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화 종전
개천력 533년 4월 1일.
길고 길었던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대다수 중화군 장교들이 항복했다.
반면 무한 방어사령관 양송락을 비롯해 몇몇 극성 중화당원들은 총통의 죽음이 확실시된 와중에도 잔당들을 긁어모아 저항하려 시도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저항하던 극성 중화당원들은 제압당하고 추후 있을 재판을 위해 수감되었다.
그렇게 중화군이 무장해제되었지만 연합군은 핵공격이 있었던 주요 도시들과 그 주변의 오염된 지역들까지 굳이 우르르 들어가진 않았다.
방사능 낙진에 대한 위험성은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핵폭발이 일어난 지역은 기폭 7일까지의 방사능 피폭량이 7일이 지난 뒤부터 영원토록 받을 피폭량보다 높다 했다. 또한 3주에서 한 달이 지나면, 외부에 나갔다 와도 될 정도로 방사능 수치가 떨어졌다.
핵을 무기화한 적석계획이 입안된 지 그렇게 많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대체 이런 자세하고 장기적인 연구 결과가 벌써 어떻게 나왔는지는 고려 과학자들도 몰랐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폐허가 된 무한 대신 옛 명과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경사에서 항복 절차가 진행되었다.
장교단 중 최고 선임계급인 중화군 상장 오상탁이 공식적으로 연합군 수뇌부 앞에서 항복 문서를 작성했다.
이후 연합군은 곧바로 군정을 실시하며 전후처리에 들어갔다.
계획은 이미 한참 전부터 만들어져 있었다.
중화제국도 소련의 뒤를 이어 분할될 예정이었다.
다만 이 전역에서의 전쟁 공헌도 중 대부분은 고려의 몫이었기에 고려의 의중이 제일 크게 작용했다.
맨 먼저 고려는 참전하여 공로를 세운 주나라에게 복건을 비롯한 옛 지역을 일부 되돌려주었다.
또한 하북에 하북민들을 위한 연나라를 세웠으며 장족(壯)으로 이름을 바꾼 동족을 위해 광서와 광동 일부지역에 장을 만들었다. 물론 장은 장족을 위한 나라만은 아니었다.
중화민국 설립 이전처럼 섬서와 감숙에 기반을 둔 순도 다시 수립되었다. 여기까지가 고려가 종합적으로 판단한 중화 분할계획의 기본 골자였다. 종합적인 난이도가 꽤 쉬웠다.
그 이후에는 복잡했다.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했고,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화가 쪼개져야 한다는 것에 분노하는 중화 사람들도 있었고, 좀 더 쪼개져야 한다는 피해자 국가들도 있었다.
일단 산동에 기반을 둔 제나라가 생겨났다.
조선과 백제를 비롯한 예맥한계 국가들은 연 하나만으로는 완충국가로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고, 산동의 제까지 독립 정권이 세워지길 원했다.
산동이 독립한다면, 황해의 제해권은 앞으로도 쭉 조선이 가지게 될 것이었다.
중화주의자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황하 제방을 폭파시킨 습진균 덕분에 정작 현지 주민들의 반발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주나라 대사의 탄식처럼 황하 유역의 사람들은 이미 습진균,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강남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상태였다.
한번 그렇게 이탈자가 생겨나자, 지역 분열은 더더욱 가속화되었다.
또, 전후 때마침 장강 이북(강북)과 장강 이남(강남)의 유구한 대립이 폭발했다.
강북 사람들은 중화제8제국이 저지른 전범적 과오를 최대한 강남사람들에게 돌리려 시도했다.
중화제국이 미친 짓거리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세계가 알고 있는 상황. 전후엔 자국민들도 자신들의 추태를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인체 실험이니, 포로 대학살이니 그러한 것들까지.
미몽에서 깨어난 한 중화인의 증언에 따르면, 술에 취한 채 자다 다음 날 완전히 발가벗겨진 상태로 깨어난 느낌이었다 한다.
중화주의자들이 전부 다 당규삼마냥 완전히 미친 자들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정부가 저지른 허물을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사실 중화주의자 한족 중 습진균을 싫어했던 ‘무고한 이’는 굳이 따지면 소수민족이나 유목―멘셰비키로 몰렸던 황하 이북(하북) 사람들 정도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젠 중화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렇게 주장했다. 그중엔 불과 몇 달 전까지 습진균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 흘렸던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가장 큰 건 배상금 문제 때문이겠죠.
중화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재빨리 결별하면 일단 배상금 문제는 해결되니까요. 하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폭탄이 떠넘겨질 겁니다.”
외무상서의 생각처럼 한번 산동이 독립하자 시간차를 두고 다른 황하 유역에 진과 위가 태어났다.
중화 분열은 그렇게 명백해진 것이다.
이내 강소와 절강, 그리고 사천에도 따로 정권이 들어섰다. 각기 초, 오, 촉이라 불리는 국가들이었다.
초창기 이들은 중화제8제국의 원죄를 떠넘기기 위해 서로 극명하게 대립했다. 중화가 배상해야 할 금액을 누가 뒤집어쓰냐의 문제였다.
고려는 이를 영악하게 이용했다.
전후 고려는 딱히 배상금이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과도한 전시수요 때문에 촉발된 물가상승이나 잡아야 할 처지였다. 그냥 배상금 흥정 명목으로 지나에 들어선 각국에게 목줄을 채워놓는 게 더욱 현명했다.
다만 중화가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점유한 곳은 도저히 해결방안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연합군과 현지 세력 모두.
형양 북쪽의 호남과 양양 아래의 호북 그리고 무한, 상덕, 장사 등의 대도시를 포함하는 중화제국의 마지막 영토는 중화 내에서도 비옥하고 산업적 동력을 갖춘 땅이었으나 전후에는 완전히 황폐화된 땅이 되어 있었다.
사람도 못 살 만큼 끔찍한 곳으로.
이곳엔 잠정적으로 ‘무주지(無主地)’가 만들어졌다.
핵무기 때문은 아니었다.
실제로 강소성에 들어선 초나라는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영토욕에 핵이 떨어진 합비를 굳이 점유했다.
지금 당장은 폐허가 된 도시라도 나중은 또 모를 것이라며.
방사능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 없이 대충 낙관적으로 판단한 선택이었지만 의외로 현명한 판단일지도 몰랐다.
핵폭발은 순간적으로 강력한 방사능 피해를 입혔지만, 일시적이었다. 지금 당장은 무리더라도 언젠가 도시는 다시 일어설 것이었다.
반면 탄저가 촘촘히 흩뿌려진 무주지는 그야말로 도저히 어떻게 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곳이 된 상황이었다.
이만큼 마구잡이로 뿌려댄 탄저균들은 화학물질로도 제독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될 만큼의 화학물질이 필요했다.
연합국은 방사능 오염과 탄저 오염을 비교해가며 차라리 고려가 새롭게 만드는 수소폭탄(더 위력적이나 더 방사능이 적다고 판단되었다)을 이용해 이 탄저 오염지역에 몇 발의 핵무기를 더 쏘는 방안까지 고려했을 정도였다.
아직 시기상조라 결론 내렸지만.
주변국들도 이곳을 점령하길 꺼려했다.
본래 영토란 곳은 이득이 되니까 점유하는 것이었다. 이득이 되지 않는 영토를 굳이 먹는다면 관리비와 책임만 늘어나는 골치 아픈 곳이 되기 마련이었다.
이곳이 딱 그랬다. 방사능과 탄저, 기타 생물학적 재해까지. 실로 책임지기 싫은 것들이 줄줄이 딸려오는 땅이었다.
무주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진작에 다른 곳으로 도망쳤으니, 인구적 측면에서 먹어도 이득이 없었다.
때문에 이 지역은 무주지로 당분간 남아있을 터였다.
* * *
전쟁이 끝난 이후, 평화가 내려앉은 하북의 연경.
고려 포로 수용소, 정확히 포로 회복소에서 풀려난 왕성청이 결국 무사히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성청은 연경 중심에 위치한 큰 고루거각에 도착해 건물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과거에 그렇게 성세 넘쳤던 이 고급 요릿집은, 국공내전과 세계 2차대전을 겪으며 지금은 폐허라 부를 정도로 많이 낡고 훼손된 상태였다.
어쩌면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지도 몰랐다.
다만 이 낡고 손상된 건물엔 ‘우리 식당 정상 영업합니다’하고 고려어로 삐뚤빼뚤 쓰인 현수막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현수막 하나에 성청은 적잖이 안도했다.
“누구시오? 아직 시간이 일러 손님은 받지 않소만.”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고 있자니, 늙수그레한 남자가 삐걱거리는 성화루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그렇게 말했다.
문을 연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한참 동안이나 내방한 손님을 바라보았다.
왕성청도 한마디 말 없이 그저 늙수그레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로도 그 둘은 딱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주춤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간 뒤, 바짝 끌어당겨 안을 뿐이었다.
“왔구나, 왔구나…!”
“아버지!”
곧이어 요란하게 울음이 터졌다.
대체 무슨 일 있나 하고 뒤따라 나온 왕성청의 늙은 어미도 아들의 생존에 끝내 눈물을 흘리며 성화루의 계단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아버지와의 포옹을 푼 왕성청도 눈물을 닦으며 어미를 다독였다.
요령전역에서의 가혹한 환경과 격렬한 전투, 그리고 탄저가 뿌려진 포로수용소에서의 집단 감염.
그토록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국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은 것이 실로 다행이라.
왕성청의 생존에는 그가 가진 운도 있었지만, 그의 의지도 한몫을 거들었다.
아비는 아들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빛이 없던 노인네의 동공에도 비로소 희망이라는 섬광이 번쩍였다. 자신의 살날이 얼마나 될진 모르니, 하북 요리의 정수를 살아 돌아온 아들에게 전해줘야 했다. 당장 오늘부터.
“준비하자꾸나, 성청아. 손님들이 오신단다.”
성화루의 실력은 여전했다.
심지어 연나라에 군정을 실시하는 고려군 장교들도 이곳에 많이 들른다 했다.
현수막이 괜히 고려어로 쓰인 것이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허나 왕성청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잘게 몸을 떨었다.
“아버지… 소자는 다시 칼을 쥘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끔찍한 악몽이 떠올랐다. 정말 끔찍한 악몽들이.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 끔찍한 그림자들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나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과거에 휩쓸려 무너지지 말아라. 나도, 네 조부께서도 국공내전 때 많은 일을 겪으셨다. 네가 한 일들은 너의 의지로 자행된 것들이 아니잖느냐.
네가 후회에 무너지는 것이 결국 저 미치광이 습가 놈이 원하는 바일 테다. 유목 멘셰비키란 역시 어쩔 수 없다고 그리 지옥에서 비웃겠지. 너는 그렇게 다시 매도당하고 싶으냐?”
“…아니요. 아니요, 절대.”
“그렇다면 칼을 쥐어라. 칼로 사람을 해할 수도 있지만,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거라. 예전처럼.”
왕성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번에 모든 그림자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같이 견뎌줄 부모님이 곁에 계셨다.
이 나라 이 땅에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저 멀리 남쪽에서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던 악의 도시도 사라졌다.
그러니 어찌 극복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 * *
허나 이런 행운은 1322총병사단 출신의 낭은덕 열병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
총알받이로 최전선에 끌려간 뒤 투항하여 살아남은 은덕은, 전쟁이 끝나서야 자신의 아비 낭화신과 어머니가 습진균에게 처참하게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무한으로 향했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그쪽 방면에서 왔지만, 그는 그 행렬을 거슬러 올라갔다.
고려가 포로들에게 접종해준 탄저 예방접종만 믿고 그렇게 무한의 폐허에 도착한 은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시는 장엄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사람 하나 살아가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 페허 속에서 부모의 묘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심지어 습진균의 시신마저도 발견되지 못했단다. 누군가 그 시신을 정체를 알지 못하고 장례 치러주었거나, 의도적으로 고려가 없앴다는 소문도 있었다.
전후에도 살아남은 중화군이 그들만의 성인(聖人)을 추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만 낭은덕은 살아남은 친위대원, 고위급 중화 장교들이 있다는 낡은 의원을 찾아냈다.
그는 그곳에서 온몸에서 진물을 흘리며 시체처럼 누워 있는 모경록 대장을 취조할 귀중한 기회를 얻었다.
“나… 나… 그… 끄으….”
하지만 은덕은 모경록과 친위대에게조차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방사능에 극심하게 피폭된 친위대원들은 이미 거진 다 죽어 있었다. 모경록처럼 아직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진물을 흘리는 시체와 다름없었다.
다음 달까지 버티긴 불가능해 보였다.
“잘됐네. 네놈, 그렇게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길 바란다.”
낭은덕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모경록에게 걸쭉한 침을 뱉고는 의원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공허함은 도저히 채워지지가 않았다. 이 공허함은 오로지 복수로 충족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나 누구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낭은덕은 주변의 폐허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순간 무언가를 결심했다.
‘이 땅도 언젠가는 주인을 되찾겠지. 허나 이 역천의 땅, 무한을 점유하는 한족 국가들은 필히 헛된 꿈을 꿀 것이 분명하다.’
근거는 딱히 없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것을 도저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한족은 더 고통받아야 했다. 저렇게 얼렁뚱땅 죗값을 치르면 안 되었다.
핵? 핵이라도 더 맞아야 했다. 고려는 너무 관대했다. 적어도 열 발, 아니 스무 발은 더 쏘았어야 했다.
더 많은 땅이 불타고 죽었어야 했다.
아직 고통은 불충분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 끔찍한 땅에서, 비로소 도적으로 할거하며 사방을 어지럽힐 뜻을 세웠다.
그리하여 영원토록 주변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과오에 발목 잡히며 고통받을 수 있도록.
자신이 궤는 다르지만 습진균에 뒤이어 이 땅의 새로운 혼돈, 새로운 복수가 되리라 다짐하며.
너희, 한족 쓰레기들이여, 살고 싶다면 무한에서 벗어나라.
[작가의 말]
삽화 - 분열된 중원 및 동아시아 지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