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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강신은 현재 대런과 함께 타미홀의 뒷골목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전리품을 처리한다면서 왜 이런 곳으로 온 겁니까?”
“거래처를 뚫으려고.”
“거래처라니요?”
“네 연구가 끝나면 그때부터 증폭서와 각종 스크롤을 팔기로 했잖아. 문제는 증폭서와 스크롤이 마법 길드에서 파는 것 말고는 전부 불법이라는 거지. 덕분에 시중에 내놓고 팔수는 없고 불법인 줄 알면서도 우리 물건을 사줄 거래처가 필요해. 하지만 불법 거래처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야. 불법 거래를 하다가 걸리면 장사는 물론이고 목숨도 위험해지니까 아무나하고 거래를 하지 않는 거지. 때문에 불법 거래를 하기 위해선 인맥이 중요하지만 우린 그럴만한 인맥도 없고. 해서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인맥을 쌓고 그 인맥을 이용해 거래처를 뚫으려는 거지.”
“갑자기 인맥은 또 뭡니까?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사귀려고요?”
“어. 하지만 아무나 사귀는 건 아니고 불법 거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사귈 거야.”
“예? 불법 거래를 하려면 불법 거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랑 사귀어야죠.”
“딱 너 같은 놈이 사기를 당하지.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할 때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친한 척을 하거나 네 편인 척 접근해오면 무조건 무시해버려. 인간은 뭔가 원하는 게 없으면 절대 친절해지지 않거든. 특히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자들은 가장 조심해야 돼. 그런 자들은 타인이 자신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거나, 뭔가 꾸미느라 사전에 조사를 하고 온 거니까. 후자는 사기꾼이 확실하고 전자는 사기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위험해. 난 그런 자들을 잠재적 사기꾼이라고 부르지.”
“그럼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 말고는 절대 믿으면 안 되겠네요?”
“아니. 세상 누구도 믿으면 안 돼. 그 누구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 되고.”
“자기 자신도 믿지 말라니. 그건 좀 억지 아닌가요?”
“억지? 인간은 너무 감성적인 동물이라 감성 때문에 이성이 마비될 수도 있어. 아무리 천재라도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되는데 때문에 사기꾼 중엔 미남, 미녀가 많지.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조차 믿지 말고 이성이 마비될 때를 항상 대비해야 돼. 그래서 난 이 돌멩이를 항상 가지고 다니지.”
“돌멩이는 왜요?”
“이성이 마비되려고 하면 들어서 머리를 찍으려고.”
“예? 농담이시죠? 설마 진짜로”
그때 강신이 대런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우리가 찾던 자가 온 것 같으니 따라와.”
강신은 그렇게 말한 후 좀 전에 나타나 뒷골목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슬쩍슬쩍 훔쳐보고 다니는 자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모르는 자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는 경계하며 물었다.
“나 한테 볼일 있나?”
그 물음에 강신은 어색한 척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저희가 여긴 처음이라 뭐 좀 물어보고 싶은데. 얼굴 팔린 자들이 가는 술집이 어디 있나요?”
얼굴이 팔렸다는 건 수배가 내려졌다는 것을 다르게 말하는 것으로 팔찌의 자동 통역 덕분에 강신과 대화하는 자는 바로 알아들었다.
“생긴 건 안 그렇게 생겼는데. 혹시 들개들 아니야?”
들개는 현상금 사냥꾼을 다르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자 굴에 스스로 들어가려는 들개가 어디 있겠습니까?”
강신은 현상수배범들을 사자로 비유해 들개로 비유한 현상금 사냥꾼을 낮추는 것으로 자신이 현상금 사냥꾼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했다.
“음. 그렇긴 한데 가끔 굶주림에 미친 들개나, 들개의 탈을 쓴 괴물들이 사자 굴로 들어갈 때가 있어서 말이지.”
“그럼 이걸 한 번 봐 주시겠습니까?”
강신은 가방을 열어 몬스터를 잡고 얻은 전리품을 보여주었고 잠시 그 물건들을 훑어본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부 몬스터를 잡고 얻은 것들인가? 그것들을 처분하러 여기까지 왔나보군. 이제 들개가 아니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난 얼굴 팔린 자들이 가는 술집을 모르는데.”
그 말에 강신은 품에서 1골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런. 이제야 생각이 나는군. 이 뒤쪽에 있는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있을 텐데 그 중에서 상의 단추를 2개만 잠근 아이한테 물어봐.”
“고맙습니다.”
강신이 인사를 하고 그가 알려준 대로 골목으로 가자 대런이 뒤를 따르며 말했다.
“괜히 1골드만 버렸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이 골목으로 들어와서 아무 아이한테 물어 봤으면 됐을 것을.”
“방금 그자에게 준 1골드는 이곳으로 들어오기 위한 통행료니까 너무 아까워하지 마.”
“설마 이런 골목에 들어오는 대도 통행료를 내야 하는 거예요?”
“이곳은 타미홀 안에 있는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통행료를 내는 게 당연하지. 거기다 골목에 들어설 때 골목 입구에 있던 가게 이름 기억나?”
“아니요.”
“이런 곳에 올 때는 주위를 잘 살펴야 해. 주위 사물이 전부 암호나 마찬가지니까. 이 벽에 있는 낙서도 아이들이 장난 친 것 같지만 사실 암호나 마찬가지야.”
벽에는 화살표로 왼쪽을 가리키며 오른쪽이라 써져 있는 낙서가 있었다.
“이건 진짜 애들 장난 같은데요. 너무 앞서 나가는 거 아니에요?”
“그거야 오른쪽으로 가보면 알게 되겠지.”
“이 낙서가 진짜 암호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강신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왼쪽이 아닌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갔고 대런은 어쩔 수 없이 강신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오른쪽엔 아이들은 없고 여인들이 몸을 파는 사창가가 나왔다.
“그것 봐요. 그거 그냥 낙서라니까. 다시 돌아가죠.”
하지만 강신이 묵묵히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바람에 대런은 붉어진 얼굴로 강신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런의 얼굴이 붉어진 이유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주위에 있는 여인들이 잠깐 들렸다 가라면서 하는 민망한 말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자 드디어 사창가가 끝나더니 약간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 공간에선 몇몇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강신은 그 아이들 중 단추를 두 개만 잠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가 맡고 있는 곳으로 안내 좀 해 주겠니?”
강신의 물음에 아이는 아무 대답 없이 손을 내밀었고 강신은 품에서 1실버를 꺼내 아이의 손바닥 위에 올려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1실버를 품에 넣더니 사방에 있는 골목 중 한 곳으로 들어갔고 강신은 그 아이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본 대런은 강신의 뒤를 따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안 거예요? 혹시 이곳에 와본 적 있어요?”
“전에 살던 곳에서도 장기를 팔기 위해 이런 곳에 한 번 와 봤거든. 괜히 장기만 때이고 시체로 버려질까봐 사전 조사 좀 했지. 물론 그때는 조사했던 게 별로 쓸모가 없었지만 이곳에선 쓸모가 있네.”
전생의 강신이 장기를 팔기 전 뒷골목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글을 올린 곳은 바로 판타지 소설 카페였다.
물론 그곳 말고 다른 곳에서도 알아 봤지만 강신이 원하는 내용은 거의 다 그 카페에서 얻을 수 있었다.
강신이 전생에서 유일하게 조언을 조언처럼 받아들이던 이 카페에선 사실 강신이 물어보는 것들이 너무 실상에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라 강신을 판타지 작가로 착각하고 판타지에 관한 내용으로 조언해 주었는데 강신은 그것을 현실에 빗대어 받아들였다.
그렇다보니 원하는 답은 얻었지만 실상 전생에선 쓸모가 없었는데 그것들이 이곳에선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강신의 말에 대런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물었다.
“애초에 이 골목은 어떻게 안 거죠? 거기다 아까 그자는 처음 보는 것 같던데 여기를 알려줄지 어떻게 알았고요? 또 그자에게 준 1골드랑 저 아이에게 준 1실버에도 무슨 뜻이 있는 건가요?”
“아까 내가 골목에 들어설 때 골목 입구에 있던 가게 이름을 물어봤지? 그 가게 이름은 1골드였어. 그리고 밑에는 작은 글씨로 1실버라고 적혀있었고. 그걸로 그 골목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라는 걸 알았지. 그러니까 그건 그냥 가게 이름이 아니라 이곳 통행료와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한 정보료를 입구에서 알려주는 거지. 그리고 아까 그자를 어떻게 알았냐고? 그건 그자의 행동 때문이야. 그자가 지나가면서 주위 사람들을 슬쩍슬쩍 쳐다보는 건 너도 봤지?”
“네. 그런데 그게 왜요?”
“일반 적으로 그런 자들은 소매치기일 확률이 높아. 주위 사람들을 슬쩍슬쩍 보는 건 적당한 먹이를 찾는 행동이거든. 이런 뒷골목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범죄와 관련된 자들이기 때문에 그자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전부 알고 있을 거야. 때문에 만약 그가 진짜 소매치기였다면 싸움이 났겠지. 하지만 싸움은커녕 사람들은 그가 자신을 볼 때마다 티 나지 않게 얼굴이 잘 보이도록 움직여주더라고. 그것으로 그자가 이곳을 관리하는 자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
“얼굴을 확인하는 게 왜요?”
“이곳은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뒷골목이야. 때문에 못 보던 얼굴이 들어오면 경계하지. 특히 이곳을 지배하는 자들은 그 경계가 더욱 심해. 만약 이곳에서 문제가 생겨 도시의 치안대가 들어오면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 태니까. 그렇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 뒷골목에 새로 들어왔는지 확인하지.”
“그럼 아까 그자가 이곳을 지배하는 자라는 거예요?”
“지배하는 자가 왜 직접 얼굴을 확인하고 다니겠냐? 그자는 그냥 심부름꾼이야. 이곳 사람들도 전부 그걸 알기 때문에 티 안나 협조하는 거고.”
“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긴 하지만 이제 좀 이해가 되네요.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아까 그자에게 갑자기 몬스터를 잡고 얻은 전리품을 보여준 건 왜 그런 거예요? 그자도 그걸 보고 우리를 믿어 준 것 같던데?”
“몬스터에게서 얻은 것들은 이곳보단 시중에 파는 게 더 비싸게 팔려. 그런데도 이런 물건을 들고 이곳에 왔다는 건 이곳에서 밖에 팔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거지. 특히 이 정도로 양이 많으면 그 만큼 시중에 파는 것에 비해 손해가 크다는 거니 그자도 믿어 준 거지.”
둘은 그렇게 대화를 하며 아이를 따라 골목을 이러 저리 돌다가 막다른 골목에 있는 출입문을 발견했다.
아이는 그 출입문이 보이자 아무 말 없이 뒤돌아갔다.
“나갈 때 방금 왔던 길을 거꾸로 가야겠네요. 아까 그 여자들이 있던 곳을 또 지나야 하는 건가?”
“이 술집은 입구에 불과한 것 같으니까 그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아요?”
“이곳은 범죄자들이 모인 곳이야. 그런 자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맨날 이런 길을 왔다 갔다 할까? 아마도 이 가게 안에 뒷골목의 인정을 받은 자들만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을 거야.”
강신은 그렇게 말하곤 가게 안으로 들어갔는데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술집이 아니라 돈 많은 자들이 가는 고급 바 같았다.
강신은 가게 안에 들어가자마자 주인으로 보이는 자에게 다가가 전리품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혹시 술값으로 이런 것도 되나요?”
“우린 그런 잡동사니는 취급하지 않으니까 저기 있는 8호실로 가보시오.”
“고맙소.”
강신은 그 말과 함께 1골드를 탁자 위에 올리더니 8호실로 갔다.
참고로 지금 강신이 쓰고 있는 돈은 돌연변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나온 전리품 중 상태가 떨어지는 것들을 오면서 들린 마을이나 도시에 팔고 번 돈이었다.
눈높이에 8이라 적혀있는 문 앞에 선 강신은 노크를 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금 목소리에 어울리는 덩치 좋은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제 방에 온 걸 보니 물건을 처분하려는 것 같은데 일단 물건부터 보죠.”
남자의 말에 강신은 가방에 있는 물건을 전부 꺼내지 않고 3개만 꺼냈다.
“음. 상태가 괜찮은 것들이니 다 합쳐서 한 40실버 정도 줄 수 있소.”
시중에서 팔면 60~80실버 까지 받을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강신은 거래처를 뚫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40실버와 까마귀의 깃털 하나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이 곳에 온 것을 환영하오. 4번방으로 가서 이걸 보여주시오.”
강신은 돈과 까마귀 깃털을 받고 4번방으로 가 노크를 했다.
그러자 아무 대답 없이 4번 방 문이 살짝 열렸고 강신은 그 열린 틈에다 까마귀 깃털을 들이밀었는데 갑자기 방 안에서 누군가 까마귀 깃털을 채 가곤 방문을 닫았다.
4번 방 문이 닫기고 잠시 기다리자 6번 방문이 열렸고 강신은 6번방으로 들어갔다.
6번방에는 외소 해 보이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 노인은 강신과 대런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문을 닫더니 한쪽 벽으로가 벽 사이 틈에다 뭔가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벽에 있던 비밀 문이 열리면서 계단이 나왔다.
노인은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 턱짓을 했고 강신과 대런은 조심히 캄캄한 계단을 내려갔다.
한 5분 정도 내려가자 문이 나왔는데 그 문을 열자 시장 같은 분위기에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드디어 진짜 뒷골목에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