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04화 (604/653)

604화 최후의 일인까지

습진균은 패배를 감추지 않기로 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되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패배를 감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습진균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금의 현 상황을 중화 인민에게 알리자고 생각했다.

때로는 진실이 가장 효과적인 무기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에 단 1푼의 거짓을 섞는다면 더더욱.

패배에 대한 희생양은 정해졌다. 저들은 대총통을 욕하고 중화의 우수함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무능력했던 비한족 원수 낭화신을 욕하는 것으로 이 울분을 해소할 것이었다. 의도했던 것처럼.

습진균도 낭화신을 쳐내는 것이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위대한 대의에는 희생이 따랐다. 군주나 지도자가 사적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되었다.

낭화신은 대총통의 관용으로 인해 목숨을 붙여주는 것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습진균이 생각하기엔, 중화는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앞으로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무엇으로 극복하느냐? 이런 질문이 나올 법했다.

습진균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진작부터 마련해 놓고 있었다.

더 많은 인민과, 더 견고한 인민의 의지.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습진균, 중화 4억 5천만 인민의 표상이자 영도자.

중화의 구세주는 그 잠재력을 오롯이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오직 그만이 중화를 구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철저한 믿음만이 지금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중화제8제국의 수도 무한에서 가장 큰 건물, 대중화인민회당(大中華人民會堂)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은 엄선된 민족사회주의 중화인민당 간부들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열성적인 습진균 지지자들이 남은 자리를 채웠다.

이들 대부분은 이번 연설 직전, 몇 가지 교육을 받았다. 어느 구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박수를 쳐야 하는지, 휘파람을 불어야 하는지. 동조하는 목소리와 호응하는 구절, 이런 사소한 것들에도 세밀한 지시사항이 있었다.

습진균은 옛 경사에서 자신과 인연이 있던 가극단의 간부들을 이번 연설에 동원하기까지 했다.

습진균은 인민회당의 귀빈실에서 연설문을 보고 또 보았다. 이 연설은 향후 중화제국이 어떻게 이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제시할 것이다. 몹시 중요했다.

이 방송은 곳곳에 있는 무전기를 통해 전 중화에 퍼질 것이다.

중화의 평범한 가정은 굉장히 못살고 비루해 무전기나 화상기가 민간에 거의 퍼지지 못했지만, 중화 정부는 예부터 중앙선전선동부를 통해 기본적 이념 전파체계를 구축했었다.

중앙선전선동부는 고려나 기타 다른 나라들의 협잡질을 막으면서, 중화제국에게 진실된 대총통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기구였다. 중앙선전선동부는 광장이나 방공호 등 주요한 모임 장소마다 무전기를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빙독 한 알을 삼킨 습진균이 마침내 인민회당의 연설대로 나아갔다.

― 와아아!

회당 내는 거대한 패배를 당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마치 열광적인 종교 집회를 보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은 연설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미 광신에 빠져 있었다. 습진균의 준비는 충분했다.

“위대한 중화 인민들이여!”

고함은 쩌렁쩌렁 울렸다. 확성기의 기술력도 진보했지만, 인민회당은 소리를 집중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다.

“우리는 거대한 고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대총통의 연설력은 중화를 세웠던 그때보다도 더 성장해 있었다.

“요령 전역의 전투는 한족 생활권 보장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전투였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곳에서 결정적 승리를 얻었다면, 우리가 바라는 영화로운 미래가 단숨에 우리에게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조선과 옥저는 대중화를 존숭하고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였을 것이며, 고려 또한 중화를 존중해 국제 사회에서 중화가 가질 책임을 인정할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길게 보았을 때, 우리 민족의 광영은 물론이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습진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 자신의 공격을 정당화했다.

“허나 다른 나라들은 열등하고 음흉한 민족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 사회에는 이미 광범위할 정도로 많은 협잡꾼들, 배신자들, 더러운 자들이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감히 이름조차 수식할 수 없는 더러운 핏줄의 노인네가 저지른 행동을, 같은 핏줄의 계집이 주제넘게도 고귀한 자를 유혹한 일을 압니다.

안타깝게도 고려 제국은 우리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고려 제국 또한 그 더러운 유목인들이 저지른 일로 굴종의 삼별초 역사가 시작되었고, 서벌 전까지 그 은원을 해소하지 못했음에도 그들은 다시금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더러운 계집이 황제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열등한 민족들은 그만큼이나 사악하고 사특합니다. 그들은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들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승자의 역사에 기생하여 자신들이 그런 문명을 이루어 낸 것마냥 떠들고 지껄입니다.”

그 열등한 민족들은 이제 청소되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머잖아 이 결과물을 본격적으로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아니었다.

“지난 일 년간, 요령 전역에서 우리는 위대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승리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용감한 중화 사내들은 한족생활권을 확보하기 위해 싸웠지만 부족했습니다. 지휘관들이, 더 나아가서 우리가 부족했습니다.

신의주 전선이나 회령부 전선, 기타 요령전구의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던 중화 사내들은 모두 용맹하게, 숭고하게 싸웠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적들은 입만 열면 거짓된 말을 흘려대지만, 우리만큼은 우리의 영웅들을 거룩히 여기고 그들에게 일절 회의감을 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그들의 행동, 그들의 희생은 실로 숭고했습니다.”

습진균은 요령전구의 식인 사건에 대해 보고받았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그들의 역사에서 식인이란 꽤 친밀한 일이기도 했고, 딱히 대단히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적들의 온갖 선전선동에 이용되어 아국을 뒤숭숭하게 할까 봐, 그게 문제였다.

“이런 역경이란 무릇 항상 영웅의 행보 앞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화 영웅들의 거룩한 희생에 유대감을, 연대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이룩한 초창기의 업적으로 말미암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느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마지막 희생에 무한한 조국애마저 느꼈습니다.

허나 상황은 심각합니다.

중화의 영웅들은 여전히 많고 강하지만, 우리의 의지는 나약해지고 있습니다.

민족사회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도, 천명을 짊어진 우리의 숙명과 민족성, 다가올 필연적이고 영광된 운명에 대해 의문을 품는 자들도 생겨났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말합니다. 지금 우리의 패배는 오롯이 그런 회의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일말의 회의감, 그 일말의 나약함이 균열을 초래해 거대한 둑을 터트렸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위해 다시 제방을 쌓아야만 하는 지경입니다.”

중화제국은 믿음으로 건설된 것이 맞았다.

습진균은 그러한 믿음에 훌륭하게 보답했다. 덕분에 중화는 십오 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엄청난 도약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반면 회의감은 그간의 도약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습진균은 이 구멍부터 막아야 했다.

“고될 것입니다. 다시금 돌을 짊어지고 황하와 장강의 물길을 틀어쥐어야 할 겁니다. 홍수와 가뭄을 막기 위해, 질서를 다시금 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린 고뇌할 시간도, 고통에 끙끙댈 시간도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단호히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민족과 우리 중화국의 찬란한 미래가 날아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자손들에게, 찬란한 미래 대신 비참한 고난을 도로 물려줄 것입니까?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무방합니다. 지금은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즉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적들은 이제 중화의 땅에 더러운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인민 여러분들께선, 지난 수백 년 동안 이 성스러운 대지를 더럽힌 침략자들로 인해 중화 인민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갔는지 충분히 아실 겁니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설령 모른다 해도, 중화제국은 수많은 책들을 이용해 가정에 ‘제대로 된 역사’를 전달했다. 글자를 모르는 이들도 필수적으로 집단정신교육에 참석해야 했다. 습진균은 심지어 간체자를 발명해 멍청한 중화인민을 계몽하기까지 했다.

“유목―멘셰비키부터 온갖 더러운 이민족들, 양이들, 동이들, 그들 모두가 이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에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 탐욕을 부렸습니다.

그 똑같은 행동이 다시금 되풀이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노인들이 많았다. 이 노인들은 습진균의 열성적인 지지자였다. 천지개벽한 조국의 모습에 나이도 잊고 감격스러운 울음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그들의 세월엔 그저 뽕나무밭, 혹은 무성한 풀숲이었던 곳이, 위대한 대총통의 시대에는 공장으로 바뀌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습진균은 중화의 구원자가 맞았다.

그리고 이들은 예전, 명말의 태평천국 때 그 사악한 외세들이 행한 끔찍한 짓거리의 희생자였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중화가 부유해지면 항상 파리들이 꼬이기 마련이었다. 그 파리들은 중화에 역병을 풀었고, 그들을 병들게 했다.

노인들은 이 사실을 증언할 수 있었다. 대총통의 말은 사실이다.

“진나라 시절부터 중화는 세계 최고의 국가였습니다. 그 후 들어선 한과 같은 수많은 황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허나 저들은 중화가 다시 위대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시기심과 질투 때문에, 우리가 다시금 천명을 얻고 세계만방에 찬란한 대중화의 빛을 뿌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속이 좁은 소인이며, 이웃이 잘되는 꼴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중화제국의 성장을 두려워합니까?

중화인들은 항상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들은 억울했다.

중화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중화가 무력을 동원한 것은 주제넘게 행동하는 번국을 징벌할 때, 혹은 미개하고 더러운 유목민들에게 법도를 가르칠 때밖에 없었다.

그것은 중화의 안위뿐만 아니라 세계의 안위를 위해서였기도 했다. 예맥한은 옛 주제를 잊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이 위기를 직시해야 합니다. 다시금 과거의 비참한 행동이 되풀이되어선 안 됩니다. 단호하고 과감하게,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인민의 단결만이 국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중화민족사회주의에 대한 무제한적인 결의와 지지만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당연한 소리였다. 인민회당에 있는 습진균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습진균은 손을 들어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렇기에 나는 대총통으로서 우리나라의 모든 역량을 끌어내려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단코 우리의 대적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위험성을 구태여 축소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강합니다. 더없이 강합니다. 고려 제국은 인류 문명에 기록된 국가 중 가장 강력한 국가이며,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로지 중화제국과 우리의 동맹국들의 참된 힘만이 이들의 야욕과 패권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의 기세를 찍어눌러, 그들을 다시금 저 먼바다의 대륙에 가두어 놓아야 중원은 비로소 평화와 번영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고려 제국, 저 가증스러운 대적자.

“고려 제국은 기나긴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을 기만했습니다.

세계 맹주라는 그들은 자신들 나라에 있는 자원을 아끼면서도 다른 나라의 자원을 착취했습니다.

실로 기만적이었습니다. 제국의 찬란한 경제는 모든 다른 나라들을 무역이라는 명분을 통해 착취하는 기형적 구조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제국은 그들의 패권, 원의 패권을 위해 모든 짓을 불사할 자들입니다.

그들은 도덕이라는 명분을 들고 있지만, 그 도덕은 적나라한 패권욕을 가려주는 장막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궁극적 사회는 모두의 광영이라는 허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국이 모든 다른 나라를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집어삼키려는 단극체제의 구축입니다.”

습진균의 말은 사실이다. 고려 제국이 이 세상에서 가장 관대했던 제국이라도, 패권국 특유의 모습이 있었다.

중화제국은 고려 제국보다 더 나은 지배국이 될 자신이 있었다. 더 깔끔하고 더 순수한.

건락 썩은 내가 나는 유럽 놈들도, 더럽고 야만적인 남북려 원주민들도 없는 중화제국.

모래바람에서 구차하게 살아가는 중동인들도, 인간 이하의 흑인들도 제 주제를 아는 올바른 나라.

오로지 우등하고 순수한 한족만 대우받으며 한족생활권에서 영화롭게 살아가는 패권국.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나의 축은 무너지기 쉽습니다. 어떠한 책상과 의자도 얇은 단 하나의 기둥에 서 있다면, 쓰러질 것입니다.

기둥은 많아야 합니다. 두 개, 세 개가 있어야 합니다. 중화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은 나머지 두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는 그렇게 세 패권국이 고르게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중화는 동아시아의 국제적 질서를 통제해야 하며, 다른 나라에 평화와 번영을 전파할 의무를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나약한 자들이 아니며, 강력하고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청소하고, 세계를 다시 가꿀 수 있습니다.”

― 옳소!

누군가 외쳤다. 습진균이 대답하듯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만, 우리는 우리의 힘을 모조리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영웅들이 했던 행동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미가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이 순간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충분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우린 여기서 더 나아질 수 있고,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더 많은 인민들이 민족사회주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여자도, 노인도, 어린아이도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 우리에게도 길이 있다!

사전의 계획대로 여인들이 화답했다.

인민전당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참석해 있었다.

“나는 그리하여 중화제국이 행동할 총체적 전쟁, 총력전의 태도를 지금부터 규정할 것입니다.”

습진균은 그 사람 하나하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우리의 희생은 어느 한 사람에게 과중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중화 사내와 여인이 고르게 분담할 것입니다. 소년도, 노인도 모두 해당됩니다. 중화인민에게서 어떠한 이탈자도 발생해서는 아니 됩니다.

한 사람이 빠진다면,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지극히 전체주의적이고 집단희생적인 태도만이 조국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도량이 작으면 군자가 아니고(量小非君子),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닙니다(無毒不丈夫).

그렇기에 인민 여러분들은 이웃에 있는 소인을 잡아야 합니다. 열 사람의 군자보다 한 사람의 소인이 문제가 됩니다. 이들은 사회 분위기를 해치며 우리의 귓가에 패배를 속삭일 것입니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잡아내어야 합니다.”

감시하라, 누가 게으름을 부리는지를. 그들에게 증오와 원망을 쏟아라.

가까운 희생양이 있다면, 증오는 총통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모든 사치품과 향락적 태도를 금기합니다. 물론 이런 조치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침내 우리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만세무궁한 영광이 우리에게 스스로 찾아와 복락을 선사해 줄 겁니다. 그때 우리 인민 모두가 맛있는 오향장육과 향기로운 죽엽청을 들며 지나간 고생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고픔을 느끼는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착각일 터였다.

“셋째로 모든 공장과 모든 자원은 공유될 것입니다. 이는 멘셰비키의 공산주의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모든 평등을 강요하지만, 우리는 평등이 허상임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조국에 더 많은 기여를 한 자들에게 더 많은 것들이 돌아가야 합니다.

더 열성적이고, 더 민족사회주의적인 영웅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은 오로지 소인일 뿐이고, 처단되어야 마땅합니다.”

―소인을 처단하라!

이는 첫 번째 태도와 관련이 있기도 했다.

“넷째로 모든 사람들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관리들은 더 늦게까지 일해야 하며, 남편과 자식을 전장에 보낸 여염집 부녀자들도 공장에 나가 일해야 할 것입니다. 복무할 수 없는 노인과 소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계집과 사내의 구분은 필요치 않습니다. 나이도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실제로 많은 여인들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음에도, 전통적이고 고리타분한, 편협한 생각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녀들도 조금 해진 옷을 입으며 공장을 돌릴 수 있고,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공장은 위험한 곳이 아닙니다. 많은 곳들이 단순한 반복 노동을 필요로 하고, 이는 여인의 손길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여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숭고한 희생을 감내할 어미의 모습이니, 우리 아름다운 중화 여인들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전차와 총폭탄을 만들 것입니다.

노인들은 명석한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조국에 헌신할 기회를 얻고 싶어 합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중화에 복무할 수 있습니다.

소년들도 마찬가집니다. 모든 소년들의 소년선봉대화는 예전부터 실행되고 있는 정책이지만, 이제는 그보다도 조금 더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민족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소년선봉대원들은 그들의 형과 아버지가 조국에게 봉사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또한 실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습진균은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태도들을 몇 가지 더 줄줄이 더 나열했다.

모두가 금욕적이고, 통제적인 삶을 강요하는 조항들이었다.

사실 이미 중화인민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금욕적인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진균은 이제는 중화민국의 특권계층에게도 헌신을 강요했다. 그들을 끌어내리는 것은 밑의 사람들에게도 만족감을 줄 수 있었다.

불만이야 나올 것이다. 허나 어쩔 수 없었다. 더 큰 대의를 위해 사소한 불평들은 집어넣을 때다.

“이 조치는 어떤 사람들에게 불만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로, 모두가 편할 수 없습니다. 역으로 모두는 지금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 우리는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은 숭고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의 여건을 다 고려할 수 없기에 누군가 특별히 더 고통스럽다면, 그 사람은 중화제국을 위해 조금 더 봉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우리가 다시 태평성대가 된다면 그 희생은 보답받을 것입니다.”

대신 약속을 해 주어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의 모습을. 공허한 상상력을 자극해야 했다.

“많은 중화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상기한 조치들 이외에도 더 급진적이며, 더 철저하고 완벽한 중화인민표상을 위해 스스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나오리라 나는 감히 예상합니다.”

여러분들이 감히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습진균이 물었다.

“그렇기에 나는 고려가, 세계 여러 나라들이 감히 중화에 대해 알지도 못하며 지껄이는 모든 말이 다 허황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습진균은 사람들 무의식에 서린 의심을 지워냈다. 그리고 비어버린 의심 대신 확신을, 결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묻겠소이다. 여러분들은 다가올 필연적 승리에 대해 의심합니까?”

선전선동부의 무전기에 퍼지는 소리는 군대와 공장 등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 모조리 퍼져 나갔다. 대답은 온 중화의 땅에서 터져나왔다.

―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습 대총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야 했다. 대총통은 빛과 희망과 동의어였으며 민족의 광영 그 자체의 현신이었다. 이에 의심을 품는 자는 오로지 배신자일 뿐이었다.

“묻겠소이다. 여러분들은 중화의 방패와 성(干城)과 같은 단단한 태도로 조국과 우리 생활권을 감히 노리는 적들의 화살을 막아낼 준비가 되었습니까?”

― 준비가 되었습니다!

중화제국은 중원에 군림했던 과거의 황조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옛 황조들은 이러한 인민의 의지가 없었다. 반면 중화제국은 이 인민의 단결된 결의로 앞으로 다가올 전투를 기다릴 것이며 승리할 것이었다.

“중화제국 인민들이여, 또다시 묻겠소이다.

총력전(總力戰)을 원합니까? 역사에 존재했던, 그리고 지금 존재하고 있는 어떤 나라가 결의했던 의지보다도 더 급진적인, 극단적인 총력전을 원합니까?”

― 원합니다! 실로 원합니다!

원한다, 더할 나위 없이. 소인들은 침묵했다. 오로지 군자들만이 호응했다.

이렇게 군자의 수가 많으니 경사로다, 실로 경사로다.

모두의 뜻이 일치할 때 사람들은 쾌감을 느꼈다.

“그러니 위대한 인민들이여, 나를 온전히,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나를 위해, 이 제국을 위해, 다가올 영광을 위해 지금 당장의 발이 부르트더라도 고난의 행군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발을 굴렀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이 요새화된 회당이 흔들렸다.

― 명한다면, 지옥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죽을 기세로 임한다면 못 이룰 것은 없으니, 중화여 영원하리라!”

화산이 폭발한 듯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 기립하시오, 모두 기립하시오! 대총통 각하의 말을 듣는 당신들 모두!

사억 삼천만 모두가 기립했다. 요령전구에 죽어 나자빠진 칠백만 시신들도 대총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일어났을 것이다.

그만큼 대총통의 부름은 성스러웠다.

대총통의 성스러운 명령에 중화제국은 다시금 결의했다.

― 최후의 일인까지 대총통의 명령에 따르겠나이다.

여기 인민의 기세가 폭풍처럼 일어났으니, 세계를 휩쓸 것이외다.

중화 만세, 대총통 각하 만세!

* * *

녹음된 연설과 연설 내용의 통역을 듣고 있던 태평양사령관 이선 원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중화제국 전역에 퍼져 나가는 방송이니, 감청하는 고려군 통신대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렸다.

나폴레오네와 작별 인사를 하며 나누었던 대화는 완전히 틀렸다. 중화의 인해는 이제 시작이었다. 대체 저들이 어디까지 가려는지, 이선은 그 끝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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