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화 (외전) 여명항천사
남려로 진입하면 바로 관문도시 상춘이 나온다.
이곳에서 종단철도는 다시금 두 경로로 쪼개졌다.
예진과 지수는 서부 해안가 경로를 골랐다.
서부 해안가 경로는 계속 펼쳐지는 해안가 경로를 따라 코아케, 타완틴수유 유적지, 염료공장과 예전엔 범죄로 유명했던 홍진, 효평, 리체(반려 마푸체)와 과트라체(친려 마푸체) 유적지 등을 볼 수 있었다.
동부 해안가도 전주와 번개호수, 마제도, 태수 열대우림, 용경도와 연죽곶, 옛 동예 유적 등 볼 만한 것들이 꽤 많았지만 같은 위도라도 건조한 서부에 비해 일단 너무 습해 힘들었다는 후기가 많았다. 심지어 모기도 많았다.
그녀들이 탄 열차는 태동산맥의 좌측을 따라 내려갔다.
상춘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그 유명한 코아케가 나온다.
곧 그녀들은 안내방송과 함께 열차 밖에 드러난 코아케 우주기지의 일부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크다?”
“우주기지만 있는 곳은 아니니까.”
그녀들은 코아케에 들러 우주박물관과 기념비, 기타 여러 가지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이곳도 볼거리가 꽤 많았다.
우주개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유명했다.
그 앞 광장에는 역대 활약한 신기전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퇴역한 우주왕복선 속을 들어갔다 나올 수도 있었다.
대중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지은 천문관에서는 엄청나게 크고 정밀한 망원경은 물론이고 천체 투영기(플라네타리움)로 외우주 밖 항성들을 관람할 수도 있었다.
물론, 도시 자체가 실제로 우주개발 기지 목적으로 쓰이는 곳이었으니 그 이상으로 무언가 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에겐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이 제한적이었다.
예진은 떠나는 발걸음이 왜인지 무거웠다. 공대녀인 지수가 아쉬워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저 안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독였다.
‘괜찮아. 청해에 가면 언젠가 만나게 될 거야.’
* * *
예진과 지수가 코아케에 들르기 한참 전.
호화스러운 전용기 한 대가 미원국제공항을 출발해 코아케 공항에 착륙했다.
맵시 있는 흑경을 쓴 에이다가 전용기에서 내렸다.
박람회 발표가 끝나자마자 와서 피곤해 보였지만,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인지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에이다는 공항 보안검사를 손쉽게 통과하고는 아주 익숙하게 코아케 핵심 거리를 누볐다.
코아케는 이동하면서 매번 검문소가 있었다.
거의 모든 검문소에서 신분증과 인적사항을 확인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어떤 곳에서도 딱히 트집잡히지 않고 마침내 목적했던 회사의 건물에 도착했다.
[여명항천사]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그저 단정한 간판이 보였다. 이런 것들에게서도 그분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에이다가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실체를 모르는 자에겐 그저 상장되지 않은, 투자할 수도 없는 우주개발 기업이라고 알려져 있을 터.
하지만 실체를 아는 자에겐 여명항천사야말로 인류의 존속을 좌지우지하는 기업이 따로 없었다.
그렇기에 이 회사는 고려 항공우주국과 더불어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단체였기도 했다.
코아케엔 고려 항공우주국 말고도 많은 단체들이 있었다. 물론 전부 다 고려 기업들이거나 과학단체였다.
최초의 우주비행사 정영준의 우주비행 성공 이후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578년(CE 1853), 인류의 우주 개척은 여전히 고려의 손에 달려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우주개발을 시도하긴 했다.
잘 먹고 잘사는 강대국일수록 미래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
특히 개천 550년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7.17 인권혁명 이후 고려를 제외한 전 세계 주요 강대국들은 상당한 수준의 군축에 들어갔으며 이에 비공식적으로 고려에 국제안보를 맡겨버렸다.
딱 자신들의 나라를 지킬 핵심 방위 병력을 제외하곤, 군의 규모를 줄인 것이다.
그리스가 말한 외주국방이 전세계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돈 먹는 하마가 많이 줄어들었으니, 각국의 재정도 꽤 넉넉해졌다.
때문에 강대국들은 그런 재정을 바탕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 시도 중엔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것도 있었다.
개천 565년, 예맥한 우주동맹이 타와우 우주기지에서 독자 발사체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
그 이후 3년이 지나 유럽우주국이 네덜란드령 파푸아에 위치한 자야푸라(홀란디아에서 이름이 바뀌었다) 우주기지에서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그러니 570년 즈음 지구 궤도에 위성을 쏘아 올릴 만큼의 기술력은 강대국들이라면 얼추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비록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하기보다는 각기 손을 잡아야 했지만.
다만 이런 시절에도 고려 항공우주국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수준’에서 놀고 있었다.
예맥한 우주동맹이나 유럽우주국이 본격적으로 창립되고 우주개발을 시작하려 하기도 전인 개천 548년에 고려는 이미 처음으로 달에 사람을 보냈다.
신승호 우주비행사가 직접 달 표면을 걷고, 제국기를 게양했다.
그 뒤로도 외우주 개발은 한참동안 고려의 독점적 무대였다.
안타깝게도 551년에는 최초의 우주사고가 일어났었다.
많은 추모의 물길이 있었고, 청문회도 열렸지만 우주개발이 멈추지는 않았다.
[우리의 발걸음을 헛되이 하지 마소서.]
고 정길영 우주비행사의 유언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555년에는 조금 더 효율적인 우주개발을 위해 우주왕복선이 개발되었다. 이 우주왕복선은 558년에 지어진 인류 최초 우주정거장 미르(용)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미르 정거장은 고려의 우주개발을 가속화시켰다.
우주상에서 많은 기술이 축적되었고, 인류의 외우주 체류, 혹은 거주를 꿈꿀 수 있게 만들었다.
560년에는 최초의 우주망원경, 해준이 발사되었다.
고려 최초의 천문학자인 정종(貞宗) 해준의 휘를 따서 만든 망원경이었다.
아무리 추존황제라도 황제의 휘를 쓸 수 있느냐 잠시 논쟁이 벌어졌으나, 현황 해담의 승인이 있던 뒤론 별다른 잡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준 우주망원경은 28년 동안 활동하고 있었고, 다가오는 580년에 발사 예정인 최경재 우주망원경에 의해 대체될 예정이었다.
지금 고려 항공우주국은 한 가지 목표에 전념하고 있었다.
인간이 이제 달을 넘어 다른 행성, 예를 들면 화성에 직접 가는 것이 목표였다. 인류라는 종의 존속을 위해 행성계를 오갈 수 있을 수준의 기술은 필수 불가결했다. 이를 위해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한 우주선을 제작 중이었고, 3년 내에 시도할 수 있게끔 계획을 짜 놓고 있었다.
정부의 주도로 개발되는 고려 항공우주국과는 별개로 민간 우주기업들도 생겨났다.
민간 우주기업들은 수익성이 있는 우주개발을 꿈꾸었다. 사적 우주여행이나 혹은 사설 위성을 이용한 위성연결망 구축 등.
원체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여전히 제국 도서산간지방에는 연결망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들이 많았고, 이동 시 무선통화도 자주 끊기곤 했다.
위성연결망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지금 가장 큰 민간우주기업은 단연코 ‘여명항천사’를 꼽을 수 있을 터였다.
개천 578년 기준, 여명항천사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행성과 행성간의 이동을 목적으로 쓸 거대 왕복선 제조부터, 하나의 신기전을 몇 번 더 재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의 기술을 이미 축적한 상태였다.
당연히 이 회사를 운용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상장도 되지 않은 여명항천사가 어찌 이런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지, 속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담쟁이거리에서조차 이 회사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오른 청신사들만이 어렴풋이 이 회사가 황실 회사일 것이라 추측하는 정도였다.
물론 에이다는 어중이떠중이 청신사들보단 훨씬 더 잘 알았다.
* * *
그녀는 여명항천사 본사에 들어가기 전 흑경을 벗고 익숙하게 보안절차를 밟았다.
여기서부터는 아무리 그녀조차도 꼼꼼히 절차에 응해야 했다.
수수해 보이는 회사의 외관과 달리, 그 안쪽의 보안은 실로 삼엄했다.
원래 코아케시 전체가 군경의 삼엄한 감시를 받는 곳이었지만 이곳은 차원이 달랐다. 소총과 기관단총, 방탄복 흑경 등 중무장한 특수부대들이 보였다.
세계 최고의 기업인 에이다를 비롯한 다른 기업들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일반적 기업들은 시민들과의 접근성을 더 신경 쓰기에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다.
반면 여명항천사 1층은 거의 군무부 건물을 보는 듯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 건물 자체적으로 대륙 간 탄도신기전을 요격하는 체계도 갖추고 있을지 모른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래도 그녀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보안검색대에서 금속탐지기를 다루는 여명항천사의 직원, 즉 여의국 요원들도 탐색 절차가 끝나자 비로소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요원들도 현시대 성녀이자 부회주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다만 절차는 절차였다. 아무리 그대가 필멸자들의 세상에서 존귀하다 하나, 한낱 인간으로서 용 앞에 겸손하라는 무언의 시위였기도 했다.
“엄마!”
저 멀리 접수처에서 갑자기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이 달려왔다.
그 뒤에서 강인하게 생긴 미중년의 남성이 그녀를 보고 슬쩍 웃어 보였다.
에이다는 오랜만에 만난 딸과 잠시 대화했다.
아무리 요즘 들어 사춘기가 와 엄마한테 퉁명스럽게 대한다 하나, 막상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모양이다.
모녀는 오늘 저녁을 함께 먹자고 약속한 뒤 다시 헤어졌다. 중년의 남성이 뒤이어 에이다에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딸의 이복오빠, 합상혁이다.
에이다도 상혁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그 또한 그녀만큼이나 유명한 사람 중 하나였다.
특히나 그와 그 특수부대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영화화한 순간엔 더더욱.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밖으로 나다닐 수 없게 된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 그의 진정한 얼굴을 알아볼 사람은 드물었지만, 상혁은 애초에 활발한 사회활동과는 거리가 좀 있는 인물이었으니 매사에 조심하고 있었다.
상혁은 실제적 나이는 일흔아홉에 달했지만, 외견상으론 그의 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한 신체적으로 현존하는 인간 중 가장 강한 인물이기도 했다. 역시 그 핏줄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두 사람 사이엔 미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신분과 지위였다.
둘은 사적으로는 새어머니와 아들 관계였지만, 공적으로는 제1사도와 광명회 부회주의 관계였다.
그래도 에이다는 자신의 딸이 60여 살 연상의 오빠와 잘 어울리는 덕분에 그 혜택을 쏠쏠히 봤다. 긴장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고 할까.
이제 자신이 부회주가 되었으니 광명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용의 총애라는 공통의 목표를 갈구하는 서로 다른 두 이질적 집단은 알게 모르게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장들은 두 단체 간의 갈등을 진정시켜야 할 의무도 가졌다.
“그분께선 어디에 계시죠?”
“연구소에 계십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상혁은 콧잔등을 쓸었다. 지금은 좀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긴 했다.
그래도 막을 이윤 없었다.
에이다도 여명항천사의 협력사 중 하나였고, 사적으론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었으니.
상혁은 제1사도이자 자식 된 권한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승강기가 내려왔다. 다른 사람들은 탈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승강기였다.
“가시죠.”
상혁이 생체인증을 하자, 승강기는 지하로 한참 내려갔다.
코아케는 겉보기보다 훨씬 더 큰 우주기지였다.
밖의 시설도 많았지만 지하 시설도 그만큼 많았다. 핵공격과 지진 기타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한 거대한 방공호가 땅 밑에 숨어 있었다.
놀랍게도 이 구역은 고려 항공우주국이 아니라 ‘기술선도국의 지부 중 하나’인 여명항천사가 전부 통제했다.
“아버지는 7호 연구실에 계십니다. 요즘 바쁜 시기라 아마 좀 예민하실 겁니다.”
“나흘 뒤가 30차 발사일이었던가요?”
“31찹니다.”
“…그랬군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다시 승강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에이다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희고 깔끔한 복도를 걸었다. 복도엔 한 측으로 유리창이 나 있었다.
그 너머로 거대한 지하공동이 보였고, 그곳에 수많은 신기전들이 놓여 있는 것도 보였다. 연구진들과 공학자들이 바쁘게 오고 가는 광경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