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6화 (외전) 범려철도여행(3)
코아케 남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홍진사건이 일어난 도시가 나왔다.
지금 홍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악명을 썩 달갑게 여길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시 관계자들은 염료산업이 쇠퇴하며 도시가 쇠락하는 사이 관광객들을 유인하는 동력이 되긴 했기에 적극적으로 제지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볼 건 꽤 있었다.
홍진사건이 일어난 염료공장은 사건 이후로 폐업했다. 다만 사적으로 보존되었고 지금은 하나의 박물관으로 개장된 상태였다.
홍진사건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한주열과 해연희,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은 세계 50대 기업 중 무려 두 군데(드려찰 및 연주)와 관련된 맵시계, 재계 거물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도 당연했다.
현재 드려찰은 맵시와 시계, 사치품 등의 부류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었으며, 휘하에 엄청난 수의 명품과 명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연주는 백화점과 면세점, 장보기에서의 무소불위의 입지를, 그 밖의 유통 등의 분야에서도 상당한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사연이 사연인지라, 이 거대한 공장 박물관은 두 가지 주제를 다루었다.
홍진의 염료산업에 관한 주제를 담은 관이 하나, 범죄와의 전쟁에 관련된 박물관이 다른 하나였다. 물론 대중들에겐 직물의 염색 과정을 보는 것보다, 범죄조직과 경찰이 총격전을 벌이는 후자가 훨씬 더 인기가 많았다. 때문에 이곳은 택주의 보안관박물관과 더불어 범죄척결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곳들 중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였긴 하지만, 치안에 관한 관심은 남녀노소 구분이 없이 모두 높았다.
이곳은 고려가 어떻게 그동안 이 넓은 대륙의 중앙집권화 및 범죄예방을 위해 애를 썼는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홍진사건 이후 고려는 주요 범죄조직들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에 나섰고 한창 근대와 현대의 사이의 과도기에 몸집을 부풀리려던 조직들은 뿌리까지 많이 뽑히게 되었다.
제국의 땅은 넓고 그만큼 운신할 폭도 넓었다. 하지만 모든 범죄조직이 그러하듯 정부가 작정하고 공세를 취하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고려는 장갑차 등의 군용 장비를 동원하여 범죄조직을 최대한 섬멸하려 노력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여파는 지금 현대까지 유지되었다.
현 고려에 범죄조직이 하나도 없을 거라는 말은 현실성이 없는 소리겠지만, 국가의 체급이나 땅덩어리를 미루어 볼 때 범죄조직들의 위세는 놀랄 만큼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
일정 크기 이상으로 커진다면 즉각 강력한 조치가 내려왔기에 몸집이 커지기도 어려웠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공간적 제약도 극복 가능해졌다. 감시위성과 무인기 등은 이 방대한 땅덩어리의 치안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총기통제정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강화되었다. 예전부터 고려는 개척자와 사냥꾼들에게만 총기소유허가제를 실시했지만 지금은 그들조차도 허가를 얻기 위해선 꽤 노력해야 했다. 인성검사와 심리상담, 안전교육을 모두 받아야 했으며 무엇 하나라도 결격된다면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자가에 총을 수납하지 못하는 지역이 대부분이었고 직접적으로 곰이나 대형 야생동물을 많이 조우하는 북려 일부 지역에서나 허가되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는 치안이 너무 좋아서 놀랬어.”
관광지에서도 소매치기나 뭐 그런 것들이 없었다.
지금 유럽으로 여행 가면 가방도 앞으로 메야 하고 평상시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겨우 여러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는데, 고려는 수많은 인구가 이 넓은 땅에 살아가는 와중에도 양호했으니 시민의식과 공교육의 중요성은 두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그러게… 어쩌면 우리나라보다도 좋을지 몰라.”
조선은 치안이 굉장히 좋기로 손꼽히는 나라였지만, 근래 들어 제와 연을 통한 불법 밀입국자들의 수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심지어 저 루손 땅으로 밀입국하는 누산타라인들도 있었다. 여러모로 해결하기도 힘든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렇게 홍진을 들린 열차는 해안가를 떠나 태동산맥을 타고 올랐다.
사람들도 좋아했다. 해안선의 풍경이 절경이긴 했으나 지금껏 내내 봐 왔기에 꽤 단조로운 면도 있었다.
험준한 산세를 타고 오르는 열차는 태동산맥 고원, 옛 타완틴수유가 있던 땅을 통과했다.
이곳은 남려에서 볼만한 유적지가 대부분 모여있는 곳이었다.
타완틴수유의 마지막 잉카 참칭자 파차쿠티가 끝까지 저항했던 푸카라 픽추나 그런 유적지들부터 대망의 쿠스코, 아타카마 사막, 유우니 사막 등.
타완틴수유와 메시카와 마야의 문명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동등한 문명 수준을 누리고 살아갔지만, 타완틴수유는 이전부터 중려보다 훨씬 더 고려화된 지역이었다.
남려와 육지로 이어져 있었고, 계속 통혼했다는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언어도, 문화도, 인종도 거의 비슷했다.
일정 기간 동안은 루나 시미라는 그들의 토착어가 변주되어 쓰이긴 했지만, 그것도 교통과 매체가 발달한 뒤에는 거의 사어화되어 지금은 현지인들도 사전을 뒤져봐야 아는 단어들이 많았다.
때문에 이곳 태생의 사람들은 중려인들보다 훨씬 더 그들의 역사를 고려인 기준으로 인식했다.
해씨 황실이 타완틴수유의 잉카를 죽이고 그들의 왕조를 끝장냈다지만, 무종 해윤 이후 사파잉카의 명칭은 여전히 고려 황제에게 전승되어 내려가고 있었기에 여전히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인신공양적 관습이 중려에 비해선 비교적 온건하다 평가할 만했으니 나름대로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또한, 여기엔 황실 별장이 있었다. 이 별장이 남려 통합에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이 됐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통합의 목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역대 황제들은 하나같이 쿠스코 별궁을 굉장히 좋아했다.
창양의 연간 기후도 굉장히 온화하지만 가끔 번잡한 대도시를 떠나고 휴양을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언제든지 근처(대륙적 규모로는 지척이었다.)의 별궁에 가서 쉴 수 있었으니.
때문에 쿠스코 별궁은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이제는 상당한 규모의 별궁이 되어 있었다. 본궁 창천궁만큼 크진 않았지만, 옛 타완틴수유 유적지까지 포함한다면 경사의 자금성보다 컸다.
국민친화적 정책의 일환으로, 쿠스코 별궁도 일부 시설 및 황가 소유의 문화재들을 외부에 전시했다.
쿠스코 별궁 부속 박물관에는 이곳을 세운 무종 해윤의 일대기, 타완틴수유 평정기에 관한 유물 및 사료들도 있었고, 후대 황가의 소소한 일화에 대한 전시물도 있었다.
예진이 이곳에 꼭 들르고 싶어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황가에 관심이 유난히 많았다. 이건 지수 같은 그녀 또래의 여인들이 궁궐 내부의 삶―특히 잘생긴 황태자와의 연애―을 막연히 동경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냥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할까.
두 소녀는 이제 서로의 취향이 다른 걸 알았기에 몇 시까지 모이자고 정해두고 박물관을 알아서 돌아다녔다.
지수는 해윤과 안 숙비의 사랑 이야기를 열심히 읽고 있었고, 그동안 예진은 소리개를 통해 음성안내를 들으며 역사기록물과 그림들을 관람하고 있었다.
“타완틴수유 해방기라….”
무종 해윤의 정벌전쟁이 한 폭의 거대한 그림으로 남겨져 있었다. 용맹한 고려군 군사들이 타완틴수유 군대를 밀어내는 모습이었다. 타완틴수유 특유의 인간가죽 북이 찢겨져 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예진은 그림을 보면서도 슬쩍 웃었다.
예전엔 타완틴수유 정벌기라는 제목이라 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정벌기 대신 해방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유야 뭐 뻔하지 않은가.
‘어찌 잘 해냈나 보구나….’
예진은 생각 속에 잠겼다.
사실 후계자 지정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관여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가 자식들보다 먼저 떠나기도 했고.
다만 황조에 비극이 생각보단 적었으니 이 어찌 보기 좋지 않겠는가.
“…….”
이번에도 그녀는 열아홉의 나이엔 영 어울리지 않은 생각들을 이어갔으나, 더 이상 머리를 흔들며 억지로 정신 차리진 않았다. 다만 왜 이런 생각들이 드는지 계속 궁금해하며 파고들려 시도했을 뿐이다.
한 바퀴 황실박물관을 둘러본 그녀들은 이윽고 별궁이 보이는 광장으로 나갔다. 출구가 그쪽이었다.
고산지대 특유의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청명한 늦가을의 햇살은 따스했다.
쿠스코 별궁 담장 앞의 광장에 근위여단이 돌아다니는 광경이 보였다. 적색의 무복에 챙 넓은 피립을 쓴 근위경비대원들은 허리춤에는 환도를, 양손에는 의장용 소총을 쥐고 있었다.
“현 태상황께서 여기에 계신대.”
존경받는 황제였던 해안은 전쟁이 끝난 뒤 얼추 국제사회가 안정되자 자신의 자식, 해공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그가 예순두 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었고 막 정약용 시중의 임기가 시작되는 때의 일이기도 했다.
해안은 번잡함을 싫어했다. 그는 물러난 이후에는 아내와 함께 고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일흔이 넘어선 줄곧 쿠스코 별궁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해안과 보르지긴씨 황후 사이에는 이남 삼녀가 있었다. 첫째의 성품이 썩 좋지 못해, 제위는 둘째 해공이 이었다.
해공도 장수황제로 유명한 할아버지 해청이나 아버지 해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아직 정정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기에 일찍이 그의 아들이자 해안의 손자 해호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상황으로 은퇴한 상태였다.
현황 해호는 삼십 대 초반의 젊음 때문인지 황제치고는 굉장히 열심히 여러 정책들(주로 비정치적)에 관여 중이었다. 그는 환경보호론자이며 우주개척론자였기도 했다. 그의 삶 내에서 화성에 인류가 나아갈 수 있길 희망하는 자였기도 했다.
다만 황실의 인기는 여전히 올해로 여든일곱이 된 태상황에 쏠려 있었다.
해공이나 해호가 딱히 못난 황제라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평화적 국제질서를 구축한 황제의 치세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좀 있었다.
사실 지금부터 즉위하는 후대 황제들은 선대의 인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족해야 할 것이었다.
별궁 근처엔 사람들이 많았다.
역설적이게도 이제 쿠스코 별궁마저도 하도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별장의 의미 자체가 퇴색된 상태였다.
처음 쿠스코에 머무른 태상황은 가끔 별궁 앞의 공원에 나와 산책하며 손을 흔들어주며 말을 나누기도 했단다.
심지어는 궁궐 앞의 일반 사람들 중 일부를 특별히 저녁 식사에 초청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었다.
해안의 말에 따르면 군주라면 무릇 나라에 대한 기본적이고 항구적인 책임이 있었다.
제위를 놓고 물러난 태상황과 상황도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할 게 좀 있는 황제보다는 다른 황실 구성원들이 국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듣고 경청하며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해안에게 저녁 식사는 특별하지만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허나 이런 소문을 들은 대중들이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별장으로 몰려들었고,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했는지 곧이어 그런 기회는 잘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보안상의 이유가 컸다.
이제는 태상황조차 가끔 별궁의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저 멀리 빙주나 누나부트, 혹은 먼 남쪽이나 섬으로 간다니, 지역 사회엔 안타까운 일일 터다.
다만 궁의 규모가 크고 현대화되어있다 보니 주 거처는 여전히 이곳이었다.
황실기 게양대에서 태상황의 존재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 있으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계시다는 소리야.”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며 게양대를 본 예진이 그렇게 말했다.
뭐, 그렇다고 그녀들같이 순간순간이 중요한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괜스레 시간을 하염없이 버려가며 태상황을 만나길 기도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타완틴수유식 옥수수 닭곰탕을 먹으러 자리를 옮기려는 찰나, 갑자기 환호성이 들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지수와 예진도 방문객들의 환호성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곳에 가보니 궁에서 나온 근위대 몇 명이 전통에 따라 게시판에 방을 붙이고 있었다.
당장 내일의 특별 저녁 식사에 국민들을 초청하고자 하는 태상황의 칙서가 적혀 있었다.
총 스무 명을 선별한댔다.
“이거 실화야? 나 좀 꼬집어 봐!”
황실 식사?
절대 못 참았다. 무조건 해야 했다. 지수와 예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칙사 밑에 그려진 임시 격자 기호(QR코드)를 손전화 사진기에 담았다.
격자 기호는 곧 손전화 화면을 보안국 누리집으로 이동시켰다.
[황립보안국 – 신분인증체계
개인정보수집 동의 □
…….]
“아 맞다, 우리 되긴 될까?”
“일단 해보자.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보안을 위해 신분확인을 요구한다는 사항에 열심히 확인을 누르던 두 소녀는 그제서야 그들이 고려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몇 가지 사항을 동의하니 곧 자국민 기준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을, 외국인 기준 여권번호를 입력하라는 안내절차가 떴다.
외국인도 가능하긴 한 모양이다. 선별될지는 모르지만.
“다 작성했어. 근데 이게 끝?”
“생각보다 간단하네? 지구촌 연결망 시대라 그런가….”
예진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 황제를 배알하는 절차는 이보다 훨씬 더 까다로울 것이 분명했다.
다만 태상황 배알은 전례가 있었는지, 특유의 자유로운 성품 덕인지는 몰라도 꽤 간단했다.
사실 워낙 급작스럽게 결정하신 터라, 무슨 음모가 간섭할 여지도 없었다. 또 보안국이 그렇게 허술한 조직도 아닐 테고.
두 소녀는 식당에서 옥수수닭곰탕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안 될 게 뻔했다. 아까 광장엔 적어도 이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었다. 그녀들은 내국인도 아니었으니 딱히 큰 기대를 하진 않기로 했다.
물론 속에서는 참을 수 없는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거까지는 막을 수 없잖아?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문자가 날아왔다. 두 소녀 모두에게.
[축하드립니다, 귀하께서는 오늘 저녁….]
“헐, 헐!”
지수가 예진을 끌어안았다. 예진은 매달리는 친구의 몸무게를 받으면서도 당혹스러워했다. 대체 뭘 입고 가지?
‘이럴 줄 알았으면 좋은 옷 뭐라도 가져올걸!’
아니면 최소 미주나 상춘 같은 대도시에서 옷이라도 좀 사놓을걸!
그녀들은 겨우 짐 속에서 가장 단정해 보이는 한벌옷을 골라 입었다. 쿠스코에는 큰 백화점도, 마음에 드는 옷가게도 없었다.
6시가 되자, 말로만 듣던 황실 마차가 그녀들의 숙소 앞에 섰다. 이 숙소의 다른 사람들도 초청을 받았는지 마차에는 두 명의 중년 부부, 부부의 아이 두 명이 탑승했다. 그 이후에 예진과 지수가 탔다.
그럼에도 마차는 꽤 넓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사람들은 서로를 둘러보았다. 절로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었다. 수더분한 중년의 부인과 예진, 지수가 서로 감상을 꽃피웠다.
저 멀리 별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