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596화 (596/653)

596화 빙성 작전(4)

뮈라의 3기갑사단은 송원을 서쪽으로 우회해, 적진 남쪽 지역에서 활개 쳤다.

적진의 한가운데였다. 사방에 적의 병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뮈라의 사단은 제집에 온 것마냥 날뛰었고, 오히려 수적 우위를 가진 중화 보병군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빙독도 이런 두려움은 극복해주지 못했는지, 중화군은 그들을 파고든 돌출부를 포위하긴커녕 강철의 파도를 피하기 위해 애를 썼다. 양 떼가 아무리 많아 봤자, 소수의 늑대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습진균은 중화 사내들을 거대한 늑대 떼로 만들려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지휘부도 뭘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전장 상황은 뮈라가 말한 것과 완전히 같았다.

옛 중세시절에 판금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농노 징집병을 무참히 도륙하며 지나가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리라.

숫자는 중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활약하는 전장도 엄청나게 넓어졌지만 모양 자체는 흡사했다.

이런 돌파구는 한 곳이 아니었다. 뮈라가 특출나게 빠르게 진격하긴 했지만 베시에르의 5기갑사단과 김소권의 11기갑사단, 장원진의 21기갑사단 등도 다른 위치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파고들었다.

고려 기갑사단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기갑사단들은 아예 이 전선을 꿰뚫어 혼란시키면서 저 멀리 남쪽에 있는 남부집단군과 최대한 가까워질 예정이었다.

그러면 마침내 거대한 주머니가 완성된다.

기갑군들은 정말 말 그대로 기관이 퍼질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적진을 파고드는 기갑들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몇몇 군사 전문가들, 종군 기자들에겐 지금의 전쟁 양상이 마치 번개가 치는 것과 같다 하였다. 소위 말하는 ‘전격전’이었다.

정작 계획을 입안한 당사자는 이것이 규모만 크지 역대 존재했던 기동전략일 뿐이고 새로운 용어가 굳이 붙여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기갑은 현존하는 육군 무기체계 중 가장 뛰어났다. 대체할 수 없는 돌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런 전과를 내기 위해선, 몇 가지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기갑은 막대한 연료와 탄약을 소비했다. 이들이 계속 공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기갑의 보급선이 충분해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비단 한 장에 가로막히는 일이 없을 테니까.

또한 한 지점에 잘 머무르지도 않았으니, 뚫고 지나간 자리를 메울 병력들이 필요했다. 깔끔하게 뚫고 나가기만 하면, 전선의 상처는 의외로 금방 아물었다. 짐승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꽂힌 화살을 이리저리 비틀어 상처를 헤집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후속대가 중요했다.

전 보병의 기계화 달성을 천명한 고려였지만 아직 전쟁이 일 년 차다. 지금까진 1차로 징병한 집단군 다섯 개 전부를 다 기계화하진 못했다.

물론 전쟁이 계속 진행될수록 전시근로법이 적용된 고려의 공장들도 계속 생산률을 높일 것이니 목표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현재는 루테니아 쪽과 지금 북부집단군의 보병에만 최우선적으로 장갑차가 배치된 상태였다.

북부집단군 기계화보병사단들은 장갑차를 타고 기갑들이 뚫어놓은 진격로를 따라갔다.

기계화는 혁신이었다.

참호전이 파훼된 지금의 전장에서 장거리의 행군은 여전히 병사들의 고충으로 남아있었다. 군장을 짊어지고 실컷 걷다가 전투에 돌입하면, 제대로 된 싸움 전부터 이미 헉헉대며 지쳐 있었다.

물론 고려 말고 산업화가 잘된 나라들도 이를 알았기에 병력 수송차를 쓰긴 했다.

하지만 장갑이 없는 차륜형 수송차는 한계가 있었고, 언제든지 전투가 일어날 상황엔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돌파 국면에서는 차라리 보병이 직접 전선을 개척하는 것이 안전했다.

장갑차는 달랐다.

종동―200 ‘들소’ 장갑차는 장갑과 기관총 등의 무장으로 보병에게 엄호력을 제공해 주면서도, 보병이 하차하여 전투하기 직전까지 쉴 수 있을 정도로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들소의 등에 탄 고려군은 최고의 상태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 근데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도 않는 것 같구만?

보병들이 그렇게 투덜거릴 정도로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기계화보병들은 전차에 깔려 처참하게 터진 시체를 보거나, 혹은 온갖 추태를 부리며 달아난 놈들의 흔적을 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항복하는 놈들을 포로로 잡아야 했다.

세 경우 중 마지막이 가장 어려운 작전이었다. 숫자가 원체 많았기에 항복하는 놈들도 몇백이 아니라 몇천씩 항복하곤 했다.

겨울의 추위가 아직 가시지도 않은 2월, 고려는 포위망을 사실상 완성했다. 중화는 겨우 승덕과 적봉, 요하의 지류인 황수(시라무렌강) 정도만 간신히 지키고 있을 정도였다.

* * *

하도 전역이 넓다 보니 전투가 크게 벌어진 곳도 있었다.

허나 중화군이 어떻게 고려군을 제대로 상대해서 이길 수 있을까.

중화의 자랑스러운 영웅 한신과 소하, 제갈량, 사마의가 전부 다 무덤에서 박차고 나와도 무리였다. 물론 그들이 운과 능력은 따라줘도 도덕성이 장각 수준인 습진균을 따르진 않겠지만, 설령 따른다 하더라도 어찌할 바를 모르다 다시 무덤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고려는 그 수준, 그 이상의 인재를 드넓은 국토에서 훨씬 더 많이 뽑아냈고, 심지어 외국에서 갈취해 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훨씬 더 정교하고 현실적인 교육과정으로 애지중지 길렀다.

지금의 군부는 무시무시한 재능을 가진 장교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전쟁하는 기계마냥.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어떤 높으신 분은 ‘배고픔과 굶주림, 그리고 결핍에서 나오는 정신력’이 보병들의 전투력을 향상시킬 것이라 했다.

불굴의 전투력은 궁핍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중화의 장군들 중 일부는 정말 그렇게 믿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지원을 풍부히 해줄 수 없는 자들의 멍청한 변명거리에 불과했다.

중화가 전쟁 내내 선전하고 있는 항우의 일화도 마찬가지였다.

파부침주를 해 승리했다는 거록 전투를 봐도 그랬다. 애초에 항우가 전 병력을 든든히 밥 먹일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싸웠더라면 천하를 얻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삼라만상은 열역학적 원리를 따른다. 부족함은 결코 풍족함을 가지고 올 수 없었다. 배고픔과 결핍, 궁핍함은 불리함을 낳을지언정 승리라는 풍족함을 가져오지 못했다.

전쟁은 냉혹한 과학이었다.

총과 대포에 넣고 발사하는 화약의 양, 그리고 군인 입에 들어가는 열량의 수준, 입거나 걸치고 다니는 옷의 두께(겨울의 경우) 등에서 결정되곤 했다.

고려군이 얼마나 잘 먹고 다니는지는 중화군도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국 전투 병력이 에이레나 옥저 등 식량을 원조해줘야 하는 국가의 사람들, 혹은 포로들보다는 더 잘 먹고 다니지 않겠는가.

고려군은 장병들의 노골적인 편식으로 인한 문제(주로 변비였다)를 겪을지언정 배를 곯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잠시 포위되거나 작전 도중이면 모를까.

군무부는 다형 전투식량을 최대한 맛있게 개발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전투식량이란 한계를 초월하진 못했다. 다만 나형과 가형 식량에 대해선 훨씬 더 미각을 배려해주었다. 조리병만 잘 만나면 최전방에서도 호화스러운 만찬을 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고려군부는 몇몇 제약회사들과 합작해 장병들에게 보급할 종합활생소(종합비타민)를 만들어 뿌려댔다. 말 그대로 온갖 종류의 활생소들과 필수 무기염류 등이 들어 있었다.

동계피복도 넘쳐났다. 두꺼운 솜이 틀어진 동계피복을 입은 고려군은 그것도 모자라 귀가리개와 장갑까지 둘둘 말고 있었다.

두꺼운 옷은 가끔 방호력도 선보이곤 했다. 특히나 군복 위에 방편복까지 입고 있다면 더더욱.

이 방편복은 빙성 작전이 시작하자마자 무시무시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 저… 어떻게 됩니까? 많이 다쳤습니까? 복귀 가능합니까? 제발 원대복귀할 수 있게 해 주십쇼.

― 엉덩이 상처는 아물고 있으니 괜찮을 거요. 조금 더 상황을 보겠지만, 아마 복귀할 순 있겠지.

사단 의무대엔 총탄을 맞고 실려 온 고려군 병사들이 신음을 흘렸다.

전쟁은 애들 장난이 아니었고, 아무리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입장의 고려군이라 해도 많이 죽고 다쳤다. 전쟁은 명백한 비극이었다.

하지만 다친 고려군 병사들 중 높은 비율이 다시금 전선으로 복귀했다.

고려는 그동안 현대전에 어울리는 방탄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군무부에는 그동안 메리나산 나무껍질거미로 방탄복을 만든 역사의 교훈을 되살려 거미줄 기반의 특수 섬유를 활발히 연구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대량생산은 불가능했다.

또 차기 방탄복의 확실한 개발 전에 전쟁이 일어나고야 말았기에 결국 방향을 틀어 현실과 타협했고, 파편이나 도탄을 방호할 수 있는 수준만 챙긴 방편복을 일선에 보급했다.

이 방편복은 가끔 운 좋으면 운동량이 감소된 권총과 기관단총 수준의 소구경 탄환은 막아내곤 했지만, 소총탄엔 얄짤없이 뚫렸기에 방탄복이라 부르진 못했다.

병사들에게 호응은 나쁘지 않았다.

거추장스럽긴 했지만 동계작전 때는 입을 만했다. 하나라도 더 껴입으면 덜 추우니.

방편복은 밀도 높은 중합체 섬유와 금속 방탄판으로 이루어졌다.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행군의 비중이 낮아진 기계화보병, 혹은 상륙하여 거점을 지키는 병력에게는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반면 효능은 탁월했다. 방편복 하나로 전사자와 부상자 비율은 크게 바뀌었다. 방편복 없이는 죽을 위기에 놓였던 사람들이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방편복을 관통한 총알을 맞았지만, 현저하게 떨어진 위력으로 살아남은 사람도 있었다.

영원상륙작전에서 해변을 뛰어다녀야만 했던 병사들도, 그리고 송원 공세에서 적과 전투하는 병사들도 모두 이 혜택을 똑똑히 누렸다.

그뿐일까.

피 튀기는 전선의 후방엔, 언제든지 장병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곳들이 있었다.

동계작전을 준비하며, 고려는 자국 군인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온갖 괴상망측한 보급품들을 만들어 뿌렸다.

다른 나라들이 보면 얼이 빠질 만한 것들이었다.

주로 이동식 협동일관용기(컨테이너)를 이용한 것들이 많았다. 협관용기 안에 제대로 된 조리도구를 배치해 만든 주방과 세신실은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 얼어 죽을 만큼 추운 겨울을 잘 버틸 수 있게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이동식 욕탕과 한증막도 있었다.

기름이 남아도는 고려는 전차와 장갑차뿐만 아니라 보병들 사기 진작용 연료까지 소비하면서도, 민간에서 유가 좀 올랐다 불평하는 수준의 불편함밖에 겪지 않고 있었다.

* * *

중화도 발악했다.

상륙을 허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지나간 일이다.

그러나 요령 전역에 포위되어 가는 아군 병력을 저렇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산세가 험한 승덕이나 적봉 방면은 아직 돌파되지 않았기에 포위망이 완전히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화도 그쪽을 통해 보급하면 긴 거리를 우회해야 했다.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불안했다.

습진균은 영원을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으라 지시했다.

중화는 남부집단군을 포위하고 상륙지점에 맹공을 가해 바다 밖으로 다시 쫓아내려 몇 번이고 시도했다. 신의주 전선마냥 절박한 공세가 쉴 틈 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남부집단군은 굳건했다.

영원시는 신의주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중소도시였다. 또 철근강회 연립주택도 그렇게 많이 있지 않았다. 요새라고 보긴 힘들었다.

그런 만큼 그곳을 점거한 고려군의 방비에도 허점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바다와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력은 아무리 중화가 인해를 부려 덮친다고 한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람의 파도라면, 고려 함대는 불의 파도를 쏘았다.

영원을 단시간 내에 되찾기 힘들 것 같다는 보고를 들은 습진균은 추가적인 군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는 더 광범위한 징병법을 통과시켰고, 더 폭넓은 나이의 청년들, 그리고 청년이 아닌 사람들까지 군대로 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새로운 병력들이 단번에 일어났다.

중화인들은 그들의 저력을 자랑스러워했다. 용맹한 중화 건아들이 용기 있게 무구를 들고 위기에 빠진 북쪽 전선으로 향하는 광경을 보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렇게 요령 전역에 있는 군인들의 수는 계속 증가했다.

돌아가는 꼴을 본 세계인들은 넋이 나갔다.

유라시아 서부전선의 경우, 소련과 도이치, 프랑스를 제외하곤 집단군 규모의 병력을 운용하는 곳은 없었다.

북대동양 조약군의 수준으로 가야 집단군 편제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다.

허나 요령 전역은 벌써부터 양측 합산 이십 개가 넘는 집단군 규모의 병력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미친 수준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남쪽의 사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포위망 안에 갇힌 꼴이 된 요령의 중화군은 명백한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는 병력의 우위와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병력이 그만큼 많았기에 더욱 빨리 한계에 도달했을 것이다.

고려의 상륙부대와 기갑군의 활약으로 후방이 차단되자 중화군은 보급이 대부분 끊겼다. 적봉과 승덕, 황수로 오는 긴급 보급의 양으로는 절대 요서회랑의 기존 보급로를 통한 공급량을 대체하지 못했다.

심양도 말라붙었다. 중화군은 안 그래도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전쟁을 치렀지만, 2월의 포위망이 완성된 후에는 그전의 열악한 보급보다 거의 사분의 일 수준의 물자만 간신히 받으며 싸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 그들도 이 상황을 타개해 보기 위해 맹렬하게 전투를 걸었다.

포위망을 뚫어보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동하는 적 전차와 기계화보병은 속도로서 수적 우위를 무력화했다. 따라오는 후속 부대들은 강한 화력을 등지고 단단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화군은 계속 갈려 나갔다. 남부와 북부, 그리고 이제는 신의주에서 공세를 시작한 중부에서도.

2월이 되어 물자가 바닥나자 저항하던 중화군의 기세도 완전히 꺾였다.

이제 그들은 완전히 수세에 몰려 공세를 받아내기 급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전선이 밀렸고, 그들은 전역 사령부가 위치한 심양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으으….”

부여성 근방의 중화군 참호는 신음 소리로 가득했다. 부상병 수용용 의무대가 아니라 최전선이었음에도.

중화군 병사들은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예전에 지급된 군복은 전투를 거치며 잔뜩 해져 있었다.

지금은 많은 중화군이 심양 등의 조선 민가에서 약탈한 의복들을 입고 있었다.

그나마 그것들이 중화군 특유의 누더기 같은 군복보단 따뜻할 것이다. 반군, 거지꼴이 따로 없었지만.

하지만 신음 소리는 추워서 나오는 곡소리라기보다는 고통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사실상 중화군은 전부 다 병자였다. 걸어 다니는 시체가 맞았다.

동상과 참호족 등의 증상도 그랬지만, 배고픔과 금단증상도 만만치 않았다.

중화 보병사단의 수색조가 옆의 참호를 방문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다.

밤새 추위로 고생하던 병사들은 아침이 되니 얼어붙은 시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사람은 극심한 추위를 느끼며 동사해 갈 때 가끔 더위를 느끼는 것마냥 옷을 벗었다. 뇌가 얼어버리면서 고장 나는 모양이다.

동정심은 없었다. 냉혹한 현실은 동정심보다는 오히려 탐욕을 부리게 만들었다.

“이놈들, 혹시 용맹환 있나 봐야겠다.”

명색이 중급군사간부라는 2급상사가 같은 전우들의 시신을 열심히 뒤졌다.

하지만 용맹환은 이미 없었다. 식량도 보급 안 되는 마당에 용맹환이 보급되었을까. 이미 이놈들도 금단증상에 덜덜 떨다가 얼어 죽었을 것이다.

“쓸모없는 새끼들!”

2급상사가 얼어붙은 시신을 발로 찼다. 새로 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말단 열병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당황했지만, 기존의 병사들은 무덤덤하게 다른 시신들을 뒤지고 있었다.

중화주의는 원래부터 인간성을 거세하는 이념이었지만, 이곳 요령 전역에서 중화군이 처한 환경은 인간성을 거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사람을 악마화시키고 있었다.

머리를 걷어차는 것은 분명히 ‘다른 행동들’보다는 더 건전했을 것이다.

― 꿀꺽

얼어붙은 시체를 바라보던 누군가 침을 삼켰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작가의 말]

오늘 자 방편복은 조금 더 편의성이 개선된 M69 Flak vest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부여성 : 장춘

삽화

영원 상륙작전 이후 기갑사단 돌파 국면의 지도입니다. 손그림이라 국경선이 다소 부정확할지도 모릅니다….

단대호 보라색은 고려, 청색은 조선, 녹색은 옥저, 적색은 중화제8제국입니다.

XXXXX는 집단군 수준의 병력이며 XX는 사단급 수준입니다.

봉명관 쪽의 중화제국은 요령 전역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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