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화 징벌
개천 533년 2월 5일.
개성에서의 연합군 수뇌부 회담 이후, 연합군은 마지막 예의를 갖추어 중화제국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사절을 보냈다.
굉장히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중화군 사령부는 드디어 고려가 지쳤나, 그렇게 여기며 환희에 빠지기도 했다. 용맹환의 부작용으로 정신과 기분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락가락하는 습진균마저도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심지어 아주 잠깐은 고려군에 대한 동귀어진의 맹세를 내려놓았을 정도였다.
그런 기대감 속 연합군의 사절은 잠시나마 무한에 들어가 장온계 원수를 만나 접견했다.
총통은 보지 못했다. 습진균은 일부러 장온계와 친위대에게 협상을 일임했다. 자신도 제 몰골을 알고 있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총통의 얼굴빛만 봐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을 사절도 기회가 무산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어쨌든, 항복 요구는 자체는 그렇게 전달되었다.
중화제국의 무조건적인 항복, 전후 처리 과정에서의 성역 없는 전범재판, 배상금 등등.
솔직히 고려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배상금도 합리적이었다. 그들이 자행한 짓거리들을 보면 오히려 관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중화제국으로서 들어줄 수 없는 것들이다. 전범재판이라니. 총통을 매달겠다는 것이 아닌가.
중화국은 항복을 하더라도 몇 가지 핵심 조건을 들어주길 원했다.
하지만 이 조건들은 그야말로 연합국 측에선 절대 들어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연합군 측에서 자기반성이 전혀 없는 유체이탈적 화법이 잔뜩 섞인 중화국의 조건을 수용할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종전 협상은 필연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사실 고려도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었다. 다른 나라들은 애초에 휴전 협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중화가 멀쩡한 국가였다면, 애초에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중에서라도 황하 제방을 터트리기 전에 항복했을 것이다.
그러니 고려는 단지 우리가 평화를 위해 노력은 많이 기울였다 정도로 인식되길 원했을 뿐인 셈이다. 다음 행보를 위해서.
종전 협상이 시작된 순간, 고려의 폭격은 한동안 멈췄다.
협상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이 화기애매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중화군은 의아해했다.
이미 고려 사절이 돌아간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럼에도 하늘에 새까맣게 몰려오던 고려 공군의 폭격기들은 계속 보이지 않았다.
아니, 가끔 드문드문 보였다.
하지만 그 폭격기들은 이제 고폭탄을, 열압력탄을, 집속탄과 소이탄을 싣고 오지 않았다.
오히려 완전히 다른, 이상한 것만 뿌려대었다.
이번에는 최대한 민간인 거주 구역 폭격을 자제했던 이전과 달리 최대한 사람들이 밀접한 곳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떨어진 것들의 정체는 선전 종이였다.
종이가 마치 흰 눈처럼 내려왔다.
예상컨대 제8제국 정부와의 협상이 실패한 이후 중화인들 개인들에게 개별적인 항복을 종용하는 문서일 터였다.
분명 읽을 가치가 없으렷다. 하지만 궁금증은 참기 힘들었다.
민간인들은 굉음과 진동이 들리지 않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밖으로 나왔고, 곧 사방에 뿌려진 종이를 주울 수 있었다.
심지어 그들을 단속해야 할 중화군마저도 그 종이들을 읽었다.
친절한 고려는 정확한 중화어, 그것도 습진균이 만든 간체와 기존의 번체 모두를 사용해 정보를 적어놨다.
그마저도 모자라 중화의 문맹률을 고려해 뒷면에는 친절히 만화 여섯 장면으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거라 경고까지 해주었다.
고려 공군은 중화가 마지막으로 점유하고 있는 호남과 호북, 안휘, 강서, 귀주, 강소 서쪽에 이런 종이를 마구 뿌려대었다.
적혀있는 내용은 크게 네 가지였다.
연합국이 선포한 전쟁의 정당성과 중화제국의 악행이 적혀 있었다. 황하 제방 폭파 사건 이후의 하남, 안휘, 산동 사람들의 슬픔 같은 것도 적혀 있었다.
회유도 있었다.
만약 이 종이를 들고 투항한다면, 개별적으로 약간의 식량과 의료품, 의복까지 줄 수 있다고 했다.
그 뒤엔 경고가 쓰여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탄이 뿌려질 것입니다.
살고 싶으면 도망가세요.]
라고 크고 붉게 쓰인 문구였다.
마지막으론, 세 번째 경고의 연장선에 있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아주 대놓고 폭격이 감행될 날짜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알려준 것이다.
선전물에 적힌 정보를 본 중화군들이 어처구니없어한 것은 당연했다.
― 3월 1일, 안경(안칭) 악서(웨시)현의 종합 군수공장에 폭탄이 떨어질 것입니다.
안경은 대도시였으나, 악서현은 대별산맥에 있는 인적 드문 곳이었다.
다만 대별산맥의 험준함에 군수공장들이 좀 많이 지어져 있었다.
고려군 입장에선 민간인 피해를 최소한으로 주면서도,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폭격기를 동원해 주구장창 공격했기에 남아있는 건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첫 번째 핵무기의 위력을 과시하는 겸 정보를 얻기엔 좋았다.
― 이후 3월 5일, 구강(九江)시의 해군기지에 폭탄이 떨어질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강에 불과한 장강에 해군기지가 있는 것도 웃겼지만, 중화제국은 진지하게 내륙해군을 운용하고 있었다. 큰 배들은 없었지만 작은 수송선들이 많이 오갔다.
그래도 명목은 해군기지라 구강에도 민간인이 많진 않았기에 고려는 그곳을 두 번째 목표로 지정했다.
그곳까지가 고려가 보여줄 수 있는 인내심의 한계였다.
세 번째는 달랐다.
― 만약 이때도 중화제국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다음 도시들에 차례로 폭탄이 떨어질 예정입니다. 부디 시민들께서는 도시를 떠나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 3월 9일, 형양(헝양)시
― 3월 13일, 합비(허페이)시
― 3월 17일, 장사(창사)시
― 3월 21일, 상덕(창더)시
― 3월 25일, 의창(이창)시
― 3월 29일, 양양(샹양)시
물론 지금 중화가 점유하고 있는 땅 중 고가치 표적은 무한과 경사(난징)였지만, 당장 무한에 폭탄을 떨어뜨리면 협상(혹은 내부 반란) 여지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 후순위로 밀었다.
또한 경사는 이미 상해를 점령하고 서진하는 고려군이 지척에 다다랐으니 방사능 여파를 생각해서라도 공격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상기된 곳은 내륙이면서, 중화군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도시였다. 게다가 이곳들은 현 중화에서 핵심적인 물자 생산기지기도 했다. 공업적인 측면에서도, 농업적인 측면에서도.
이 도시들을 무력화하는 것은 중화의 전쟁수행능력을 단번에 떨어뜨릴 것이었다.
선전물의 내용은 거기에서 국한되지 않았다.
― 투하되는 폭탄의 파괴력은 계속 증가할 것입니다. 9일 이후 무한 또한 언제든지 폭격의 대상으로 지정될 수 있습니다.
―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십시오. 연합국 총사령관 이선.
* * *
중화인들조차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화 그림은 너무 구체적으로 사실을 묘사하고 있었다.
다가올 파멸을, 종말을.
몇몇 중화군 장교들은 이를 비웃었다.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세상에 이런 폭탄이 어디에 있는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국 공군에 의해 실행되는 전략 폭격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경험한 이들은, 고려 공군이 쏟아붓는 거대한 폭탄의 파도가 얼마나 위압적이고 충격적인지 잘 알았다.
방공호로 피하지 못하고 융단폭격의 현장에 있었던 자들은 그야말로 지구가 종말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현장에서 즉사한 사람들은 오히려 축복을 받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히려 끔찍한 악몽 속에서 여생을 보내야 했을 정도였다.
일반적 폭탄으로 행한 융단폭격마저도 그 정도의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데, 그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말은 쉽게 체감되기 힘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고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전쟁 이후 중화가 흑색선전이라 여긴 것조차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실만을 담고 있었다.
사실 고려가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조차 없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들을 굳이 왜곡하고 곡해할 이유가 있던가.
현명한 자들은 짐을 쌌다. 그들은 도시를 빠져나갔다. 아직은 그렇게 감시가 많지 않았다.
이들은 선전물에 쓰인 대로 숲으로, 아무것도 없는 촌구석으로 도망갔다.
명단에 적힌 도시로는 절대 가지 않았다. 그들은 품속에 고려가 준 종이를 꼭 가지고 있었다. 이걸 가지고 도망쳐 고려에 투항한다면 식료품과 의료품, 옷가지를 준다는 그들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일반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현명한 사람들이 먼저 빠져나간 뒤, 그제서야 중화 당국도 대피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기에 운신의 폭이 제한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나가려면 나갈 순 있었다. 다만 모든 살림살이를 전부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것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라, 이들의 이목은 일단 첫 번째 폭탄이 떨어질 안경의 악서현으로 향했다.
멍청한 사람들은 고려의 말을 허풍이라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들도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자신들의 다리를 통제하지 못했다. 이들의 눈도 악서현을 향했다.
그렇게 모두의 눈이 악서현으로 향했다.
개천 533년 2월 20일.
대만해협.
제국 2함대 태평양함대.
복건성 앞바다 대만해협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해군 함정들이 떠 있었다. 해성작전의 마지막, 천주 상륙작전이 시작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것이다.
대만해협엔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하다는 제국 2함대의 함선이 대부분 전개되어 있었다.
전후 2함대는 엄청난 전력이 증강되었다. 탐라에서의 손실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항모와 전함은 물론이고, 순양함과 파괴함, 잠수함 전대까지, 이제는 2함대가 3함대와 근위함대를 넘어 고려의 함대 중 명실공히 가장 강력한 전력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한 대륙을 온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위용에, 같이 해군을 운용하는 동맹국조차도 입을 벌리고 그저 경외하는 수밖에 없었다.
2함대는 바빠 보였다.
이제 고려군들이 내륙으로 진격한 만큼, 더 이상 지원포격을 위해 전함들의 주포가 불을 뿜는 일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항공모함엔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렸다.
전략폭격을 위한 폭격기와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가 실로 엄청났다.
대만과 내륙의 비행장을 이용하는 공군도 대단한 공을 세웠지만 해군 항공대 또한 개전 초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공적을 쌓고 있음은 자명했다.
이렇게 바쁜 2함대에 최근 다시금 전력 강화의 일환으로 새 함정들이 도착했다.
함대 구성원들은 또? 하고 그러려니 하며 넘겼지만, 해군항공대 계열의 장교들은 다소 씁쓸한 얼굴을, 수상함 계열의 장교들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종류의 함정이었다.
총 일곱 척의 합동화력함이 증파되었다.
대략 3만 톤급 배수량을 자랑하는 이 함정들은 현 고려의 주력인 나코다급 항공모함(4만 톤), 전율급 전함(4만 5천 톤)에 비하면 배수량 자체가 낮았다. 객관적으로 절대 작은 배라 부를 순 없지만, 항모와 전함보다는 명백히 작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항공모함마냥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되었다. 단독 운용은 어림도 없고 주변의 호위가 필수적이었다.
활주로도, 함재기도 없었다. 약간 튀어나온 함교에 평평한 갑판이 있었을 뿐이다.
허나 그 가치는 실로 엄청났다.
함선의 실제 ‘파괴력’만을 꼽아본다면, 합동화력함 한 척은 항공모함 이상의 파괴력을 자랑했다.
아니 비교하는 것이 무색했다.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이 합동화력함 한 척의 배가 어떤 화력을 쏟아낼 수 있는지 알 테니까.
치명적 위험분산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한 함정에 고가치 화력무기를 넣는 것 자체가 썩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려 해군은 그냥 합동화력함도 많이 만들어내자는 괴상망측한 결론을 내려버리는 데 그쳤다.
최소한 현 전쟁이 끝나고 개장, 혹은 새로운 함급을 도입해 각 개별 함정에 신기전을 탑재할 공간을 확보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결국 사령부에서는 신기전을 선택했군.”
“그렇습니다.”
합동화력함 함장이 2함대사령관 민승주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다. 그의 함에는 핵무기가 실려 있었다.
적석계획을 통해 핵분열 무기를 만든 고려는 그 뒤로도 몇 차례의 개량까지 다 끝냈다.
이제 테우엘체 실험장에서 썼던 실험용 폭탄보다 더욱 강하고 효율적인 명왕소 폭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핵무기는 합동화력함에 배치된 신기전의 탄두에 탑재되었다.
공군이나 해군항공대가 직접 폭탄을 들고 떨어뜨리는 방안도 있었지만, 실전에서의 위력이 어떨지 몰랐기에 조종사의 안전을 위해 신기전을 쏘기로 결정했단다.
사실 지겹도록 당한 항공폭격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발하며 날아오는 신기전이 더욱 공포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탄도신기전이라 한다지? 직접 보는건 처음인데. 검증은 되었나?”
“믿으셔도 됩니다.”
“막 날아가다 우리 머리에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농담이라도 참, 사령관의 말에 합동화력함 함장이 애써 웃어 보였다.
“하하….”
“근데 말이야,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이 탄도신기전을 아예 저 우주를 겨냥해서 쏘면 어떻게 되나?”
민승주의 말에 합동화력함 함장이 옆에 있는 사람 눈치를 보았다. 흑경을 쓰고 묵묵히 지금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황립보안국 요원이 팔짱을 풀었다.
“아니야. 안 궁금하네. 알려주지 말게.”
그 모습에 사령관이 학을 떼었다. 무슨 헛짓거리를 하려고. 젊은 시절 친구 하나가 저렇게 병기개발단에 끌려갔던 것을 목격한 그는 사성장군이 되어서도 등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약속된 시간, 3월 1일이 되자 마침내 제국은 중화제8제국 안경 악서현에 첫 번째 핵무기를 발사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중화 놈들에게 응당한 벌을 내릴 시간이군. 너무 길고 길었어. 대체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생되어야 했는지… 죄 없는 우리 젊은이들, 동맹국 젊은이들만 죽어 나가지 않았나?
당하께서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리신 것이 참으로 다행이야.”
합동화력함 함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투지휘실에 준비 명령을 내렸다.
애초에 모든 작전이 수립되어 있었고, 시중의 명령도 받은 상태이니 직접 직통으로 취소 명령을 받지 않는 이상 하달된 명령은 이행되어야 했다.
전투지휘실에 있던 두 명의 장교가 목에 걸려 있는 열쇠를 동시에 결합했다. 그리고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금 해제된 붉은 단추를 동시에 눌렀다.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합동화력함 신기전격납고의 천장이 열리곤 그 안에 있는 준중거리 탄도신기전 ‘벼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탄두에 탑재된 명왕소 폭탄의 이름은 용염 1호로, 고려 군용 폭탄 1톤 기준 약 2만 배(20kt)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함장이 발사를 명령하자, 이윽고 굉음과 함께 신기전이 점화되었다.
― 콰아앙
그야말로 벼락같이 격납고 위로 솟구친 탄도신기전은 이내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북서쪽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