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25화 (625/653)

625화 핵확산방지조약

전후 고려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핵무기에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전 세계가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에 경악했다. 한 발에 도시 하나가 날아갔다. 경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고려군에게 일억 명 이상을 제물로 밀어 넣었을 만큼 미쳤던 중화마저도 결국 핵 몇 발에 몰락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나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각국은 고려의 핵 투발 수단에도 긴장했다. 신기전이라는 실로 상식을 뛰어넘는 기술력이 축적된 무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도 경악했다.

바야흐로 한 나라가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인류세(Anthropocene), 즉 인간이 지구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명확한 기점일지 몰랐다.

현 상황은 세계적으로 굉장한 불안감을 초래했다. 적어도 국제정치학적으로는 그랬다.

국제정세에 큰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일반인은 종전 이후 찾아온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정치인들 중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려가 극초강대국이 된 것은 꽤 예전의 일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지금 고려의 공고한 세계패권이 불현듯 어색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이제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다른 나라를 박살 낼 수 있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말 그대로 박살이다.

이전까지 재래식 폭탄과 총알이 선사할 수 있는 폭력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야말로 문명을 비문명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폭력이었다.

심지어 재래식 전투 무기조차 고려와 비고려 국가들의 격차가 적어도 이십 년이 넘었다. 다른 나라들이 빨리 따라잡으려고 해도, 고려는 한 걸음, 아니 네다섯 걸음 앞에서 먼저 뛰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고려는 계속 세계에서 인재들을 빨아먹고 있었으니 걸음이 좁혀지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국은 이제 어떻게 대응조차 하지도 못할 투발 수단―탄도 신기전―으로 핵폭탄을 사방에 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고려도 이를 잘 알았다.

그러니 달래주어야 했다. 우리가 엄청나게 강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어른이 애들 앞에서 폭력을 쓰지 않음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러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안 쓰는 것이라고. 그렇게 달래서 애들 손에 든 권총을 내려놓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오로지 과거의 행실만이 달래주는 말의 신뢰성을 담보했다.

고려는 그들이 기나긴 세월 동안 축적해놓은 신뢰성과 도덕성을 이용해야 했다.

그 두 가지 덕목을 통해, 고려는 자신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들에게 비핵화를 강요해야 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핵의 평화적 사용만 승인합니다. 핵무기는 개발되어선 안 됩니다.”

“제국만 빼고 말이겠지요!”

전후 파남에서 열린 국제연합 이사국 회의는 미묘한 긴장 속에 진행되었다.

중화와 소련 두 악마가 쓰러지며 대전쟁이 끝났으니 모두 행복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 속 이야기는 없었다.

다만 여전히 냉철한 현실정치의 연장선이 진행될 뿐이었다.

다짜고짜 무력으로 땡깡을 부릴 미치광이 국가들이 제거되었으니, 오히려 논리적, 이치적 측면에서의 토론이 더 중요해진 것도 있었다.

의장국 고려는 현시점,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 만한 여력(경제력과 기술력, 동기 등)을 지닌 국가들을 8개국 정도로 분류했다.

조선과 백제, 프랑스, 도이치,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에이레, 아발론이었다.

권우일이 기술을 공유하려고 한 나라들과는 조금 미묘하게 달랐다.

이들은 경제력과 인구, 기술력, 당위성적 측면에서 시도해볼 만한 나라들이었다.

물론 적석계획급의 거대한 국책 연구를 진행시킬 여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가능성을 알게 된 이상 맨땅에 머리를 박으며 시작한 고려보다는 난관을 덜 겪을 수도 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엔 만들 수 있는 나라들이었기도 했다.

조선과 백제는 이미 엔케바토르에서 확실한 대답을 내놓았으니 괜찮았지만 나머지 국가들이 문제였다.

이 국가들을 초장에 잡아야 핵이 무절제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조약과 규약으로 잡아놔야 했다.

특히 프랑스.

“주권 침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섭니다.”

예상대로 프랑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원체 반골 기질의 국민성을 자랑하는 이들은 지금의 불합리한 상황을 수긍하려 들지 않았다.

“무기 개발은 국가 주권입니다. 아무리 고려라도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아국은 아국의 안보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핵을 소유하길 원합니다.”

“그럼 이 자리를 빌려 물어보지요. 지금 귀국, 타수의 안보를 누가 해친다는 겁니까? 누가 해칠 수 있단 말입니까?”

프랑스 국제연합대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동공이 살짝 떨렸다.

이제 명확한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련과 중화는 이미 해체됐고, 프랑스 안보를 위협할 존재는 남아있지 않았다.

설령 새로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결국 고려가 줘팰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프랑스가 타수를 탈퇴하여 고려와 척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안보는 실로 굳건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상황적 맥락 속에서 프랑스가 주장하는 자국 안보를 위한 핵무장의 논리는 굉장히 빈약했다.

이 논리의 흐름은 고려를 믿지 못하는 것, 그리고 고려주도의 국제연합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회의는 그렇게 고려와 프랑스와의 말싸움으로 이어졌다.

다른 이들은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바라봤다.

중려의 견종 중엔 테치치(치와와)라는 개가 있었다.

그 개는 작고 귀엽지만 특유의 지랄 맞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자신을 쓰다듬고 있는 주인 손가락을 어떻게든 물어보려고 발악하곤 했다. 덩치 크고 온순한 골든리트리버와는 완벽한 대척점에 있다고 봐도 좋았다.

지금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프랑스는 테치치였고, 고려는 개 주인과 같았다. 실로 그러했다. 프랑스인들은 자존심이 세고 질투심이 강했다. 또 한 고집 했고 남에게 복종하지 않으려는 독립심도 강했다. 영락없는 테치치가 따로 없었다.

개가 영원토록 개 주인을 이기지 못한다는 건 모두가 안다.

그래도 개는 여전히 지랄을 부렸다. 주인에게 자신의 목줄을 풀고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게끔 요구하는 것이다.

이 상황 속, 개가 발광을 한다고 목줄을 손에서 놓는 것은 하책이다. 그 개가 갑자기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가 민폐를 저지를 수도 있었고, 개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주인 된 도리로서 절대 그러면 안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엄격한 복종 훈련이 필요했다. 그것만이 개와 주인 모두가 행복한 길일 터다.

보통의 나라라면 프랑스를 길들일 수 없다.

오직 한 나라만이 가능했다.

그토록 지랄 맞은 성격을 지닌 테치치 같은 프랑스조차도 딱 한 국가에는 굉장히 순종적이었다.

고려.

이 이상한 나라.

미워하지만 사랑하는 애증의 관계.

그 나라 앞에만 가면 아무리 프랑스라도 배를 보이며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능한 개 훈련사 앞에 간 것처럼.

1차대전 이후, 거하게 처맞은 프랑스는 중증 공려증 환자로 분류될 정도로 큰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외젠이 축출된 공화국 내에선 고려와 척지겠다는 말을 내뱉으면 단번에 전쟁광으로 몰려 숙청당하기 일쑤였을 정도였다.

물론 이 관계는 어디까지나 공포에 의해 형성된 관계였으니 결과가 어쨌든 부정적 관계로 정의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프랑스가 고려를 싫어해야 할 이유만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고려는 와인 산업을 박살 낸 당사자였기도 했지만, 결국 화해한 이후에는 은인이 되었다. 프랑스 와인 부흥을 위해 포도뿌리혹충에 내성이 있는 품종을 공동개발해 주었으니까.

그뿐만일까. 고려는 유럽 학문을 주도하던 프랑스와 이야기를 나누어 국제단위계(제국도량형)를 반포했기도 했다.

실제적 단위의 기본량 자체는 고려가 쓰던 것에 최대한 가깝게 했지만, 고려도 양보한 것들이 있었다.

효율성에 관한 한, 제국은 그 덩치가 어울리지 않는 특유의 유연한 사고방식을 보여주었다. 이에 프랑스 지식인들이 제국에 깊게 매료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그들이 사랑하는 성녀가 만든 앙주 왕실의 인기는 심지어 혁명이 갓 일어난 시기의 프랑스에서도 대단히 높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프랑스 혁명 이후 왕정복고파가 부르봉에 집착하는 대신 다르크 가문의 바지왕이라도 한 명 데려다 파리에 앉혀 놓았다면 어쩌면 왕정복고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공화국이 완전히 정착된 지금도 앙주는 프랑스와 가장 활발하게 교류하는 주였고, 프랑스 출신들이 고려에 건너가 적응하기 위한 발판이 되곤 했다. 이베리아계 국가―화주와 그리스―진주 관계처럼.

또 프랑스는 그 콧대 높은 문화적 자부심과는 별개로 바그 코히엔에 가장 깊게 물들었던 나라였다.

그들은 애국자적 모습을 보일 땐 프랑스말을 썼지만 유식함을 자랑할 땐 고려말을 썼다.

품위를 지키며 먹을 땐 고려식으로 화로를 가져다 음식을 계속 따뜻하게 데우며 먹었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싶을 땐 겹빵을 먹었다. 우아하게 커피를 홀짝거리지 않는 날엔 콜라를 마셨다.

고려의 인기 대중가요 유럽 순위는 파리에서 결정된다는 말도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문화적 영향력만큼은 아직 프랑스가 도이치보다 강했다.

고려산 축음기가 가장 많이 팔렸던 나라도 프랑스였다. 그때가 금 모으기 시절, 즉 프랑스가 정말 가난했을 때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기묘한 나라가 아닐 수 없었다.

고려의 노래를 듣고, 고려의 의복을 입고, 고려의 음식을 먹고 고려말을 쓰는데, 일방적으로 미워하기란 불가능했다.

제국은 무력으로 세계패권을 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진작부터 문화로 승리한 나라였다.

그러니, 결국 프랑스 대사는 분란 조장의 목적만이 다분한 말로 항변하는 것 이외엔 ‘명확하고 당면한 위협’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고려는 파리를 지키기 위해 청해를 포기할 수 있습니까?”

억지 주장이다.

프랑스는 화가 난 테치치처럼 짖고 있었다.

다만 방금의 질문은 정치적 측면에선 꽤 효과적이었다.

대사가 이 물음에 청해를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면 자국민들, 특히 청해시민들에게 몰매를 맞을 것이다.

청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며 또한 프랑스의 억지 주장에 승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우리가 왜?

우리가 그랬나? 과거를, 역사를 봤으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순간, 고려 대사는 그로선 드물게 감정조절에 실패했다.

“둘 다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청해? 파리? 둘 모두 절대로, 절대로 두 번 다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똑같은 문장이 두 번씩이나 강조되었다.

고려 대사는 노기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개성참극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

“이 자리를 빌려 이거 하나는 제대로 약속드리지요. 그 어떤 나라도 제국의, 동맹국의 도시를 위협한다면….”

고려 대사가 쿵 책상을 짚었다. 그의 얼굴에 서리가 피어올랐다. 서리가 책상을 타고, 다른 이사국들의 원탁에 퍼져 나갔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얼음장 같은 그 기세에 위압당했다.

“중화의 꼴을 면치 못할 겁니다.”

프랑스 국제연합 대사는 손바닥의 땀을 훔쳤다. 그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던 다른 나라들이, 이제는 조금 서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탈레랑이었으면 저런 멍청한 질문은 안 했겠지.’

그중 몇몇은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청해도, 파리도 포기하지 않을 거란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프랑스 대사가 그렇게 일갈하기엔 그 말이 가진 무게감이 너무 무거웠다.

개성참극으로 눈이 돌아갔었던 고려가 무서웠다.

‘바보 같은 말이었다.’

결국 그렇게 말을 꺼낸 당사자조차 역린을 자극한 방금의 발언을 후회하기 시작했으니.

분위기가 가라앉은 이사회 회의장에서, 고려는 다시 차근차근 입장을 정리했다.

고려의 행동은 패권국의 본질이었다.

한번 우세를 잡은 국가는 그 우세를 놓치지 않고 싶어 한다.

그 본질은 잔인한 중화주의 독재국가든, 관용적 자유주의 입헌군주정 국가이든 마찬가지였다.

고려 또한 패권국으로서의 기본적인 오만함,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핵은 그들의 패권을 위협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워싱턴을 비롯한 고려의 정치인들은 이를 뼈저리게 인지했고 최대한의 역량을 기울여 이 핵을 독점하리라 천명했다.

이는 좌와 우를 가리지 않았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제국에 대한 한없는 확신은 교경귀 삼당 모두에 적용되었다.

그러니 내가 하면 열애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가극 속에서나 쓰일법한 명언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곤 했다.

그토록 선의와 놀라울 정도의 절제력으로 포장되어 있었던 고려마저도 본질의 일부는 여전히 억압적 면모가 공존하는 패권국이었으니.

이 자리에 있는 저명한 외교관들이 그걸 모르지 않을 터.

‘그러니 가장 중요한 물음들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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