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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신을 알라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너희는 그곳에 있는 쓰레기들과는 뭔가 달라.”
“그건 네 착각이야. 난 말이야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사까지 한 놈이야. 그런 내가 그들과 뭐가 다르겠어?”
강신이 이렇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는 이유는 전에 나왔듯 이곳에서 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정떨어지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넌 네가 한 일이 잘못 됐다는 것을 알고 지금처럼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나쁜 일을 저질러도 후회는커녕 그 일이 훈장인 냥 자랑하고 다녀. 그러니까 너와 그들은 완전히 달라.”
“내가 후회를 한다고? 미안하지만 난 내가 한 일을 절대 후회하지 않아. 그땐 그게 최선이었고 지금 그 상황이 온다 해도 난 그때와 똑같이 할 거야.”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이런 쪽으론 완전히 바보구나?”
“너한테 바보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쌍욕을 듣는 느낌이군.”
“뭐! 이 누나가 좋은 이야기를 해 줬는데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
“내가 너보다 4살이나 더 많은데 누가 누나야?”
“나이는 네가 더 많지만 정신연령은 내가 훨씬 더 높으니 내가 누나지.”
“내 정신 연령이 낮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피망을 가리는 네 정신연령이 나보다 많다는 건 인정할 수 없군.”
“그. 그걸 어떻게?”
“가게 앞집 할머니한테 듣기론 카일 할아버지는 피망을 아주 좋아하신다더군. 그런데 그동안 식탁에 피망이 올라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피망이 비싼 것도 아닌데 말이야. 거기다 너 잘 때 아직 애처럼 곰 인형 안고 자지?”
“너 설마 내가 잘 때 내 방에 들어 온 거야?”
“볼 것도 없는데 가서 뭐해.”
“이게 정말... 아무튼 그럼 어떻게 안건데?”
“그 인형 빨래를 자주 하더군. 그냥 장식용이었다면 그렇게 자주 빨 필요 없었겠지. 또 너 애처럼 곰이 그려진 속옷”
퍽.
‘곰이 그려진 속옷’이란 말을 듣자마자 카렌은 강신의 얼굴에다 주먹을 날렸고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강신은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너 내 속옷은 언제 훔쳐 본거야?”
“훔쳐보긴 누가 훔쳐봐! 빨랫줄에 걸려있어서 저절로 보인거지.”
“이익. 그냥 귀여운 곰을 좋아하는 것뿐인데 뭐가 애 같아?”
“나보다 정신연령이 높았다면 사창가에 있는 여자들처럼 야시시한 속옷을 입어야지.”
“너 설마 거기 가봤어?”
“어.”
“이 변태. 불결한 놈. 꼴통.”
카렌은 삐진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때 쯤 마을에 도착한 강신과 카렌은 저녁식사를 하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자정이 가까워질 때쯤 자고 있는 강신의 방에 누군가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강신은 자신이 나무인데 매미 한 마리가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꿈을 꾸다 깼다.
“음. 거지같은 꿈이었어. 그런데 왜 아직도 매미가 붙어 있는 느낌이...”
뭔가 붙어 있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 몸 쪽을 본 강신은 자신을 끌어안은 상태로 자고 있는 카렌을 볼 수 있었다.
곰 인형이 없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카렌이 늦은 밤 강신의 방에 몰래 들어왔던 것이다.
“야. 그만 자고 일어나봐.”
“으음. 뭐야?”
“뭐긴. 지금 네가 누워있는 침대의 주인이지. 너 왜 여기 있냐?”
“몰라. 졸려. 더 잘래.”
“난 심부름 가야 하니까 더 잘 거면 이거 놓고 자라.”
강신의 냉정한 말투에 카렌은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이 바보. 멍청이.”
카렌이 그렇게 소리치곤 밖으로 나가자 강신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휴~. 참느라고 혼났네. 갑자기 왜 심장이 요동을 치는 거지? 설마 저 녀석한테...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안 돼. 난 조만간 이 세상을 떠나거나 죽을 몸이야. 괜히 한 순간 감정으로 나 같은 쓰레기를 하나 더 만들 순 없지.”
강신은 그렇게 맘을 다잡으며 출발할 준비를 했다.
“흑운. 네가 보기엔 지금 저 녀석 한테 부족한 게 뭐 같아?”
“게임을 이겨야 하는 목표인 것 같습니다.”
“아니야. 지금 저 녀석한테 부족한 건 질 좋은 장비야. 저런 쓰레기보다 못한 놈은 목표가 생긴다 해도 별반 달라질게 없어. 그러니 노력 없이도 강해질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해. 어스가 고른 녀석이 특이한 직업을 가졌다고 하니 그걸 이용해야겠다.”
강신을 고른 여신은 그렇게 말하곤 그 자리에서 사라져 땅의 신이 있는 곳에 나타나더니 땅의 신에게 말했다.
“야. 어스. 나랑 거래 좀 하자.”
“어둠의 신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 네가 한동안 맞질 않아서 귀가 막혔나보구나.”
여신은 그렇게 말하면서 땅의 신에게 로우킥을 갈겼다.
로우킥에 맞은 땅의 신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는데 여신은 쓰러진 땅의 신을 신명나게 밟으면서 말했다.
“이 누나가 말하면 한 번에 알아들어야지. 감히 되물어? 요즘 그 녀석 때문에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는데 너 잘 걸렸다.”
땅의 신을 1시간 정도 밟은 여신은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휴~. 이제 좀 풀리네.”
여신이 밟는 것을 멈추자 땅의 신이 바로 일어나더니 말했다.
“제발 저 좀 그만 괴롭히세요. 그리고 또 무슨 거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다른 신들한테 욕먹기 싫으니 다른 신한테 가 보세요.”
“늘 생각하는 건데 넌 왜 자꾸 매를 버냐?”
퍽.
여신이 자신을 걷어 차 쓰러뜨리고 다시 밟으려고 하자 땅의 신은 방어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알았어요. 일단 어떤 거래인지나 들어 볼게요.”
그 말에 여신은 밟으려던 걸 그만 두고 말했다.
“잘 생각했어. 너한테도 손해는 아닐 거야.”
강신과 카렌은 여행을 시작한 다음날 저녁때쯤 목적지가 있는 늪에 도착했다.
카일이 찾는 물건은 늪에 있는 한 동굴에 있는데 그날은 너무 늦었기 때문에 자고 다음 날 아침에 가기로 했다.
덕분에 둘은 그날 노숙을 하게 됐는데 강신이 잠들기 직전 카렌이 강신 옆에 오더니 강신을 끌어안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강신의 물음에 카렌은 수줍은 듯 답했다.
“무서워서.”
“뭐가 무서워?”
“나 밖에서 자는 건 처음이란 말이야. 그리고 여긴 곰돌이도 없잖아.”
“그래서 지금 내가 곰 인형 대신이라는 거야?”
“응.”
“오늘 아침도 내가 곰 인형 대신이었고?”
“응.”
“이럴 거였으면 곰 인형을 가지고 오던가.”
“나도 곰돌이가 없는 게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지. 아까 밖에서 자는 게 처음이라고 했잖아.”
“에휴~. 잠깐 기다려봐.”
강신은 짐 속에 있는 옷가지를 꺼내 뭉치더니 카렌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 곰 인형 대신 이거 껴안고 자.”
“이건 그냥 옷이잖아.”
“따지고 보면 곰 인형도 이거랑 비슷한 거다. 그냥 애들이 좋아할 만한 모양만 냈을 뿐이지.”
그 말에 카렌은 못마땅한 얼굴로 강신이 건넨 옷 뭉치를 끌어안은 채 자리에 누웠고 강신도 자기 자리에 가 누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카렌이 다시 강신을 끌어안았다.
“또 왜?”
“그건 안고 있어도 안심이 안 돼.”
“그럼 난 안심이 되냐?”
“어. 이상하게 널 안고 있으면 곰돌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안심이 돼.”
“너 지금 네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줄 알아? 내가 널 확 덮쳐버릴지도 몰라.”
“날 여자로 생각하긴 하나보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던가.”
그 말에 강신은 갑자기 흥분한 듯 자신을 안고 있는 카렌을 밀어내더니 위로 올라가 옷을 벗기려고 했다.
그런데 카렌은 눈만 꼭 감은 채 전혀 반항을 하지 않았다.
카렌의 상의를 벗기던 강신은 갑자기 손을 멈추고 카렌의 위에서 내려오더니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난 조만간 이곳을 떠날 몸이야. 그러니까 만약 나한테 마음이 있다면 이만 접어.”
카렌은 살짝 엉망이 된 옷을 정리하면서 물었다.
“왜 갑자기 그만 둔거야?”
“좀 전에도 말했잖아. 난 조만간 이곳을 떠날 몸이라고.”
“나도 같이 가면 되지.”
“넌 갈 수 없는 곳이야.”
“그럼 안 가면 되잖아. 그냥 지금처럼 같이 살면 안 돼?”
“난 지금 네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에 휘말려 있어. 그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몰라. 괜히 내 옆에 있다간 너도 죽을 수 있어.”
“평생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뒷골목에서 자란 나야. 그런 내가 죽는 걸 무서워할 것 같아?”
“내가 휘말려 있는 일은 뒷골목이랑은 달라. 카일 할아버지가 뒷골목 거물 중 하나라서 그동안 널 지켜주셨지만 날 죽이려는 자들은 카일 할아버지도 막지 못할 정도로 강한 자들이야.”
“그럼 누가 겁먹을 줄 알아? 아무리 그래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카렌은 그렇게 말 하면서 돌아 누워있는 강신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강신은 돌아누운 상태로 자신의 등을 끌어안은 카렌에게 말했다.
“네 마음이야 네 것이니까 난 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둬. 내가 너한테 마음을 여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럼 열게 만들면 되지. 두고 봐. 내가 널 꼭 내 남자로 만들어 버릴 태니까.”
그 후로 아침이 될 때까지 둘은 아무 대화도 없었지만 둘은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사실 강신도 카렌이 마음에 있었지만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받은 고통으로 인해 누군가를 쉽게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까 카렌이 ‘그럼 안 가면 되잖아.’라고 했을 때 신들의 게임에서 우승을 해서 원래 세계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으면 된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잘 생각해 보니 자신이 우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신들이 뽑은 자들은 자신을 제외하곤 전부 엄청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이길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확실한 건 만나봐야 알겠지만 전에 만난 프라이는 실력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은 강신이 감히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다른 자들도 전부 그런 아이템을 한 개 이상 가지고 있을 텐데 현재 자신에게 있는 건 하루에 증폭을 10번 보호해 주는 목걸이와 프라이에게 빌린 글라시스가 다였다.
거기다 글라시스는 언젠가 프라이에게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강신의 자신감은 바닥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강신이 처음부터 이렇게 자신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강신이 이렇게 자신감을 잃은 건 타미홀 시로 오면서 글라시스가 아닌 일반 검으로 돌연변이 몬스터를 상대하고 부터였다.
일반 검으로 몬스터와 싸우면서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왜 유명해 졌는지 느낀 강신은 증폭에 대한 믿음까지 시들해졌다.
아무리 증폭을 한다 해도 글라시스 같은 갓급 아이템을 이기긴 힘들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물론 강신도 갓급 아이템을 구해서 증폭을 한다면 그들을 이길 수 있지만 이곳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 무기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렇다보니 강신은 자신이 죽을 거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둘은 전날 밤에 있었던 일로 어색해서인지 늪에 있는 동굴까지 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굴 입구에 도착한 강신은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깐. 기다려.”
“왜?”
“동굴 안에서 엄청난 양의 마기가 느껴져.”
강신은 동굴 입구에서 엄청난 포근함을 느낀 것이었다.
“마기? 설마 안에 흑마법사가 있는 거야?”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아니, 이 정도의 포근함이면 마족일 수도 있어.”
“마족? 우리 그냥 돌아가자.”
“그럼 카일 할아버지가 부탁한 물건은?”
“그건 할아버지가 우리 둘을 여행 보내 주려고 그런 거니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구해갈 필요 없어.”
카일은 손녀의 사랑을 응원해 주는 쿨 한 할아버지였다.
물론 강신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도와준 거지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자였다면 절대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그런 거였구나. 그럼 그냥 돌아가자.”
하지만 둘은 한 발 늦어 버렸다.
“오랜만에 온 손님인데 그냥 가면 내가 섭하지.”
뭔가가 갈리는 듯 한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들린 위쪽을 쳐다본 강신과 카렌은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설마 리치인가?”
강신이 갈리는 목소리와 검은 로브를 보고 그렇게 묻자 공중에 떠 있는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말했다.
“클클클클. 마기와 목소리로 찍은 건가? 맞긴 맞았지만 난 그냥 리치가 아니라 아크 리치다.”
리치는 뼈만 남아있는 해골이지만 이지를 가지고 있고 7클래스 이상의 마법을 할 수 있는 언데드로 6클래스 이상의 마법사가 영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되는 경우가 많았다.
리치의 특징으로는 목숨이 담긴 라이프 베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몸이 완전히 파괴돼도 다시 살아난다.
아크 리치는 8클래스 마스터인 마법사가 마기를 이용해 억지로 9클래스가 되려다 가끔 성공하면서 만들어 지는데 9클래스로 올라간 대다 영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천년 이상 된 것들은 드래곤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물론 이길 수 있는 건 아니고 잠시 상대만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