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화 루테니아 전선
네드 러드가 연합국에 망명하고 잉글랜드가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갈 때의 일이었다.
전쟁이 발발한 이후 처음으로 맞는 개천 530년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특히나 악명 높은 루테니아―러시아 전선,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에서는 더더욱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끔찍한 추위야. 오줌을 눴는데 그대로 얼어버렸어.”
“끔찍하군.”
참호 속의 병사들이 덜덜 떨면서 투덜거렸다. 그래도 그들은 행운아일수도 있었다. 옆 중대 참호마냥 얼어 죽지는 않았으니까.
아직 11월 말이다. 그럼에도 이곳은 이미 빌어먹게도 추웠다. 땅은 물론이고 그 위를 거니는 사람과 물건들도 얼어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침략자들은 오히려 이 추위를 기다려온 것 같았다. 라스푸티차가 끝나고 땅이 얼어 단단해질 때, 북쪽의 소비에트군이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놈들이 온다!”
“빌어먹을 청음초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얼어 죽었겠지, 서둘러 장전해!”
근처의 숲에서 T―25 특유의 끼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다포탑 전차는 하자가 많은 물건이었지만, 보병들에겐 여전히 사신과 같았다.
― 쾅
포신이 불을 뿜었다. 병사들이 몸을 웅크리며 터진 나무 파편을 피했다. 이윽고 전차에서 기관총이 발사되었다. 그 뒤편으로는 전차의 엄호를 받으며 전진하는 소련 보병대가 보였다.
루테니아 병사들도 정신을 차리곤 반격했다.
하지만 반격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어떻게 전차에 항거하겠는가. 자돌폭뢰를 이용하는 중화제국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보병이 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한정된 수단이 지금 당장 있긴 했다.
“다닐로! 대전차화기를 쏴!”
병사 하나가 서둘러 다른 참호로 몸을 날렸다. 그는 죽어 자빠져 있는 다른 병사의 품에서 도이치제 판처파우스트를 챙겨 조준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탄두가 날아갔다. 운이 좋았는지 일격에 전차가 무력화되자 루테니아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 우르릉
하지만 적들의 전차는 한 대가 아니었다.
“T―30이다!”
고려의 의도적 사보타주에 된통 당해 T―25란 실패작을 만들었던 교훈으로, 소비에트 전차설계국은 새로운 전차를 개발하고 착수했다.
사실 소비에트는 T―25를 잘 써먹긴 했다. 어차피 전차도 소모품이었고, 초기의 공세 때 폴란드는 무력하게 당했으니까. 쓸 만큼 써먹고 적절하게 개량형을 내놓은 셈이었다.
오히려 피해는 아무 생각 없이 많이 구매했으면서도 신의주에서 막혀버린 중화제국이 더 클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렇게 전 모델의 흑역사를 지우기 위해 태어난 T―30은 굉장히 괜찮은 전차였다.
수보로프와 쿠투조프를 비롯한 소비에트의 원수와 장군들은 하나같이 전차의 설계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차설계국에게 개선을 요구했다.
이젠 바뵈프도 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소비에트는 결국 미련한 다주포 다포탑을 완전히 폐기했고, 다시금 다른 나라와 비슷한 원래의 표준적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T―30은 완벽한 전차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비에트 특유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이고 확실한 기능을 뽐내는 것이었다. 승무원들의 편의나 기타 안전 사항들을 전부 챙긴 명품 무기는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경제적으로 많이 뽑을 수 있었다.
뒤에서 등장한 T―30들은 판처파우스트가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거리 뒤에서 머물며 포사격을 했다. 대인이 운반할 수 있는 대전차무기는 한계가 명확했다. 루테니아의 병사들은 속절없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후퇴해!”
안타깝게도, 이곳은 체르노빌 요새선이 방어할 수 있는 구역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이미 우회에 성공했으며, 요새선이 방어하는 북동쪽 방면이 아니라 북서쪽 방면에서 밀고 내려오고 있었다.
키이우는 백척간두의 상황에 몰렸다.
“난 가지 않을 거예요.”
바쁘게 피난물품들을 챙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루테니아의 1대 차리차, 올가 드미트리예브나 류리크가 결연하게 외쳤다.
“경들이 말했듯 나는 키이우의 올가니까.”
전 코자키 대헤트만이자 이제는 루테니아의 늙은 재상으로 있던 키릴로 라주모프스키가 지팡이를 짚은 채 그녀를 대견하고 감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전하. 전하는 지금껏 최전선 바로 인근에서 한 번도 동요하지 않으셨지요. 병사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리 행동하셔야 합니다.”
늙은 재상은 차리차에게 웃어 보였다.
“미콜라이우로 가십시오. 이번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아셨기에 미리 준비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곳이 무너진다면, 대공 전하와 함께 케르키니티다로 가십시오.”
키릴로는 죽음을 각오했다. 키이우가 떨어지는 것은 기정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저들은 필히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
“유제프 공, 전하를 잘 부탁드립니다.”
“예, 재상.”
올가의 사위이자 폴란드 왕의 조카인 유제프 포니아토프스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폴란드에 그가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루테니아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 * *
키릴로의 항전에도 불구하고 여왕이 피난한 키이우는 결국 무너졌다. 소련은 마침내 이곳을 점령한 것을 기뻐하며 소소하게 자축했다. 그리고는 여세를 몰아 루테니아를 더욱 압박했다. 루스 재통일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이 옛 루스인들은 같은 루스인들의 점령에도 끈질기게 반항했다. 곳곳에서 사보타주가 일어났다.
올가는 얼마 안 되는 그녀의 통치기간 동안 남쪽으로 피신한 루스인들과 자포르자 코자키들을 규합해 루테니아인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크레믈의 업보도 업보였다. 제정 러시아나 지금의 소비에트 연방이나 흑토지대는 항상 착취하는 땅으로 여겨졌으며, 희생을 당연시했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자영농을 탄압하고 집단농장을 도입하는 소련의 치세엔 이곳의 미래는 크게 불안했다. 특히나 멘셰비키 지도자들은 탁상행정의 대명사와 같았다. 유능했으나 노동자와 농부들의 실상은 잘 몰랐다. 단지 이념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상했고, 결정하면 따르도록 지시할 뿐이었다.
이들의 아래에선 어쩌면 비옥함 속에서의 굶주림을 겪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런 국민들의 사보타주로 소비에트는 점령지 관리에 실패했고 미콜라이우까지의 진격도 이루지 못했다. 이곳엔 요새선도 없어 전부 평야지대인데도 그들은 우만(Умань)을 뚫어내지 못했다.
1월이 되자 전세가 소소히 반전되었다. 도이치―소비에트 전선에서 마침내 타수군이 유의미한 승리를 거두었다.
루테니아 참모장 유제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이긴 게 다행이군요. 원래는 더 빨리 이겨야 했는데.”
올가도 막내딸 사위가 말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도이치는 그들의 기술력과 대단함으로 소련을 손쉽게 이겼어야 했다.
하지만 평화에 젖은 그들도 초기에는 졸전을 거듭했다. 유제프는 융커들이 셰임과 비슷한 추태를 저지를까 봐 노심초사했다. 폴란드 방어선과 도이치가 무너지면 유럽에 희망은 없어 보였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도이치도 유제프의 염원처럼 정신을 차렸다. 지금의 도이치는 이전의 사령관이 졸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막 교체된 상황이었다.
새로 들어온 게프하르트 폰 블뤼허 도이치 육군 원수도 그렇게 대단한 명장은 아니었다. 소련군 원수들보다는 그 명성과 능력이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렇기에 블뤼허 또한 초반엔 전임자와 같이 우수한 무기와 자원, 여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번번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강군을 자랑하는 도이치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다만, 블뤼허는 그런 시행착오에서 배우는 것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기갑장군으로서는 자신이 있으나 대전략에 관해선 썩 유능하지 못하단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저돌성을 보좌해 줄 참모장을 잘 활용하기로 노선을 틀었다.
― 거기 뭐, 요령 전역에서도 새파란 애송이가 활약한다고 하더군. 자네도 나를 좀 도와주게.
그는 작은 지주의 아들에 불과했지만 뛰어난 재능을 보여 군에서 두각을 나타낸 참모장교, 게르하르트 요한 다비드에게 대전략을 일임했다. 파격적인 처사였지만, 전례가 있었기에 괜찮았다.
그 참모장 게르하르트 요한 다비드는 또 자신을 보좌하는 두 명의 젊은 제자를 불렀다. 이름은 카를과 아우구스트라 했다. 유제프가 그것까진 알지 못했다. 별로 중요한 인물들은 아닐 테니까.
어쨌든 도이치가 드디어 제 몫을 해 주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전선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건 도이치의 능력 발휘라기보다는 이번에도 고려의 지원 덕이었다.
루테니아는 국토의 상당 부분이 점령된 상황에서도 장비와 물자 보급을 계속 받았다. 루테니아 사람들도 에이레와 비슷한 수준의 생활이 가능했다.
또 인도양에 있었던 7함대가 전쟁 발발 후 흑해로 이동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곳의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공군 지원은 소비에트의 공세를 막는 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지원이 전쟁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교착 상태에서 이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개천 531년 1월 4일을 기점으로 거대한 수송선의 행렬이 북려에서 출발했다. 5함대가 이를 호위했다.
이 함선들에는 루테니아 방위를 담당할 고려의 집단군만 있지는 않았다.
국제연합에서 지원과 파병을 천명한 연합군도 있었다. 무타파와 콩고, 가나, 부간다 등의 열대지방에서 온 흑인들은 이 혹한의 추위가 도통 적응이 안 되는지 두꺼운 방한외투를 껴입고도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래도 사기는 높아 보였다.
그들은 목에 건 염주를 매만지며 출발 전에 자신들의 왕에게서 받은 연설을 떠올렸다.
― 너희들은 우리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안다. 우리의 선조들이 어떤 오욕을 받아왔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너희들은 자유와 권리의 소중함을 안다.
만종을 믿는 자로서, 너희들은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하라. 그것이 너희의 의무다.
위법망구(爲法忘軀)라 하였으니, 법을 위해 몸을 아끼지 말지어다.
올가와 해대헌 부부가 직접 미콜라이우의 항구에 나와 그들을 환대했다.
모두가 고마웠다.
가장 지원을 많이 해주고, 무려 집단군 규모의 원군을 파병한 고려도 고려였지만, 다른 나라들도 고마웠다. 오백 명밖에 파견하지 못한 기니 아프리카의 소국도 그러했다.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왔는지 알기에 더더욱.
물론 루테니아는 식민지 시절의 업보가 전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남의 나라의 자유를 위해 피 흘리며 싸워주는 것은 실로 숭고한 행위인 것이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은 항구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들이 들리자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수송선들이 강철의 전차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고려는 저번 대전쟁에서 전차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며 세계에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도 하역되는 전차들의 모습은 그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외관부터 투박한 소련이나 도이치 전차와는 완전히 다르게 날렵했다. 장갑이 그리 무겁고 두꺼워 보이진 않는데도 포탄에 대한 방호력을 충분히 자랑한댔다.
승무원 편의성은 압도적이었다. 자동차 기술의 발달로 동시대 어떠한 전차보다도 우월한 현가장치와 격벽화 습식탄약고 같은 것들은 편의성뿐만 아니라 소소하게나마 생존율을 올려주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차들만큼이나 많은 장갑차들이 하역되었다.
전군 기계화라는, 얼핏 보면 허황된 목표를 상정해 놓은 고려는 정말로 보병수송장갑차들을 찍어내고 있었다.
알보병은 행군하는 데만도 체력을 다 소모한다. 고려는 이런 비효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또한 진정으로 정교한 제병합동을 위해서는 보병이 기갑과 같은 속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니 기계화보병이 필수였다.
올가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네 배는 더 큰 규모로.
[작가의 말]
게르하르트 요한 다비드는 원역사에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 의해 훗날 작위를 받아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라 불리게 됩니다.
카를 :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아우구스트 : 아우구스트 나이트하르트 폰 그나이제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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