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화 괴물
네드 러드는 무사히 3함대 항공모함에 도착했다.
적국의 함대지만 근래에 이렇게 안심되었던 순간이 있었던가.
하지만 동시에 그는 구출 도중 보았던 그 전투기가 갑판에 몇 개씩이나 발진 준비를 마친 것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더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항공모함의 대수도 한 척이 아니었다.
잉글랜드―에이레 항공전의 종결을 위해, 고려는 3함대 전력에 나코다급 다섯 척과 갓 생산된 미주리급 한 척을 배치했다. 기존에 살리급 세 척과 피마급 일곱 척이 있었던 것을 더하면, 함대전력에 항공모함만 열여섯 척이다. 말이 안 되는 숫자였다.
미주리급과 나코다급은 각기 6만 톤과 4만 톤으로, 고려 해군의 기준에선 중항공모함으로 분류되었다.
일반 단엽기를 싣는 일이만 톤짜리 살리, 피마급 경항공모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 전력을 한 달에 여러 척 찍어내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고려가 경항모를 주력으로 생산했다면 수십 척을 동시에 뽑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최신형 전투기 활주로 길이 문제로 그럴 순 없었지만.
‘아국은 저거 두세 척을 만드는 비용도 크게 부담되었는데….’
고려는 항상 품질을 신경 썼다.
네드 러드가 예전에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을 때도 고려산 기계들은 고장율도 현저히 낮았고,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뇌리에 각인된 려제 물건에 대한 동경과 찬탄은 네드 러드가 나중에 국가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이어졌다.
군사무기의 측면에서도 이런 품질 고집은 여전했을 것이기에 저것들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금이 들었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한때 대양함대를 꿈꾸었던 잉글랜드였기에 네드 러드 또한 함대의 비용에 대해선 확인한 적 있었다.
실제로 랭커스터 왕실은 지금의 공화국 해군이 가진 전함과 항공모함 전력을 완성했다. 그러는 바람에 민생을 완전히 손 놔 버려서 혁명이 일어나긴 했지만.
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우선시하는 잠수함학파에 의해 항공론자와 전함론자가 모두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제독들은 대양함대를 구성해야만 알비온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곤 했다.
이러길 잘했다. 네드 러드가 뇌까렸다. 항복하길 참 잘했어.
그는 그 와중에도 전투기를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어 신이 나 보이는 어린 해리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무슨 전투깁니까?”
네드 러드가 아들의 궁금증, 아니 자신의 궁금증을 참다 못해 물었다. 아무리 망명했다 하나 적국 수장이 그런 군 기밀을 물어보는 것이 우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제독은 친절히 답변해 주었다. 기술도 아닌 이름 정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특히 상부에서는 네드 러드의 기를 확실히 죽여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벌입니다.”
분출기관 전투기는 꽤 이전부터 개발에 착수한 상태였다. 상민이 해청에게 제트 전투기의 미래에 대해 말을 하고 있을 시점부터 이미 부익사에선 개발에 들어갔었다.
분출기관 전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당연히 기관 그 자체였다.
구조적으로 가장 단순한 흡기분출기관이 가장 먼저 개발되었다.
부익사는 일전에서 분리된 전투기 기관회사인 충천사의 분출기관을 토대로 하여 초창기 시제기였던 꿀벌과 나나니, 그리고 지금 말벌로 칭해지는 전투기까지 만들어냈다.
말벌 전에 있었던 몇 개의 전투기들은 양산에 들어가기에는 썩 좋지 못했다. 고려 공군과 해군은 하나의 분출기관 전투기가 다목적 역할을 부여받길 원했다. 그동안 고려 공군은 요격 전투기와 폭격기, 급강하폭격기, 민첩성은 떨어지지만 항속거리는 훨씬 먼 중전투기와 중폭격기, 정찰기 등이 구분되어 있었다.
반면 압도적인 기관 성능을 지닌 분출기관 전투기의 시대에는 보다 효율적으로 기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신기전과 공학, 전자부품의 발달도 한몫을 거들었다.
말벌은 공군이 요구한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
전통적인 기관포와 재래식 폭탄 말고도 신기전을 적극적으로 채택했기에 가능했다.
신기전은 그야말로 미래의 무기였다.
놀랍게도 신기전이 고려의 역사에 등장한 순간은 아주 먼 옛날이었다. 케케묵은 해상십자군 시절의 사료에도 나오는 무기였으니 개념 자체는 이미 아주 먼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기전이 정녕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공학이 자리를 잡은 이후였다. 재래식 포탄과는 차원이 다른 정밀함과 화력을 쏟아붓길 원한다면 전자공학과 화학 등이 따라가 줘야 했다.
화학이 발달하며 신기전의 추진 연료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자, 고려군부는 본격적으로 신기전에 대한 개발에 나섰었다.
육군 쪽에선 기술선도국의 자료 전달이 있기 전부터도 신기전포병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정밀함이 절실한 항공폭탄과 달리, 지상전에선 명중률은 덜 중요하더라도 왕창 쏟아붓는 것이 좋았다.
포병은 훨씬 더 경제적으로 신기전의 화력을 대체할 수 있었지만, 결국 거리를 대체하진 못했다.
공군은 육군과 보는 관점이 달랐다. 해군항공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정밀함을 우선시했다.
적을 사선에 두어야 하는 기관포와 그저 적 머리 위에서 폭탄을 떨구며 제대로 맞길 기도해야 하는 재래식 항공폭탄은 명중률이 너무 낮았다. 전선을 전진하며 화력을 쏟아붓는 육군과는 다르게 공군은 시간과 연료의 제약으로 한 번의 출격에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말벌은 방울뱀 3형 1, 2식을 장착해 공대공 전투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으며, 동시에 최초의 공대지 정밀 유도 신기전, 매발톱 2형 무선비축유도 2식까지 탑재할 수 있었다.
효과는 탁월했다. 아직까지도 얼이 빠져 있는 네드 러드의 표정이 이를 증명했다.
방울뱀은 찰나의 시간에 스핏파이어를 무참히 학살했다. 물론 스핏파이어가 처음 보는 무기에 당황해 처음부터 요란한 기동을 하지 않았기에 그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설령 요란한 기동을 하더라도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매발톱도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방공망이 잘되어 있던 포츠머스는 고려 공군에게 완전히 유린당했다. 복좌형 말벌의 뒤에 앉아있는 무장관제사가 유도하는 폭탄은 적 대공포에 높은 명중률로 직격했다.
그러면서도 급강하폭격기처럼 대놓고 나 죽여 줍쇼 하고 달려들지도 않아도 되었다. 가뜩이나 분출기관 전투기는 기존의 금속단엽 전투기보다 훨씬 더 높은 고도에서 활동이 가능했고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니, 생존율은 압도적이었다.
유일한 단점이라곤, 분출기관 전투기 자체가 금속 단엽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비싼 무기가 되어버렸단 점이었다.
농담 삼아 말벌 조종사들은 자기네들이 발사하는 방울뱀이 적 기체보다 비싼 거 아니냐고 말했을 정도였다. 사실 몇 발 내에 격추하지 못한다면 그 말이 옳기도 했고.
하지만 그건 이번 전쟁에서 진심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다진 고려에겐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 * *
네드 러드는 협조적이었다. 항공모함에서의 위압적인 환대가 효과가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안전한 고려령 카나리로 망명한 뒤엔 고려의 계획을 도왔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고려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잉글랜드 공화국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잉글랜드 최고 위원회는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그들의 위원장을 납치한 고려의 행동이 만행이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네드 러드가 고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자 그들은 한동안 혼란스러워했다. 특히나 당의 고위 간부는 몰라도 인민들의 민심이 요동쳤다. 소문에 밝은 자라면 네드 러드의 최근 신변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을 터다. 장교들도 그랬다.
이윽고 최고 위원회는 입장을 변경했다. 그들은 네드 러드가 고려에 극악한 고문을 당해 이상해졌다고 말하다가 마침내 네드 러드가 공화국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특히나 네드 러드의 아내, 샬럿 러드가 그런 주장을 펼쳤기에 사람들은 긴가민가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든, 잉글랜드는 정상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그 와중 고려와 에이레는 다시금 에이레해를 통제하게 되었으며, 스코틀랜드 해방작전을 시작했다.
극악무도한 잉글랜드 ‘남괴’ 놈들에 의해 적화통일을 당할 뻔했던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는 환호성을 질렀다.
“앞으로는 처신을 잘 좀 하시오.”
“예, 폐하.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스코틀랜드의 아니스 여왕은 창천궁에 들러 축하 반 꾸지람 반을 들었다. 스코틀랜드가 무력하게 잉글랜드와 병합된 이유 중 하나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컸다. 왕실이 그런 면에서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다. 고려는 잉글랜드가 브리튼섬을 통일하는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예전의 국경선으로 회귀하기 위해 스튜어트 왕조를 이용했지만, 얘네들도 좀 바뀌어야 했다.
반면 랭커스터 왕조는 극심하게 반발했다. 네드 러드의 망명 자체도.
하지만 반발하면 어쩔 텐가.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이미 랭커스터는 그들의 업보 덕에 국내의 지지기반을 모두 상실했다. 또한 이미 금태환 문제로 고려에게 단단히 찍혀 있었다. 국외적 지지기반도 없었으니,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현 잉글랜드 여왕(사실상 뉴펀들랜드 여왕이라 부르는 것이 옳았다) 엘리자베스는 에이레 왕 브라이언 3세와 결혼하며 잉글랜드 복위를 사실상 단념했다.
브라이언 3세는 엘리자베스와 동군연합을 꾸리면서 에이레의 왕이자, 뉴펀들랜드와 누아 에린이 합쳐지며 탄생한 아발론의 왕이 되었다.
신화 속에서 국명이나 도시의 이름을 따오는 일이 많은 에이레에게도 그 이름은 친숙한 것이었다. 같은 켈트의 문화였으니.
네드 러드도 그때, 왕정이 복고할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다.
러드의 전향이 있었던 날로부터 3개월 뒤의 개천 531년 1월, 잉글랜드는 내전을 시작했다.
최고 위원회 소속의 아서 콜리 인민무력부장은 여전히 샬럿을 비롯한 최고 위원회에 충성했다. 아서 콜리는 현 잉글랜드 최고 사령관이었으며 굉장한 군사적 재능을 보였다. 고려도 인정했다. 중화의 호원민, 소련의 수보로프와 쿠투조프, 잉글랜드의 아서 콜리까지. 이들의 행동은 정보국과 군부의 큰 관심거리 중 하나였다.
다만 위원회에 속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 있는 정치인들이 네드 러드에게 호응했다.
2명의 윌리엄이었다. 윌리엄 피트와 윌리엄 윌버포스는 공화국 내에서도 상당한 명성과 입지를 가진 자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네드 러드를 존경하고 그의 이상에 감화된 정치가였으며, 최고 위원회의 바뵈프화를 누구보다 경계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네드 러드는 그들을 더 중용할 걸 그랬다는 회한까지 들었다. 사적 친분이 자신의 눈을 흐릴까 오히려 최고 위원회에 올리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였다.
그리고 많은 하급장교들과 인민들은 네드 러드를 여전히 지지했다. 이들은 네드 러드가 공화국의 업무를 보던 옛날을 그리워했다.
최고 위원회가 이상한 이상향을 들먹이며 소련과 함께 행동한 순간부터, 당의 간부와 고급 장교들은 몰라도 인민들의 삶의 질은 형편없어졌다.
이제 한때 같은 알비온 연합이었던 이웃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삶은 왕정 시절에 비견할 정도로 고통스러워졌으니, 그들은 네드 러드의 배신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 명은 그의 논리를 반겼다.
스코틀랜드가 해방되어가고, 내분이 일어나고, 군사반란이 시작되었다. 아서 콜리가 최선을 다해 틀어막았지만, 그조차 한계를 느꼈다.
고려는 잘 개입하지 않았다.
주력은 중화제국에 있었다. 고려는 겨울이 오자 요령에서 중화제국을 상대로 이번 전쟁은 물론이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투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유라시아 동부전선에 비해 잉글랜드는 피라미에 불과했다. 지금 요령에서는 잉글랜드의 인구 절반보다 더 많은 규모의 병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고려는 잉글랜드 반란군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아직까지도 복귀하지 않은 고려 대장이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합상혁이 가지 못할 곳이 없었고, 하지 못할 일도 없었다. 괴물 부자는 중요 장교들을 생포했고 거점을 초토화시켰으며 마침내 최고 위원회의 턱밑까지 비수를 들이대었다.
재정비한 131부대도 다시금 적진에 파견되어 그들과 함께 행동했다.
마침내 고려대장이 일을 내었다.
위원회는 하나씩 잘려 나갔다.
런던에는 괴담이 떠돌았다. 고려인들은 이를 무용담이라 하겠지만, 잉글랜드인들에겐 괴담이 맞았다.
고려인 거한들이 사방을 휘젓고 다닌댔다. 그 괴물 고려인들은 이번에도 런던 다리를 부술 예정이랬다.
왕정 말기의 불안한 사회 속에서 떠돈 이발사 괴담 따위보다도 이런 괴담이 훨씬 더 설득력 있었다.
잉글랜드는 그들의 뼛속 깊은 곳에 새겨진 공포를 잊지 못했다. 오히려 랭커스터는 해씨와 결혼한 덕에 그런 공포가 희석되었었지, 지금의 공화국은 아니지 않는가.
저항하지 못했다. 잉글랜드 공안들이 사방을 경계했지만 ‘고려 괴한’들은 공화국의 경찰과 군인들, 첩보부들을 농락했다.
하나의 국가가 일개 분견대에 이렇게 유린당하는 경우가 있던가.
고려의 특수작전부대로 파악되는 자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잉글랜드 공화국에선 이자들을 001부터 007까지 임의로 명칭을 부여했다. 모두 현상금이 왕창 걸려 있었다.
그중 일곱 번째 남자는 가장 위험했다. 오스트리아 황제를 무력화하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는 명칭을 받은 요원이자 위대한 사막의 전사, 박성민이 현신했다고 봐도 과장이 아닐 터였다. 자세한 정보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살아 돌아와야 뭘 알지 않겠는가.
그와 마주친 사람 중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온 자는 아직 단 한 명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은 이제 고려의 것이었다.
대규모 군대 파병은 안 했지만, 3함대 해군항공대는 이제 잉글랜드 하늘을 자기 집마냥 돌아다녔다. 이들은 지상의 특작대에게서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정밀하게 폭격했다. 고려는 도덕도 도덕이지만, 그걸 차치하고 네드 러드 쪽 반란군을 위해서라도 쓸데없이 민간에 폭격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전쟁 후, 불과 일 년이 지난 시점에서 아서 콜리가 매발톱 신기전에 맞아 전사하고, 잉글랜드 수괴 샬럿 러드가 포획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작가의 말]
흡기분출기관 : 터보제트
충천 흡기12형 : 12형은 제너럴 일렉트릭 J79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전은 PW J57이나 J47입니다.
방울뱀 3형 1식, 2식 : AIM9 Sidewinder B/D
매발톱 2형 무선비축유도 2식 : AGM12 Bullpup 무선유도(AN/ARW―77 방식)
아마 GAM―79 White Lance, Bullpup A라 보시면 되시겠습니다.(고체추진 ver)
둘 모두 아직은 반도체(Solid State) 폭탄이 아닌 열전자(thermionic) 폭탄입니다.
부익 꿀벌 : F86 세이버
부익 나나니 : F100 슈퍼세이버
부익 말벌 : F4 팬텀에 준합니다. 이름은 호넷이지만….
[삽화]
인구수 도표입니다. 개천 525년 기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