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화 차비회
박용찬은 중화를 끝장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했다.
그는 많은 군사 계획들을 구체화시켰다. 대체로 강경한 공격 방법이 승인되었다.
군무상서로 있을 당시에도 계속 워싱턴 시중에게 요청한 사항이지만, 워싱턴 시중은 허락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의 전시내각에서는 다를 것이다.
전략폭격적 측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부분에도 공격 허가가 났다.
기존에는 군수공장이나 군사기지라도 여러 정보로 거듭 확인된 곳에 폭격을 가했지만, 지금은 항공출격의 현장 지휘관에게 재량권을 주었다.
부수적 피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떨어졌다.
포괄적 항공폭격뿐만 아니라 신기전 폭격도 승인이 났다.
지금까지 장거리 신기전에 대한 정확성과 신뢰성 문제 때문에 고려군은 신기전 폭격은 실행하고 있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바뀌어야 했다.
용찬은 우한 북부의 대별산맥 산세에 의지한 공장들 같은 곳엔 신기전을 쏟아부으라 지시했다. 신기전 운용에 대한 자료도 얻고 좋았다. 산맥이니만큼 민간인도 적을 것이었고.
설령 민간인이 죽고 다친다 하더라도, 이제는 고려도 태도가 달라져야 했다.
아무리 강경해진다 하더라도 고려가 순전히 민간인 학살만을 의도하여 전투를 벌이진 않을 것이다. 그건 미치광이나 할 법한 생각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전투나 작전 중에 민간인들이 휘말리는 것에 대해 크게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이 두렵고 무섭다면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되었다.
전술적, 전략적 제한이 완화된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이젠 폭탄의 종류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워싱턴의 명령으로 개발되었긴 했지만, 박용찬도 군무상서로서 많은 일들을 했기에 그의 공로이기도 할 것이다.
기존의 백린 무기에 뒤이어 집속탄과 열압력탄이 개발되었고, 마침내 박용찬 시중의 시절에 실전에 배치되어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땅굴이나 건물 속에 있는 적병들은 열압력탄에 쓸려나갈 것이며, 인해전술은 집속탄에 무력화될 것이었다.
또한 박용찬은 워싱턴이 지시한 적석 계획을 정확히 인수인계받아 잘 마무리했다.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 장거리 신기전, 항공폭격 모두 핵무기 탑재가 가능합니다.”
“알겠네.”
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 박용찬도 확신이 없었지만 일단 무기화 자체는 완수했다.
하지만 채찍을 휘두르기 위해선, 당근도 필요했다. 그저 채찍만 휘두르면 그게 습진균이 아니고 뭔가. 당근은 채찍의 성능을 더 좋게 만들었다. 채찍도 당근의 맛을 더 좋게 만들기도 했다.
박용찬도 무고한 중화인들에게 빠져나갈 구석을 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 역사적 맥락에서의 중화를 종말시켜야 한다는 해밀턴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계속 접견을 신청하고 있는 주나라 대사를 정녕당으로 불렀다.
“예전에 전 시중께 말씀하셨던 것, 다시 들어나 봅시다.”
“예.”
주나라 대사는 옷깃을 가지런히 하고는 말을 설명했다.
“지나인들에게 중화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건 과거를 모조리 부정하는 것이요, 실로 근본 없는 자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랬기에 귀국이 개전 전까지 애매모호한 말을 했던 것이고.”
힐난의 어조였다. 주나라 대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것에 대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저희 또한 중화제8제국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고, 또한 반인류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누구보다 경악하고 규탄합니다.”
그렇기에 뒤늦게라도 국제군에 파병한 것이리라.
“허나, 중화라는 단어 자체가 범죄시되는 것에 대해선 저희는 여전히 긍정할 수가 없습니다.”
용찬의 머리에 핏줄이 솟았다.
“저놈들이 자행한 수많은 짓거리들을 모두 보고서도 그러시오?”
“습진균 저 사악한 악마가 용어를 더럽히고 우리의 과거를 제멋대로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지요.
허나 저 역겨운 인간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왜곡하고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주나라 대사는 용찬의 눈길이 석연치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한 권의 책을 공손히 바쳤다.
“왕 태사께서 집필한 옛 고서를 필사한 것입니다.”
필사본이라도 퀴퀴했다.
대체 원본은 얼마나 고서적일까.
책의 저자는 왕수인, 대학자이자 옛 주나라의 태사랬다.
“왕 태사께서는 이미 이 일을 예견하셨습니다.”
동아시아의 근본적 천조질서에 관한 고찰을 담은 이 책은 천명과 중화 질서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 적어놓았다.
왕수인은 언제고 대륙 중원의 사람들이 그 의미를 왜곡할 수도 있다 생각했다. 습진균 정도로 왜곡할지는 예측하지 못했지만.
왕수인에 따르면, 이미 전국옥새가 고려의 손에 떨어진 이후부터 이미 천명은 고려에게 향해 있었던 것이다.
즉, 이미 삼백 년 전부터 왕수인은 고려가 중화고, 중화가 고려라는 주장을 했었다.
실제로 왕수인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결국 지금의 국제질서도 천명을 짊어진 고려가 고려의 ‘중화’를 연 것이라 해석할 것이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애초에 국제연합이라는 것 자체가 의장인 고려의 조정에 비할 수 있으니까.
“중화 자체는 사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범죄들이 사악한 것이지요. 왕 태사께서는 지금의 국제질서도 중화로 해석하셨습니다.”
용찬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이 사람은 습진균을 총통의 지위에 올린 자들이 중화 국민 그 자체라고 믿어 의심치 않소만.”
“하지만 그 전에 석암 선생이 계셨지 않습니까? 그분이 계속 살아계셨다면, 중화가 저리 끔찍한 단어로 변질되진 않았을 겁니다.”
박용찬은 손을 내저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당하, 이 논리가 관철되지 않으면, 고려가 꿈꾸는 지나 분열론은 이행되기 힘들 겁니다.
저곳은 합구필분이나, 또한 분구필합이기 때문이지요. 저들에게 중화 자체를 부정하는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우리 주 역시 그리 느낍니다.”
“허나 그대들은 합쳐지지 아니했잖소. 지금 이렇게 아국과 함께 저항하고 있잖소.”
“제 말이 그것입니다. 아국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고려의 천조와 중화질서를 인정하고 있는데, 어찌 그릇된 참칭자의 질서에 합류하겠습니까.”
하, 박용찬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만약 고려가 중화를 재해석하여 받아들이면 하북에 들어선 정권은 안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중화군 내에서도 포섭 가능한 사람이 생길 겁니다.”
제국이 옛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그리하여 지나의 땅에 들어설 소국들에게조차 용서를 베풀 수 있다는.
웃기게도 용찬은 주나라 대사의 말을 듣고 습진균의 저런 극단주의적 정책이 눈사태마냥 끊임없이 굴러갈 수 있는 원인을 어렴풋하게 짐작했다.
중화국민들은 지금 끔찍한 짓거리를 저지르며, 용서받지 못할 길로 스스로 나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전부가 그걸 원할까? 아무리 미친 이념이라고 하더라도, 단 한 명도 후회하지 않을까?
일부는 총통의 주장에 완전히 경도되어 습진균의 중화사상을 바라 마지않고 있겠지만, 분명히 또 다른 일부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총통에 동의했을 것이다. 초창기의 습진균은 유능한 총통이라 국가와 제도를 정비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어, 어 하면서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끔찍한 일들이 자국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엔 반대하는 이들이 생겼을 것이다.
허나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올라오기 힘들다.
한번 용서받지 못할 일들을 한 자들은 더 이상 용서받겠다는 선택지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 잘라내 버린 셈이었다. 설령 습진균에게 반대하는 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저지른 짓거리를 고려가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주나라 대사는 중화 천명을 고려가 수용하는 것이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고, 또한 이 땅에 평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용찬은 고심했다.
내색하지 않고 있긴 했지만 사실 고려는 지금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소비에트를 성공적으로 잘라낸 고려는 중화의 땅에도 비슷한 중화분열 절차를 밟고 있었다.
하북에는 연(燕)나라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북뿐만 아니라 산동에도, 절강에도, 강소에도.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역 차별을 많이 받은 연은 달랐지만, 산동의 제(齊)나 산서의 진(晋) 정부를 만들려는 고려는 마땅한 현지 세력이나 협조인들을 찾지 못했다. 그럴 만한 자들은 이미 국공내전 때 죽었고, 습진균에게 숙청당했다. 남아있는 자들은 습진균의 부역자거나, 겁에 질려 남의 눈치를 보는 자들뿐이다. 습진균에 의해 민족 반역자의 누명이 씌워지는 것을 꺼려하거나 부역자란 이유로 고려에게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소비에트와 중화를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소비에트는 다민족에 이질적인 모습의 사람들이 많았고, 개천 530년 기준으론 아직까지 전 국토가 완벽히 동화되지는 않은 땅이었다.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가 이끌었던 러시아 카자크들의 동진은 불과 이백 년이 지났을 뿐이라, 쪼개려면 잘 쪼갤 수 있었다.
자유군단이 발흥한 까닭은 명백했다.
반면 중화는 시황제 영정 이후 거진 이천 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동화된 땅이다.
남쪽 대리나 대월에 가까운 곳이야 다르지만, 황하와 장강 부근은 동질성이 몹시 강했다. 일반적으로 서로 떼어놓는 것이 힘들었다.
고려는 아주 옛날에, 언어적 이질성을 토대로 분열을 꾀한 적도 있었지만 그 정도로도 먹히지 않았다. 주나라 사람들마저 황하 유역의 사람들과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습진균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주나라 대사의 말을 따른다면, 이런 정책들을 조금 더 저항이 없이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는 이득에 비해 잃을 것도 많았다.
고려로서는 중화라는 그 역겨운 단어를 몸에 걸치는 것으로 화딱지가 날 사항이다.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단어가 제국을 수식하고 있는데 굳이 전쟁범죄 그 자체가 된 중화라는 단어를 앞에 붙여야 하는가?
그렇기에 워싱턴은 펄쩍 뛰며 이를 거부했었다.
민간 여론은 훨씬 더 반대가 심할 것이다. 황상께서도 노여움을 품으실 수 있었다.
당연히 용찬은 고려의 정치인으로서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귀하께서도 똑같은 거절을 또 당하기 위해 이렇게 온 것은 아니시겠지요?”
주나라 대사도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타협안을 제시했다.
“만약, 정 고려가 중화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신다면, 황상께옵서 태산에 오르시어 봉선을 하지 않으시고 다만 중화체제의 해체 선포와 옛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재림을 선언하시면 됩니다.”
진나라 등장 이전, 춘추시대는 나름대로 왕도와 패도가 공존하는 사회였다. 지금의 국제질서도 어찌 보면 춘추시대와 흡사하긴 했다. 고려의 왕도(패도가 포함된) 아래, 지역패권국가들의 패도가 공존하는 사회.
그것을 이상향으로 규정한다.
또한 동시에, 중원을 일통하려는 시도 자체를 악질적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중원일통을 꾀한 수많은 ‘영웅’들의 행동을 꼽아가며.
진시황제가 사람들을 생매장시키고, 조조가 대효도를 하고, 습진균이 지금의 대학살을 벌이는 것처럼. 그 수단과 결과 모두 끔찍하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나인 스스로가 사악한 통일 중원 대신 스스로 춘추의 시대를 원하도록.
지나인이라는, 지나국이라는 말조차 이제는 달리 불려야겠지만.
“고려가 계획한 중원의 미래도 그와 같지 않습니까? 연이며 제며, 진이며 하는 국호를 사용하신 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미신이며 고리타분한 관습일 뿐인데. 개천 6세기인 지금도 들어먹을 논리라 보시오?”
주나라 대사가 분노하는 대신 웃음을 지었다.
“세상 만인이 합리적이진 않지요. 고려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비교하는 것도 어폐가 있습니다. 중원의 사람들은 고려인과 달리 아직 덜 깨어난 걸 모르십니까? 미신과 관습, 그런 것들이 아직 일상 속에 큰 부분을 차지하곤 합니다. 습진균은 이를 잘 이용했고요.”
“그럼 그대의 말을 따르면 이 땅에 평화가 내려앉을 거라 생각하시오?”
“…그건 장담치 못합니다. 나름대로 평화로웠던 춘추시대도 오패가 전국시대로 넘어가며 다시금 전쟁터가 되었으니까요.
허나 제국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 아닙니까?
또한 설령 다툼이 일어나더라도, 잘게 쪼개진 나라들은 이젠 주변국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조선이나 옥저 같은 나라들이 두 번 실수하진 않을 테니.”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럴 만한 권위가 있어야 하잖소. 그들 입장에선 외람되오나 황상 폐하께서도 비한족 황제일 뿐인데.”
“전국옥새를 잊으셨습니까.”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실 철저한 장막에 가려진 황가의 유물들엔 관심 가지기 쉽지 않았다. 이따금씩 사학자들이나 유물을 조사할 뿐, 정치인들은 그런 것까지 관심을 기울이긴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워낙 유명하고 상징적인 일화라, 이를 잊고 있었던 박용찬조차도 머쓱함에 얼굴을 붉혔다.
“중화인들이 그 유물의 권위를 들어먹겠소?”
“이념은 오로지 이념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중화의 지식인들도 바보는 아닙니다. 지금의 행동이 고려가 건네는 유일한 구명줄임을 눈치챌 겁니다. 또한 중화군도 다 같은 중화인이 아니라 전쟁에 피로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한족들도 많습니다.
유물은… 그저 상징적 구명줄이지요.”
해성작전의 마지막 단계, 즉 복건성 상륙작전을 위해서라면 주의 적극적 협조가 필수 불가결했다. 물론 주가 협력을 안 한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주나라 병력도 이번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전하는 까닭에 마냥 거절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다.
“황상께 여쭈어보겠습니다. 확답은 드리기 어렵군요.”
결국 박용찬은 일단 고려해 보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다만 그는 아까 전에 주나라 대사가 말한 것이 궁금한 듯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근데, 중화 내에 포섭 가능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고려는 소비에트에서 한번 쏠쏠한 재미를 봤다. 중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기대감을 잔뜩 품은 용찬의 말에 주나라 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이 있습니다.”
* * *
아무리 미치광이 같은 나라라도 이에 동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중화의 3명장 중 호원민이 그러했다. 그는 요령전구 패배의 책임을 물어 보직해임당했지만, 이내 다시 복귀했다.
그를 싫어하는 수많은 극성 중화당원들조차 호원민이 없다면 중화군이 훨씬 더 힘든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온계와 양송락 등의 다른 명장들도 그를 완전히 대체할 순 없었다. 원래 4장 중 하나였던 이견휘 원수가 전사한 이후엔 더더욱.
물론 그는 원수의 자리에 앉은 동료들과 달리 상장에서 더 진급하진 못했다.
그는 그저 총통의 장기말로서 이런저런 전장에 급히 파견되는, 말 그대로 허드렛일을 하는 장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 말 없이 명령에 따랐다. 그게 중화민국, 중화제국의 군인이라고 생각했으니.
허나 지금은….
“정말 이 편지가 그자가 쓴 것이 맞다고?”
“그렇습니다.”
호원민은 충복에게서 아무 겉표지 없는 밀서를 건네받았다. 그는 천천히 밀서를 읽어내렸다.
“낭화신… 이런 것을 꾸미고 있었나.”
마침내 밀서를 다 읽은 그가 착잡한 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그저 이 편지를 들고 습진균에게 가면 되었다. 그러면 어쩌면 잃어버린 총애를 다시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수의 지위에 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호원민의 머릿속에서, 그동안 보았고 겪었던 일들이 휘몰아쳤다. 수많은 장병들을 신의주에서, 요령에서 잃어버려 절망했던 자신. 그토록 대단한 공훈을 세우고도 자기가 반쯤 만든 제국에서 쫓겨난 늙은 개의 모습. 그리고 고려의 선전물에 적힌 내용들. 중화제국의 비밀 실험, 포로 학살.
이게 자신이 원하던 조국인가?
호원민은 류용의 시대에 군문에 종사한 군인이었다.
그때부터 원민은 조국 중화에 밝은 희망을 가졌다. 류용과 그분의 유산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겠다는 맹세를 했었다.
그분의 죽음을 막을 순 없었지만.
류용이 죽은 뒤에는 황전겸을 모셨다. 상당히 하자 많은 지도자였지만, 그래도 완전히 류용의 유산에서 등을 돌린 자는 아니었다. 그때 당시에는 국공내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으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사항엔 공감했다.
그때 원민은 진급하여 장성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군재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감탄한 것은, 습진균의 초기 치세였다.
습진균은 대단한 마성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국공내전을 종결시켰고, 분열된 중원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 수단이 썩(굉장히) 좋진 않았지만, 각지에서 할거하는 야심가들은 철저하게 숙청당했고 중원 땅엔 안정이 내려앉았다.
또 전 국토에 공장이 세워지고 산업화가 되었다.
습진균이 양동이들과 탐욕스런 자본가들의 공장을 압수하여 국영화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원민조차 경탄하며 통쾌해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원민은 한때 습진균이야말로 류용의 진정한 후계자라 여겼다.
허나 지금은?
‘가히 망탁조의균(莽卓操懿均)의 반열에 들었으니….’
호원민은 밤새 고뇌하다, 마침내 그 밀서에 답신을 보냈다.
이튿날, 그는 다시 밀서를 받았다. 날짜와 장소 단 두 가지 문구가 적혀 있는 밀서였다. 호원민은 이 밀서의 내용이 함정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외투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인 자리엔 몇 명의 고위급 장교들이 있었다.
그들도 설마 상장급 지위가 되는 인물, 그것도 현 중화에서 가장 대단한 인물로 꼽히는 장군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당혹해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모두가 존경심을 표하며 호원민에게 예를 취해 보였다.
“호 장군께서 뜻을 같이하신다니, 실로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입니다.”
“…낭 원수께선?”
“어르신께선 감시를 철저히 받으셔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셨습니다. 허나 이렇게 동지들을 직접 모으셨으니, 어찌 그 이상을 바라겠습니까.”
그 말이 맞다. 수많은 정적들을 가차 없이 숙청해온 습진균의 치세에 이렇게 많은 반대파들을 모았으니 과연 중화제국의 이인자였다.
늦게 합류한 호원민은 몰랐으나, 이미 낭화신과 그가 포섭한 인물들의 모임, 차비회(次非會, 형가(荊軻)의 자에서 따온 것이 분명했다.)는 상당히 많은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었다.
물론 물적, 인력적 지원이 한계가 있기에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지만 호원민의 합류로 이것도 어느 정도 돌파할 길이 보였다.
“어르신께서 총통의 일정을 구하셨습니다. 9월 19일 전당회의 때 거사를 할 예정입니다.”
호원민은 그의 부대를 움직일 순 없었지만 군에서 폭발물 등을 공급해 줄 순 있었다.
“설령 거사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고려제국의 도움을 받아 항공폭격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너무 근심치 마십시오.”
“꼭 그렇게 해야 하겠나? 난 반대일세. 우리가 보란 듯 성공해 내면 돼.”
허나 호원민과 차비회는 몇 가지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호원민은 습진균을 암살하는 데 외세의 세력을 동원하는 것은 극히 꺼렸다. 외세의 손을 빌리면 그만큼 전후 처리 과정에서 반습진균파가 주장할 몫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였다. 고려가 비록 차비회와 은밀히 접촉하며 몇 가지 정치적 거래를 성사시키긴 했지만 호원민은 국가와 단체 간의 거래에서 비공식적인 약속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잘 알았다. 설령 그렇게 약속을 잘 지키는 고려라도.
반면 차비회를 구성하는 젊은 장교들은 일단 습진균을 처단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명줄을 붙잡는 것 자체가 지금은 더없이 힘든 일인데 훗날을 따져봐야 무슨 의미겠는가.
하지만 결국 차비회는 호원민의 논리에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