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601화 (601/653)

601화 적석 계획(2)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다 되어갈 때, 비로소 테우엘체 비밀실험장에서도 첫 번째 정식 시범용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고려 제국이 빙성 작전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사실 대외시범용 물건이 나오기 전에도 연구진은 이미 몇 차례의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이것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으며, 중회소의 핵분열을 검증하는 수준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몇 번이고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그 결과물들을 기반으로 지금 이 시도가 가능한 것일 테다.

정식시범 전날 밤, 황립보안국의 연구총책임자이자 연구소장 조명신이 으레 그 흑경을 쓰고 일장 연설을 했다.

함박웃음을 지고 있는 것이 모레 있을 실험의 대성공을 자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레 있을 시험에 시중께서 직접 오신다고 합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괜찮으시답니다.”

사실 해안도 참관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물론 황립보안국이 필사로 만류했다. 일 푼이라도 용체에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것을 어떻게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자, 자! 부담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교수님들께서 기필코 성공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 마침표를 위해 한 걸음만 더 잘 내디딥시다.”

누가 봐도 부담을 주는 말이다.

교수들도 이제는 익숙했다. 사실 이런 부담은 그들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시험을 위해 조금 눈을 붙인 권우일과 벤자민 톰슨이 그들이 만든 역작이 보관된 방공호로 향했다.

대기하던 요원들이 가볍게 인사했다.

두 사람도 그에 화답하곤 방공호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거대한 원형의 구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들이 지금까지 만든 중회소 기반의 원자폭탄과는 다르게, 첫 시범실험의 폭탄은 의외로 중회소 235가 아니었다.

중회소 폭탄의 기폭은 비교적 쉬웠지만, 농축 중회소를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비경제적이었다.

따라서 지금 이렇게 만들어진 시범폭탄의 재료는 보다 경제적인 합성 물질인 ‘명왕소’가 주로 쓰였다.

‘명왕이라, 딱 들어맞는 표현이군.’

염라의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원소에게 붙이기 실로 적절한 이름이 아닌가.

“모두 확인하셨습니까?”

“예. 룬투에 이상은 없네요. 톰슨 교수님?”

구체도 나름대로의 이름이 있었다.

‘룬투(runtu)’

남려 원주민들의 언어인 루나 시미로 알을 의미했다.

내파형 폭탄은 구형이라 생김새도 딱 알 같았다. 사어화 된 언어니 정체를 짐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도 이견 없소, 모든 준비가 끝났구려. 고생 많으셨소이다. 권 교수.”

학문적 뛰어남과는 별개로 그토록 허풍이 심하고 호탕한 성격의 벤자민 톰슨도 긴장이 되긴 하는 모양이다. 그가 남몰래 땀이 흥건한 손바닥을 닦는 것이 보였다.

“이제 철탑으로 보내지요.”

요원들이 교수들의 최종 확인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구체는 특수 운반 장치에 실려 천천히 황무지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새벽 한 시, 사방이 구분조차 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

황무지 중앙엔 철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꽤 높은 철탑이었다.

어둠을 극복하기 위해 사방에서 불이 켜졌다.

구체는 도르래에 매달려 천천히 철탑에 올라갔다.

마침내 룬투가 꼭대기 층에 매달리자, 권우일과 톰슨도 서둘러 그 층으로 올라갔다.

“시작합시다.”

둘은 구체의 표면에 조심스럽게 고깔 모양의 굴절폭축들을 한 땀 한 땀 붙였다. 제대로 위치를 잡았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이 재래식 폭약들이 정확한 위치에서 동일한 순간에 같이 기폭되어야 그 압력으로 중앙의 명왕소체가 터졌다.

아침조차 먹을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몇 시간 동안을 그렇게 기폭장치 설치에 매달린 두 교수는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기폭지 철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관측용 방공호로 돌아갔다.

관측용 방공호는 반지하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원형 보호 유리창들이 폭심지 방향으로 나 있었다.

방공호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안전상의 이유로 몇 명만 참관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방공호까지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었다.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은 이 폭발을 볼 자격이 있었기도 했다.

그 밖에도 손님들이 와 있었다.

정말로 시중이 있었다. 시중뿐만이 아니었다. 야당의 당수들도 와 있었다.

권우일은 처음 이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곳에 왔는지 궁금했다. 만약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워싱턴 시중은 제국의 희망이 아니던가. 다른 정치인들도 중요한 사람들일테고.

하지만 곧바로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학자도 대체할 수 있듯, 시중도 대체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람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였다.

고려는 자신이 없었어도 이 무기를 완성할 운명이었다.

빠르든 늦든, 인류는 결국 자신을 위협할 가장 큰 무기를 손에 넣고야 말 터였다. 그것은 필연적인 사실이었다.

워싱턴이 머뭇거리는 권우일과 톰슨을 보더니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그리곤 악수를 청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전기로 연설을 듣거나 화상기(TV)로 보는 것이 전부였던 시중이 이렇게 직접 와 악수를 청하니, 톰슨은 감개가 무량한 모양이었다.

톰슨 교수가 요란하게 시중의 악수를 받으며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을 때, 권우일은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복잡해 보이는 표정들이었다. 자신의 얼굴도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 위이이잉

요란한 경보음 소리가 울렸다.

지상 사람들에게도 연락이 갔을 것이다.

방공호보다 훨씬 더 뒤에 있는 그들도 폭발 대비를 해야 했다. 방사능 낙진이며 뭐며 신경 쓸 것이 많을 터.

폭심지에서 안전한 거리엔 몇 대의 관측용 비행기들도 떠 있었다. 그들에게도 연락이 갔다.

“전부 정위치했답니다!”

요원의 확인에 모두의 시선이 방공호 내부에 있는 큼지막한 붉은 단추로 쏠렸다.

“당하?”

“내가 누르는 건 아니 될 말이오. 권 교수님?”

워싱턴 시중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리고 그 단추를 누르는 영광을 ‘원자폭탄의 아버지’ 권우일에게 돌렸다.

권우일이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단추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호경 착용해 주세요.”

중요한 것을 깜빡 잊은 몇 명이 서둘러 보호경을 착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잊을 게 따로 있지. 권우일이 남몰래 혀를 찼다. 아무리 특수 유리보호창이 있다고 하더라도, 폭발과 동시에 온갖 유해한 파장이 생길 테니 눈에 무슨 영향이 갈지 모른다. 항상 안전에 신경 써야 했다.

사람들이 유리창에 달라붙어 철탑 방면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권우일이 숫자를 다섯에서부터 하나까지 세기 시작했다.

“다섯.”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이 고요했다.

“셋.”

권 교수는 단추를 떨리는 손길로 쓰다듬었다. 그리곤 그도 저 멀리 자신이 낳은 알, 룬투의 방향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나.”

마침내 권우일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단추를 꾹 눌렀다.

새벽 네 시 삼십이 분, 태양이 떠올랐다.

* * *

최초의 폭발은 껍질에서 시작되었다.

지상 30m의 철탑에 매달린 구체 표면에 설치된 재래식 굴절폭축들이 정확히 동시에 기폭되었다.

이 폭발은 그렇게까지 위력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구체 내부의 명왕소 폭체에 압력을 가하기엔 충분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 지난 이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력적인 폭발이 구체의 내부에서 터져나왔다.

태양이 떠올랐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빛은 반구형으로 시작되었다.

거대한 빛이였다. 보호경을 쓴 사람들도 눈이 멀 것 같은 폭발적인 섬광이 느꼈다.

갑자기 후끈해졌다.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실내 난방 장치가 가동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온돌이라도 데운 듯 방공호 내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빛과 열 이후에는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빠르게 터져나갔다. 땅이 흔들렸다. 먼지가 날리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지도, 엎드리지도 않았다. 주변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밖에 떠오른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밖에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그리고 인간의 시야 너머에 있는 파장들까지. 빛의 세기는 최초의 폭발 이후엔 급격하게 떨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밝았다.

황무지는 대낮처럼 밝아졌다.

거대한, 실로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버섯처럼 솟아올랐다.

기둥은 마치 나무가 자라는 듯 원통을 이루며 하늘로 높게 높게 솟아올랐다.

확실치 않았지만, 원래 있던 구름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대신 두 개의 새로운 구름 고리가 피어올랐다. 그 고리는 하늘을 찢었다. 넓게 넓게 찢어버리곤 사라졌다.

참관자들은 전율했다.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벤저민 톰슨은 환호를 터트렸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껴안았다. 실험의 성공을 자축하는 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린애들처럼 뛰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사실 연구진 대부분이 그러했다.

반면 권우일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다가왔다. 아들의 입대 이후 그렇게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민혜도, 이제는 손을 떨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다… 개새끼들이야.”

남편은 원래 욕을 거의 안 하는 사람이었다.

민혜조차도 연애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편이 욕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었다.

허나, 이민혜 교수는 남편의 첫 욕설을 들었음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적나라한 심정에서, 남편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깊이 공감했다.

그들 부부보다도 더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있던 동료 교수가 행여 이 분위기를 망칠까 그 사람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룬투 기폭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오히려 너무나 대단하게 성공했다.

이 성공에 대체 무슨 표현을 해야 할지, 직접 눈으로 똑똑히 본 워싱턴조차도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는 미리 준비한 간단한 축사를 하기 위해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한동안 입만 뻥긋거리고 있었다.

중화제국과 소련과의 전쟁 선포를 할 때도 그렇게 결의 넘쳤던 워싱턴이었다.

허나 그조차도 지금 이 순간엔 그저 인류 문명이 도달한 길 자체에 압도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축사가 끝났다. 워싱턴은 32년산 월로 소주들과 함께 금일봉을 뿌렸다.

최초의 방사능 연구가 시작된 지 32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선물이었다.

연구진들은 이 자그마한 연회를 즐길 자격이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할 일은 많을 것이다. 당장 방공호 외부에 있던 사람들은 즉시 보호복을 입고 방사능 낙진 계측을 시작했을 것이다.

또 앞으로도 환경 여파 연구, 폭발의 위력 계산, 그리고 본격적인 무기화의 길이 한참 남아 있었다.

허나, 그것은 워싱턴이 당장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워싱턴은 주변을 둘러보다 갑자기 방공호 내부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축제 분위기를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비서실장과 상서급 사람들만 시중의 부름을 받고 그 방에 따라 들어갔다.

좁은 방엔 빗자루와 쓰레받기, 대걸레 등이 있었다. 청소용품을 보관하는 작은 방인 모양이었다.

이 방에 일곱 명의 사람이 부대꼈다.

워싱턴은 이 자그마한 방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전쟁이 끝난 이후, 누가 시중의 자리에 오를지 나는 몰라요.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약속해 주시오.”

“…….”

“어떠한 다른 나라도 저 무기를 가져선 안 되오. 오로지 제국만이 유일하게 저 무기를 가져야 하오. 알아들으셨소?”

워싱턴은 대중들에게 문명의 수호자로 여겨졌다.

그 유명한 개전 선언문처럼, 워싱턴은 제국처럼 도덕적이었으며 위대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워싱턴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도덕에 집착하지 않았다. 애초에 정치인이란 원래부터 도덕적이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마냥 도덕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낙관적 이상주의에 매몰된다면 도리어 무질서와 파멸을 가져올 뿐이었다.

그들은 국익을 위해서 철저히 계산된 선택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 속에서 도덕은 오로지 판단의 기준점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다른 기준점보다 우선시되는 것도, 무시당하는 것도 아니었다.

워싱턴에겐 실로 다행스럽게도, 제국의 국익은 세계의 평화와 부합했다.

지금까지 이 곤여에 존속한 문명 중, 제국이 세운 문명이 제일 관대했고 제일 도덕적이었다.

사실 고려제국 역시 지적할 거리는 차고 넘쳤다.

흠결 없는 제국이란 망상에 가까웠다.

고려 또한 그들만의 대의명분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독단적으로 했다.

모든 행동엔 명분이 있었다. 허나 어떤 이들에겐 이렇게 명분을 들며 한 행동들도 패악질로 규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종교의 창시자들도 불가능했다. 이념의 창시자들도 그랬다.

오히려 그들이 인간 모두를 영원토록 만족시킬 수 없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다고 대안을 제시해 주었던 나라가, 대안을 줄 수 있는 나라가 과연 있었던가?

그들이 고려처럼 식민주의를 해체했던가?

재해를 입은 나라들에게 해외원조를 했던가?

국제연합질서를 세웠던가? 4국동맹의 야욕을 무너뜨렸던가?

자연 보호를 제창했던가?

추축국의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다시금 나섰던가?

중화주의와 공산주의가 활개 치는 지금, 이런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제국 주도의 질서를 다시금 확립하는 것만이 인류 문명의 번영을 담보할 수 있었다.

엄연한 사실이다.

부정하는 자는 제국 반대편에 선 자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조차도, 자신들의 조국이 기회를 잡고 성장해 천하삼분지계를 현실화한다고 하더라도 그 세상이 정녕 이전보다 평화로울 것인지 확신하진 못할 테다.

이게 대체 얼마나 축복받은 사실일까.

조국의 영광이 세계 평화와 직결되어 있다니.

그렇기에 제국민들은 애국심을 토대로 행동했으며, 전쟁에 자진으로 참전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제국 시중 워싱턴은 앞으로의 평화와 절대적인 단극 질서의 구축 또한 바로 저 핵무기에 의해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길 원했다.

“우리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소이다.”

전시거국내각은 오로지 일시적인 동맹일 뿐이다.

정치인들이란 원래 그랬다.

야당 대표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 다시금 다른 당에 총구를 돌릴 것이었다.

지금은 추축국의 패악질이 너무 심하여 전쟁지지율이 드높았고, 그만큼 워싱턴의 인기가 상당했기에 내각에 얌전히 참여하는 것이 유리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모두는 제국과 제국의 단극 질서를 위해 국민께 봉사하는 것이지. 방법만이 다를 뿐, 목적은 같다는 거요. 아니 그렇소?”

그리고 이 사실도 맞았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이들은 고려의 국민이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이 빗자루와 대걸레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서서 시중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자리의 있는 모든 정치인들의 최우선적 과제는 제국의 영광이다. 그리고 제국의 영광은 인류의 번영이다.

워싱턴은 그 사실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반박하는 이도 없었다.

“그러니 명심하시오. 단극체제를 흔들 그 어떠한 모략도 용납하지 마시오. 우리를 제외한 어떠한 국가도, 어떠한 체제도, 어떠한 단체도 저 무기를 감히 가질 수 없게 만드시오.”

워싱턴은 계속 말했다.

“오히려 적들은 이 무기를 가지지 못할 것이 명백하오. 우리는 어떠한 역경도 모두 이겨내 결국 승리할 것이며, 저들의 체제는 해체될 것이니까.”

고려는 개전 이전부터 명백한 승리만을 장담했다.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패전국들은 한동안 제국에 의해 간섭당할 것이다.

“하지만 중립국들, 오히려 우방국들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예컨대, 조선과 프랑스, 도이치 같은 나라들이 핵 개발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 목표가 확실하고 시간과 예산이 된다면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요.”

“…….”

“허나 이들의 행위 또한 용납해선 안 되오. 한 번의 용납이 장기튀김마냥 다른 돌을 쓰러뜨릴 것이오. 그리고 이 무기는 모두에게 퍼져나갈 터. 그렇게 된다면…….”

“…단극질서는 무너질 겁니다.”

군무상서가 그렇게 뇌까렸다.

“제국은 폭우 속에서 오로지 혼자 우산을 펼쳐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오. 물론 그 우산은 모두가 들어올 만큼 넉넉하겠지. 허나, 다른 우산을 펼치려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모든 중회소 광산을 통제하세요. 우주에 눈을 띄우는 계획도 완료하여 모든 지구를 감시하세요. 이를 어기려는 자들에게는 제재를 가하시오. 그럼에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시오.”

워싱턴은 적나라하게 말했다.

그의 동공에는 방금까지 보았던 거대한 버섯구름이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행동은 전쟁 이후에도 필연적으로 갈등을 불러올 거요. 우리의 도덕성도 훼손될지 몰라요.

하지만 그 갈등은 어쩔 수 없소이다. 상호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초기 십여 년이 중요할 것이다. 감시위원회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일단 처음부터 엄격한 통제를 해야 했다.

제국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당분간 군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게 이 거대한 무력을 과시해야 했다. 웃기는 일이다. 소련과 중화를 치기 위해 만든 군대는 그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다른 목적을 위해 남아 있어야 했다.

전 세계 견제라는 목적을 위해.

모든 나라가 마침내 굴복할 때, 제국은 비로소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항공모함이, 전함이, 전차가, 전투기가 필요했다.

모든 대양과 모든 대지에 제국군이 설 것이었다. 하나의 함대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대륙’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갖추어야 했다.

그들은 핵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무기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워싱턴으로서도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국제연합이 비로소 고종께서 생각하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우리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오.”

이건 교당만의 뜻이 아니어야 했다.

워싱턴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약속해주시오.”

대답을 원하는 눈빛의 기세가 실로 압도적이었다.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삶의 마지막에 다다른 선배 정치인이 후배 정치인들에게 간곡히 애원하는 것과도 같았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성화(聖火)를 꺼트리지 말자고.

손에 든 것이 성화인지 폭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떨어지는 순간, 사방이 불바다가 될 것이 자명했다.

“약속하겠습니다. 당하.”

해밀턴이 대답했다.

그는 경당의 이름을 걸었다. 경당은 지금 이 순간, 이 문제에 대해선 교당과 완벽히 생각이 일치했다.

“우리 또한 그럴 것입니다.”

처음 제퍼슨은 고심했다.

귀당이 추구하는 위대한 고립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 근본 자체가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 무기를 직접 본 그 또한 긍정 이외의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시중이 굳이 야당 대표들을 끌고 온 것도 이걸 조금이나마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퍼슨은 워싱턴을 바라보았다. 이 지독한 사람.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도 바라보았다. 이 지독한 정치인들, 이 지독한 제국.

이 지독한 인류.

하지만 제퍼슨조차도 누구보다 안도하고 있었다.

지금 이 역사적인 첫 순간을 고려가 제일 먼저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당대표들에게 확답을 받은 워싱턴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그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세상을 파멸시킬 무기를 만들어낸 그들은 역으로 세상을 파멸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같이 행동해야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러니 우릴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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