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화 빙성 작전(2)
태평양사령부는 기존 병력에 더해 이번 집단군 원정군과 국제연합 지원군을 이용해 인류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합동작전을 계획했다.
원정군이 도착한다면 요령 전역에서 연합군 측 전력은 전투 병력만 723만 명에 달했다.
중화제국군은 첩보상 이미 천만이 넘는 병력이 존재했다. 두 세력 모두 개전 이후 증원에 증원을 거듭했으니 개전 초기보다도 훨씬 더 많은 병사들이 지금 이 요령 전역에 있었다.
고려는 소위 말하여 ‘빙성 작전’이라고 불리는 이 작전을 통해 요령에 진출한 천만 중화의 군대를 완전히 잘라먹을 계획이었다.
신의주에서 공세종말점을 맞은 이후, 중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신의주를 뚫으려 해봤자 중화조차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인적 소모가 극심해졌다. 인해전술을 꾸리는 입장에서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인적 소모라면 피해야만 했다. 그렇게 된다면 인해라는 단어조차 쓸 수 없게 되어버린다.
옥저의 회령부 공략도 제대로 안 되었다. 옥저도 조선만큼이나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빙성 작전의 요지는 이렇게 소강상태가 된 요령 전역을 단번에 포위하여 거대한 주머니를 형성한 뒤, 그 안에 들어있는 중화의 병력을 모두 궤멸시키는 것이었다.
본래 열세인 병력으로 훨씬 더 많은 군대를 포위섬멸하는 것은 어불성설.
하지만 군대의 전력은 비단 인원수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기와 보급, 그리고 전투피로도 등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연관되어 있었다. 중화는 명백히 공세종말점에 도달해 있었고, 고려의 원정군은 이제부터 공세를 시작하는 입장이었다.
나폴레오네 통합사령부 작전계획국장이 입안한 이번 빙성 작전은 크게 세 공세를 상정했다.
신의주 전선을 기존 축으로 두고, 두 개의 망치를 남북으로 휘두른다.
첫 번째 본대는 보급이 안정된 조선에서 공세를 시작했다. 기존의 조선군과 개성주둔군에 두 집단군 규모가 더해진 중부집단군이 배정되었다.
신의주 맞은편엔 아직도 엄청난 수의 중화군이 있었고 그들을 밀어내기 위해선 그만큼 본대의 힘도 강해야 했다.
두 번째로 그 위에서 내려올 북부군은 제일 먼저 출발했기에 공세 준비가 된 상태였다. 이들은 회령부 전선으로 간 뒤에 그곳에서 남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개의 집단군, 남부집단군은 달랐다.
이번 공세의 목표가 중화의 병력을 말 그대로 포위하는 것인 만큼 남부집단군은 과감한 전술적 목표를 설정했다.
적 후방에 상륙해 적의 본대를 본토와 괴리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천만에 달하는 군대를 보급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물자가 오고 가겠는가. 고려는 그 보급선을 끊어버리고, 중화가 후퇴할 방면을 제한함으로써 포위섬멸이라는 대전략적 목적까지도 성취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상륙작전이 필수 불가결했다.
그럼 대체 어디로 상륙하는가?
중화도 어느 순간부터 고려가 상륙작전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고려가 징병을 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그 병력이 곧바로 중화로 향하리라는 것 또한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었다.
상륙작전은 한두 명이 움직이는 작전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집단군 수준의 병력이 단번에 전부 다 상륙하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상륙작전 한 번에 거진 수만, 수십만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병력이 준비하는 계획이다. 절대로 비밀이 될 순 없었다.
식견 있는 장군들은 그 공세가 어디로, 어떻게 올지 모르니 최대한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비하는 방법 중 가장 상책은 군을 물리고 전선을 재정비하자는 호원민의 계책일 터.
하지만 부하들에게 계책을 받는 지도자들에겐 상책은 가끔 상책이 아니었다. 그들이 중책이나 하책 같은 책략을 쓰는 덴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낭화신은 지금까지 공략한 조선의 요령 땅에 대한 ‘안정화 작업’을 실시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습 대총통의 뜻과 일맥상통했다.
요령은 몇백 년간 공고히 다져진 조선의 땅이었다.
하지만 중화란 본래 그들의 나라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아주 조그마한 남의 땅에도 극심한 탐욕을 부리는 나라였다.
특히 중화에겐 조선은 유구한 숙적이었다. 개성 공략은 물 건너갔으니 지금은 요령까지만이라도 뺏어놔야만 했다. 기름이 부족한 입장에서 조선이 요령에서 개발하는 유전이 몹시 탐나기도 했고.
그러니 그들로서는 요령을 꼭 방어해야 했다. 적의 상륙작전을 저지해야 했다.
상륙작전을 실시할 남부집단군이 탐라에 기항해 짧은 준비를 시작할 무렵, 고려와 중화는 서로 요란한 기만전술과 탐색전을 펼쳤다.
― 어디냐? 대체 어디로 올 것이냐?
중화는 발해만 서쪽, 요동반도 최남단의 비사포에 위치한 조선군을 가장 신경 썼다. 이들은 해상지원을 통해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이렇게 거점이 확보된 곳을 통해 상륙한다면, 고려로서는 어려운 국면을 생략할 수 있었다.
그러니 중화는 이곳을 방어해야 했다. 대전차지뢰, 대인지뢰, 그리고 차량 이동 장애물인 중화불가사리를 포함한 수많은 장애물들이 요동반도 길목에 배치되었다.
그다음으로 그들이 신경 쓴 곳은 건안이었다. 고구려 시절의 건안성에서 이름을 따온 이 도시는 심양의 하구에 위치한 항구도시였다. 당연히 전략적으로 몹시 중요한 도시였다.
접안시설도 아직 남아있으니 상륙하기엔 편했다. 다만 중화는 그동안 조선이 후퇴하며 박살 낸 이곳의 해안방어시설을 다시 재구축했기에 해안포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최전방과 가까운 것은 덤이었다.
다른 곳의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발해만은 작은 만이었다. 이런 만에는 갯벌이 많았다. 특히 대양을 등지고 있거나 강어귀는 더더욱.
건안처럼 각 잡고 항구로 개발하며 간척하지 않는 이상에는 상륙작전이 꽤 힘들 것이다.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것도 힘든데, 뻘밭에 상륙하는 것은 정말 미친 짓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고려가 선택한 곳은 중화가 생각하기엔 꽤 후순위의 지역이었다.
고려군은 발해만 동쪽이 아닌 서쪽에 상륙을 결정했다.
영원성에.
전략적으로 몹시 중요한 곳이다. 보급선이 지나니 당연한 말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요령이 공고한 조선의 땅이라면, 영원성은 명나라 시절부터 중화도 충분히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윤신에게 패퇴한 명 최후의 양장 웅정필이 영원성 누대에서 절명시를 읊고 떨어져 죽은 사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였다. 그들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국 영토로 편입시켜야 하는 땅이었다.
제아무리 후순위로 상륙할 법한 지역이라지만, 그만큼 기본적인 방비 자체는 탄탄할 것이다.
하지만 고려에게도 이곳을 노리면 얻을 이점이 확실했다.
아직 이곳은 복건, 절강, 강소, 산동 등에 건설되고 있는 중화 태평양방어선이 올라오지 못했다.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긴 하지만 아직 해안포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전함의 일방적 포격이 가능했다.
조선사람들은 진작 대피했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사민(徙民)되면 모를까 당장은 중화 인민들도 많이 없으니 부수적 피해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불바다로 만들기도 좋았다.
조선은 요서 지역에서 긴급히 후퇴하면서도 자신들의 병기들을 무력화시켜놓았다. 이후 요새를 점령한 중화가 해안포 몇 문을 가져오긴 했지만 계속 동진해야 하는 탓에 이곳의 진지들에 제대로 된 보수공사를 할 순 없었다.
또한 이곳은 발해만 지역 중에서도 뻘밭이 많이 없었다. 반대로 해안가엔 모래사장이 있었다. 보기도 좋았지만 상륙하기에도 좋은 조건 중 하나였다.
결정적으론 전략적 목표 달성이 가능한 가장 효과적인 지역 중 하나였다.
빙성 작전이 성공으로 돌아간다면, 바로 밑인 봉명관과 더불어 중화의 퇴로선과 보급선을 한 번에 끊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이 막힌다면 중화는 훨씬 더 어려운 길을 타야 했다.
그렇기에 나폴레오네 작전계획국장은 이곳을 골랐다. 그동안 정보수집을 위해 수많은 정찰기들이 이곳을 비행했다.
교란작전으로 가끔은 창주(창저우) 해변까지 날아가 중화를 놀래킨 것은 덤이었다.
* * *
531년 1월 9일.
루테니아 집단군이 루테니아에 도착할 즈음, 탐라에서 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남부집단군이 영원 상륙작전을 시작했다.
― 쾅
영원 앞바다에 있는 수많은 전함들의 주포가 쉴 새 없이 불을 뿜었다.
말 그대로 영원성의 땅은 뒤집어지고 있었다.
화염이 솟구쳤으며, 파편이 비산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주변에서 영원성을 방어하려 몰려든 주변의 중화군은 잘게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것이다.
귀가 다 얼얼해질 지경이었지만, 상륙을 준비하는 고려군 병사들은 오히려 그 소리가 좋았다. 더 많은 포격은 더 적은 희생을 의미했다.
― 쐐애액
하늘에서는 말벌들이 날아다녔다. 하늘은 이미 완벽히 장악되어 있었다. 영원의 하늘을 장악한 것도 모자라, 제국 공군은 연경에 있는 적 공군기지를 폭격해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좋아. 아주 박살을 내 놓으라고!”
“이러다 우리 상륙하면 다 뒤져 있는 거 아니야? 할 것도 없고?”
“그러면 좋지. 어디서 영웅이 되려고 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준비나 해, 김 씨.”
병사들은 물개급 상륙정에 올랐다.
이윽고 수송함이 꽁무니로 물개급 상륙정을 내뱉었다.
큰 군함에서 작은 상륙정으로 갈아타니 거친 파도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침 날씨는 썩 좋지 않았다. 매서운 겨울의 바람이 생생히 느껴졌다.
몰아치는 거친 파도에 지금까지의 항해 동안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바다 멀미가 다시금 일어날 만도 했다. 하지만 긴장된 탓인지, 그 누구도 구토하는 이가 없었다.
병사들은 짠 바닷물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이 짧은 순간에 기도했다. 가족의 사진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어떤 누군가는 다리나 손을 떨어대었다. 아까 그토록 호기롭던 김 씨였다. 그마저도 극도의 긴장이 엄습한 모양이었다.
이들을 보던 지휘관이 일부러 고함을 질렀다.
“보이지? 저 친구들이 있어서 그래도 든든할 거야!”
상륙정의 병사들이 앞을 보았다. 빠른 상륙정들보다도 먼저 출발한 작은 배들이 있었다.
아니, 배가 아니었다. 고려군은 저 물건이 뭔지 알았다. 그들이 무방비로 해안에 접근하기 전, 먼저 전장을 개척할 선봉대였다.
수륙양용전차 ‘악어’였다.
사실 현시점 수륙양용전차와 수륙양용장갑차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전차처럼 생긴 것도 일반적 전차보다 어딘가 나사 하나는 빠져 있었다.
주포도 저압포가 달린 것도 있었고, 아예 기관포가 달린 것도 있었다. 장갑도 대물방호력이 현저히 낮았다.
그럼에도 이런 상륙작전에서 전차나 장갑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든든함은 없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악어들과 상륙정들이 꾸준히 해안으로 다가갔다.
중화군도 저항을 시작했다.
고려 전함들이 그토록 엄청난 수의 포탄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놈들이 있었다. 강회 요새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을지언정 완전히 박살 나진 않았다.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중화군은 이를 악물고 포와 총을 조준했다.
무방비로 노출될 고려군에겐 다행스럽게도, 하늘 위에서 아군들을 꾸준히 지켜보는 시선들이 있었다.
말벌 전투기가 발사한 매발톱이 요새의 구멍에 운 좋게 명중했다. 백린 특유의 흰 연기와 불꽃이 안으로 번지자, 안에 들어가 있는 중화군이 끔찍한 고통에 나와 몸부림쳤다.
중화군들이 서둘러 밖으로 나와 대공용 무기를 하늘에 조준했지만 말벌은 대공포에 맞아줄 기체가 아니었다.
요새에서 함부로 나온 중화군들에겐 함포가 그 대가를 선사했다.
하늘엔 말벌 전투기와는 확연히 다르게 생긴 뚱뚱한 비행기도 있었다. 속도도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날개에 달린 큰 바람개비로 나아가는 비행기였다. 일반적 바람개비처럼 보이는 저것도 뜯어보면 분출기관의 종류긴 했다.
뚱뚱하고 둔하게 보이지만, 이 비행기는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중화군들에겐 그야말로 끔찍한 공포와 악몽 그 자체였을 것이다.
말벌과 같은 제공전투기는 강력했지만 그 지원의 시점이 일시적이었다.
2함대 항공모함 전력이 이 작전을 위해 대부분 투입된 만큼 주변의 하늘엔 어마어마한 수의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있었지만, 제공전투기의 한계 때문인지 상륙작전을 꾸준히 지원하진 못했다.
적의 모든 항공기를 제압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화력과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폭장량 제한에 따라 때리고 돌아와야 한다는 숙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니 고려 공군은 다른 기종이 필요했다.
고려 공군은 기존의 군용 수송기와 중폭격기, 그리고 과거 고위급 인사의 전용기로 쓰였던 기체, 부익 505를 개량해 511 ‘까마귀’를 개발했었다.
전쟁이 터진 뒤엔 부익사에게 부익 505의 다음 기종을 전투용으로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넣어, 분출회전기관을 도입한 531 ‘솔개’도 일부 도입한 상태였다.
특정 작전 지역의 하늘 위를 빙빙 돌면서 체공하는 ‘근접지원포격기’가 전장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포격기는 특정 지역에 쏟아붓고 떠나는 폭격기와는 좀 달랐다.
그야말로 하늘의 고정포대였다. 그들은 하늘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며 적의 중요 시설을 정밀하게 때려 부쉈다.
아군 보병들이 요청한 사항에 대해 즉각적이고 빠른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통적 근접항공지원기의 공백을 대체할 명백한 상위호환이었다.
연료와 폭장량이 하도 많으니, 한 번 보급에 몇십 분, 아껴 쓰면 몇 시간 동안 적을 신나게 두들겨 팰 수 있었다.
어차피 주변 하늘은 말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근접지원포격기에 대한 전투공중초계는 확실했다.
이런 상황 속, 악어가 마침내 해안에 도달했다.
끈질기게 살아남은 몇몇 중화군 기관총이 불을 뿜었지만, 악어에게 유효한 피해를 주진 못했다. 악어는 저압포를 쏘며 이에 대응했다.
잠시 뒤, 상륙정이 해안에 도달하자 고려군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쏟아져 나왔다.
총탄이 오가는 상황 속, 고려군 병사들은 작전 전에 교육받은 대로 곧바로 악어의 엉덩이에 필사적으로 뛰어가 붙었다.
“전진, 전진, 전진!”
고려군은 악어를 엄폐물 삼아 가장 힘든 해변 지역을 빠르게 벗어났다.
그들은 곧바로 중화 요새선으로 진입했다.
오인사격을 우려한 전함 함포사격이 그쳤다. 포격은 이미 충분했다.
요새는 대부분 움푹 파여 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시신들이 사방에 보였다.
그중 살아남은 중화군이 튀어나와 기관단총을 쏘려고 시도했지만 곧바로 등 뒤에 큰 연료통을 짊어진 고려군 병사가 화염을 쏘아냈다.
후끈한 열기와 고기 타는 냄새가 확 번졌다. 택주 출신 병사가 화염방사기를 든 선주 출신 병사에게 한마디 농담을 던졌다.
“오늘 저녁은 화식인가 보지?”
“좆같은 소리 좀 하지 마!”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상황은 압도적이었다. 고려군의 상륙작전은 마치 해일처럼 다가왔고, 곧바로 해안을 휩쓸어버렸다.
중화군은 추풍낙엽이었다.
후순위 방어지역이라지만, 중화 자체가 병력이 넉넉한 까닭에 이곳도 방어병력이 꽤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힘의 차이가 현격했다. 중화군은 수적으로는 저들의 병력에 뒤떨어지진 않았지만, 하늘과 바다, 땅 모두에서 밀렸다.
전술과 병기 모두가 압도적이었다.
이렇게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공격은 이해 범주의 밖이었다.
중화군은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다. 해안요새에 틀어박혀 보았자 유지소이탄과 백린소이탄이 집요하게 날아와 그 내부를 구웠다. 밖에 있으면 전함이 그들을 터트렸다.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면, 수륙양용전차와 보병대가 다가와 정밀하게 사살했다.
전투 시작 4시간 만에 영원성의 중화군이 궤멸되며 상륙작전은 성공으로 돌아갔다.
상륙부대가 성공하자 후속 부대들도 안정된 해안에 접안할 수 있었다.
영원에는 제국기가 휘날렸다.
상륙 시점, 고려가 투입한 병력은 31만여 명이었다. 작전에 희생된 사망자의 숫자는 283명이었고, 부상은 2,576명이었다.
49만 명 정도를 방어 병력으로 투입했던 것으로 파악된 중화군의 사상자 숫자는 7만 1천 명이었다. 또한 2만 2천 명이 포로로 잡혔다. 다른 상세 전과는 집계되지 않았다.
고려는 이번 영원상륙작전으로 중화의 동맥을 절단했으며, 빙성 작전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작가의 말]
중화불가사리 : 체코 헷지호그(Czech Hedgehog)
영원성 : 후루다오 시
부익 505: C47
부익 근접지원포격기 511 까마귀 : Douglas AC―47 Spooky
부익 근접지원포격기 531 솔개 : Lockheed AC―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