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24화 (624/653)

624화 종전(2)

533년 6월 30일.

몽골

엔케바토르.

창양 광장에서 스러져 간 늙은 영웅의 이름을 따 지은 이 새로운 도시는 4월 1일의 독립기념일로부터 거의 세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6월 30일, 고려 황제 부부가 직접 엔케바토르에 방문하며 그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본래 우르구, 이흐 후레 등으로 불린 이곳은 사실 예전엔 썩 유명한 곳이 아니었다.

그저 절 몇 개, 게르촌들이 있었던 곳에 불과했다.

중화제국이 무차별하게 몽골인들을 잡아간 뒤에는 일시지간 텅텅 빈 폐허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곳은 이전에 엔케바토르의 저항 근거지 중 하나였기도 했고, 또한 고려가 요령전역을 승리로 이끌고 본격적으로 남하할 때 해방 몽골의 거점으로 삼았기에 그때부터 의미가 생겨났다.

협동일관용기(컨테이너)를 이용해 지은 고려군 군사기지를 중심으로, 해방된 몽골인들이 몰려와 그 주변에 펼친 게르가 하나둘씩 늘어나다 보니 도시가 된 셈이었다.

결국 전후 이곳은 이름도 엔케바토르라 정해지며 몽골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어차피 몽골인들은 유목민적 관습을 지금까지 간직했던 사람들이라 딱히 수도로 삼을 도시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역사적인 장소인 카라코룸은 좀 내륙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에 따라 길어진 경로로 고려와 예맥한의 지원을 받기 더 불편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비록 고려가 용서했다 하나, 과거 문제로 인해 수도로 삼기엔 무언가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또 중화의 학살 같은 만행이 벌어진 장소였기도 했으니, 과거를 잊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썩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엔케바토르도 식수로 쓸 만한 강이 흐르고 있는 등 꽤 괜찮은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었으니 수도로 삼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고려군이 철수(남하)하며 준 자원을 바탕으로, 몽골인들은 평화의 영웅의 이름을 딴 도시에서 자신들의 나라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고려도 몽골의 재건과 엔케바토르의 건설을 도와주었다.

고려뿐만 아니라 옛 과거에 대한 사과이자 화해의 표현으로 조선과 옥저도 여러 원자재들을 공급해 주니, 고난 속에 초원의 꽃이 아름답게 피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나란투야와 해안 부부도 이곳에 방문했다.

나란투야도 자신의 이름을 딴 나란투야 대광장에 설치된 조부와 자신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그럴 필요까지 없었는데 몽골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여 만든 것이랬다.

동상의 조부와 손녀는 다정히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화목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녀는 끝끝내 눈물을 흘렸다.

“분명히 기뻐하고 계실 거예요.”

엔케바토르 중앙 거리엔 몽골의 깃발과 국제연합 깃발, 제국기가 모두 휘날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몽골인들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해방을 만끽했다.

그 수는 처음 중화가 잡아간 수의 십분지 일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생존자들은 살아남은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외국으로 망명했던 인사들도 그들의 땅에 차근차근 도착했다. 그들도 생존자들과 감격의 상봉을 이루었다.

유목민의 시대가 끝난 지금, 몽골도 정주민으로서 이 도시를 기반으로 새롭게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었다.

당당한 국제연합의 일원으로서.

사실 벌써 엔케바토르엔 지금 네 국가의 외무장관들이 모여 있었다.

고려 황제 부부의 몽골 방문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황가를 호종하기 위해 외무상서가 직접 동행하기로 한 것은 비교적 최근에 결정된 일이었다.

이렇게 최고 중요 인사들이 근처를 방문하니, 이 일정에 껴들기 위해 예맥한 3국도 각기 외무장관을 보냈다.

그렇게 졸지에 상서급 4자회담이 만들어졌다.

새로 수립된 몽골 정부는 졸지에 아직 건설 중인 수도에서 열린 4자회담을 무사히 성사시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게 되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현대화된 객원이니 하는 시설은 아직 엔케바토르에선 기대할 수가 없었기에 황제를 포함한 4국 상서, 장관들은 게르에 묵어야 했다. 몽골인들은 황제와 장관들의 격에 어울리는 최대한 고급스러운 게르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고급스러운 게르에 모인 장관들은 최근 국제정치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 중 하나였던 백제―강화 이중왕국 설립에 대한 축하를 백제 외무장관에게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황상의 은혜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여러분들께서 아국을 좋게 바라봐 주셔서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백제 외무장관의 겸양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들이 비로소 통일 열도국가로 발돋움한 데엔, 주변국들의 협조가 있었으니까.

* * *

세계사에 기록될 만큼 허무한 전쟁 이후, 강화는 고려의 군정을 받게 되었다.

고려가 중원을 치기 위해 바닷길을 나아가는 도중 군함 앞을 가로막은 나룻배마냥 쥐도 새도 모르게 침몰해버린 강화는 도쿄 공격 이후 일부 수괴들이 도쿄를 버리고 달아나 항전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너무나 빨리 진압당했다.

하나의 총통으로 단결한 중화와 달리, 강화인들은 자신네 화족이나 사무라이, 고관대작들을 밀고하는 데 거리낌 없었다.

송평융맹은 사형을 언도받았다. 전범들도 사형당하거나 감옥에 들어갔다.

이후 고려는 강화에 군정을 실시했지만 귀찮음 반, 고의 반으로 백제에 군정을 반쯤 위임했다.

강화까지 신경 쓰기엔 할 게 너무 많았다.

백제는 그렇게 통일 기회를 앞에 두고 고민했다.

민족주의의 시대가 끝난 지금 이 시점,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통일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독자적으로 형성된 백제 문화와 강화 문화의 이질성도 신경 쓰였다. 언제고 독립 욕구가 빗발칠지도 몰랐다.

다르게 살아온 세월들이 대체 얼마인가. 서로 총을 겨눈 세월이 자그마치 몇백 년이다. 동쪽 미개인들, 서쪽 침략자들, 서로를 욕하는 단어만 수십 가지였다.

게다가 백제국민이 여러모로 강화국민들보다 더 잘살았다. 세금은 필히 서에서 동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통일을 한다고 해도 세상사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허나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는 땅이 커지면 커질수록 행복해했다. 백제가 마침내 강화를 집어삼키는 것은 필연적 행동이었다.

다만 부여씨 가문은 이 통일을 조금 ‘유럽적’ 사고방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급진적이고 일방적인 통일은 양국 국민에게 모두 반발을 살 것이 분명했으니, 그들은 옛 외스터라이히―도이치 통일의 경우를 참고했다.

세월이 꽤 흐른 지금이야 이제 통합정부를 논의하고 있었지만, 도이치와 외스터라이히는 각각의 정부가 따로 존재했다. 외교권과 군권은 도이치가 가지고 있었지만 외스터라이히 정부도 자치정부치고는 굉장히 폭넓은 권한을 가졌었다.

백제는 그걸 참고했다.

명백한 전범이라는 명분을 들어, 부여씨 가문은 강화왕 덕천가 직계 대부분을 전쟁범죄 행위 방조의 이유로 수감시켜 버렸다.

마츠다이라는 이미 대가를 치렀지만, 덕천가도 분명 그 책임이 있었다.

덕천가 직계 남성들은 수감과 동시에 전범법에 의해 계승권이 박탈되었다. 수감 기간이 끝나도 어떠한 계승권을 주장하지 못할 예정이었다.

오직 직계 여성 왕족 덕천규자(도쿠가와 키코) 단 한 명만 이런 처사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백제왕 부여진건은 덕천규자를 강화왕에 추대하고는 자신의 아들 부여명정과 결혼시켰다.

강제적 혼인에 의해 백제―강화 이중왕국이 탄생한 것이다.

열도 역사에 여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꽤 먼 과거의 일이었기에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부여명정이 천지 분간 못 하는 열한 살이었고, 덕천규자의 나이가 한창 꽃다운 열아홉 살이었다는 것은 국제정치학상으론 굉장히 소소한 문제였다.

부여진건은 아들을 결혼시키고 왕위에 올리는 ‘신묘한’ 결단을 내림으로써 마침내 열도의 땅을 통일시키는 위업을 이루었다. 어차피 현 백제 왕실은 별 권한도 없었으니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상왕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현대적 국민국가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이 순간, 백제와 강화의 이중왕국화는 굉장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특히 아시아라면 더더욱.

허나 의외로 국민적 반발은 거의 없었다.

강화 내 질서 변동에 반발할 만한 일부 화족들과 사무라이들은 이미 전부 수감되거나 몰락한 뒤였다.

오히려 대다수 강화인들은 이를 반겼다. 백제인들도 이중왕국식의 결합은 찬성했다. 그만큼 백제와 강화 사람들이 꾸준한 열도 전쟁에 지쳐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열도인들은 서로 같은 왕 아래에서 자치적 정부를 꾸리고 마침내 비와호 근처의 철책과 기관총들을 해체하며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국호는 엄연히 백제―강화가 전부 포함되었지만, 국제적으로는 귀찮음 때문인지 그저 여전히 백제라 불렸다. 강화인들마저도 해외에선 그냥 전(前) 전범국 사람이라 소개하는 대신 스스로 백제인이라 칭하곤 했다.

* * *

고려로서는 어쨌든 환영할 만한 사항이었다. 자국의 힘을 제대로 자각한 그들은 열도가 통일되든 말든 이제는 전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열도가 적어도 열 개 이상으로 불어나야 고려의 안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는 그저 그런 열강 하나에 불과했다.

사실 백제 이중왕국이 조선이나 도이치급으로 성장할지도 의문이었다.

오히려 강화가 독자적 정권으로 남아서 또 짜증 나게 구는 게 신경 쓰였을 것이다. 예맥한 3국의 건전한 경쟁은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예맥한 삼국을 조금 조련할 때구나.’

최근 민감한 문제가 있었다.

갑자기 찬바람이 부는 듯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축하를 끝낸 백제와 조선, 옥저의 외무장관들이 불현듯 외무상서 이산의 눈치를 봤다.

“최근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지요…? 이 자리를 빌려 그에 대해 논의해 보고 싶습니다만….”

이 외무장관들이 발에 땀 나게 몽골로 달려온 것은 엔케바토르에 세워진 동상이나 구경하러 온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냥 빌러 왔던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빌어야 했다.

“저희가 꾸민 일은 진짜 아닙니다. 믿어주십시오!”

조선 외무장관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외교관으로서는 실격이지만, 고려와의 관계에선 오히려 저런 납작 엎드리는 태도가 필요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들은 신용을 중시했고, 초장에 진실을 말하는 것을 굉장히 높이 샀다.

게다가 지금 엔케바토르엔 황상께서도 계셨다.

비록 이번 일을 일임했지만, 이산이 언제 조르르 황상께 달려가 삼국이 어쩌고저쩌고했다고 일러바칠지는 모르는 일이다.

고려가 봉신적 관계를 해산했다고 하나 삼국은 오히려 스스로 그 끈을 절대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스가 그렇게 잡고 싶어 하는 끈이다. 놓는 놈이 바보 멍청이였다.

이산은 애가 타는 장관들의 표정을 살폈다.

‘사주를 한 것 같진 않군.’

정보총국의 보고서에서도 그렇게 적혀 있긴 했다.

이산도 이번 일이 권 교수가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확신했다.

다만, 그걸 이쪽에서 먼저 인정해주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이산은 지금 이 유리한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아국이 삼국 모두 핵확산 방지조약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세계 평화를 위한 그대들의 진실된 마음일 것이라고, 이산은 덧붙였다.

“…….”

세 명의 외무장관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이내 조선의 외무장관을 필두로 모두 고개를 하나둘씩 끄덕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삼국은 고려와 척질 수 없다.

이미 세 번째 고려라는 부모에 의해 똥 기저귀를 갈게 된 조선은 더더욱 그랬다. 걸핏하면 광장에서 제국기를 휘날리며 합병 투표를 부르짖는 조선인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척지면 안 되었다.

허나 무언가를 내주면 얻는 것도 있어야 했다. 조선 외무장관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그 대가로 저희는 확고한 핵우산을 받길 원합니다. 또…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원자로? 원자로라 하셨지요. 그 약조도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이산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핵우산은 어차피 당연한 개념이었다. 핵확산의 방지를 위해선, 국가안보의 보장이 필요했다.

“그건 약속하지요. 예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제국은 조선과 백제, 옥저의 주권과 안보를 위협하는 그 어떤 적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산은 원자력 발전소도 세워줄 것이라 장담했다.

애초에 이런 원자력의 평화적 협력 개발 공약은 고려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이산의 말에 외무장관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분위기가 비교적 온화하게 변했다.

이산은 예맥한의 합의가 사실상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권의 총체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중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핵개발을 할 수 있는 나라들은 이런 열강들이었다.

약속을 받은 만큼 예맥한을 걱정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니 지금 고려의 주 근심거리는 유럽국가들이었다.

이산이 다른 장관들을 떠보았다.

“여러분들께선 유럽 각국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으십니까?”

옥저 대사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에이레와 네덜란드는 당연히 찬동할 것이고…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스웨덴, 루테니아 등도 굳이 상국과 척지지는 않을 게지요.”

조선 대사가 말을 받았다.

“그 밖에 다른 나라들은 아마 개발 여력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남은 건 도이치와 프랑스가 아니겠습니까?”

“특히나 프랑스는 그 꼴통 같은 성정으로 분명히 까칠한 말을 할 겁니다. 만약 그치들을 이치로 제압하실 수 있다면, 도이치 또한 수긍하겠지요.

유럽국가들은 미묘한 경쟁 상대라 어느 한쪽이 가지면 무조건 가지길 원할 것이고, 반대로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다면 모두가 가질 수 없길 원할 겁니다.”

외무장관들이 소소한 험담을 나누었다.

아무리 그래도 예맥한과 고려 4국은 알게 모르게 유대감이 있었다.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도 곤란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며 그들은 일부 유럽국가들을 돌려 까면서 웃었다.

다만 그들이 말한 유럽의 특성―서로 견제하는―은 예맥한 삼국도 비슷했다. 장관들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러니 오히려 고려만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고 워싱턴 시중 당하의 논리가 성립된다.

두 대양을 끼고 인접국 없는 외교를, 그러므로 가장 객관적 외교를 할 사람은 우리밖에 존재하지 않아. 국제 질서와 평화는 온전히 제국의 몫이라.’

그렇게 이 자리를 빌려 이산도 다시금 정부의 방향성을 재확인했다.

* * *

그 문제는 종전 직후 발생되었다.

종전 이후 고려에도 축제가 벌어졌다.

귀향한 군인들을 맞이하는 고향은 축제 분위기였다.

전사자들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은 비극적이겠지만, 나라 전체로는 경사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전쟁을 훌륭히 승리로 끝마쳤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우리가 승전국이자 절대적 패권국에 살고 있다는 무한한 자부심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은 고려가 마지막에 결국 핵을 투하했다는 사실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적석계획에 참가했던 과학자들 사이에서 후회스러운 말이 나왔다.

적국이라 하나 도시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죽은 업보가 모조리 자신들만의 것인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원자폭탄의 아버지, 권우일은 그 정도가 심했다. 며칠 밤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수척해졌을 정도였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렸을 만큼 적석계획에 그의 공헌도가 지대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원폭을 개발했지, 학살을 위해 개발한 것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런 생각도 그저 내면의 갈등으로 끝냈으면 모든 것이 좋았을 것이다.

권우일은 좋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그를 직접 취조한 요원이 순수한 것인지, 혹은 바보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평가한 것처럼, 우일은 전 세계 국가들이 핵을 모두 고르게 나누어 가지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평화가 내려앉으리라 생각했다.

상호 파괴가 확증된다면 국가가 국가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중화와 소련이라는 희대의 악마들이 제거되고 있는 시점에선 그 생각이 조금 더 공고해진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저런 나라들이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는 고려의 우방국, 즉 어느 정도 명망이 있고 평화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들에게 핵무기에 대한 자료를 줄 계획을 짰다.

조선, 옥저, 백제, 도이치, 네덜란드, 에이레, 아발론.

아마 이렇게 7개국에 핵을 공유할 계획을 세웠던 모양이었다.

허나 과학적, 공학적 지식만 유능할 뿐, 다른 측면에선 순진했던 권우일은 금방 보안국에 덜미를 잡혔다.

애초에 결정적인 제보도 있었다.

그의 아내이자 같은 동료 과학자인 이민혜 교수가 보안국에 직접 연락했댔다. 그녀의 협조로 권우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금방 붙잡혔다.

권우일은 큰 배신감에 아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이 나를?”

“정우를, 가족을 위해서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어?”

하지만 이민혜 또한 남편에게 만만치 않게 실망한 상태였다. 남편이 획책한 미련한 짓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당신도 알잖아, 우리가 무슨 괴물을 탄생시켰는지!”

권우일이 애원했다. 아내이자 동료만큼은 자신을 이해해 주길 원하며.

허나 이민혜는 그런 남편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면서도 차갑게 부정했다.

“조국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당신이 그걸 부정하면 어떻게 해?

그럼 적석계획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 바보 멍청이야? 혼자만 도덕적 고뇌를 했다고 생각해?

우리가 뭘 위해 밤을 새웠는지 몰라? 정우가, 그리고 정우 또래 친구들이 대체 누구랑 싸우고 있었는지 몰라?”

정우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아직도 밤마다 끙끙거리며 자곤 했다. 부모로서 그 광경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으니까, 당신 말대로 그랬으니까. 난 항구적 세계 평화를 원했어!”

“당신은 바보야. 한번 그렇게 퍼져 나가면 다른 나라도 핵개발을 할 거라고. 제국 바깥으로 흘러 나가면 전부 다 가지길 원할 테니까. 당신이 콕 찝은 6개국으로 멈추진 않을 테지!

만약 그 기술이 또 다른 미치광이 국가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면… 그래, 그땐 열전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구는 항상 언제든지 멸망으로 치달을 수 있는 불안에 떨고, 어느 한계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할 거야.

냉전이 열전보다 더 좋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누구 하나 미치광이가 탄생하면 인류를 절멸시킬 그러한 구도를 정말로 옹호한 거야? 겁쟁이 내기(치킨 게임) 이론처럼?”

“이 박사님. 알았으니 진정을….”

오히려 그를 체포하러 온 요원이 말려야 할 정도로, 민혜는 남편에게 맹렬히 쏘아붙였다.

아내의 적절한 고발 덕에 권우일 교수는 중대 범죄인 간첩죄나 국가안전보장법을 적용받지 않고 가택연금으로 끝났다. 유출된 것들도 없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당사자가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만큼 위신이나 보안상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던 고려 정부도 민혜의 사법거래에 응했다.

권우일 박사는 당국의 엄중한 감시 아래, 자택을 떠나지 못했다. 떠나더라도 담당 요원과 항상 동행해야 했다.

그래도 결국 부부가 화해했다는 것만큼은 다행스러운 일일 터다.

다만 이는 현재 첨예한 국제 정세와 맞물려 고려가 풀어야 할 마지막 문제로 비화되었다.

진정한 단극체제와 세계 평화로 가는 마지막 장애물로.

[작가의 말]

엔케바토르(도시) : 울란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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