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9화 적적내전(3)
어쨌든 찬기는 그녀의 이름을 기어코 알아냈다.
스네자나(Снежана). 북캅카스인들 중엔 꽤 흔한 이름이랬다. 흔하긴 하지만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스네자나의 설명에 따르면 찬기는 지금 고려군 포로 취급을 받지 않았다. 찬기는 진작 교전 중 죽은 사람으로 분류되었단다.
정확히는 죽었다고 보고된 모양이다.
그를 통해 찬기는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소련군 지휘체계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라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날 보고 싶으면 이 방으로 오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들, 전부 다 모일 순 없어요. 당신이 으슥한 곳으로 가야 해요.”
스네자나는 곧 낡은 소련군 군복과 포대자루 하나를 들고왔다. 본래 비료나 흙 따위를 담는 것이지만, 전시에는 시체를 넣는 용도로 쓰였다.
“이걸 입고 여기 누워요.”
“뭐라고요?”
찬기는 되물으면서도, 그녀의 완강한 행동에 고분고분 소련군 복장을 입고 시체포대 안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겼지만 그는 꾹 참았다.
스네자나가 이윽고 일꾼 두 명을 불러왔다. 자기 조직 사람은 아니란다. 포대를 뒤집어쓰고 들것 위에 놓인 찬기는 가만히 죽은 척을 했다.
포대의 찢어진 틈 사이, 저녁노을이 깔린 스탈린그라드 시내가 언뜻언뜻 보였다. 예상대로 방어 병력은 많았다. 지뢰도 많아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지뢰는 고려군이 제일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대전차 대인을 불문하고 살상력이 충분하며 진군 속도를 몹시 느리게 하는 만큼, 소련은 집요하게 지뢰전을 추구하고 있었다.
찬기는 마침내 영안실인지 정교회식 카타콤인지 헷갈리는 낡은 건물에 도착해 포대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를 가운데 두고 모여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곳엔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소련군복을 입은 고위급 장교 몇 명과 아주 늙은 노인, 할머니랑 젊은 청년들도 몇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그동안 찬기가 봐 왔던 루스인과는 약간 다른 기분이 들었다. 유럽인들을 세밀하게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북캅카스는 물론이고 중앙아시아 출신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보였다.
그중 정령, 혹은 대령급으로 보이는 고위급 장교가 말문을 열었다.
“만나게 돼서 반갑소이다, 우린 반소비에트 반루스 자유군단이오.”
“반소비에트 반루스 자유군단…?”
“그 말대로요. 소비에트도, 러시아인들의 지배도 받기 싫은 자들이 결성한 독립단체지.”
차별받는 소수민족들을 중심으로 모인 이자들은, 현 세력 자체가 그렇게 크진 않아 보였다.
아마 전쟁이 일어난 뒤에 비로소 세력을 불린 듯싶었다.
“우린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소. 북캅카스산맥 근처에서 온 사람들, 여기 볼가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시베리아에서 온 사람들. 실로 많은 곳에서 왔지.
공통점이라면 우리는 종교인들이오. 정교회를 믿기도 하고, 이슬람을 믿기도 해요.”
그토록 이질적인 기독교도들과 무슬림들도 지금 이렇게 손을 잡고 행동할 만큼 소비에트의 종교탄압은 심했다.
유물론적 가치관이 아니더라도, 소비에트는 종교를 탄압할 수밖에 없었다.
제정러시아가 멸망하고 구러시아 정교회의 근본이 사실상 다시금 고려 정교회와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로 넘어가자, 소비에트는 이것을 굉장히 껄끄럽게 여겼다.
종교가 반동분자들의 도구로 쓰일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하물며 가장 친숙한 정교회도 그랬는데 이슬람과 다른 종교들은 더더욱 그랬다. 이슬람권은 이미 대체로 친고려로 돌아섰다. 이라크와 아련, 북아프리카 국가 등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란과 튀르키예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려외교였다. 소비에트는 이 종교인 나부랭이들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종교인들은 억누른다고 억눌러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렇게 지하 무덤에서 탄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군단을 결성한 것만 봐도 그랬다.
“우리는 우리 고향에 독립적인 나라를 세우고 싶어요. 자유로운 믿음을 보장하는 곳으로.
이중 몇몇은 전쟁이 끝난다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겠구려. 그대들 덕에.”
“…알라니야 공화국 말씀이십니까?”
고려는 소련으로부터 해방시킨 북캅카스 일대를 알라니야 공화국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이 사람들도 그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연합군이 알라니야뿐만이 아니라, 볼가강 유역과 우랄 서쪽까지 루스인들의 손에서 해방시켜 주길 원하오.”
점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찬기는 역사 교사로서 이 역사적 순간의 산증인이 된 것에 전율했지만, 그럼에도 상황 파악은 빨랐다.
“저는 일개 부사관에 불과합니다. 뭘 어떻게 장담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세력을 증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면 하겠소. 우리 동지들은 이 스탈린그라드 소련 지휘부들이 어디에 모이는지 알려줄 수 있소. 당신네들은 정밀한 항공폭격을 할 수 있으니, 그 건물을 폭격하긴 쉽겠지.
돌아가면 우리의 뜻을 전해 주시오.”
“아버지….”
스네자나가 갑자기 대령의 손을 붙잡았다. 대령이 그녀의 손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둘은 지하 무덤을 떠났다. 찬기가 머뭇거리다 질문했다.
“설마 장인… 아니, 어르신께서는….”
“맞아요. 살아남으실 생각은 없으실 거예요.”
스네자나가 긍정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소련군 고위급 장교이니만큼 그만이 항공폭격을 해야 할 지휘부 위치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살아남기는 힘들다.
소련군도 연합군과 많이 싸워본 처지다.
그들은 고려의 정밀 폭격을 심히 두려워했다.
그랬기에 소련군들은 회의를 할 때 항폭으로 부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설계된 방공호에 들어가거나, 혹은 매번 지휘부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이에 대비했다.
듣기론 회의 장소는 그날그날 바뀌어 직접 참석하지 않으면 모른댔다. 한번 참가하면, 도중에 독단으로 빠져나오는 것도 불가하댔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소련군 정치장교의 눈에 들킬 수밖에 없단 소리였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찬기가 그렇게 말을 했다.
“굳이 어르신께서 피를 흘려야 할….”
스네자나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고려어가 좀 어색했는데, 지금은 또 아니었다.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데,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언제나 피를 요구해요. 우리 아버지는 이 일을 계획하기 전부터 피를 흘릴 걸 각오했어요. 당신들은 우리의 희생을 잊지 않아 주면 돼요.”
냉엄한 현실정치상 독립군들의 형편은 강대국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많은 희생이 있을수록 많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스네자나의 아버지는 이를 잘 알았다.
자유군단은 그동안 세력이 약했지만, 그래도 스탈린그라드라는 전장에서 가장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 전장에서 자신들의 유용성, 그리고 공로를 연합군에게 알려야만 했다.
그리하여 압제자 소비에트에게서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소련이 무너진 이후, 어떻게 대접받을지는 이런 위인들의 헌신과 희생에 기원했다.
그 엄숙한 태도에 찬기는 구태여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알겠습니다. 근데 좀 부축해 주셔야….”
둘은 야음을 틈타 도시의 하수구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다리가 다친 찬기는 부축을 받아야 했다. 스네자나는 고려어를 잘하니 자유군단의 사자 겸 찬기의 주장에 대한 증인으로 행동했다.
도시 밖으로 나가자,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고려군 수색조에게 빨리 발견되었다. 고려군 수색조들은 절름발이와 여인의 조합에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사격 대신 암구호를 외쳤다.
“쉿! 움직이면 쏜다! 감귤!”
찬기가 반가움에 투덜거렸다.
“암구호를 붙잡혔다 탈출한 내가 어떻게 알겠냐?”
탈출하기 위해 소련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고려군 특유의 감성이 있었다. 그들은 금방 서로의 정체를 인지했다.
“3소대장!”
찬기는 동료와 포옹했다.
하지만 갑자기 동료들의 시선이 이상하게 변했다. 절뚝거리는 그의 옆에는 스네자나가 태연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분은?”
포로로 붙잡혀 지옥으로 고문받으러 갈 줄 알았는데, 완전히 정반대였다. 동료들의 눈빛이 차츰차츰 사나워지는 것을 느낀 찬기가 서둘러 부연 설명을 해야 했다.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돌아가는 길, 한 수색대원이 멍청한 얼굴로 스네자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다, 이윽고 불쑥 말했다.
“난 고려로 안 돌아갈래요. 여기 이 땅에서 살 겁니다.”
찬기가 발끈하려다가, 스네자나의 얼굴에 띤 웃음기에 화를 누그러뜨렸다.
스네자나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스트라한의 땅은 당신을 반길 거예요. 내 친구들을 소개시켜 줄게요.”
* * *
이 상황을 보고받은 곽호연 유럽사령관은 곧바로 자유군단과의 협력 작전을 승인했다. 얻을 건 많은데, 잃을 건 적은 작전이었다.
이윽고 공군과 육군에 지시사항이 전파되었다.
찬기가 속한 사단도 공격 준비에 나섰다.
찬기는 몸도 성치 않은데 다시 부축을 받으며 도시로 되돌아갔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깔끔한 공습 성공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했다. 허벅지와 어깨 통증 정도야 참을 수 있었다.
그는 공습 이후 곧바로 침투할 공격조를 위해 자신이 도시를 빠져나올 때 수집했던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당신은 안 와도 될 텐데요?”
스네자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웃었다.
“내가 총은 당신보다 더 잘 쏴요. 우리 초원의 여자들은 눈이 좋죠.”
볼가강 주변의 넓은 초원에서 자란 그녀는 찬기보다 훨씬 더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준경이 부착되지 않은 싸구려 총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저격술을 선보일 수 있었다.
‘피곤해질 뻔했어.’
물론 고려의 저격수들은 소련 저격수들보다 훨씬 더 좋은 장비와 우수한 훈련으로 훨씬 더 좋은 저격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저격이라는 것 자체가 일방적으로 적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저격전도 한계가 있었다.
이런 여인들조차 총을 쥐고 어딘가에 은엄폐를 하고 있다면, 고려군 일선 병력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찬기가 이 기회를 잡은 것이 자유군단뿐만 아니라 고려군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공군은 자유군단과 수색대에게서 온 정보를 토대로 정밀한 항공폭격을 실시했다.
매일매일 바뀌는 장소였지만, 애초에 내부에 첩자가 있다면 들킬 수밖에 없었다.
자유군단의 지도자 대령은 고려군에게서 넘겨받은 깜박이는 작은 인공불빛을 창문에 걸어놓았다.
야간의 하늘에서 야투장비를 통해 이 불빛을 바라본 고려군 전투기 조종사가 확인된 건물을 향해 위력을 강화한 무선유도 공대지신기전 매발톱 3형을 쏘았다.
― 콰앙
거대한 폭발 이후, 건물은 완전히 주저앉았다.
그래도 지휘관을 구해야 하는 소련군은 최대한 건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시체들의 계급장이 참으로 화려했다.
스탈린그라드 사령부가 그렇게 떼죽음을 당하자 지휘체계가 일순간 와해되었다.
도시 방어군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고려군 기갑사단은 지뢰개척전차 ‘두더지’를 앞세우고 대전차지뢰를 극복하며 도시를 공격했다.
소련군 보병들이 저항하려고 노력했지만, 자유군단의 사보타주로 무기고와 탄약고가 불타고 사방에 전의를 떨어뜨리는 선전물이 배포되자 이내 빠르게 대응할 의지를 잃어버렸다.
도시 전역에서 총과 대포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상황은 일방적이었다.
소련군은 지휘체계가 붕괴한 것도 모자라 같은 소련군도 믿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아군 오사가 속출했고, 고려군은 그때를 틈타 도시를 빠르게 장악해나갔다.
남부에서 최대한 연합군의 발목을 잡아야 할 스탈린그라드는 작전 개시 91시간 만에 완전히 연합군 수중으로 떨어졌다.
소련군은 후퇴하거나 항복했고, 동원된 민간인들도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부상이 낫지 않은 채로 도시를 왕복하며 무리를 한 찬기는 의무대에 뻗어있었다.
사단장이 그를 직접 보러 왔다.
사단장은 찬기를 쌍룡대훈장에 추천하기까지 했다. 쌍룡대훈장의 가능성이 굉장히 크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삼상훈장 중 하나인 백호훈장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사단장이 격려했다.
도시 하나를 손쉽게 점령한 공로가 일정 부분 그에게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만약 여기서 상처가 다 낫지 않아 명예의병제대를 하게 된다면, 그는 상이군인훈장과 함께 고려군 병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다 받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것부터 물었다.
“자유군단은 어떻게 됩니까?”
“흠… 대외비지만 자네를 봐서 알려주지. 국제군으로 정식 편입될 예정이다. 전투인원을 가려 받아야 하겠지만.”
사단장은 그들이 독립군 정부로서의 인정도 받을 거라고 덧붙였다.
말이 끝난 이후, 사단장은 침묵을 지켰다. 그는 찬기의 곁에 붙어있는 스네자나를 바라보다 이윽고 주머니에서 작은 계급장을 건넸다.
“소련 대령 계급장입니다. 원하신다면, 아국 정령 계급장으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스네자나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 계급장을 받아 들었다.
찬기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은 너무 많았다. 그는 만약 지금 자신이 전역하게 된다면, 증인으로서 이들의 독립운동을 기록해 후대에 남기리라 다짐했다.
* * *
고려의 정보총국이 4사도를 통해 뒤파이주의자와 마레샬주의자들과 협력하고, 연합국 유럽사령부가 자유군단과 협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유럽 타수는 다른 인물과 협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웨덴에 망명했던 한 노인이 마침내 도이치의 무우궁에 도착했다.
그는 도이치 왕 프리드리히 3세와 타수 외교관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군주들과 고위급 관리들 사이에서 꽤나 위축이 들 법하지만 이 노인은 그렇지 않았다. 온갖 고난을 겪은 노인은 여전히 눈빛이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귀족과 부르주아지들 옆에서 비굴해질 사람이 아니었다.
노인의 이름은 미하일 트레챠코프였다. 파르티잔의 수괴였기도 했다.
프랑스어 파르티(Parti, 당파, 당원)에서 비롯된 파르티잔은 시간이 흐르며 많은 변형을 거쳐 지금은 유격대, 특히 체제에 반하는 유격대를 일컫게 되었다.
옛날 옛적,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이 갓 태어난 시절, 소비에트 평의회는 많은 다양한 의견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건국자 중 한 명이었던 모렐리는 급진파이자 소수파를 이끄는 당수에 불과했다. 당시 평의회 의원 대다수는 다수온건파, 즉 볼셰비키당에 속했다.
맨셰비키가 소수파 주제에 무력을 통해 평의회를 더럽힌 이후, 다수온건파, 즉 볼셰비키의 생존자들은 이들과 끝까지 싸워 진정한 소비에트를 되찾고자 했다.
지금 소비에트 파르티잔은 미하일 트레챠코프가 이끄는 파르티잔들을 의미했다
볼셰비키의 지도자는 세 명이었다.
모렐리의 대대적인 숙청 때 이반코프와 즐로빈은 붙잡혀 사형당했다. 하지만 트레챠코프는 외국―스웨덴―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고 이렇게 타수의 비밀 병기가 되어 있었다.
타수는 고려와 고려의 비호를 받는 유럽 국가로 나뉘었다. 원래의 역사부터 4국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고려와 협력했던 유럽국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모든 정치가 다 그러하듯, 유럽 국가들은 고려의 지배를 즐기면서도, 즐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는 고려와 아무리 가까운 사이의 국가라도 그랬다. 사실상 한 몸으로 봐야 하는 루밀 키치파닐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그러니 고려가 루밀 키치파닐을 진정한 1등급 우방국으로 간주하는 덴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오래도록 같이 산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데 국가 간의 국제정치관계가 마냥 일방적일 수는 없었다.
유럽 국가들이 전후 ‘유럽 연합’을 꿈꾸는 이유가 그러했다.
1차대전의 전훈 이후, 유럽 국가들은 사실상 모든 일들을 승전국 고려에 의해 간섭당했다.
고려는 원리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했고 사정을 봐줄지언정 무리한 요구를 하진 않았다. 그래도 간섭당하는 것 자체가 거북하기 마련이다.
유럽 국가들은 2차대전도 그런 결말로 귀결되는 것을 마냥 바라진 않았다.
이미 엄청난 양의 전쟁물자가 들어오고 있는 지금, 유럽 국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충분한 공로를 증명해야 했다.
일단 러시아 붕괴에 유럽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고려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을 수 있으리라.
“레지스탕스가 먼저 잉그리아를 확보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의 지원은 없던 일로 될 겁니다.”
“없던 일? 우리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대들 또한 협력 없이 소비에트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하지 않소? 그리고 전후에 뭐 소비에트의 땅을 옛 식민제국 시절마냥 잘라서 나눠 먹을 게요? 고려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텐데?”
“…….”
“당신네들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요. 이조라(잉그리아의 러시아 명칭)는 반드시 장악할 것이니, 오히려 당신들이 먼저 지원을 보낸다고 약속하시오.”
프랑스 외무장관 탈레랑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판을 주도적으로 설계한 당사자가 바로 그였다.
도이치의 젊은 대사 메테르니히도 프리드리히 3세와 무언가 귀엣말을 나누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탈리아 대사도 동의했다.
네덜란드 대사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4개국의 찬성으로, 타수 유럽 국가들은 트레챠코프의 파르티잔 지원을 시작했다.
때마침, 동부 굴라크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스탈린그라드가 자유군단이라는 배후의 공세로 연합군에게 함락당하니 세 부류의 저항조직이 마침내 소비에트에게 칼을 겨누었다.
적적(赤赤)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세 저항조직도 이내 서로의 존재를 간파했다.
이들은 몸이 달아올랐다. 트례차코프의 파르티잔과 뒤파이―마레샬주의자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볼셰비키와 반바뵈프적 멘셰비키는 여전히 원수지간이었다.
공동의 적 때문에 협력하는 처지지만 지금의 일이 끝난다면 다시 옛 악연을 꺼내 들 차례였다.
그리고 민족해방운동을 벌이는 자유군단은 두 공산주의 저항군 모두를 꺼림칙하게 여겼다. 그들은 빨갱이들이라면 학을 떼는 자들이었다. 자유군단은 전후에 세워질 그들의 조국을 위해서라도, 저 두 공산주의 저항군들보다 더 많은 공로를 세워야 했다.
그런 고로, 셋 모두 최대한 빠르게 모스크바를 장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모스크바를 차지해야 가장 많은 전과를 주장할 수 있게 되는 형국이었다.
연합국은 세 세력을 경쟁시키며 모스크바 진군 작전을 시작했다. 바뵈프의 최후가 선명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