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18화 (618/653)

618화 악의 몰락(2)

차비회는 처참하게 처형되었다.

총통이 어찌나 격노했는지, 눈치를 살핀 친위대가 옛날 류용이 폐지했던 연좌제도 기어코 다시 만들어 적용시켰을 정도였다.

사건에 가담한 주동자들과 그 가족들, 친지들도 남김없이 처형되었다.

낭화신과 그 아내는 특별히 처참하게 죽었다. 폭발성 무기가 동원되었다.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시신이 훼손되어 처형이 끝난 이후 그 흔적을 치우는 자들이 고생해야 했다는 뒷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낭화신은 마침내 그의 또 다른 목적대로 습진균에게 절망과 파멸의 씨앗을 뿌리는 것에 성공했다.

낭화신과의 대담 이후 습진균의 목표는 바뀌었다.

물론 중화제8제국의 찬란한 미래 따위는 진작 물 건너갔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걸 주창했던 진균마저도 더 이상 중화제국의 번영과 희망찬 미래를 목적 자체로 두지 않았다.

한족과 한족의 무능함이 자신을 배신했으니 그래 줄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습진균의 최종 목적이 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다만 진균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게 된 근본적 이유, 즉 고려의 존재를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다.

‘적어도 너희들을 이 땅에서 무사히 떠날 수는 없게 하겠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이라는 신조어처럼,

진균은 자신의 최후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 순간, 이 땅에 들어선 고려군을 최대한 많이 데려가겠다는 계획을 꾸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약 그 수단과 방법이 중원의 환경과 사람을 더 많이 해하더라도 이젠 전혀 괘념치 않을 것이다.

사실 오히려 그걸 원했다.

진균은 위왕 조조가 했다는(혹은 그렇게 전해지는) 말을 똑같이 읊었다.

“내가 천하의 사람들을 버릴지언정, 천하의 사람들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

진균은 배은망덕하고 무능한 한족들이 자신을 버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행동하기로 했다.

* * *

은은하게 고려의 폭격 소리가 들리는 무한의 새벽.

― 콰아앙

“정주(郑州, 정저우)의 제방을 폭파할 준비를 하라.”

집무실에서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총통이 밖으로 나온 뒤 내린 첫 명령은 참으로 괴상했다.

친위대장 모경록조차 명령을 재차 확인해야 했을 정도였다.

“저, 각하. 엊그제 올린 보고서에는 황하에 폭우가 내려 제방을 수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방금 내가 한 말을 듣지 못했나?”

“…소… 송구합니다.”

모경록은 즉각 고개를 숙였다.

습진균은 그를 노려보다, 이윽고 구체적인 명령을 내렸다.

“폭약을 최대한 많이 사용해 단번에 터트려라. 아래쪽에 있는 고려 놈들이 전부 휩쓸리도록.”

고려군은 황하 도하를 시작했다.

목표는 정주, 개봉(카이펑), 제녕(지닝) 등 황하강 유역의 핵심 도시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황하 이남의 도시 중 하택(허쩌), 제남(지난) 등도 확보해 둔 상태였다.

마침 고려군 주력, 그것도 요령전구에서 중화군을 궤멸시킨 대부분의 병력이 딱 황하 유역에 있단 소리였다.

중화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주와 개봉 등은 지켜내야 했다.

그 도시들은 중화에겐 실로 역사적인 도시였고, 또한 핵심적인 도시들이었기도 했다.

허나 지금 하달된 총통의 명령은 그 도시들에 대한 수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도시들을 인질 삼아 고려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히라는 뜻이 분명했다. 이번 수공은 고려군에게 지금껏 중화군이 시도했던 그 어떤 공격보다도 강력한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충만했다.

‘…….’

허나 그 부근에는 중화군도 많았다. 군인보다 훨씬 더 많은 중화민간인들도 있었다. 모경록도 하남성 출신이었던 만큼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안 그래도 이번 늦여름은 유달리 폭우가 심했었다.

심지어 엊그제까지만 해도 황하 유역은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황하는 지금 한계 직전까지 물을 머금고 있다는 뜻이었다. 황하 하류의 강바닥이 인근의 땅보다 더 높은 천정천(天井川)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굉장히 위험했다.

중화 지휘부엔 앞으로 계속 비가 내릴 것에 대비해 제방을 수리하자는 의견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만약 현 상황 속에서 제방이 폭파된다면, 수해가 기정사실화되었다.

이 수해는 피아를 가리지 않았다. 고려군도 휩쓸리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실로 어마어마한 중화군과 중화인들 또한 수해에 휩쓸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총통은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피령을 내릴까요?”

“멍청한 소릴, 대피령을 내리면 저들이 우리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할까? 군대만 물린 뒤, 제방을 즉각 폭파하라.”

“알겠습니다.”

모경록은 더 이상의 의문 없이 총통의 명령을 받았다. 총통의 수족인 친위대는 그런 것을 생각하라고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아군,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 해도 받은 명령은 꼭 실행해야 했다.

허나 누구보다 충직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모경록마저도 실행에 앞서 잠시 갈등했다.

그래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언질을 해 두는 것까진 괜찮지 않겠는가?

그토록 가차 없고 냉혹한 모경록도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남자였다. 특히 그는 자신의 친족에게는 더더욱 정을 베풀었다.

모경록은 명령을 이행하기 전 하남의 모씨 친척에게 언질을 주기로 했다.

안 그래도 전세가 차츰 불리해지던 터라, 미리 무한과 같은 내륙으로 대피하라고 말하려던 차였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제방을 터트리기 전에 말을 전해야 했다.

‘내 친척 정도는 괜찮겠지.’

한 단체의 수장이 한번 그렇게 사적 예외를 만들면, 다른 이들도 그럴 만한 명분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모경록이 그렇게 행동하자 다른 고위급 친위대 지휘관들도 눈치를 보다 연락을 취했다. 하남과 안휘, 강소는 중원의 핵심 지역이니만큼 친위대 또한 그곳에 살아가는 지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친위대의 행동은 여전히 은밀했다. 하지만 은밀하다고 파악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 * *

차비회가 실패한 이후, 고려군은 중화 내의 자정작용에는 희망을 접었다.

연합군은 공세를 지속했다. 육지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그렇게 일차적 의미의 해성작전이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태평양사령부 작전계획국장으로 있던 안장우 참장은 무언가 이상한 첩보를 받고 미간을 좁혔다.

“친위대에서 그런 명령이 나왔다?”

“예.”

“확실히 수상하군.”

암호화된 정보들은 대체로 안휘, 강소, 하남 등의 지역에서 흘러나왔다.

고려군이 쓰는 복호화용 연산기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발전되었다. 중화의 주먹구구식 암호는 고려가 파악한 뒤 몇 분 내에 이미 해독이 끝날 정도였다. 고려군 감청부는 오히려 역정보를 신경 쓰고 있었다.

허나 지금 파악된 정보들은 역정보라고 하기엔 너무 많았다. 또한 굉장히 뚜렷하고 일관된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아군이 전선을 밀고 내려가고 있는 만큼 중화도 민간인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릴 순 있겠지.

허나 그건 민간인 전체에 대한 공식적인 대피 명령일 터.

이렇게 애매모호한 연락은 아닐 텐데… 정말이지 수상쩍기 그지없구나.’

안장우는 서둘러 작전실 지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지도 위를 한참 헤매다 마침내 불안감의 원천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주에 있는 황하 제방을 폭파할 계획인 거야.”

“…저들이 스스로 말입니까?”

“그래.”

사실 정주 제방 폭파 계획은 고려군 내에서도 한번 써먹어 보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이 황하에 진입하기 전에.

물론 그 피해가 무차별 폭격 이상으로 민간에 집중될 것이 뻔했고, 그로 인한 민심의 이탈이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기에 결국 기각되었지만.

그래도 계획 자체는 고려해본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안장우가 곧바로 불길함의 원인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네가 단단히 미쳤구나, 습진균.“

안장우는 두말할 것 없이 자신의 판단을 사령관에게 전달했다.

이 보고를 심각하게 여긴 이선 원수 또한 곧바로 진행되고 있는 공세를 멈추었다.

고려군 병력은 곧바로 수해에 대비했다.

저지대에 있는 병력들은 최대한 고지대로 이동했다.

산동 동쪽에 있는 병력들은 산세에 의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동 서쪽이나 허난에 공세를 취하고 있던 고려군은 의지할 만한 산세도 없었다. 이곳의 주요 도시들도 그저 넓은 평원에 지어진 터라 수해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곳의 고려군은 아닌 밤중에 진지공사부터 해야 했다.

중장비를 이용해서 수로를 팠고, 판 흙으로 모래주머니를 만들었다. 그런 모래주머니와 벽돌 등의 건축자재를 이용해 기존의 건물을 보강하고 지붕 위를 확보하는 등 최대한 물을 피할 곳을 구축했다.

그렇게 친위대가 제방을 터트렸을 때, 고려군은 조잡하게나마 대비책을 세워 놓았던 것이다.

황톳빛 흙탕물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며 많은 장비와 물자들이 진창 속에 잠겨 들어가 버렸지만, 병력들은 비교적 온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공격의 인적, 물적 피해는 개전 이후 중화군이 실행한 그 어떤 작전보다도 컸다.

고려군은 살아남은 병력들을 수습해 겨우 황하 이북으로 후퇴하기에 급급했다.

일부 사단들은 기갑이니 장갑차니 하는 것들도 죄다 방치하고 돌아가야 했다. 물론 진흙투성이가 된 만큼 적에게 노획되어 쓰일 걱정은 없었지만 큰 손실임은 자명했다.

사령부는 이번 공격으로 최소 세 달은 공세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며 병력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 * *

허나 습진균의 계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자들은 바로 중화 민간인들이었다.

제방이 폭파된 이후 황하강 유역의 민간인 피해는 엄청났다.

이 수치는 폭파를 실행한 친위대조차도 예상 못 할 수준이었다.

수많은 도시와 농촌이 그야말로 물속에 잠겼다.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기르던 가축들도 말 그대로 떼몰살을 당했다. 시신들이 물에 둥둥 떠서 황해 바다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건물 1층은 전부 다 잠겼다 봐도 무방했고, 생존자들은 도시 내에서도 뗏목을 타고 이동해야 했을 정도였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 대다수는 수해를 대비하기 시작한 고려군의 행동에서 무언가 불길함을 느끼고 비슷하게 따라 한 자들이거나, 혹은 고려군이 구출해 준 사람이었다.

제방이 파괴된 이후에도 그 피해는 꾸준히 누적되었다.

가을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여름철 비처럼 집중호우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비도 이미 범람한 황하 유역에는 실로 치명적이었다.

홍수로 인한 직접적인 중화 민간인 사망자는 대략적으로 154만 정도에 달했다. 이재민은 그 열네 배 수준인 2,10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직접적인 홍수 피해도 피해지만, 걷잡을 수 없는 피해는 그 후에 찾아왔다.

홍수는 홀로 오지 않았다. 역병과 기근을 동반했다.

사방이 진창에 시체인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온갖 질병이 퍼져 나갔다.

동시에 끔찍할 정도의 기근도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그전까지 전쟁터였던 곳이라 농사짓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예 농경지가 전부 수몰되었다. 또한 닦아놓은 도로와 철로도 소실되었으니 운송 수단마저 상실했다.

이러한 피해는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중화군은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이 모든 상황을 고려 때문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 제방에 고려의 폭격이 있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고려군이 이번 공격에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난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될 수 있으면 민간인들을 구출하려고 시도했다는 것도.

이번 작전이 중화 정부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명명백백했다.

이전부터 친위대 때문에 번진 이상한 소문들, 먼저 대피하는 고위 공직자와 부자들, 유력가들이 이를 증명했다.

중화인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하남, 강소, 안휘, 산동의 사람들은 그제서야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마냥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 우리의 중화제국이, 우리의 총통이 우리를 버렸다.

이번 홍수로 황하는 동남쪽으로 물줄기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마치 황하처럼 중화인 마음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중화라는 이름이 스스로 파멸로 내닫고 있으니, 황상께서 태산에 오르실 일은 없겠구나!”

이 사건을 유심히 지켜보던 주나라 대사의 탄식처럼.

* * *

중화제국의 악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 적들이 내딛는 모든 지역을 초토화시켜라!

황하 대홍수 이후 일시지간 멈춰 선 황하 이북의 고려군 대신, 복건성에 상륙한 연합군이 주 공세를 이끌었다.

고려 해군과 공군은 복건에 위치한 중화제국의 태평양방어선을 끊임없이 포격했다. 그토록 단단한 강회도 이 정도 포격에는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이후 주나라에 모여있던 고려군이 천주(취안저우)에 대놓고 상륙했지만, 중화군은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이 병력들은 바뵈프가 죽고 소비에트가 마무리되며 이곳으로 파견된 고려군 및 국제군, 유럽군들이었다.

“우리가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소련 붕괴 이후 긴 휴가를 받아 재충전을 실시한 병력들은 의기양양한 기세를 자랑하며 복건과 절강의 해안가를 빠르게 장악했다. 중원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인 영파와 상해도 지척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 기세는 금방 꺼졌다.

이들은 아주 추운 소련 전선에서 아주 더운 곳으로 와 고생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완전히 미치광이로 돌변한 중화군을 상대해야 했으니.

“대체 무슨 적과 싸우고 있었던 겁니까….”

방독면을 쓴 도이치 장군이 아연한 얼굴로 전장을 바라봤다. 곳곳에서 신음을 흘리는 병사들이 보였다. 눈이 먼 자도, 피부에 진물이 난 자도 있었다. 탄저에 감염된 사람도 셀 수 없었다.

중화군은 미친 듯이 독소를 뿌려댔다. 아직 적응이 덜 된 연합군의 피해 또한 상당히 커졌다.

이곳에도 의료품 공급은 충분했지만, 요령전역부터 중화와 싸워온 황하 이북의 고려군과 방금 막 중화 땅에 상륙한 소련전선 병력들은 그 경험이 완전히 다른 이들이었다.

“인세의 악마들이지.”

고려군 장군이 묵묵히 말을 받았다.

“빠르게 복건을 확보하고, 무한으로 가는 길을 엽시다. 그것이 비극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길일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주나라의 적극적인 참전뿐만 아니라, 그동안 핍박받던 남쪽의 이민족들이 동시에 궐기했다.

고려가 중화의 남쪽과 동쪽 해안가를 점령하자 중화 내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 중 하나인 동족(獞, 후에 장족)이 광동과 광서에 크게 일어났다. 이들은 유목―멘셰비키마냥 수용소에 들어가 실험을 당하거나 학살당한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순수 한족이 아니었기에 많은 차별과 탄압을 받았던 자들이었다. 중화 정부에 대한 원한은 뼛속 깊이 있었다.

동시에 고려는 중국 대륙 남쪽을 확보하며 때마침 버마 땅에 있는 꼰바웅 왕조를 완전히 무너뜨리곤 전 따웅우 왕조의 후예를 통해 신(新)따웅우 왕조를 개창시켰다.

이렇게 남쪽의 상황이 평정되자, 중화에게 남은 것이라곤 이제 중화 내륙 본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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