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11화 (611/653)

611화 매달린 자

그는 상민의 ‘인명부’에 있었다.

인재 수집에 대한 욕망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큰 상민으로선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위인들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감시했다.

분야를 가리진 않았다. 아이작 뉴턴부터 넬슨과 나폴레오네까지. 쓸 만하다면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선 조정의 탄압을 받고 개성을 거쳐 고려로 넘어온 젊은 유학자, 인백 정여립 선생 또한 노괴의 감시망에 진작부터 걸려있었던 것이다.

상민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심지어 자신의 휘하에 들이지 않더라도 술이나 차 한잔을 하는 것이 낙이었다.

완성된 인간이라 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몇백 살 먹은 노인네도 항상 공부하고 배워가는 게 이 세상 사는 법칙이란 말이었다. 위인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경험해 보는 건 상민에게도 가장 큰 공부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젊은 정여립은 상민의 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공학자나 군인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려 들었던 상민도 철학자나 사상가는 굳이? 하며 따르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문과적 취업난은 이곳에서도 적용된다는 안타까운 말이었다.

고려 역사상 최장기 상서령을 역임한 이도 정도가 예외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도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대단한 행정가였기도 했다.

어쨌든, 정여립은 대면해서 같이 이야기만 나누어 보는 선으로 그쳤다.

상민이 알고 있는 인재 모음집에서도 정여립이 엄청 대단한 인물이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다. 오히려 그의 스승이었던 이이가 차라리 더 유명하고 대단했을 것이다.

구태여 자신이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정여립이 먼저 수학하기 위해 고려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세계 최고의 사립대학이 있는 청해도 그의 발길이 닿는 곳 중 하나였다.

둘은 한 끼 식사와 술자리를 같이 했다. 당대 고려 지식인들은 타지에서 찾아온 다른 지식인들과 흔쾌히 어울렸었다.

“어찌 이런 나라가 또다시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가의 한 술집에서 얼큰하게 취한 채로,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사람의 권력욕은 욕망 중 가장 크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 사적 권력욕은 나라를 부강하게도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빈번하게 나라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허나 이 사람이 생각하기엔, 고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딱 한 번, 폐주의 시절에 그랬던 적이 있었지만, 이 사람이 생각건대, 그마저도 무종 대제의 심계에 포함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 이후에 지금까지 고려에 정착되었던 가면시중의 치세를 보십시오.”

여립은 흥분한 채 술을 들이켰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몇 가지 잡음들이 있었고 실패로 돌아간 정책들도 있었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의 치세가 실패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사리사욕을 잘라낸 명재상들이 꾸준히 나온 셈이지요. 불가능한 일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나라에 명군이 연속적으로 나온 경우가 인류사에 없진 않소만.”

“재상과 군주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또한 군주조차도 나라를 진정으로 소유할 수 없으니 항상 민의를 경계하며 결국은 그릇된 길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태태세성무의 오현제의 치세도 결국은 끝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는 굳이 현 황제인 해종(후에 혜종)이나 그전 황제들을 까 내리진 않았지만, 그들이 오현제만큼이나 대단한 치세를 만들었다고 보긴 힘들다는 논조였다.

“제 말인즉, 이 고려란 나라는 인간의 밝은 희망만 집대성한 나라 같다는 겁니다. 마치 누군가가 공들여 관리하는 거대한 체제라 할 만하단 게지요. 비유하자면, 고려는 정원이요, 다른 나라들은 자연의 숲입니다.”

“후자가 전자보다 좋소?”

상민의 물음에 여립이 고개를 저었다. 격렬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에 있었을 때, 여립은 낙향해 향촌에 은거했던 적이 있었다. 그가 짧게 머문 죽도(竹島)는 지명 자체에 섬이라는 뜻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섬처럼 보이는 산이었다.

그래서 그는 산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았다. 동경을 가질 것도, 뭣도 없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땅이 젖어 난리가 나고, 나무가 불타면 화재를 걱정해야 했다. 눈이 오면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이 산속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

주변에는 범과 이리가 있어 매사에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며, 도적 떼도 돌아다녔다.

양반이었던 그조차도 난방 걱정, 식량 걱정을 항상 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양인들이라면 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화전민 취급을 받아 관에 의해 탄압당했을 것이다.

고려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아름답고 즐기기 좋은 정원과 같았다.

나무와 잔디, 폭포와 분수, 조각상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목재로 만든 정자도, 연못도 있었다.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있기까지 했다.

다만 그 경지까지 도달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자재와 인위적인 손길이 필요했던 것일 뿐이다.

아무래도 인위적 정원, 그 어감이 갖는 특유의 부정적 의미가 있었다. 미래에는 자연주의와 같은 단어가 인위적 느낌이 나는 수식어보다 무언가 더 가치 있게 보이곤 했다. 미래인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허나 정작 동시대의 사람들, 과거의 사람들에겐, 정원이 더욱 아름다웠다. 안전하고 즐기기 좋았다. 보호받으며 풍족했고, 희망과 문화예술이 있었다. 역사가 있어 보고 배울 점도 있었다. 나아갈 지표가 되기도 했다.

“결국 나라란 무릇 신민을 행복하게 만들면 그만입니다. 만약 고려가 충분할 정도의 미덕을 쌓아 올려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 냈다면, 그 전통 자체의 관성이 생겨 후대의 사람들이 보고 배울 지표가 됩니다. 그것이 문명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한번 정원을 세워 문명을 이룩하면 후손들은 마땅히 그를 본받아 따라 할 것이며, 그 존재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숲은 세계의 수없이 많은 곳에 있지만, 우리가 정작 동경하는 것은 그러한 자연 광경이 아닌 옛 문명들이 만든 미덕이 아닙니까?”

상민은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떠올렸지만, 입으로는 다른 단어를 내뱉었다.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조선의 유학자들이 틈만 나면 내뱉는 그 이상향의 단어.

“요순시대….”

“바로 그러합니다. 지학파의 옛 선배들이 그러한 말을 했었지요. 요순은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지금 우리는 제국의 시대를 눈으로 보았기에 실로 황홀한 일이다… 그렇게 말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말하는 정원은 인류 문명의 발전을 단적으로 상징합니다. 어떤 나라가 정원과 같다는 말은 나라가 들을 수 있는 지고한 찬사와 같을 겝니다.”

“허나 선생은 아까 이 나라를 뜨신다고 하셨잖소.”

상민은 갸웃했다. 정여립이 설명을 곁들었다.

“저는 제국과 같은 아름다운 나라를 제가 떠나온 곳이나 그 주변 나라들에서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렇습니다.”

정여립은 정말로 아쉬운 듯 말했다.

“제국이 이렇게 발전한 것이 위대한 위인들의 연속적인 탄생과 집권으로 이루어진 큰 행운의 결과물이라면, 다른 나라는 결단코 이에 버금가는 미덕을 쌓아 올리지 못할 겁니다.

저는 보다 현실적인, 보다 실제적인 경우를 찾아내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유럽으로 떠나 그들의 문명에서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길 원합니다. 비단 신성로마제국과 같은 지금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옛 그리스의 폴리스들, 그런 과거 속에서도 말입니다.”

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개운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이 정여립이란 자가 유럽에 가서 대체 뭘 할 예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고민을 조금 해소시켜 주는 말을 해준 것으로 감사했다.

상민은 넉넉한 여비를 주었다. 더 많은 공부를 위해 후원자를 찾아다니던 정여립이 비로소 한숨을 돌릴 만큼 많은 자금이었다.

“선생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길 기원하오.”

* * *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상민은 저 멀리 걸어오는 기척을 느끼곤 눈을 떴다. 옛 기억의 잔향이 희미하게 머리에서 떠돌다 사라졌다.

아들과 그 친구들은 드디어 임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지금까지 굉장히 힘든 여정이었으니, 좀 쉬라고 보냈다. 그 덕에 전원 무사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애 엄마 얼굴 보기가 심히 무서워진 것도 있었다.

“4사도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라.”

임무를 완수한 세르게이 보그다노프가 마침내 그와 재회했다.

어차피 남은 것들은 반란군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이미 소련은 더없이 빠르게 붕괴하고 있었다. 세르게이까지 남아서 할 것들은 없었다.

“고생이 많았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상민은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는 것으로 대답했다.

세르게이가 질문을 던졌다.

“배신자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배신자. 세르게이는 분명 바뵈프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상민은 4사도를 아꼈지만, 가끔 그런 면에선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정여립 때문에 저런 말을 할 것이다.

상민은 인백(정여립의 호) 선생을 유럽으로 보낸 당사자였다. 그리하여 유럽엔 대동주의가 싹을 내렸고, 바이에른 혁명 공화국이 세워졌으며 마침내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던 것이다.

4사도는 그렇기에 상민을, ‘대동주의의 위대한 위인’으로 여겼다.

정여립이 아드리안 양과 톰마소 캄파넬라와 만나기 전부터 상민이라는 존재 덕에 유럽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지극한 사실이다.

물론 그보다 더 전의 토마스 뮌처의 경우처럼, 유럽의 혁명은 상민이 없었어도 결국 일어났을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이 역사에서 상민의 몫이 적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래서야 마치 세상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지 않은가.’

하기사 오백 년 묵은 괴물이 세계 초강대국의 핵심 단체에 계속 참견하며 다니는데, 어떻게 그런 존재가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마는.

상민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예전의 행동이 이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 생각했다면 조금 더 현명하게 행동할 것을.

그땐 지금처럼 미래의 일을 언뜻언뜻 보지도 못했다. 또 오로지 고려의 국익이라는 일차적인 목표로 행동했었으니.

물론 정여립은 유럽에 가 대동주의의 씨앗을 뿌리내렸고, 이는 초창기 공산주의적 맹아가 되기도 했다. 당시 유럽은 지금처럼 고려와 마냥 친하지는 않았으며 잠재적 경쟁국으로 여겨졌으니, 그들의 힘을 잔뜩 빼놓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론 좋았을지언대, 이렇게 세계대전으로 귀결될 줄은 몰랐다.

예지를 본 이후, 상민은 세계대전이 필연적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다른 길이 있진 않았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하지만 정원사로서 상민은 여전히 잔혹했다.

그래야만 했다.

정원사는 나무를 가지 쳐야 했다. 뉴런이 없다는 식물도 고통과 스트레스에 반응했다. 하지만 그런 현상들에게 일일이 동정을 느끼고 반응한다면, 문명이라는, 제국이라는 정원을 가꿀 순 없는 노릇이다.

“놈이 어디에 있다고 했지?”

상민은 바뵈프의 행적을 물었다.

소련의 국가원수. 이념적으론 오히려 트로츠키와 가까웠지만, 행적은 이오시프 쥬가슈빌리와 같았던 자.

결국 스탈린이라는 동일한 명칭까지 얻었다.

이오시프 쥬가슈빌리와 프랑수아노엘 바뵈프는 비슷했다.

둘은 낙후된 러시아를 소비에트로 개조할 만큼 유능한 행정가였고, 이념적 사상도 튼실했다. 둘 모두 대규모의 숙청을 통해 소비에트의 지배권을 공고히 했기도 했다.

다만, 세계혁명을 꿈꾸는 바뵈프는 일국사회주의를 논한 쥬가슈빌리와는 다르게 필연적으로 고려와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

적은 훨씬 더 강대한데, 미국의 랜드리스도 없는 주제에 중화와 붙어먹으며 전쟁을 시작했다. 그동안 서기장으로 일구어낸 다른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 판단이 나라와 자신을 망하게 했으니 상민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쥬가슈빌리를 바뵈프보다 높게 쳐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쥬가슈빌리와 완전히 동일한 인물이 소련의 정권을 잡았다고 한들, 고려 단극체제의 완성을 꾀하는 상민이 소비에트를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진 않았을 테지만.

“클랴지마의 다차에 있습니다. 명하신다면 포획하여 오겠습니다.”

“아니야, 아니다.”

상민은 무덤덤하게 손을 내저었다.

“인민들에게 알려라. 그들이 생껑땅(바뵈프의 고향)의 인간백정을 스스로 죽이도록 하라.”

* * *

다차에서, 바뵈프는 문득 옛날 자신이 썼던 일기와 일지를 발견해 읽었다.

그중에는 한 집시 여인에게 친 타로점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점을 보는 짓거리 같은 것은 하지 못할 것이지만, 젊었을 적 바뵈프는 온갖 호기심으로 많은 것들을 해보았다.

소련은 그나마 유럽 중에선 집시에게 관대한 국가였고, 많은 이들이 루스 땅에 살아가고 있었다.

바뵈프 집권 이후엔 의도적인 러시아 문화 보편화 정책에 따라 집시 문화도 사라져야 할 문화로 지정되어 탄압당했지만, 그때의 그는 유망하지만 아직 젊은 공산당원에 불과했었다.

바뵈프의 운명을 나타내는 메이저 아르카나는, 매달린 자(Hanged Man)였다. 집시 여인은 그 카드를 중심으로 다른 카드들을 해석했다.

“무슨 뜻이오?”

“당신은 아주 높은 곳에 오를 겁니다.”

“내가?”

바뵈프는 그렇게 반문했다. 딱히 믿는 어조는 아니었다.

당시 모렐리의 후계는 뒤파이와 마레샬 중 하나가 될 예정이었다. 바뵈프로선 위원장의 자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집시 여인은 그의 운명을 계속 읊었다.

“그 뒤에는 큰 시련이 주어질 거예요. 하지만 그 고난은 당신이 착실하게 노력한다면, 이겨낼 수 있을 테죠.”

형식적인 말이다.

“허나 당신이 초심을 잃어 희생과 봉사의 자세가 사라진다면, 당신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겁니다.”

여인이 그렇게 말했다.

“…불길한 말만 늘어놓는군. 원래 점이 다 이런가?”

그는 불쾌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유물론적 관점에선 이따위 말들은 전부 다 소용없는 것들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바뵈프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았다.

초심을 잃었는가?

그랬다. 젊었을 적, 그는 누구보다 순수한 혁명가였다. 모든 권력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돌리려는 혁명가였다. 인민의 종복을 자처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러시아의 모순을 바꾸고 인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강한 힘이.

구체제의 모순을 완전히 바꾸고 소련의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위원장 모렐리 수준을 아주 뛰어넘는 공고한 일인독재체제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의 시도는 온갖 반동들에게 가로막혀 좌초될 것이었다.

다양성을 존중할 때도 아니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갔다. 지금 소련에겐 그럴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초심을 잃었던 것 같았다.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권력욕이 증가했다. 자신이 아니라면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독재자의 변명거리로 바뀌었다.

샬럿 러드가 잉글랜드의 여왕이 되었듯, 그렇게 그는 소비에트의 차르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차르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기 마련이었다.

소문이 퍼지자 성난 군중들이 모였다.

그들은 바뵈프의 다차를 급습했다. 다차 안에는 끝까지 바뵈프에게 충성하는 호위병들이 있었지만, 아무리 정예한 병력이라도 인민들이 수없이 많이 몰려오는데 이길 순 없었다.

칩거한 바뵈프는 의외로 의연하게 사람들 앞에 나왔다. 그는 호위병들의 총격을 자제시켰다. 흥분한 군중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민들은 그가 하는 말을 이제 믿을 수 없었다. 누군가 고함쳤다.

“저놈의 입을 막아!”

바뵈프는 날아오는 돌에 턱이 깨졌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서기장을 본 호위들이 총을 사방에 난사했지만, 그들마저도 결국은 돌에 맞아 죽었다.

아내 프라스코비아와 바뵈프의 아들도 끌려 나왔다. 원래라면 아버지 쿠투조프의 말대로 니즈니 노보고로드에 가 있어야 할 그녀는, 결국 남편을 버리진 못해 되돌아왔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그 판단이 그녀와 가족에게 끔찍한 결과로 되돌아왔다. 그녀도, 어린 아들도 모두 성난 군중 앞에 무력하게 노출되었다.

바뵈프의 가족뿐만 아니라 보리스 가라닌을 포함해 크레믈에 남아 있었던 소수의 고위 관료들도 성난 군중에게 줄줄이 끌려왔다.

폭도로 돌변한 민중들은 큰 광장으로 모였다.

제정 러시아부터 있었던 이 광장은 알렉세이 로마노프의 처형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붉은 광장이 되었다. 아직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는 소비에트 국기가 이곳저곳에서 펄럭였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민중들은 바뵈프의 소련에 염증이 나 있었다. 아니 소비에트 자체에 염증이 났다.

변하지 않는 러시아 땅의 지도자들에게 실망한 것도 여러 번이다. 바뵈프는 자신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 주장했지만, 그마저도 이전의 차르들과 같으면 같았지 다르지 않았다.

“소련의 이상이 무엇이었습니까! 모두가 잘사는 공산주의 낙원,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이놈들은 낙원을 만들기는커녕,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빼앗았습니다.”

“이들은 큰 재물을 쌓았고, 그것도 모자라 그토록 경계하던 외국의 물건들을 그들만 독식했습니다. 제국자본주의의 상징인 콜라, 와인, 쇼콜라, 카카오, 녹차, 수많은 것들을 혼자만 즐겼습니다!”

원래 높으신 분들이야 사적 재물을 축적하는 건 당연하게 여겨졌다. 소련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정작 군중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기들이 하지 말라고 한 것, 쓰지 말라고 한 소비재들을 정작 프랑스계 엘리트 공산주의자―노멘클라투라라 불리기 시작했다―들 사이에서는 뻔뻔하게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들은 하루하루 즐거움이라는 것이 거세된 비참한 생활을 영위했다. 이제는 전쟁에 나가 죽기까지 하고 있었고.

사방에서 패전 소식과 봉기 소식이 들려오는 패망의 끝자락, 사람들은 분을 풀 데가 필요했다.

“매답시다, 혁명의 배신자들을 매답시다!”

바뵈프와 가족들, 고위 관료들은 곧 매달렸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목이 아닌 발이 묶인 채 허공에 거꾸로 매달렸다.

그들은 현 소련의 체제에서 역사박물관으로 개조된 성 바실리 대성당 앞의 동상에 묶였다. 그 동상은 두 명의 포마(Фома 토마스), 즉 톰마소 캄파넬라와 토마스 뮌처의 동상이었다. 바뵈프는 그에 뒤이어 모렐리와 자신의 동상도 옆에 세우려고 했지만, 그 광경을 보진 못했다.

발가벗겨진 열세 명은, 그렇게 동상에 어떻게든 주렁주렁 매달렸다. 사람들은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그러지 않아도 낮은 온도와 머리로 쏠린 피 덕분에 매달린 자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지만.

제일 처음, 바뵈프의 어린 아들이 돌에 맞아 의식을 잃었고 다신 깨어나지 않았다. 울며 슬퍼하던 파라스코비아도 조용해졌다.

엔카베데 수장인 보리스 가라닌은 울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풀어달라 간청했지만, 사람들은 비웃거나 조롱할 뿐 그래 주지 않았다. 얼어붙을 듯 추운 밤이 되자, 보리스 가라닌과 다른 관료들도 조용해졌다.

바뵈프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그는 눈을 끔벅이며 거꾸로 반전된 광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오가는 사람들의 증오 섞인 눈초리를, 저 멀리 고려군과 반역자들이 도착하는 광경을 얼어붙은 동공에 끝까지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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