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화 무한
빙성 작전이 끝난 개천 531년 6월.
연합군은 인류사에서 가장 거대했던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내며, 요령지역을 완전히 수복했다.
조선과 옥저는 전쟁 전의 영토를 거의 되찾았다.
아직 봉명관만큼은 아직 중화의 손아귀에 있었지만, 추후 재개될 공세에서 최전선이 될 만큼 언제든지 탈환할 수 있었다.
중화령 몽골도 이제는 해방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불길하게도 그곳에 살고있는 몽골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조선이나 옥저로 피난 온 몽골 난민들은 앞으로 고향을 밟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전과도 대단했다.
빙성 작전 마지막 시점, 지금까지 동원된 연합군의 병력은 팔백만 이상으로 집계되었다.
연합군의 손실은 백삼십만 이상이었다. 이중 조선군이 초창기의 열세와 신의주 등의 격전으로 인해 오십팔만에 달하는 제일 큰 피해를 입었고, 제일 많은 병력을 밀어 넣은 고려군이 삼십삼만, 옥저군이 삼십만, 백제군과 다른 국가들이 십만 정도의 인적 피해를 입었다.
중화군의 군세는 기존 요령전구 천만에, 본토에서 새로 징집되어 영원 공격에 합류한 군사까지 합치면 거의 천삼백만에 육박한다고 추정되었다.
허나 결국 요령전구 천만의 병력 중 중화 본토에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던 병력은 불과 이백만 정도였다. 이마저도 탄저 공격이 없었다면 생존을 장담하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나머지는 전사하거나 아사하거나 병사하거나 실종되었거나, 혹은 운이 좋다면 포로로 잡혔다.
백만에 육박했던 중화군 포로 중 일부는 그들의 조국이 행한 탄저 공격을 받고 끔찍하게 죽었지만, 그래도 7할이 넘는 숫자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단 요령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빙독 중독 치료를 받았다.
개전 일 년 차가 갓 넘는 시점에서, 벌써 중화는 팔백만에 이르는 막대한 병력을 손실한 것이었다.
잠깐의 승리는 공허했으며 그보다 더 뼈아픈 손해가 뒤따랐다.
아무리 중화라도 이 엄청난 손실에 휘청이지 않으면 나라가 아니었다.
허나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나?”
태평양사령부, 노년의 원수와 젊은 장군이 개성 시내를 걸었다.
“단번에 그만큼의 병력을 다시 뽑을 순 없을 겁니다. 적의 본토 병력은 살아 돌아간 두 집단군 규모와 새로 징집한 세 집단군, 기존에 해안을 방어하던 두 집단군 규모로 현 연합군과 비슷합니다. 인해전술은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겠지.”
“이제 탄저가 문제가 될 겁니다.”
나폴레오네도 고개를 저었다. 빙성 작전의 마무리가 아직도 신경 쓰였다. 그놈의 탄저만 아니었다면 살아 돌아가는 놈들이 없었을 텐데, 그는 아쉬움의 탄식을 삼켰다.
전과 문제가 아니었다. 유능한 적장들이 살아간 것이 문제였다. 그중 몇몇은 나폴레오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중화 또한 인구가 많으니 그런 군계일학 같은 장군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탄저 약독화 예방접종에 거부감을 느끼는 병사들이 많습니다. 부작용이 그만큼 심각합니다.”
“의무부에서 최대한 부작용이 제거된 비활성화 예방접종을 만들고 있다고 하네.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부턴 일선 병사들 위주로 접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야.”
“설령 의무부에서 그렇게 일정을 맞춰준다고 하더라도 비활성화 예방접종은 몇 차례나 더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부작용은 확실히 줄어드니까 감수해야 하겠지.”
생화학 병기란 참 대단한 병기였다. 나폴레오네는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이 쓰는 병기가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보여주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중화제국은 앞으로 생화학 병기를 더 자주 쓸 겁니다.”
저들이 요령전구에서 탄저를 제대로 쓰지 못한 이유는 보급이 말라붙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탄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요령전구에서 한 번 효험을 본 중화군은 앞으로의 전투에서 탄저를 더욱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봉명관 너머로 진군하면 진군할수록 더더욱.
더 자주 쓴다면, 더 잘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저들 땅이라도 오염 문제는 부수적 피해라고 생각할 놈들이야.”
노년의 원수도 미간을 꾹꾹 눌렀다.
고려제국이 확실히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중화제국이 안 쓸 리가 있겠는가. 민간의 부수적 피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약독화 자체의 개념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으니, 중화제국도 약독화 예방접종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중화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단시간 내에 그들 전부를 접종시킬 수 있겠는가.
발전 중이라고는 하나, 아직 중화제국의 산업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고려 정도가 되어야 일선 부대에게 이렇게 예방접종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렇게 만들어진 예방접종은 가장 먼저 군인들에게 돌아갈 것이 뻔했다. 민간인들은 안중에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고려는 중화제국의 생물학 무기가 탄저만 있을 거라고 단정 짓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두 명은 마침내 작별 인사를 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령관님. 그간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나야말로 영광이었네. 고생 많았어.”
이선은 나폴레오네의 경례를 받는 대신 악수를 청했다.
나보가 얼른 내민 손을 잡았다.
그는 작전계획국장에서 물러났다.
이제는 참모가 아닌 현장 지휘관으로 부임할 때였다.
요령의 고려군도 이제는 새롭게 재편성 중이었고, 나보는 봉명관을 공격할 군단장 보직에 임명될 예정이었다.
임시계급이라도 벌써 정장을 달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이었지만 정작 나보는 아쉬움을 얼굴에서 지우지 못했다.
이제 빙성 작전과 같은 고려군 최고 군사계획을 직접 만지작거릴 수 없게 되었다.
“자네가 입안한 해성 작전은 자네가 추천한 후임들이 잘해줄 걸세. 그대도 겨우 정장에서 머물고 싶진 않을 것 아닌가?”
삼성장군의 앞에 ‘겨우’라는 말이 붙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이선은 부하의 야망이 삼성장군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나보는 서둘러 원수 계급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어들이곤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해성 작전은 빙성 작전과는 다를 것이었다.
이제부터 연합군은 적들의 땅에서 싸우는 입장이다.
똥개도 제집 앞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니, 빙성 작전만큼이나 압도적인 전황이 일어날지는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나폴레오네는 해성 작전을 입안하며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최고의 자원들을 후임 참모단에 추천했다.
안장우와 박희준, 모르티에 등은 나보 자신만큼은 아니더라도 최고의 자원들이니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선도 나름대로 부하에 대한 배려를 해 주었다.
“개편된 1집단군은 민 부원수(副元帥)가 맡을 거야. 그 친구는 합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이니, 잘해보라고.”
1차 파병 때 신설된 부원수 계급은 원수와 대장의 사이에 있었다. 몇 개의 야전군 대장들을 지휘해야 하는 집단군사령관들이 이 계급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나보도 이선 원수의 직속 휘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전체적인 대전략이야 이선이 나보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반대일 터였다.
빙성 작전은 나폴레오네가 대부분 설계했었다.
다만 나보는 자신같은 괴짜도 포용한 이선의 도량에 감명을 받았다. 그도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잘 알았다. 자만심에 가까운 자신감이 상관이나 동기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알았다.
물론, 근거가 있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허나 과거와 달리 현대전은 천재 한 명이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보 또한 빙성 작전을 주도하며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수많은 지휘관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쓰는지, 동기를 어떻게 잘 부여해야 하는지와 같은 인적 관리의 영역 또한 최고 지휘관의 큰 덕목 중 하나였다.
그런 면에서 이선 원수는 대단히 훌륭한 상관이었다.
‘상관 복이 좋구만.’
독소에 피부가 뒤집어진 옛 개성주둔군 사령관이 마침내 전역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나폴레오네는 새 부대에 부임하기 전 군병원에 들려 옛 상관도 잠깐 뵙고 가리라 마음먹으며 발을 놀렸다.
* * *
고려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중화제국은 본격적으로 천도 계획을 수립했다.
손오시절의 말릉과 건업에서 시작하여 진과 송, 제, 양 등을 거쳐 육조시대 동안 한족 6왕조의 도읍이었던 경사는 명대를 거쳐 국민당 시절의 중화민국까지 수도로 기능했다.
몇 대의 나라가 도읍을 할 수 있었을만큼 부족함 없는 위치와 지형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중화제국은 수도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바다와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물론 상해나 영파 같은 항구도시들보다야 내륙에 들어가 있었지만, 여전히 바다 위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고려군 함재기들의 사정권에 있었다.
또 수량이 많고 폭이 넓은 장강 하류도 생각해야 했다.
장강은 회수나 황하같은 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중화는 진지하게 이 강 하류에 고려 해군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기뢰를 하구에 깔아두긴 했지만, 하구만 지나면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수운으로 운용하는 강에 전부 기뢰를 까는 짓은 스스로의 동맥을 압박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습진균은 국가개발8개년 계획을 수립할 때, 무창(武昌)을 중화제국의 차기 수도로 낙점하고 개발했다.
무창도 장강의 수운을 누릴 수 있으며, 철도를 통해 중화제국 사방으로 뻗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륙이라 해상세력들의 공격에서 굉장히 안전했다.
또 근처의 환경도 괜찮았다. 호북(후베이)과 호남(후난)은 이곳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명나라 시절부터 유명해졌다. 호남과 호북에 풍년이 들면 명나라 전역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속담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마침내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습진균은 무창과 근처의 한구(漢口), 한양(漢陽) 세 곳을 합쳐 무한(武漢, 우한)이라 명명하고는 중화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습진균의 영도 아래, 무한은 ‘대중화제국과 한족생활권 하의 세계수도’가 될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무한은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였다.
대전쟁을 위해 많은 도시 설계자들이 밤낮없이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무창은 유서 깊은 도시라 구시가지가 존재하긴 했다. 허나 습진균은 무창 구시가지를 대부분 허물어뜨리고 다시 지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창은 옛 태평천국 운동 때의 대학살로 그 인구가 크게 줄은 곳이었다.
이후 중화민국의 내전에서도 계속 격전지가 되었으니, 도시의 원 규모에 비해 건물들이 별로 없었고, 재개발에 대한 저항도 크지 않았다. 저항을 할 수 있을진 몰라도, 무한의 계획개발에 대한 민심 자체가 나쁘진 않았다는 것이다.
습진균은 무한을 철근강회를 이용해 철저히 요새화했다. 대총통관저와 정부 건물, 군부, 의회 등의 핵심 건물은 효율성과 방어의 측면에서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군사기지와 방공망도 그랬다. 개전 이후 고려의 전투기 전력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아무리 그 전투기라도 이 요새화된 방공망을 단번에 무력화시킬 순 없을 것이었다.
무한 근처의 대별산맥에 자리한 수많은 공장들도 산맥의 지형을 이용해 단단히 요새화되었다.
‘과연 중화와 세계의 수도가 될 곳이구나…!’
요령전구에 파견되었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장군들은 그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그들은 하루하루 경천동지할 정도로 바뀌고 있는 무한의 모습을 체감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이들은 대총통이 건설하고 있는 장엄한 전쟁수도의 압도적 위엄에 몸을 떨었다.
그야말로 전쟁을 위한 도시가 아니던가.
완성된다면 심지어 세계 제일의 정치도시, 고려제국의 창양마저도 이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창양 또한 아주 먼 옛날, 그들의 태조시절부터 계획도시로 시작되었다.
이후 가면시중 내내 도시 개발 계획이 큰 틀에서 바뀌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거대도시가 되어가면서도 난개발이니 뭐니 하는 문제가 확연히 드물었다.
하지만 창양은 미적 감각을 위해 건물들의 외관을 신경 썼고 시민들의 편의성을 위해 녹지를 조성했으며 환경과 교통 문제로 여러 가지 규제를 하고 있는 탓에 군사적으로는 썩 효율적이진 않았다.
반면 무한은 미적 감각이나 녹지, 환경 등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매우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였기도 했다.
사방이 칙칙한 회색빛의 철근강회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군인들의 눈에는 그저 장엄하기만 할 뿐이었다.
역시 대총통의 능력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한족의 무궁한 영광을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낭 원수와 살아남아 귀환한 장군들은 위엄차게 바뀌는 수도의 모습과 대총통에게 추궁을 당하러 가는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이 대조되었는지 몸을 떨었다.
“…….”
허나 정작 패장들을 맞이하는 습진균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낭 원수는 보고를 하면서도 대총통과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긴장했다.
하지만 대총통은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그저 손을 휘저어 축객령을 내릴 뿐이었다.
보고를 끝낸 이들이 우수수 빠져나갔다.
나간 장군 중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기대했던 호통이나 욕설은 없었다. 재떨이나 다른 무언가가 날아오지도 않았다.
허나 장군들은 오히려 대총통의 그런 모습에서 거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느꼈다. 차라리 호통이라도 들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이다.
그들은 대총통의 방에 혼자 남겨진 원수를 내버려 두고. 제각기 다음 임무 하달 때까지 거처에서 대기하러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