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화 악의 몰락(3)
개천 533년 2월.
“나가서 싸워라. 최후의 일인까지 전부 긁어모아서 싸우란 말이다!”
습진균은 핏대를 올리며 소리쳤다.
두 눈이 완전히 충혈된 총통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광기에 젖어 있었다.
“뭣들 해! 당장 나가!”
대총통이 무언가를 던졌다.
휘하의 장군들이 물건들을 피하며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저번에 한 상장이 도자기에 직격당해 머리가 깨져 쓰러진 적도 있었다. 대총통은 한번 진노하면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습진균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도 한동안 발광을 했다. 그 지랄 발작을 진정시키기 위해, 친위대는 서둘러 당규삼에게 연락했다. 무언가 약 처방을 해 줘야 저 꼴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각하!”
당규삼이 달려왔다.
갑자기 습진균은 그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규삼이 서둘러 그의 증세를 살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신다. 용맹환의 부작용인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 부어오른 잇몸, 손상된 치아,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그 밖에도 불면, 우울증, 분노조절 장애 및 폭력적인 성향까지. 틀림없는 용맹환의 부작용이다.
이미 총통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하지만 당규삼은 딱히 용맹환 처방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진균 자신이 그 처방을 원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약이 필요했다.
규삼이 그를 다독였다. 다 큰 성인 남성 둘이 그러고 있으니 참으로 해괴한 광경이었다.
습진균이 이내 진정했다. 그를 이렇게 진정시킬 수 있는 자는 당규삼이 유일했다. 진균의 가족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되었나?”
“준비는 되었습니다.”
당규삼은 친절하게 파멸의 속삭임을 읊조렸다.
지금 습진균으로선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원이 당규삼이었다. 오로지 그만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자였다.
“한낱 감모(感冒, 감기)가 정말 탄저에 버금가는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나? 나는 이해가 안 가.”
“감모라고 부를 뿐, 그 병리와 증상은 몹시 다양하여 하나의 질병으로 묶을 수 없습니다. 장담하건대 이번 무기는 탄저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겝니다.”
그토록 대단한 고려조차 빠르게 예방접종과 약을 만들 수는 없으리라, 당규삼이 그렇게 확신했다. 온갖 병균과 반생물에 통달한 그마저도 이것의 예방접종화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정도니.
그 호언장담에 습진균이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규삼. 끝까지 수고해주게. 마지막은 화려하게 가야 하지 않겠나?”
당규삼은 순수한 즐거움과 환희에 웃었다. 쇠락하고 있는 총통의 웃음과는 대조적이었다.
중화제국의 종장은 정말이지 규삼을 위한 무대였다.
그는 더 강력하고 더 많은 질병을 적들에게 선사해 줄 것이었다. 규삼은 적들이 절망에 차 몸부림치는 것이 정말로 보고 싶었다. 그 적들이 고향에 돌아간 뒤에 다시금 질병을 퍼트리는 것도. 그리하여 우리 중화에 대적한 세계인들이 죗값을 치르는 것도.
“여부가 있겠습니까.”
* * *
하지만 진균의 속내가 무엇이든, 중화는 차근차근 망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긁어모을 인력도 부족한데….”
방공호 집무실에서 빠져나온 장군들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들도 친위대의 눈총을 받고는 입을 다물고 자신들의 부대로 돌아가야 했다.
“공습입니다!”
― 왜애애앵
때마침 경보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장군들은 발길을 돌려 방공호 안쪽에 다시 숨어들었다. 병사들이 부랴부랴 밀폐문을 닫았다.
― 열어주십시오!
밖에서 늦은 병력들이 문을 열어달라 아우성이었지만, 안에 있는 인원들은 그 요청을 묵살했다.
밀폐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키 힘든 공습들도 섞여서 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 콰아앙
대지를 타고 진동이 여실히 느껴졌다.
고려군은 무한에 막대한 폭탄을 쏟아붓고 있었다. 홍수 이후, 고려군도 굉장히 격노한 상태였다. 국제사회의 비난도 쏟아졌다.
애초에 중화제국이라는 나라에 더 떨어질 인식조차 존재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폭격 속에서 수도 무한에도 서서히 죽음의 기운이 퍼져 나갔다. 오히려 무한이 가장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중화당원은 진성 중화당원이었고,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이었으니까.
아무리 도시 자체가 폭격을 견디기 위해 요새처럼 설계되었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작정하고 쏟아붓는 폭탄의 소낙비 속에서 인력과 시설이 파괴되지 않을 리가 만무했다.
중화군 최후의 명장, 장온계 원수는 폭격이 멈추자 밖으로 향했다.
방공호 문을 부여잡고 있는 병력들은 폭압에 휩쓸려 모두 죽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융단폭격 때문인지 도시 곳곳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이러한 연합군의 폭격은 그야말로 중화군의 사기를 뚝뚝 떨어뜨렸다. 깨진 강회와 벽돌 등의 구조물들은 중화제국의 패배가 가까워졌다는 객관적 모습을 병사와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한의 중화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총통에게 향하던 민심이 떠난 황하 유역의 사람들과는 달리, 장강 유역의 사람들은 여전히 총통을 믿고 지지했다. 특히 무한의 사람들은 더더욱.
그들은 총통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보였다.
그 사실이 오히려 장온계를 슬프게 했다.
‘이 전쟁이 끝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죽어야 할까.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과연 이들의 빈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까.’
처참한 폭격의 현장을 거닐며, 장온계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땅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그도 몰랐다. 예측이 전혀 안 되었다.
중화는 아예 소멸하거나, 혹은 소련과 같은 운명을 맞거나 둘 중 하나일 터.
둘 모두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환경이리라.
총통은 중화인들에게 산업화와 통일을 주었고 희망찬 미래와 번영을 약속했다.
하지만 동시에 확실한 파멸까지 직접 선사해 주고 있었다.
이미 중화는 단일 국가로 다른 나라들의 손실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인적 손실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전투와 폭격이 진행되는 중이라 정확한 숫자는 집계해봐야 알겠지만, 이제 중화군과 중화 민간인 사상자 수의 합은 ‘억’ 단위에 진입했다 한다.
억.
이 숫자 단위엔 그토록 자신감 넘치는 중화군 장교들도, 관리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인해의 파도가 적들을 뒤덮을 것이라던 말은 이제 아무도 감히 하지 못했다.
적들은 그들만큼의 인해의 파도를 부렸고, 그와 동시에 화염과 강철의 파도를 부렸다.
저들의 의지는 중화에 비해 결코 약하지도 않았고, 저들의 기술은 아득했다.
중화는 그 대가를 치렀다.
거리엔 남자들도 이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한 병력은 이미 최일선에 있었다.
죽어버린 억 명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젊은 남성이다. 아예 한 세대가 완전히 증발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최일선에서조차 남자들이 부족해 소년병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심지어 꼬부랑 늙은이들마저 징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인들 또한 습진균의 총동원령에 따라 군수공장에 동원되어 폭탄과 총, 각종 보급품들을 만들었지만 그마저도 이젠 일손이 달렸다.
군수공장들도 폭격으로 하나씩 무력화되었고 이젠 숫제 가내 수공업으로 군수품을 만드는 지경이었다.
실로 비참한 미래밖에 남지 않은 셈.
폐허를 거닐던 장온계는 코흘리개 소년 하나가 화 자 완장을 차고 거리를 신나게 쏘다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얘야, 무슨 명을 받았는데 그렇게 뛰어가느냐?”
“선봉! 총통의 명에 따라 도시 피해 복구를 위해 소년선봉대 집결지로 이동 중입니다!”
소년은 명랑하게 말했다. 주변의 상황과 정말 대조적이었다. 장온계는 소년을 그냥 보내주었다. 그 소년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짐작하면서도.
‘이 땅의 미래는 사라졌다.’
지금 이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 옳지 않다는 것은 이제 대부분의 중화 지도부도 알았다.
그들이 패배했다는 사실도 다 알았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은 의외로 적었다. 지도부들도 이제는 다 같이 죽자는 심보가 많았다.
자포자기를 한 걸까. 어차피 전범재판을 받으면 처형될 테니, 끝까지 ‘즐기다’ 가자는 인간들도 있었다.
장온계는 그런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결국 자신도 호원민만큼의 용기와 깜냥은 없는 범부일 뿐이라 자조했다.
* * *
“예상보다 공세가 지지부진하군요.”
개성에 연합군 최고 지휘부가 모두 모였다.
그들이 어깨에 달고 있는 계급장의 별들이 번쩍거렸다.
전선은 다소 휴지기에 들어갔다. 복건에 상륙한 남부군은 이제 상요(상라오)와 무주(푸저우)를 앞에 두고 있었다. 공격을 재개한 황하 이북의 북부군은 이번에야말로 정주와 상구를 점령했다.
중화 강역은 차근차근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인 장군들은 다가온 승리의 여신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다만 태연한 얼굴과는 달리 속내는 애가 탔다. 어쩐지 여신의 발걸음이 더뎌진 모양이다.
사실 연합군들은 이제 전쟁에 지쳤다.
소비에트를 멸망시킨 뒤, 금방 무너질 줄 알았던 중화는 거진 일 년간 홀로 버티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할 수준의 저항이었다.
이렇게 전쟁이 길어지자, 유럽군은 빨리 종전하고 자기네 경제 살림을 신경 쓰고 싶어 했다.
개별 나라의 병력이 적은 국제군조차 대체 이 전쟁이 언제 끝나는지 노심초사했다.
병력의 보급은 고려가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한창 일해야 할 젊은 남자를 죄다 전쟁터에 몰아넣고 있는 나라들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는 셈이었다.
고려가 양 전선 통틀어 가장 전쟁 공헌도가 높으니 그저 제국의 눈치를 보고 있긴 했지만.
하지만 남들의 의욕이 꺾인 것을 다그치기엔 사실 고려 스스로도 많이 지쳤다.
남부군은 중화 남쪽 특유의 거친 산세에 지쳤고, 북부군은 전쟁보다도 오히려 중화가 일으킨 수해, 그리고 수해가 불러온 대기근 및 역병들을 뒷수습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이런 씁쓸한 분위기 속, 이선 원수는 그들을 격려하기는커녕 오히려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만한 다른 말을 내뱉었다.
“아국이 수집한 첩보에 따르면, 중화군은 또 다른 생물학적 대량살상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그런!”
“허어…….”
탄식과 한숨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선 원수는 그들의 반응을 둘러보며 때가 되었음을 확신했다.
― 저들이 스스로 원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선은 오늘 아침, 시중으로부터 또다시 당부의 부탁을 들었다.
전쟁이 길어지자 고려는 필연적으로 크고 붉은 단추를 누르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일억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건만 중화의 의지는 아직 제대로 꺾이지 않았다.
저 미치광이들은 자기들이 처음에 주장했던 것처럼 나머지 3억 총옥쇄를 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젊은 남성들이 죽으면 어린애와 노인들, 여자들까지.
황하 유역의 사람들을 빼면 그 수는 절반이 되겠지만, 어쨌든 여전히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많았다.
오히려 한 번의 큰 공격이 이 의지를 무너뜨릴 수도 있어 보였다. 상상도 못 할 강력한 공격이 도리어 피해를 줄인다는 모순이었다.
원래 병기는 개발이 된 이후엔 언젠가 쓰이기 마련, 핵분열 무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특히나 고려는 중화제국이 다른 생물학 무기를 만든다는 말에 기겁했다.
그 정체는 극비라 무슨 무기인지 알 수 없었지만, 탄저와 비슷한 등급의 생물학 무기라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탄저 또한 핵분열 무기로만 상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 중화는 연합군들의 예상 진군로에 엄청난 양의 탄저 폭탄을 투하하고 있었다. 고온의 열과 방사선은 견고한 탄저 아포를 박살 낼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한 번도 실제로 실험해본 적 없었지만, 이론적으론 그랬다.
핵분열 무기를 쓰자.
교당 강경파인 박용찬 시중은 그런 결정을 내렸다.
오욕이란 게 있다면 스스로가 다음 시중을 위해 뒤집어써야 했다. 역사가 그를 비판하더라도 태연자약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이 그 결정을 내린 이후 이선 원수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
― 허나 이 원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선택은 오로지 우리 제국만의 선택은 아니어야 합니다. 국제사회 또한 그것을 원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쓴 것이어야 합니다.
고려는 이 핵무기가 자기 자신들의 독단이 아닌 모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기록되길 원했다. 제국군이 아니라, 연합군이 쓴 것으로 여겨지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저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원래 명분이란 게 다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무기 사용에 대한 비난을 고려만 감내할 이유는 없었다.
핵무기 사용에 대한 비난은 필연적일 테다.
사람이란 굉장히 이상한 존재였다.
아무리 악인이라 하고, 큰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정의가 그들을 시원하게 단죄하는 것마저도 아니꼽게 여기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네가 뭔데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소리를 할 터였다.
지금은 그런 소리가 거의 없었지만, 미래의 사람들 중엔 그런 사람이 소수나마 나올 것이 분명했다
개성참극을 실제로 보지 못한 사람들, 실제로 참전하여 싸우지 않았으며 전쟁을 단지 책으로 배운 사람들의 속 편하고 배부른 소리일 테지만.
허나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려야 했다. 더 많은 젊은이들을 구하기 위해, 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해야 했다.
전후 질서 구축을 위해서라도.
단극체제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도.
또한 적들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업보를 쌓아 올려 이러한 결과를 선택한 것이다.
맞을 만했기에 맞는 셈이다. 이 명분에 대한 확고한 인식만이 행동을 긍정할 수 있었다.
저들의 죄악을 잘 기록해 놓았으니, 후대의 사람들이 올바르게 인식하길 바랄 뿐이다.
이선은 눈을 감았다 떴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전쟁을 끝낼 방도가 있소만, 들어보시겠소?”
[작가의 말]
당규삼의 새 무기는 인플루엔자 H1N1(스페인 독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