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화 역사의 올바른 편
세상이 전화에 휩싸였다.
고종대제가 꿈꾸던 평화는 완전히 어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해안은 폐허 속에서 아버지의 개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틀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지금 이 전쟁에서 흘린 피가 항구적 평화를 위한 희생이 되리라.
해안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파남의 국제연합 회의장으로 향했다.
황실열차가 상춘을 지나 남파주 열대습지를 통과했다. 개통된 지 좀 지났지만 황제가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철도 노선은 강회로 만든 토대 위에 지어져 있었다. 높이는 꽤 높아 어찌 보면 교각과 같았다. 그 밑에는 야생동물이 통과할 수 있는 굴들이 있었다.
개간을 많이 했지만 나름대로 습지를 최대한 피해 지었기에 철도 노선 자체도 약간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덕분에 차창 밖으론 옆에 펼쳐진 수림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극한의 자연환경을 이토록 앉아서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된 것. 이게 문명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아니던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래.”
상민도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은 광경이었다. 범려철도는 고려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역사에 존재한 패권국, 미국을 객관적으로 뛰어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영토나 인구, 기타 여러 가지 유무형의 분야에선 진작 뛰어넘어있을지라도, 이런 것들은 그 체감의 정도가 심했다.
미국이 아마 다리앤 갭을 충분히 개발할 역량이 없어서 그러한 것은 아닐 테다. 그들 또한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기술적으로는 가능했다. 다만 그럴 만한 동기와 이유가 없어서 하지 않았을 터.
개발해봤자 남미의 여러 가지 문제(마약, 이민자 등)가 활발하게 미국으로 들어오기밖에 더하겠느냐고,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전려국토개발국의 이러한 구상은 대륙을 확실히 하나로 통합하는 이상을 완벽히 실행한 것이다. 상민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지구와 세계가 이전 삶의 세상보다 뭐 하나는 더 좋은 것이 있어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세계대전 속, 자신조차 회의감에 빠져 있는 순간엔 이런 소소한 위안이 필요했다.
‘녀석….’
상민은 문득 마음이 아팠다.
그가 자식 한 명 한 명을 전부 다 신경 쓰지 않게 된 지도 이미 한참 되었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그런 인간관계가 무디어질 때도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아픈 손가락은 언제나 있었다.
막내아들 상혁은 그와 많이 닮았다. 젊을 적의 패기만만한, 정의로운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자신과.
그 애가 가장 위험한 전장에 홀로 앞장서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상민은 불안했다. 물론 그 아이가 신체적으로는 자식들 중 가장 자신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애는 필멸자, 인간에 불과했다. 언젠가 사라질지언정 지금 당장 잃기는 싫은 것이 자식이니 불안감은 당연했다.
“그래서, 왜 이렇게 군주들을 불러 모으는 거냐?”
이번에 파남에선 국제연합 회의 겸 국가원수들의 모임이 있었다. 원래처럼 국제연합 대표부에 파견되어 상주하는 대사들의 모임 정도가 아니었다.
대사들도 있긴 있었지만 중요 요인 수행을 위해서였다.
군주나 후계자, 수상급의 인물들이 전부 모였다. 국제정세가 국제정세인 만큼, 모두가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증명이었다.
물론 심각함의 정도 자체는 다를 것이다.
국제연합의 구성원 중 많은 국가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 순간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여전히 많았다. 그들은 전쟁이 자기 삶의 일부분이 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전쟁에 참여치 않은 나라들은 대체로 국력이 약했다. 완전히 약소국은 아니더라도, 열강까진 들지 못하는 나라들이 많았다. 참전한다 해도 그렇게 대단한 전력을 보탤 순 없을 것이다. 솔직한 말로 이번 전쟁에 집단군은커녕 군단급 전력을 보낼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이들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었다. 전쟁에 참여치 않았지만 자원적, 인구적 의미에서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 나라들도 많았다.
“소손은 이번 전쟁이 특정 강대국과 강대국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국제연합과 그 적의 싸움이 되길 원합니다.”
상민은 해안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현 황제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었다. 상민은 황제의 생각을 보고 다행스러웠다. 해완이 아닌 해안을 선택한 것은 아주 마땅하고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이다.
국제연합이 인류보편적 가치에서의 정의를 표명하고 있는 이상, 그렇게 구도가 짜여지는 것이 현명했다. 이번의 대전쟁에서 승리할 편은 조약국이 아니라 연합국으로 불리는 편이 나았다.
* * *
파남의 회의장은 시끄러웠다. 적도에 위치한 회의장의 여건상 항시 가동되고 있는 공조기조차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토론의 열기는 뜨거웠다.
전후 국제연합에 있는 모든 나라는 중화제국의 끔찍한 행동을 규탄했다. 규탄 결의안은 압도적 지지하에 채택되었었다.
사실상 거의 전 세계가 이들을 고립시키는 경제제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고려의 해군들은 중화와 소비에트의 해상 무역을 봉쇄했지만, 이제는 음지에서 생판 다른 제3국의 국적기만 달랑 바꿔 달고 움직이는 선박들도 고려나 연합국의 해군이 모두 단속하고 강제할 권한이 생겼다.
그런 고로 두 나라는 이제 꼼수도 부릴 여지가 아예 차단되었다. 육로로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밀무역밖엔 답이 없었다. 그거까지 막진 못하겠지만, 그런 시장은 크기도 제한되어 있었고 해상무역에 비해 효율도 몹시 떨어졌다.
중화와 소비에트는 필수 원자재가 말라가기 시작했다. 중석(텅스텐)과 반석(알루미늄). 기타 여러 가지 중금속,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기름까지.
하지만 고려는 그 이상을 원했다. 다른 나라들이 전쟁에 참여케 하는 것이다. 병력을 보내거나, 그것도 못 하겠다면 적어도 물자와 원조를 하라는 것.
세 대륙을 점유하고 있는 극초강대국의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 이런 지원은 필요가 없었다. 물자든 병력이든 이번 전쟁에선 가진 힘을 전부 보여주기로 작정한 고려는 개전부터 승리를 자신했다. 과실을 수확할 때까진 까다로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결과는 필연적이라 여겼다.
다만 이들의 참전은 명분이었다. 세계의 모두가 추축국에게 하나 되어 대항한다는 정신. 그것이 국제연합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의니까.
고려 측 대사가 기조연설을 위해 연단에 자리하자, 이내 모두가 정숙해졌다.
고려 대사는 먼저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다른 군주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황상 폐하, 이 자리에 내빈해 주신 각국의 군주 전하, 그리고 대표 여러분.”
인사말과 간단한 축사를 마친 대사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뜸을 들이다 무언가를 꺼냈다. 작고 해진 사진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연설대 옆의 집광투영기에 올려놓았다. 연설장 한 측에 있는 거대한 화면에 빛이 쏘아졌다.
다른 청중들도 어린 시절의 고려 대사를 바라보았다. 작은 아이 옆에는 할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뒤에서 손자의 작은 어깨에 왼팔을 올려놓았다. 오른팔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려 대사는 비로소 기조연설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제 조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조부께서는 여든이 넘으셨고 저도 그때 이미 서른이 넘었기에 주변에선 호상이라고 하셨지요.
모든 이별에는 슬픔이 존재했고, 그렇기에 과연 호상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때에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사가 말을 계속 이었다.
“허나, 지금 와서 제가 생각기에는, 제 조부님은 호상을 누리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분께서 조금 더 사셨다면, 전쟁의 불꽃이 발화되기 전에 위태로워지는 세계를 보며 탄식하셨을 것이 분명하셨을 것이니까요.”
무엇을 위해 싸웠느냐고.
“제 조부께서는 1차대전의 참전 용사셨습니다. 그때 당시 북아프리카 사령부 83보병연대 소속이셨지요.”
대사는 과거를 더듬으며 말을 해 나갔다. 조부는 어느 순간부터 슬며시 듣기 싫어 빠져나가는 아들 대신 손자를 앉혀놓고 전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나갔었다. 덕분에 손자는 당시의 대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외교관이 된 것이기도 했다.
“83보병연대는 당시 베네치아령 북아프리카를 해방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조부께서는 안나바와 베자 등지에서 전투를 치르셨지요.
그리고 그 전투의 중간중간마다, 제 조부와 조부께서 속한 부대는 베네치아가 만든 게토들을 해방했습니다.”
조부께선 그때의 광경을 선명하게 기억하신댔다.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한 것들.
“그들이 무엇을 원했을까요? 먹을 것? 아닙니다. 그들은 그 힘든 순간 속에서도 총을 원했습니다. 그들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나란히 서서 베네치아와 싸우길 원했습니다.”
결국 83보병연대는 군식구를 주렁주렁 달고 튀니스로 진격했다. 그런 차이 덕에 4국 중 최약체라고 불리던 베네치아는 너무나 빠르고 무기력하게 몰락했다. 지금의 대화 수준 정도로.
“그때, 게토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정말이지 열심히 싸웠다고 합니다. 베자에서의 전투 때 조부께서는 함정에 걸려 위기에 빠지셨습니다. 큰 부상을 입으셨지요. 그때 게토에서 구한 사내가 달려와 조부를 업고 후방으로 날랐습니다. 덕분에 조부께서는 목숨을 구할 수 있으셨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그토록 용감무쌍하게 타인을 위해 행동한 그 알제리인. 그는 결국 총탄을 맞아 죽었다. 조부는 엉엉 울며 전투 후 그의 시신을 수습해 어떻게든 유가족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유가족들도 게토에 있었으니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조부를 꼭 껴안아 주었다 한다. 그대가 살았으면 된 것이라고.
조부는 그때 무한한 정의감을 느꼈다 하셨다.
“명분의 정당성. 역사의 바른 편에 있다는 확신. 그런 것들 말입니다.”
이후 고려 대사의 조부는 끝까지 용맹하게 싸웠다. 프랑스 전역으로 재배치된 이후, 자신의 팔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용맹하게. 그가 보았던 광경과 느꼈던 감정을 위해.
청중들이 숙연해졌다. 알제리의 왕자와 튀니스의 수상이 고개를 숙이고는 나직하게 감사함을 표했다.
고려는 건국부터 지금까지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해주었다. 모두가 빚을 지고 있었다. 고려가 그것을 갚으라 강권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나라의 주권은 침탈당하고 있고, 국민들의 자유가, 기본적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제 조부가 느끼셨던 아주 조그마한 감정의 편린이라도 여러분께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함께 싸웁시다. 과거의 비극을 빠르게 끝내기 위해.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야만 할 때입니다.”
“그것이 한때 우리를 억압했던 사람을 돕는 것이라도?”
누군가 손을 들고는 그렇게 말했다. 이번 회기는 참여하는 군주들의 특성상 엄격한 체계 속에서 진행되는 정식 국제연합 회기가 아니라, 약간은 자유로운 토론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렇소. 우리를 죽이고 내쫓았던 사람이라도.”
해안이 답했다. 모두가 황제를 바라보았다. 만삭으로 인해 이곳에 오진 않았지만, 모두가 현황의 황후, 나란투야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할아버지도.
손을 든 당사자, 무타파 왕 니아만두 2세가 문득 포르투갈의 왕 주제 3세의 얼굴을 보았다.
주제 3세도 그에게 와 닿는 니아만두 2세의 시선을 느꼈다. 천천히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것은 노여움이나 기타 다른 감정이 아닌 오로지 순수한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움.
아, 저들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그것을 수치스러워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가.
니아만두 2세는 알았다. 지금 저렇게 소위 말하는 유럽의 문명 열강국들이 이렇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것이 고려가 주도하는 문명의 본질이었다.
니아만두 2세가 다른 왕들을 바라보았다. 콩고의 아데사니 왕과 시선이 맞닿았다. 국경선을 마주한 이웃 나라는 보통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것은 무타파와 콩고도 그러했다.
니아만두 2세는 다른 왕들도 보았다. 루바 룬다, 부간다, 메리나. 이웃국들.
그리고 조금 많이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아프리카 문화 속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가나와 감비아, 아샨티, 하우사 그리고 다른 나라들까지.
지금 이 순간 그들은 더없는 친밀함을 느꼈다. 그것은 알량한 이권 다툼의 갈등, 부족 간의 갈등 정도로 무너질 친밀감이 아니었다. 그들은 역사가 비슷했다.
억압과 노예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항전의 역사.
그들이 그 고통의 시대들을 견디고 어떻게 우리만의 문명을 세웠던가.
문득 그가 나직하게 웃었다. 참으로, 참으로 속 시원한 웃음이었다.
다른 이들이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음에도, 니아만두 2세는 여전히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가장 완벽하고 우아한 복수로군요. 폐하.”
갑자기 해안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 나라의 영토와 주권은 침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 나라가 무력을 동원해 다른 나라의 시민을 죽이는 경우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초등학생도 그 정도 말은 할 줄 알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었으니 이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상식이 된 지는 불과 몇십 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식을 위해 고려의 선대 황제가 무엇을 했는지, 니아만두 2세는 잘 알았다. 그러니 그는 아까 해안에게 못다 한 감사를 표했던 것이다.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다른 아프리카 군주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의문이 섞인 자들도, 경악한 자들도 있었다. 일부는 그 감정에 공감한다는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우리의 국토를 침범해 우리를 억압한 자들을, 더 나아가 우리를 노예로 판 자들을 위해.”
니아만두 2세가 말을 이었다. 그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이것이 고려가 누려왔던 도덕의 힘인가. 아프리카의 나라보다도 처참해진 몽골의 늙은 칸이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행위의 이유였던가.
굴레처럼 반복되는 증오의 역사에는 보복이 아닌 용서가 필요했다.
니아만두 2세가 후련하게 내뱉었다.
“우리는 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니아만두 2세의 모습을 지켜보던 콩고의 마니콩고, 은징가 음바페 또한 입술을 깨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이 부처께서 말씀하신 소신연비의 뜻이라면….”
그는 저 먼 옛날, 악인들을 단죄하기 위해 기꺼이 폭탄을 지고 몸을 날렸던 승려의 사리로 된 염주를 쥐고 있었다. 아직 콩고는 과거의 허물이 온전히 벗겨진 것은 아니었다. 동아프리카에 있는 무타파보다는 서아프리카의 국가들이 포르투갈, 프랑스 등에게 더욱더 핍박받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무타파의 행동, 고려의 주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국가적 이해관계로서 이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물론 그도 주제 3세와 프랑스 당통 대통령의 표정을 보며 느끼는 고소한 감정을 부정하진 못했다.
“우리 콩고 왕국 또한 참전을 선언하겠소.”
다른 왕들과 대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악숨 왕국 또한 참전을 선언하겠습니다.”
“부간다도 지원을 하겠소.”
“이스라엘 또한 유럽인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가나는 조선을 돕기 위해 일어날 것입니다.”
“나미브 또한….”
일부 국가는 그래도 포르투갈이나 유럽 열강을 도와주기는 싫었는지 그렇게 말을 했지만, 그래도 다른 전역에서의 참전을 선포했다.
‘국제연합군’은 진정으로 그 이름다운 명분을 가지게 되었다.
병력의 절대다수는 고려와 열강들이겠지만, 십만 명, 만 명 하다못해 천 명을 파견하는 국가들마저도 그들이 가진 명분과 정의를 이번 전쟁에 기꺼이 투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주제 3세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 또한 천천히 일어났다.
주제 2세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보아의 앞바다에서 몰려오는 고려의 지원에 감읍하여 꿇었었다.
그리고 주제 2세의 손자인 그 또한 고개를 한참이나 숙이고 읍을 했다.
조부 밑에서 교육을 받은 주제 3세는 군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은 허물이 아니라 여겼다.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진정한 허물은, 자신의 추태를 직시하지 않고 부인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은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속했다.
“하…!”
조르주 당통 프랑스 대통령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선대의 멍청한 왕정주의자들과 독재자가 저지른 식민 지배에 대한 용서를 자신의 임기에 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짜증이 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정의엔 깊이 감동한 상태였다.
그는 용기 있는 남자였다.
공화국이 되었어도 자신들의 정상이 외국에 가서 고개를 숙였다는 소식을 들은 위대한 프랑스의 국민들 몇은 발작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싶진 않았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프랑스 또한 왕정 시절, 외젠 시절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또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사방에서 사진기가 번쩍였다.
“크고 못생긴 머리지만, 부디 해량해 주십시오.”
그래도 그답게 끝은 재치 있는 어조를 유지한 당통의 사죄에 은징가 음바페가 피식 웃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함께 싸웁시다.”
* * *
회의장의 관계자석에 있는 상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엔 미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는 일어나 문으로 빠져나갔다. 문고리를 잡기 전, 문득 해안의 시선과 맞닿았다.
대체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해안이 시선으로 물었다.
‘모두 잘해주고 있구나, 너희들은 이제 내가 필요하지 않다.’
상민은 그렇게 확신했다.
문득 상혁의 말이 떠올랐다.
― 전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어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상민도 비로소 나섰다.
그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러 가기 위해.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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