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53화 (외전 완결) (653/653)

653화 (외전) 승천(2) (完)

* * *

상민이 새벽이라 이름 붙인 함선은 여러 개였다. 범선에도 붙였고, 전열함에도 붙였다. 이후엔 순양함과 전함에도 붙였고, 항공모함에도 붙였다.

더 이상 배가 필요 없는 시절이 오자 그는 이제 우주에 배를 만들었다.

이 새벽호는 지금껏 인류가 가진 그 어떠한 우주선보다도 가장 진보한 형태의 우주선이었다.

크기도 제일 컸다. 태양방패급은 아니라지만, 우주선 중에 이 정도로 큰 우주선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었다.

새벽호는 이번 임무의 목적지인 라―1지점을 오가는 한 달이 넘는 우주 항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론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 동안 항해도 가능했다.

거의 몇 년, 어쩌면 수십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에도 끄떡없게 설계되어 있었다.

물론 이는 인원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차피 지금 새벽호는 상민과 예진, 에이다 단 세 명만 탑승했다. 수십 년의 여행도 충분히 가능했다.

같이 올라온 나머지 인원들은 태양방패를 견인하는 다른 우주선, 수호 1호에 탑승했다. 이들은 같이 출발하지만, 따로 올 것이었다.

그리고 지구에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수호 1호의 존재만 알고 있었다. 새벽호는 몰랐다.

새벽호가 기존의 다른 우주선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추진 방식이었다. 추진 방식이 다르니, 외견도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 우주선은 아직도 전통적 연료분사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연료를 태워 높은 압력의 추진 기체를 만들고,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해 그 기체를 분사하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물론 연료분사 추진 방식은 전통적이면서도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고, 확실한 추진 방법이었다. 때문에 새벽호에도 연료분사 추진기관이 탑재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용일 뿐 주는 아니었다.

새벽호는 다른 방식을 채택했다. 크게 세 가지의 신기술이 모두 적용되어 있었다.

하나는 태양돛(Solar Sail)이었다.

거대한 금속 돛에 빛의 복사압을 받아 추진하는 형식의 돛으로, 막대한 질량을 차지하는 액체 연료를 이용하지 않는 형식이라 장거리 항해에 능했다.

빛만 많이 받을 수 있다면 이론상 엄청난 가속이 가능했다.

하지만 태양돛도 한계가 있었다. 일단 태양광의 복사압은 일반적으로 너무 약했다.

때문에 돛이 커져야 제 효율을 발휘했다. 허나 돛을 무한히 크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여명항천사가 대단한 기업이고, 고려 항공우주국이 엄청난 단체라 하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순 없었다. 바다 범선의 돛 크기가 유한하듯, 우주 범선의 돛 크기도 유한했다.

다만 새벽호는 돛의 종류와 개수를 늘렸다. 태양돛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돛을 설치했다.

전자기돛(Electric Sail)이라 불리는 이 돛은 항성의 양성자를 받아 전자기장을 생성해 추진하는 원리로 작동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돛이라기보다는 자기장을 받아들이는 철사에 가까웠다. 때문에 태양돛보다는 훨씬 더 크게, 멀리 펼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보다 더 적은 하전입자로도 효율적인 추진이 가능했다.

마지막으론 위 두 추진체의 한계, 즉 항성에서 멀어질수록 비효율적이라는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준중성전리(이온 플라즈마) 추진기관도 존재했다.

물론 이런 신기술 없이도 라―1지점까지의 항해는 충분히 가능했다.

150만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는 라―1지점은 멀어 보이지만 지구와 달 사이의 평균 거리(약 38만km)의 4배 정도였다. 이미 몇십 년 전에 달에 갔다 온 고려 우주기술로는 충분히 도달 가능했다.

사실 이미 태양 관측용 위성 하나가 라―1지점에 놓여 있기도 했다. 유인우주선은 무인우주선과 차원이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불가능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새벽호는 존재 자체가 명백한 과투자였다.

왕복 한 달여 우주비행 임무에 수년, 수십 년의 항해를 위한 우주선이라니, 그런 걸 대체 왜 만드는가?

고려 항공우주국은 효율성을 굉장히 중시하는 기관 중 하나였으니 새벽호는 온전히 여명항천사의 주도로 만들어진 우주선임이 분명했다.

허나 여명항천사의 그 누구도 이 과투자를 절대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무언가를 하려고 들었다. 오직 세 명과 그분들이 가지고 떠날 것들의 안위를 위해. 인류라는 종의 영속을 위해.

― 위이잉

새벽호 문이 열렸다. 세 사람은 곳곳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사실 지상에도 적응용으로 완전히 똑같은 구조의 모형선이 있었긴 했지만, 우주에서 직접 다루어 보는 것과는 완전 달랐다.

“마음에 들어요?”

에이다가 말했다. 상민은 웃으며 대답했다.

“대단하네. 훨씬 더 살기 좋아졌어.”

사실 새벽호는 상민이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을 지휘해 건조한 함선이다.

하지만 에이다의 합류로 함선 자체가 더욱 진보하게 된 것도 맞았다.

원심력을 이용해 중력을 구현하는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거주부도 그러했다. 상민 혼자 여행을 준비했을 땐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작게나마 영화관 같은 휴게실도 있었고 체육시설도 있었다.

함선의 운항 체계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다가 주변을 둘러보다 외쳤다.

“아나?”

― 어서 와요, 어머니.

갑자기 새벽호 조종실에 환하게 불이 켜지며 상민과 에이다 사이에서 낳은 딸, 아나의 이름을 붙인 인공지능이 대답했다.

인공지능 아나의 음성 녹음도 딸이 해주었다. 자신을 꼭 기억해 달라며.

실제 아나는 지구에 남기로 했다.

겨우 이십 대인 딸에게 한창 즐길 것들이 많은 지구를 떠나 우주를 탐사하라는 말은 너무 가혹한 말일 테다.

부모가 떠나는 것도 어쩌면 가혹해 보였지만, 상혁이를 오빠, 아니 아빠처럼 따르니 괜찮을 것이다. 에이다의 재산을 물려받을 테니 궁핍하게 살지도 않을 것이고.

에이다가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짓다가 조종석을 상민에게 양보했다.

상민도 여러 운항 체계를 점검해보았다. 모든 것이 원활하게 잘 돌아갔다. 앞으로 항해할 때도 큰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상민이 운항을 점검하고, 에이다가 나머지 시설들을 점검하는 사이 예진도 지구에서 가져온 여섯 알들과 첨단 설비, 자료들을 보관소에 안전하게 수납하고 있었다. 이것은 저 너머에서 우리의 ‘씨앗’들이 될 것이었다.

* * *

새벽호와 수호 1호는 태양방패를 끌고 라―1지점으로 향했다.

총 17일 하고도 4시간 23분이 소요되었다.

예상보다는 조금 길었다. 다행히 연료사용량은 오차범위 내이긴 했다.

어차피 시간상 여유도 충분했다.

예상 시점까진 보름 정도가 더 남아 있었다.

물론 예상 시점이 틀릴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우주비행사들은 라―1지점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태양방패를 설치했고 가동을 확인했다.

사전에 수십 번 모의훈련을 돌렸으니 어려움은 딱히 없었다.

이 텅 빈 공허 속에선 우주비행사들을 방해할 장애물조차 없었다.

어둠 속에서 눈부신 빛을 발산하는 태양과, 반대편의 푸른 행성만이 그들의 위치를 재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며칠 동안 우주비행사들은 모든 절차를 꼼꼼히 점검했다. 그런 뒤 본부에 그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보고를 전달했다.

[수호 하나, 태양방패 정상 가동 확인. 모든 준비 완료했습니다.]

코아케와의 교신은 몇 초씩 늦었다.

[여기는 코아케, 수신확인. 고생 많았습니다.]

― 와아아!

우주국에 있는 모두가 환호하고 축하하는 소리가 수신기 너머에서 들렸다.

세계인들도 거리에 나와 기뻐하고 있을 테다. 지금의 이 광경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었으니.

다만 여명항천사 본부는 침묵하고 있었다.

기뻐해야 할 일에 그들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들은 곧 다가올 이별의 순간을 담담히 기다렸다.

태상황도, 황제도, 황태자도 있었다.

은퇴를 명받은 모든 사도들, 요원들이 그곳에 있었다.

광명회 기업인들도 있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교단―들도, 그 순간만큼은 여명항천사 본부에서 거대한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8월 말, 며칠동안은 모두가 교대로 쪽잠을 자 가면서 기다려야 했다.

태양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태양은 원래도 환했으니, 유난히 더욱 환해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우주상에선 차폐막이 있어도 육안으로는 도무지 관찰할 수 없을 정도의 밝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도 전조를 알 순 있었다.

갑자기 모든 계기판이 이상징후를 나타냈다.

철저히 준비하고 있던 우주비행사들은 곧바로 태양방패를 가동시켰다.

태양방패는 즉시 자기장을 생성해냈다. 우주적으로 볼 땐 실로 작고 연약한 자기장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태양대폭풍을 방어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양방패는 이름과는 달리 방어하지 않았다.

그저 굴절시켰다. 엄청난 하전입자의 흐름을 지구에 도달하지 않게 편향시켰을 뿐이었다.

이는 지구의 자기장이 지구에게 선사해주고 있는 보호막의 원리와 굉장히 유사했다.

태양방패 자기장의 규모는 지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하지만 태양과 훨씬 더 가까운 만큼, 거리상으론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상류에서 물줄기를 트는 것이 하류의 물줄기를 트는 것보다 더 쉬우면서도 효과가 좋은 것처럼.

“됐다! 성공이야!”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계획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하지만 갑자기 수호 1호에 문제가 생겼다.

우주선들은 태양과 너무 가까운 상태였다.

태양방패에 의해 하전입자가 편향되고 있다 한들, 그건 150만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는 지구 근방에서나 효험을 보고 있는 일이다.

지금 여기는 태양풍의 영향을 거의 가감 없이 받고 있는 곳이었다.

태양방패 자체는 애초에 태양풍의 편향을 위해 설계된 만큼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것을 이곳까지 가지고 온 견인 우주선은 아니었다. 유인우주선이니 우주선 내에 사람이 살아야 하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했고, 그만큼 복잡하고 정밀한 전자부품이 많았다.

압도적인 지자기 폭풍에 우주선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최대한 태양폭풍의 영향을 막아내기 위한 설계가 적용되었긴 했지만, 여전히 인류의 기술은 한계가 있었고 우주적 대사건의 위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코아케와의 교신은?”

“모든게 먹통입니다!”

“오, 쿠쿨칸이시어….”

원래라면 이곳에 있는 우주인들은 그저 죽음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사실 우주비행사 모두가 죽을 각오로 여기에 왔다. 숭고한 임무를 받은 이상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자, 모두가 공포에 떨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저 멀리 떨어진 지구에 가고 싶었다. 영원에 가깝게 이 우주 공간을 떠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 때 새벽호가 움직였다.

본래라면, 새벽호 또한 수호 1호와 같이 작동이 정지되어야 했을 것이다. 새벽호의 태양풍 방어 설계와 견인우주선의 설계는 본질적으로 같았으니.

그런고로 지금의 현상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었다. 오로지 함선 내부에 타고 있는 존재로 인한 현상일 테다.

조종간을 잡은 상민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의식을 우주선 외부로 확장한 상태였다.

장막이 기어코 떠넘긴 선물일까.

모든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갗을 달구는 것처럼 느껴졌다.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이 고통은 우유니에서 겪었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아니, 오히려 시원하기까지 했다.

그래, 마치 천감산 꼭대기에서 거친 산바람을 받는 느낌이다. 남극의 극점에서 시원한 바람을 받는 느낌이기도 하다.

오로지 한계를 초월한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권능이다.

그는 우주선을 조종했다. 새벽호는 느릿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침묵에 잠긴 수호 1호를 그들의 동체에 연결했다.

“가자꾸나.”

새벽호는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함선의 모든 기능은 정상 범위 하에 있었다.

그 어떤 용도 자신의 비늘을, 자신의 육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새벽호와 자신도 그러했다. 새벽호의 모든 부품은 그가 통제 가능했다.

모든 날개―돛―도 그럴 것이다.

돛이 서서히 펴졌다.

새벽호와 혼연일체가 된 상민은 마치 자신의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아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새벽호는 태양돛과 전자기돛을 접으면 동양적인 길쭉한 용이었지만, 돛을 펼치면 서양에서 묘사하는 날개 달린 드래곤의 형상에 더 가까워졌다.

날개에 태양풍이 강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그 동력을 타고 우주선이 빠르게 가속했다.

물론 연료추진 방식보다는 느렸다.

그랬으면 지금 당장 온몸으로 엄청난 가속도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속도는 연료추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유지된다는 점이 달랐다. 오랜 시간 이 가속을 꾸준히 받는다면 나중의 속도는 실로 엄청날 것이었다.

올 때는 보름이 걸렸지만, 갈 때는 정말로 순식간이리라.

마침내 모든 돛이 다 펴졌다.

얇은 태양돛은 태양대폭풍의 거대한 복사압을 멀쩡히 버텨내고 있었다.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순 없었다.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선 한 번 더 가속해야 했다.

새벽호는 태양방패에 의해 편향된 하전입자가 일으키는 거대한 활모양충격파(Bow Shock)를 타기로 했다. 그렇게 한다면 귀환하는 데 쓸 엄청난 추진 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아니, 귀환하기에도 너무 과한 추진 속도였다.

아나는 이 고속 자기음향파의 충격이 대단히 클 것이며 생각보다 빠르게 견인 우주선을 놓아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구로 향하는 궤도로 진입할 수 있게.

다행스럽게도 수호 1호의 승무원들도 넋을 놓고 있진 않았다. 그들은 서둘러 수호 1호를 비상 운행을 실시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 운행이 가능하고 연료는 충분하니 생존할 수 있을 테다.

― 쿵

어느 순간 새벽호와 수호 1호가 분리되었다. 수호 1호의 승무원들은 멍하니 그들을 구원해준 새벽호가 멀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호는 그들을 떠나보낸 반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범선의 돛, 상민의 날개는 멀쩡했다. 날개는 태양에서 불어오는 거대한 폭풍의 힘을 끊임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태양의 폭풍이 태양방패에 의해 편향되고 있는 상태에서 옆으로 흐르는 고속의 전리 흐름을 최대한 받아냈다.

폭풍은 몇 시간째 이어졌다. 상민은 그 폭풍이 하루는 더 진행될 거라 보았다.

덕분에 새벽호도 꾸준히 가속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인류가 당분간 도달하지 못할 거대한 속도를 맞이할지 몰랐다. 어쩌면 빛의 속도의 몇 할을 운운하는 수준까지도 도달할지도 몰랐다.

모든 항해가 새롭고 처음이었다.

상민조차도 어쩌면 약간은 압도당했을지도 모른다.

태양대폭풍도, 활모양충격파와 전리 흐름도, 우리의 가속도도.

그럼에도 저 머나먼 곳에 있는 우리의 목적지도.

이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과 시간의 흐름도.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온몸에 힘이 넘치고 있었다.

인간은 우주에 나오면 한없이 연약한 생물이 된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이야말로 자신의 새로운 바다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느꼈다. 그는 바다를 사랑한 만큼, 우주도 사랑하게 되리라.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문득 옆을 바라보았다.

예진과 에이다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들의 눈동자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상민처럼 기대감이 더 커보였다.

“아나, 예상 목적지들을 올려봐.”

― 이상적 거주 가능 영역 내에 있는 행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전에 미리 입력해두었던 목록들이 나타났다.

“이곳은 삭제해. 주항성의 상태가 좋지가 않다.

이곳도 항성풍이 강하니 삭제하고….

이곳은 너무 추워. 이곳은 너무 덥고.”

상민은 곧바로 몇 개를 지워냈다.

왜 지구에서 몇 번이고 후보를 검토할 때 진작 지우지 않았느냐는 에이다의 무언의 질문이 있었지만, 답해줄 순 없었다. 상민도 방금 우주에 나와 힘을 받게 되면서 무언가들을 ‘알게’ 되었으니.

목록을 살펴보던 상민은 한참동안 명상하더니 마침내 한 곳을 선택했다.

의외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물론 빛의 속도로 간다고 가정할 때나 그러했다.

그래도 태양대폭풍을 탄 태양범선은 이 거대한 여정을 도전해 볼 만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아나 또한 그렇게 보고했다.

― 현재의 가속도를 하루 동안 더 유지한다면, 예상 도착 시간은 102년입니다. 그보다 더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상민은 계속 상황을 갱신하여 알려주라 답한 뒤, 조종석에서 내려왔다.

그는 예진과 에이다와 함께 거주부로 향했다.

이제 이 세 명이 기나긴 여정을 함께 버텨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힘을 합치고, 긍정을 공유하고, 사랑을 공유해야 했다. 상민은 지도자로서, 남편으로서 이상과 목표를 제시해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예진이 상민의 말을 끊었다.

“아니. 우리 세 명으로는 부족해.”

백여 년에 달할 정도의 기나긴 여정이다. 세 명으론 부족할 수 있었다.

긴 세월 동안 교대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했다.

의지력이 높고 선한 사람들이.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오랜 세월을 버텨낼 수 있는 사람들이.

상민은 그제서야 예진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게 옳은 걸까?”

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만이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더 늦는다면 화를 잔뜩 낼지도 모른다.

상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한숨 뒤에는 약간의 미소가 맴돌았다. 그도 보고 싶었다. 모두 다.

“…질투할 줄 알았는데.”

예진이 피식 웃었다.

“알잖아. 당신처럼 나도 이 신별초의 신여정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뭐든 할 수 있어.”

제국의 어머니가 하는 말, 상민조차도 그 무게감을 부정할 순 없다.

그렇게 상민은 두 번째 알을 집어들었다.

장무태성황후, 아르크의 잔을 깨우기 위해.

새벽호의 시간은 그렇게 점차 느리게 흘러갔다.

* * *

― 와아아!

지구엔 축제가 열렸다.

태양풍은 지구에도 불어왔다. 다만 그 위력은 확연히 감소한 상태였다.

극지방과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볼거리―오로라―를 선사해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전자기기들은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미리 대비를 해 놓은 곳들은 완전히 무사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대체로 멀쩡했다.

거대한 자연과 우주에 맞서 인류 문명이 또 한 번 승리했다.

위기에 빠졌다던 견인 우주선의 사람들도 생존이 확인되었다. 그들 또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위대한 과학축제에 환호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수많은 초등학생들의 꿈은 우주비행사나 과학자가 될 것이다.

어떠한 축제도, 운동경기도 이 정도의 감동을 선사해주진 못했다. 모두가 울고 웃었다. 부둥켜안았다. 북과 꽹과리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생판 모르는 남녀가 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입맞춤을 나누었고, 밤새도록 도로엔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자동차가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찌푸리거나 찡그리지 않았다. 모두가 웃고 즐기고 있었다.

전 지구적 위기는 오히려 모든 이들을 단합하게 만들었다.

우리 인류가 서로 다른 점이 많은 존재라 하나 결국 지구에 사는 하나의 인종에 불과하다는 것.

더 궁극적이고 고결한 목표가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이 제시되었다.

그렇게 모두가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여명항천사 본부의 사람들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몇 시간, 심지어 며칠이 지났음에도 쪽잠을 자면서까지 여명항천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작전이 성공했음에도, 우주선이 귀환하고 있음에도 하나둘씩 고개를 떨구었다.

고개를 숙인 사람들 중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털썩 쓰러지듯 주저앉은 사람도 많았다.

거대한 슬픔과 허전함이 그들을 휘감았다.

공허함, 외로움이 느껴졌다.

지구의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무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너무 큰 존재를 잃어버렸다.

[그분께서 떠나셨다.]

우리는 혼자 남았다.

―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의 원죄다.

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속죄해야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 속죄하는가? 속죄가 닿지조차 못하는데, 대체 어떻게 하는가?

― 이제 우리는 자유다, 하지만 그 자유가 어떻게 돌아올까. 두렵다.

경제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증시는 폭락할 것이었다. 황금용의 가호는 없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해야 했다. 규율도, 법칙도 없는 야생이 닥쳐올지 모른다.

― 아버지, 어째서 우리를 떠나시나이까.

황실의 충격은 가장 컸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의 부재는 끔찍할 정도의 망운지정만 남겼다. 앞으론 구름이 아니라 태양을 봐도 그럴 것이다.

근본이 흔들렸다. 영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태묘에서 개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모든 황제들의 무덤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해호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한동안 무릎 꿇고 있었다.

하지만 해안이 다가와 손자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황상, 끝난 것이 아니오.”

해안의 눈동자가 빛났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이다.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은 해호가 받들어 나가야 했다.

‘형님, 형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허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차마 그분의 의지를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해안은 해완을 떠올렸다.

미치광이 예언자만이 지금 이 순간을 예언했었다.

하지만 해완도 틀렸다. 영원히 그분을 우리 곁에 머무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용의 승천을 막으라? 한낱 인간이 가능한 소리인가.

다만 포기하는 것도 일렀다.

이제는 우리가 나아가야 했다.

그분께서 떠나신다면, 우리는 그 떠나신 흔적을 짚어가며 따라나설 것이다.

부모가 걸었던 길을 자식이 따라 걷는 것은 추한 것이 아니다. 미덕이요, 전통일 것이다.

혁신만큼이나 전통도 소중했다. 전통은 근본이다.

태조께선 제국의 근본이시니 그 근본을 망각해선 안 되었다.

“남겨진 유훈에 따르시오. 그분께서 가르치신 것들을 지키시오. 그리한다면, 우리는 다시 우리의 아버지를 만나 뵐 수 있을 테니.”

모든 것이 사라진 건 아니다.

인류 문명은 아버지의 은총 덕에 견고해졌다. 우리에겐 시간도, 물자도 있었다. 사람들도 있었다. 위대한 지성들을 다시금 모을 수도 있었다.

황제의 말에 교단도, 기업인도 일어났다. 모두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로 세웠다. 충혈된 눈을 뜨고 입술을 깨물었다.

여명항천사에서 곧바로 구안회의가 열렸다.

단극주의를 초월한, 그보다 훨씬 더 숭고한 목적을 위해 구성원들이 의지를 모았다.

고려는 세계를 통합할 것이다.

고려연방은 국제연합을 넘어 더 도약할 것이다.

국가의 경계는 희미해질 것이며, 국명도 어느 순간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고려 또한 그들의 정체성을 버릴 준비를 해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고려 제국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다. 고려란 이름마저도, 모든 인류를 통합하기에는 작았다.

오로지 인류연방제국이라는 말만이 우리를 수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인류는 지구라는 알에서 부화할 것이다.

태양방패 계획을 성공시킨 인류는 그분께서 안배하신 두 번째 계획 또한 성공시킬 것이다.

두 번째 태양방패를 만들어, 화성의 라그랑주점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렇게 태양풍의 간섭을 줄일 것이다.

화성의 대기를 두껍게 할 것이며, 그리하여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태양계를 하나씩 손에 넣을 것이다.

기술도 발전하리라.

아버지께선 엄청난 규모의 태양대폭풍을 타고 저 너머로 나아가셨다.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진 모른다.

하지만 지구에 남겨진 자식들은 다른 것들을 이용할 수 있다.

아버지보다 훨씬 더 빠른 기술의 진보, 그 자체를.

인류는 수많은 지성을 한데 모아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고, 특이점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다면 거대한 시간도, 공간도 언젠가는 극복해낼지도 모른다.

해안이 아버지를 보내드려야만 했던 태종 해진처럼 읊조렸다.

“그러니, 아버지.

저 머나먼 별들을 항해하며 기다리소서.

우리 또한 당신이 가신 길을 걸어가겠나이다.”

다시 뵈는 그날까지 부디 평안하소서.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외전 完

[작가의 말]

이렇게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속칭 남미고려가 완결되었습니다.

2020년 7월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니 거진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 작품을 쓴 셈이네요.

제가 첫 번째로 쓴 작품이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저도 너무 놀랍습니다.

남미고려를 집필하는 동안 이 작품은 제 인생과 다름없었습니다. 이렇게 떠나보내는 것도 지금 잔뜩 미련이 남고 섭섭할 지경이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작별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저 스스로는 참 모자란 점이 많은, 계속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을 써가면서 제 부족함을 얼마나 절실히 느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보여드릴 제 작품만큼은 최대한 그렇게 보이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그야말로 후회 없는 집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도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소설을 끝까지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다소 뻔해 보이는 말이지만, 이 자리를 빌려 독자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후회조차 남기지 않은 집필이 가능했었던 이유는 독자 여러분의 끊임없는 성원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중간에 좌초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별초의 여정은 일찍 마무리되었을 것이고, 용은 승천하지도 못했을 테지요.

저는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여러분들의 응원을 받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이렇게 종착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모든 서사는 여러분들이 저와 함께 만든 서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상민이며, 여러분들이 장막입니다.

독자 여러분들 모두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함께해서 실로 영광이었습니다.

설명된 이온 플라즈마 엔진은 나사가 설계 중인 VASIMR 엔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