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03화 (603/653)

603화 늙은 개

“앉아.”

마른침을 삼킨 낭화신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습진균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흘깃 보았다.

[황하 문명]

습진균의 치세에서 중화제국은 기술적, 산업적으로만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와 민족의식에서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방청민이 지은 저 책은 그 결과물이리라.

워낙 걸작이라 낭화신도 읽어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방청민은 고려제국과 다른 세계의 학계에서 쓰이는 ‘문명의 요람’의 개념 대신 ‘세계 4대 문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했다.

의도는 한 가지였다. 중화의 황하 문명에 대한 선동이 필요했기에 그랬다.

방청민은 중화의 황하 문명이 다른 문명들보다 더욱 뛰어나다 주장했다.

황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인더스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오래되기도 하면서도, 지금 이렇게 남아있는 4대 문명 중 가장 강하고 아름다우니.

또한 방청민은 4대문명설을 지지하며 은근슬쩍 다른 대륙의 문명을 까내렸다.

그는 유럽은 그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파생된 아류 문명일 뿐이라 주장했다.

또한, 예맥한계의 도래 이전 고려 대륙 내에 있던 원시 문명권―마야와 타완틴수유, 아즈텍과 북려 원주민 문화―을 모조리 싸잡아 미개한 원시문명이라 말했다.

그리고 방청민은 마지막으로 현 범세계패권을 쥐고 있는 예맥한계의 문명적 근원이 황하라고 하며, 한족과 예맥한이 문명적 친척지간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리고 황하를 기반으로 삼았던 중화가 문명적 측면에서 ‘형’이었고, 홍산 문화를 기반으로 한 동생에게 이를 가르쳐 주었다는 말까지.

몇 가지 사실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중화의 역사학은 그 사실에 거짓을 교묘히 섞어 다분히 민족적이고 왜곡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임이 틀림없었다.

습진균은 한족의 우수성을 증명할 때 역사학을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연구에 큰 자금을 투자했다.

그뿐이랴, 역사와 문학, 철학, 인류학 그리고 기타 모든 인문계 순수학문들은 중화의 우수함을 선전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 바람직했다. 객관적 진실성은 이공계에서나 쓰일 뿐 별 의미가 없었다. 사실 생물학과 우생학 등 중화의 이공계적 학문들마저도 진실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세계의 학계들은 이를 비판했다. 문명이 어디에서 났든, 실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논리가 다른 이들을 무력으로 짓밟아 군림하는 논리로 비약되면 안 되었다.

게다가 문명의 요람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요람일 뿐이며, 인류 문명의 단계가 성인이 된 지금도 갓난아기 때 쓰던 요람을 껴안고 집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말까지도 나왔다.

허나 고려가 먼 옛날에 진작 선민당식 논리를 혁파했던 것과 달리, 중화는 이 자긍심을 버릴 수 없었다. 단 하나의 사소한 자긍심까지 모조리 긁어모아야 했다.

그렇기에 [황하 문명]은 모든 중화의 가정집에 한 권씩 비치되는 ‘중화제국 필수 독서 목록’에 들어가 있는 책들 중 하나였다.

대총통은 책을 덮었다.

“낭 원수. 이 책을 봤나?”

“보았습니다.”

“그럼 우리가 왜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어야만 하는지, 중화가 왜 중화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대총통은 천천히 일어서서 책을 책장에 꽂았다. 책장엔 정말로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 중화 학자들이 쓴 책도, 다른 나라의 학자들이 쓴 책들도 있었다. 습진균은 대단한 독서광이었고, 많은 나라의 책들을 구해 손수 읽곤 했다.

뜻을 세운 이후부턴 틈틈히 공부를 열심히 한 까닭에 언어적 능력도 빼어나 고려어 원서 등을 읽는 것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내가 뭘 어디까지 더 해주어야 하나?”

대총통은 책을 꽂은 이후 낭화신을 노려보았다.

옛 부하였으며 친우였고, 이제는 상관이 된 진균의 사나운 눈길을 본 화신이 고개를 떨구었다. 오랜만에 볼수록 그들 사이는 점차 멀어져갔다.

“내가 어디까지 이 민족을 홀로 이끌어야 하느냐 이 말이야.”

습진균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화신은 할 말이 없었다.

방법이 어쨌든 조국을 이렇게 번영시켜 온 대총통의 능력은 모든 이가 다 알았다. 낭화신은 그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초창기 위태롭던 대총통의 치세가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해졌고 광신적 추종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대총통은 자신의 지기 앞에서 비로소 감정을 토해내었다.

“나는 매번 달리려고 해. 날개를 펼치고 날려고 한다. 허나 매일매일 똥만 싸기 바쁜 너희들은 내 발을 붙잡기만 하고 있지!”

습진균이 그제서야 분노를 토해 내었다.

“개성 점령은 명령이었다!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고려는 절대로 협상장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밍기적거렸나?”

전선에서 직접 신의주 전투를 본 입장에서, 낭화신은 대총통의 발언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다.

“허나 각하, 적들은 더 강했고, 더 많았습니다. 전차와 전투기, 군함….”

아차, 낭화신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마지막 말은 실수였다. 탐라 공격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지적으로 비칠 수 있었다.

사실, 지금의 전황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행동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하지만 습진균은 낭화신의 말을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 것 같지가 않았다.

혹은 그럴 필요도 없었든가.

“네놈은 위대한 중화 인민의 수는 적들보다 항상 많았다는 사실을 쏙 빼놓고 말을 하는구나.

위대한 중화 인민의 의지도 항상 저들보다 견고했단 말이다.

적들이 전차와 장갑차를 타고 온다면, 위대한 중화 사내가 단박에 폭뢰창을 내질러 적을 부수면 된다.

방법이야 항상 있었어! 다만 네놈들에겐 그럴 만한 투지가 없었겠지! 그저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었을 테니까!”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연합군에게 피해를 입힌 것도, 죽어가면서까지 저항을 한 용감한 중화 군인들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지휘관으로서는 마지막 발악을 상수로 놓으면 안 되었다. 설령 그게 효험을 발휘해도, 그것을 상정하고 작전을 짜면 안 되었다.

허나, 낭화신은 더 이상 반론을 할 수가 없었다. 중화군 장군들이 낭화신에게 그러지 못했던 것 이상으로, 낭화신은 감히 대총통의 말에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습진균은 책상에 팔을 대고 상체를 지지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요령 평야는 조선의 곡창지대야. 또 석유도 나는 자원 지대란 말이다. 그곳을 빼앗긴 순간 우리는 미래가 없다.”

중화 내륙에도 유전은 있었다.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화의 기술력으로 제대로 파먹을 수 있는 곳은 아직 소수에 불과했다.

웃기게도 최고(最古)의 시추 기술은 중원의 사천지역에 존재했다. 고려 학계도 이를 인정하는 바였다. 사천지방에선 암염 추출을 위해 삼백 미터가 넘는 땅을 뚫어내고 대나무로 고정한 경우도 있었다.

허나 중요한 것은 현재였지, 과거가 아니었다.

현재 중화제8제국은 산동성의 유전과 섬서성, 사천성의 유전 등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산출량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허나 수요에 비해 공급은 부족했다. 게다가 내륙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동유전은 해안가와 가까워, 개전 이후로는 고려의 폭격기 운용으로 인해 거의 채취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중화는 다른 길을 생각해야 했다. 남방으로 뻗어가는 것도, 그 유명한 조선의 요하유전이나 옥저가 최근에 발견한 천호유전(대경유전)을 확보해야 자원이 모자라지 않았다.

적어도 그곳을 조선이나 옥저가 먹지 못하게끔 해야 한다는 전략적 목표도 있었다.

낭화신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지도에 시선을 내린 습진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진사당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이후 습진균에겐 전부터 얼핏 보였던 광기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물론 그 광기, 혹은 지도력이 중화제국을 지금의 반석에 올린 것이 분명했지만, 대신 습진균의 냉철한 이성이라는 본래의 재능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부정하긴 싫겠지.’

습진균은 자신이 일으킨 탐라 공습과 개성 공격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인정하지 못했다.

그로서도 폭침되었다 보고된 적의 군함들은 절반 이상이 다시 끄집어내어 재활용되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적 군함들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개성에 참혹한 공격을 했더니, 제국인들이 두려움에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중화 놈들을 전부 쳐 죽이자고 모병소로 달려가 문을 두드릴 줄도 몰랐을 것이다.

오히려 그의 행동이 ‘위대한 고립’이라는 말을 당분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 크나큰 실책이 되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전쟁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대총통이 새워낸 중화는 대총통의 판단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다.

중화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습진균은 지도에서 눈을 떼고 낭화신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유례없이 차가웠다.

“위대한 한족, 중화인은 패배해서는 안 된다. 국지적인 패배는 있을 수 있지만, 전략적 패배는 존재해선 안 된다. 우리는 승리만을 위해 태어난 민족이니.”

그런데 졌는 걸 어쩌란 말인가. 낭화신은 멀뚱히 대총통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기에 이번 전쟁은 그대 때문에 졌다. 온전히, 그대의 잘못으로 인해 패배한 것이다. 한족은 열심히 싸웠고, 초창기의 전과를 거두었지만, 그대가 무능했기에, 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기에 수많은 한족이 죽어 자빠진 것이다.”

“…….”

“위대한 한족 지휘관이 원수가 되었었다면 이런 실패도 없었겠지. 그대는 옥저인의 핏줄이 절반 흐르고 있으니, 그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낭화신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로소 습진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 비한족 지휘관을 원수로 올린 것부터 다름 아닌 습진균의 결정이 아닌가.

허나 그 사실은 어느샌가 사라졌다. 모든 잘못, 패배의 원흉은 이제 낭화신 자신이 되었다.

자신의 실패는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맞았다. 그것이 옳았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지위가 박탈당하는 것까진 예상하고 있었다.

허나, 이 패배에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혈통이 문제 될 줄은 몰랐다. 이건,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낭화신은 그제서야 등에 얼음물이 끼얹어진 것 같은 서늘함을 느꼈다. 원수로 자신을 임명한 것이 이러기 위해서였나?

패배할 경우에 대비한 보험? 희생양? 습진균은 냉철한 광인이었다. 그는 이번 요령전역에서 승리하리라 믿고 있었지만, 항상 대비책을 세우는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은 그 대비책이었던 것이다.

주군의 그러한 주도면밀함은, 봉신으로서 환영해 마땅한 일이지만 지금 낭화신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입만 열면 비통함에 찬 신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낭화신은 중화제국의 개국공신이다. 원로였기도 했다. 지금도 중화제국 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으며 중화당 내에서도 명실공히 이인자로 꼽히기도 했다.

먼 과거의 사적인 인연을 차치하고서도, 낭화신은 습진균의 신뢰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경사로 같이 상경한 이후부터 줄곧 그랬다.

실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개와 말의 수고로움이 따로 없었다.

국민당 시절, 그는 황전겸의 개라 불렸지만 사실 습진균의 개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습진균이 뭘 하라고 하면, 반드시 해내었고, 누굴 죽이라고 하면 죽였다. 낭화신은 그런 방면엔 실로 유능하며 명석했다.

그렇게 중화제국의 건국 지분 중 이 할, 아니 삼 할은 그의 몫이라고 주장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거였다면 실로 번왕에 봉해질 정도의 공이었던 셈이다.

습진균도 그런 낭화신을 아꼈다. 그가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은 낭화신이 거의 유일했다. 만취할 때까지 옛 국공내전 시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사람도 낭화신이 유일했다. 인간적 측면에서, 습진균과 낭화신은 의형제와 같았다.

하지만 습진균은 어느 순간부터 그와 거리를 벌렸다.

창업주가 공신을 숙청하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긴 했다.

그렇기에 낭화신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최대한 억누르며 몸조심했다. 그도 부정부패를 저질렀지만, 다른 원로들에 비해 그렇게 큰 수준도 아니었다. 낭화신의 천성적인 사적 욕망을 고려해 볼 때 문제 되지 않을 만큼만 해 먹기 위해 얼마나 절제력을 발휘했는지, 다른 이들은 몰랐을 것이다.

또 그는 빠르게 잃어버리고 있는 신뢰를 다시 쌓기 위해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2인자가 계속 굴종하니, 중화당 내에서 습진균은 절대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허나 습진균은 2인자의 존재마저도 사라지길 원했던 것 같았다.

습진균은 일단 요령전구의 원수 자리에 그를 임명하면서 권력의 핵심인 선봉대에서 그를 내쫓았다.

그것도 모자라 작전 계획조차 간섭당했다. 새로운 친위대장 모경록 대교가 작전 회의 내내 딴지를 건 것도 대총통의 명령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전이 실패할 경우에는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이렇게 희생당할 예정이었다.

자신의 존재란 딱 이 정도 수준이었다.

사적인 친분이나 그간의 공헌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절반의 옥저인 혈통. 그 낙인이 비로소 제국 이인자의 머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 유구한 계책이야말로 습진균이 가진 장점일 터. 허나 그 칼날이 비로소 개에게 닿자, 개는 비로소 현실을 깨달았다.

“가… 각하.”

어쩌면 요령전역 공세 이전에도 대총통은 실패를 대비해 이런 안배를 두고 있었을지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낭화신은 모골이 송연해졌으며 등에 식은땀이 났다.

“불만이 있는가?”

품속에 있던 권총 한 자루는 대총통을 면담하기 직전 친위대 보안부에 제출해 없었지만 그럼에도 낭화신은 군인이었다. 두 손으로 사람을 죽여본 적도 수차례였다. 예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신체적으로 엄청나게 노쇠한 것도 아니었다.

허나 화신은 어떻게 저항할 수 없었다.

이렇게 유구한 세월 동안 길들여졌던 개는 감히 주인을 물 수가 없었다.

“나가라. 전 원수로서, 중화제국의 원로이자 개국공신으로서 처형은 면해주겠다.”

대총통의 눈길은 이제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 속에서 과거의 인연은 모조리 사라졌다. 낭화신은 이제 그의 패 중 하나에 불과했다. 거대한 실패 국면에서, 패배를 포장하기 위핸 패.

그렇게 늙은 개는 엎드리다시피 비굴하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 모양이다.

이제 보니 장교들도, 심지어 병사들도 그에게 경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으로 늙은 개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 시선이 패장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다른 패장인 중화군 상장 장온계가 대총통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면서 다른 친위대들과 평범히 말을 나누는 것을 보았을 때, 화신은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한족 원수,

한족보다 열등한 예맥한인. 배후로부터의 협잡질.

패배의 원흉.

그 모든 굴레를 짊어지고 늙은 개는 초라하게 퇴장했다.

대총통 관저를 나서니, 삭막한 도시가 늙은 개를 반겼다.

낭화신에게는 이제 원수로서 제공받는 기초적인 대우도 전혀 없었다.

기사 대신 공안이 그를 태워 작고 초라하며,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관저로 압송했다. 그래도 습진균의 마지막 배려인지, 아내와 아들, 딸이 그를 반겼다.

아! 사분의 일의 비한족 열등인들.

낭화신은 울면서 그들을 끌어안았다.

그제서야 그는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누굴 위해 봉사했는지, 자신이 어떤 괴물을 만들었는지 깨달았다.

자신 때문에 대체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게 되었는가.

그는 관저에서 전전반측하며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늦었다. 돌이킬 순 없다. 공안들은 사방에 있었고, 이 패배의 원흉을 감시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는 잘못을 수습할 기회조차 없었다.

‘아니야, 방법은 항상 있었다.’

중화제국을 세운 낭화신이다. 소싯적엔 사람들이 그를 젊고 잘생긴 제갈량에 빗대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맨주먹으로 이 나라를 세워냈으니, 지금 다시 맨주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무언가 있을 것이었다.

늙은 개의 눈빛이 새파랗게 타올랐다.

고백하자면 굉장히 탐욕적이고 권력 추구적인 낭화신의 성정에 있어,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을 수습하고 싶다는 감정도 썩 솔직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심지어 바닥을 기는 벌레조차도 은원을 아는 법인데.

늙은 개는 그렇게 자신을 버린 주인과, 그 주인이 사는 이 거대한 도시를 증오에 찬 채 바라보았다.

[작가의 말]

북송유전 : 다칭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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