릴의 짧은 털들이 전기가 오른 것처럼 바짝 서 있는 것이 서준의 눈에는 선명히 들어왔다.
직후, 콰르릉! 하는 소리가 서준 의 귓가에 들려왔다.
펜릴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 을 벌벌 떨고 있었지만 목숨을 잃 은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벽력권장의 주 능력은 적을 사살 하는 것이 아닌, 감각기관을 일시 적으로 마비시키는 것에 있었으니 말이다.
몸 안에 퍼진 서준의 내력으로 인하여 펜릴은 손가락 하나 꼼짝하 지 못하고 굳은 채로 서 있었다.
서준은 이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 이, 곧장 왼쪽 다리를 축 삼아 가 며 허리를 비틀었다.
‘벽력퇴각, 뇌곤(雷根).’
마네킹처럼 굳어 있는 펜릴을 향 해 서준이 허리에 반동을 주며, 오 른 다리를 들어 올렸다.
높게 들어 올린 다리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마네킹처럼 굳어 있는 펜릴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쾅-!
이번에는 시험장 전체가 울릴 정
도로 거대한 파과(破果)의 울려 퍼졌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머리가 곤죽이 되어 버린 사체가 경련을 일으키더니 축 늘어진다.
[펜릴 소멸 확인!]
[전투 종료.]
소리가
정도로 펜릴의 그대로
끝을 알리는 기계음에 시험장에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넋이 나간 채로 놀라서 입 을 벌리고만 있었다.
유일한 소리라고는 총감독관인 레잉가가 쥐고 있던 펜을 떨어뜨리 는 소리뿐이었다.
‘이게 응시생의 전투라고?’
레잉가는 방금 전, 서준의 전투 에 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순히 뛰어난 육체를 가졌다거 나, 많은 양의 기를 가진 것이 아 니었다.
‘말도 안 될 정도의 기백이군.’
살기를 내뿜는 몬스터를 지근거 리에서 마주하면서도 움츠러드는 기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이후의 전투에서도 흐트 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비록 만들어진 가상의 몬스터라 고는 하였지만 숨통을 끊는 과정에서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이는 지금 당장 현역 각성자들, 그중에서도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D등급 이상의 자격이 부여되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인간들보다 뛰어난 육체를 가진
수인족 중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려 유망주라고 불리는 이들도 서준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애초에 유망주 따위와 비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게, 정말 내가 알던 인간이라 고?’
거대한 충격이 레잉가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허, 하고 실소를 터뜨린 레잉가 가 한서준을 쳐다보았다.
‘설마…… 지구에서 제자로 거둬 들이고 싶은 이를 만날 줄이야.’
왕명에 의하여 억지로 떠안게 된 교류자란 직책을 수행하며 이런 욕 심이 생기게 될 줄은 몰랐다.
모두가 놀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차원 아니마에서도 가장 강인한 전사로 불리며, 수많은 수인족이 그 가르침을 받길 바라는 레잉가가 이런 생각을 했다 는 것 자체로 말이다.
그런 레잉가와 응시생들의 감탄 어린 시선을 느낀 서준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해냈다.’
주변의 반응 덕분에 단순한 직감 이 아닌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아주 화려하게 성공해 냈어.’
처음 목표로 잡았던 세상을 뒤집 어 놓은 수준일 것이었다.
1차 목적지에 도달해 냈다는 기 분 좋은 현실이 서준을 웃게 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크게 뛰며 기분 좋은 고 양감이 몸에 찌르르- 울려 퍼졌다.
서준이 한껏 감정을 즐기고 있는 순간, 레잉가의 입에서 우렁찬 소 리가 터져 나왔다.
“합격! 7번 응시생 한서준 합 격!”
레잉가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 을 차린 응시생들도 감탄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지금 뭐야?”
“응시생이 E급 몬스터인 펜릴을 사냥했다고?”
“미X, 존나 멋있어.”
서준은 응시생들이 쏟아 내는 얼 빠진 감탄을 들어가며 천천히 시험 장 아래로 내려왔다.
각성자 협회 협회장실.
그 안에서 협회장, 강석호를 비 롯한 비서실장, 여당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통령님께서도 협회장님의 후 계를 최대한 빨리 정해 달라고 하 십니다.”
“어허, 그게 무슨 제비뽑기처럼 쉽게 정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손가 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 까.”
서서히 언성이 높아지고 있는 일 촉즉발의 상황에 강석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너무 흥분하셨습니 다. 조금 진정들 하시고.”
강석호는 얼굴이 붉어진 고위 인 사들이 애써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후 고개를 주억이며 뒷말을 이어갔 다.
“예, 여러분의 말이 전부 옳지 요.”
높은 등급의 스킬인 만큼 전수를 하기 위해서는 노고가 필요했다.
강석호가 걸어왔던 고된 길을 생 각하면 나름 재능이 있다는 A급 각성자를 데리고 시작한다 할지라 도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 고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긴 전수 시간도 걸림돌이 었지만 각성자란 직업은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후계 를 정하지 못하여 우물쭈물하고 있 는 상황에서 강석호가 갑작스레 사 망을 하는 것으로 협회장의 스킬들 이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장될 수 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사람을 고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지금 한국의 상황을 알지
않습니까.”
지금 길드들의 힘은 군대, 아니 국가와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닐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협회의 발언에 힘이 실릴 수 있는 것은 각 성자들의 도덕심이나 국가기관이라 는 명목이 아닌 s등급의 각성자, 그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협회장, 강석호 라는 가진 힘과 명성 덕분이었다.
후대 협회장의 힘이 약해지면 협 회의 발언에 실리는 ‘힘’은 지금과
는 상이하게 될 것이었다.
“지금의 저와 비슷한 힘으로라도 성장할 수 있는 인재를 제대로 골 라야지만 후세에 탈이 없을 겁니 다.”
S등급 각성자 중에서도 한 손가 락에 꼽을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는 인재.
당연하지만 그에 적합한 인재를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신중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만, 스킬 전수 시간 이 있는 만큼 이제는 조금 관대하
게라도 후대를 정하셔야 할 때입니 다.”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선별했다 가는 길드, 아니면 타국에 협회장 님의 스킬이 유출될 수도 있는 노 릇 아닙니까?”
다시금 체면 높은 양반들이 열띤 토론에 들어가려고 슬슬 시동을 걸 고 있었다.
그 행태에 다시 중재하기 위해 강석호가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똑똑-!
갑작스레 들려온 노크 소리에 강 석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후계를 논의하는 회의를 주재할 시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 했는 데.’
석호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 다.
“이 시간에 절대 협회장실 근처 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 는 것이 아닐 텐데?”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지레 겁을 먹을 만도 했지만, 문 너머의 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아 셔야 할 소식이 있습니다.”
순간, 석호의 얼굴에 그늘이 졌 다.
협회 내에서 이처럼 굵은 동굴 목소리를 가진 이는 안전 관리 본 부장, 안채형뿐이었다.
그리고 직책에서도 알 수 있다시 피 안채형은 협회 내에서도 상당한 중책들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정보대로 빌런 놈들이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건가?”
“빌런들에 관한 보고는 아닙니 다.”
석호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크고작은 일들이 떠올랐지만, 이 시간에, 본부장급이 직접 보고 를 올릴 필요는 없었다.
때문에 석호는 끝내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럼 무슨 일 때문에 온 건가?”
“신입 각성자 문제 때문에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신입 각성자?”
꼬리를 무는 의문에 석호의 고개 가 갸우뚱하려던 찰나, 채형이 재 빨리 대답을 내뱉었다.
“레잉가의 시험을 정식으로 통과 했다고 합니다.”
석호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동 그래졌다.
대격변 이후 지구에 모습을 드러
낸 이계종들은 인간들과 생김새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종족 특성이라 불리는 각기 다른 장,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꼽자면 드워프들은 뛰어난 손재주, 엘프들은 높은 정 령 친화력, 수인족은 강인한 육체 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기 에 각기 방향성이 갈리긴 하지만 기준점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수인족은 날 때부터 강인한 육체를 가진 만
큼 일반적인 전투에서는 단연 최고 라고 손꼽히는 종족이란 점이었다.
그렇기에 수인족의 시험 과제는 평범한 지구인, 인간이 감당하기에 는 너무나도 험난한 난도였다.
처음 수인족이 감독관직을 맡았 을 때는 불합리한 시험 난도라며 민원이 빗발치게 들어왔을 정도였 다.
오죽했으면, 협회가 수인족에게 부탁을 하여 기수 중 가장 잘한 이 들 1〜2명을 합격시켜 주기로 입을 맞춰 뒀겠는가.
그런데 그런 고난도의 수인족, 레잉가의 시험을 정식적으로 통과 한 이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 점은 강석호의 흥미를 자극하 기에 충분했다.
“들어와서 자세히 말해 보게나.”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